1045장. 돌아온 탕자(3).
“아빠빠…….”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가 아빠를 부르며 아장아장 다가왔다.
뛰려는 듯 보였지만 아직까지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아이의 눈에 가득 담겨 있는 감정은 온통 기쁨.
“준아!!!”
남자가 아빠를 부르며 아장아장 다가오는 사내아이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렸다.
“빠빠!”
덥석.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할 만한 대상이라는 걸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 품에 아이는 온전히 덥석 안겼다.
“우리 아들 오늘은 얼마나 컸나 볼까?”
남자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지난 초여름에 태어난 아이는 돌도 지나지 않았는데 성장 속도가 보통의 아이들과 남달랐다.
대부분 돌 때 걷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남자의 아이는 벌써 제법 걸음마를 떼었다.
“까르르르르르르. 아빠빠!”
아빠가 공중으로 안아 올리자 아이가 아빠빠를 외치며 활짝 웃었다.
사방으로 퍼지는 행복 바이러스.
마법 같은 에너지가 아빠와 아이 주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빠빠…… 빠!”
그때 다른 쪽에서 들려오는 깜찍한 목소리.
새하얀 피부의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느린 걸음으로 손뼉을 치며 아빠를 부르면서 다가왔다.
“오! 시아 공주님도 아빠 마중 나온 거야?”
스윽.
오른팔로 사내아이를 안고 왼팔로 다가오는 딸을 부드럽게 안아 올리는 남자.
얼굴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웃음이 피어났다.
“오늘도 제 자리는 없는 건가요?”
남자의 아내가 다가왔다.
서운한 말투였지만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하하. 미안해. 내가 팔이 두 개밖에 없어서 말이야.”
“그러니까요.”
“내 마음 알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무슨 소리야. 언제나 당신은 내 마음의 1번이야.”
“0번도 아니고 1번이요?”
“아니 그게…….”
남자가 당황했다.
“풋……. 푸하하하하.”
아내가 즐거운 듯 빵 터지며 웃었다.
하루 종일 쌍둥이 남매를 돌보느라 고단하고 피곤했지만 남편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가장 즐거웠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과 아이들을 사랑해 주는 남자.
‘립……. 당신을 만난 건 신이 주신 선물 같아요.’
서유나는 사랑 가득 넘치는 눈길로 남편을 바라봤다.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슬픔의 나락에서 운명처럼 만난 남자였다.
비와 소주, 외로움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었다.
장립은 서유나에게 완벽한 존재였다.
어떤 여자가 봐도 빠져들 것 같은 외모, 끝을 알 수 없는 재력, 아이들과 자신을 목숨처럼 여기는 뜨거운 사랑.
가끔 나이에 비해 믿을 수 없을 만큼 원숙한 말과 행동을 보일 때가 있지만 이해했다.
유럽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공부한 화교였다.
동양적 유교 문화가 몸에 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 예절 문화에도 무척 익숙했다.
한국인이라 해도 믿을 만큼 한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했다.
한마디로 그는 천재였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효(孝)도 중시했다.
회사 생활을 하며 힘들게 생활해 왔던 서유나를 구원해 준 사람이었다.
얼떨결에 임신을 하게 됐지만 한국에서 거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부모님을 두고 서유나는 그를 따라 한국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고생해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두 동생을 위해 좀 더 뒷바라지를 해줘야 할 입장이었던 서유나.
부모님도 연로했다.
그때 장립이 모든 상황을 정리해 주고 해결했다.
부모님과 동생이 거주할 수 있는 집까지 마련해 줬다.
엄마 음식 솜씨를 살려 생계에 지장이 없게 생활할 수 있도록 식당이 딸려있는 3층짜리 상가 건물이었다.
위층에서는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고 1층에서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이사하던 날.
가족들은 서로를 껴안고 얼마 동안이나 울었다.
빛도 겨우 들어오는 지하방에서 지내다 매일 햇살을 볼 수 있는 지상에서 살 수 있게 된 게 축복이었다.
동생들에게도 각자의 방이 생겼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부모님은 무조건 장립의 편이 돼 줬다.
