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3장. 돌아온 탕자. (1,029/1,284)

1043장. 돌아온 탕자.

“장