장립 또한 동양 예절에 밝아 장인과 장모를 자신의 부모 대하듯 깍듯이 섬겼다.
동생들도 처음부터 가족이었던 것처럼 장립을 편하게 대했다.
그렇게 가족의 안녕과 평안을 확인하고 장립을 따라 미국에 왔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가족들과는 같은 하늘 아래 있는 듯 매일 영상통화를 했다.
LA 최고급 빌라에 살림을 차렸다.
주변에 유명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치안도 완벽했다.
장립의 회사에서 경호원은 물론 가사 도우미도 파견해줬다.
한국인 유모까지 구해준 덕분에 서유나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출산해 기르고 있었다.
이란성 쌍둥이다.
아들과 딸을 낳던 날 장립이 산모인 서유나보다 더 펑펑 울었다.
대개 남자들이 아이 아빠가 되면 울곤 한다지만 장립의 눈물은 뭔가 달랐다.
장립은 마치 아이들을 제 목숨처럼 여겼다.
물론 아내인 서유나에게도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
한국식 산후조리를 미국에서 받았다면 두말 할 필요도 없었다.
무슨 복인지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랐다.
장립은 가족들을 위해서 회사 일에 열심이었다.
아는 거라고는 엄청난 규모의 투자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뿐이었다.
가끔 집에서도 월가 쪽 거물과 수시로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한국에 있는 장태산 회장과도 간혹 일 문제로 통화를 했다.
중국에서도 연락이 왔다.
몇 개 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장립.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서유나에게는 백마 탄 왕자님보다 더 멋진 사람이었다.
다만 한 가지.
자신과 많이 닮아 있는 딸과 달리 아들은 자신의 외모도 아빠의 외모도 거의 닮지 않았다.
장립의 외모는 상당히 준수했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는 어딘가 고집스러워 보이고 아직 아기인데도 불구하고 턱선이 단단히 살아 있었다.
누가 보면 다른 집 아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서유나는 그 문제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장립이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과 똑 닮았다고 했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배고플 텐데 어서 들어가요. 당신이 좋아하는 갈치찜 해놨어요.”
“갈치찜!”
화교라고 했는데 실제 식생활에서는 중국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 장립.
본인은 전생에 한국인이 분명했다며 농담 섞인 말로 자신의 입맛을 설명했다.
매콤한 생선찜 종류를 가장 좋아했다.
서유나는 그런 남편의 입맛을 고려해 항상 자신이 직접 요리를 준비했다.
바쁜 와중에도 빠트릴 수 없는 남편의 건강과 입맛.
엄마 음식 솜씨를 제대로 빼닮은 서유나의 손맛에 장립은 언제나 대만족이었다.
“며칠 후에 손님이 오신다고 했나요?”
“어.”
“누구요?”
“장태산 회장.”
“좋은 분이시죠.”
서유나가 임신을 하고 퇴직하게 됐을 때 잠시 자신의 집에서 머무르게 해준 적이 있었다.
몇 번 본 적은 없지만 엄청난 거물이 분명한 장태산 회장.
엘자 회장도 그를 몹시 어려워한다는 소문을 퇴사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단순히 좋은 분이 아니야. 당신과 나……. 그리고 아이들이 있게 해 준 생명의 은인이야.”
장태산 회장 얘기만 나오면 남편은 진심을 다해 감사와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이들의 대부니까요.”
서유나가 그런 장립을 보며 빙긋 웃었다.
능력 있는 남편 친구는 미래 아이들을 위한 좋은 인연이 돼 줄 것이다.
“어서 들어가지.”
양팔에 두 아이를 안고 장립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옆을 조용히 따라 들어가는 서유나.
‘모든 게……. 꿈만 같아.’
그녀의 입가에 행복 넘치는 미소가 가득 피어났다.
***
고금리?
나도 들어만 봤던 고금리.
알림음이 얼마나 사용하라고 나를 꼬셨던가.
어쩔 수 없이 중금리까지는 사용해 봤지만 고금리는 절대 이용하지 않았다.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는 늪과 같은 고금리의 세상.
일명 사채라 불리는 고금리는 인간이나 귀신이나 제대로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겁도 없는 잡귀가 이계에서 고금리를 사용했단다.
그것도 드워프 신들한테.
내가 알던 드워프와 하는 일부터가 달랐다.
언젠가 노바 형님이 지나가는 말로 언급한 적이 있었다.
드워프 신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계산이 철저한 자들이라고 했다.
철을 만지는 것만큼이나 금은보화를 가까이하고 좋아하는 드워프.
그들에게 고금리로 빌렸다면…….
“쯧쯧.”
아타까움에 혀가 절로 차졌다.
- 형님…….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자신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노숙 귀신이 눈치를 슬슬 보며 물었다.
처음 봤을 때 장립의 영혼은 잡귀 수준에도 못 미칠 만큼 수준이 떨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꼬라지가 그 모양이다.
언제 고금리를 빚을 갚고 신이 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법적 용어로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난 변호사다.
노숙 잡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을 수십 개는 알고 있다.
- 네…….
“자초위난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긴급피난이 인정되지 않는다.”
법관처럼 차분하고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 긴급피난요? 그게 무슨…….
“잡귀! 고금리 사용했으면 그곳에서 끝장을 봐야지! 문어발 경영하다가 망했다면 신장이라도 팔아야지. 왜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물을 흐려! 니가 싼 똥 니가 치우라고!”
냉정하게 감정을 배제하고 호통을 날렸다.
잡귀 없는 시간 동안 얼마나 평안했는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
돌아온 탕자 꼴로 무일푼에 빚밖에 진 게 없는 잡귀.
난 성인군자가 아니다.
저 노숙 잡귀를 오늘 눈앞에서 깔끔하게 치우는 게 급선무였다.
“너 이제 그만 저승으로 가라.”
- 혀, 형님! 잠시만요! 애들을 봐서라도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애들?
지금 그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와!
장씨 집안 대를 이을 쌍둥이를 얻었다고 기뻐하던 놈이었다.
그런 놈이 이계에서 여신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포인트 다 까고 고금리까지 사용해?
- 제가 이런 귀신 생은 처음이라……. 실수했습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형님이 용서하시고 광영의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노숙 귀신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바짝 엎드리고 비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흔들렸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쁜 놈도 아니었다.
살아생전 각성하지 못한 무지와 무명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지금 저 상태였다.
세상과 우주가 같은 이치로 돌아가는 걸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그 점에 나도 한몫했다.
노바 형님에게 떠넘겨 버리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정적으로 임성철 회장의 숨이 붙어 있는 한은 장립이 필요했다.
부정할 수 없게 삼인행으로 엮여버린 운명.
내가 알지 못하는 하늘의 이치가 빽빽한 그물처럼 촘촘했다.
- 열심히 벌어서 갚겠습니다! 어차피 죽어도 못 죽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노숙 귀신의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 형님……. 회장님과 우리 관계 잊으셨습니까?
눈빛이 살짝 바뀐 귀신이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세 사람의 관계를 확인해 왔다.
당연히 잊지 않았다.
운명으로 얽혀 있는 관계가 아닌가.
“!!!”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생각 하나.
“야! 자, 장립! 너 설마!!!”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오며 목소리가 달달 떨렸다.
- 저야 사라지면 그만입니다. 여왕님이 괜한 포인트 날려가며 저를 지구로 추방할 때 다시 형님께 보낸 이유가 있습니다.
귀신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손발이 덜덜 떨렸다.
뭔가 제대로 당당하고 돌아온 것 같은 저 잡귀!
- 어차피 저는 사라져 저승으로 가면 그만이겠죠. 그렇게 되면 회장님은 제 모든……. 채무를 떠안게 될 것입니다.
“야!! 이 나쁜 놈아!!!”
차원을 넘나드는, 빠져나갈 수도 없는 삼인행의 계약 범위.
저 영혼이 존재해야 임성철 회장님이 현존할 수 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장립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고 자연스럽게 삼인행 계약이 파기되면…….
- 그리고 결정적으로 형님에게도 불리합니다.
“뭐가 불리해!”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제가…… 연대보증인으로 형님을 내세웠습니다.
“뭐, 뭐라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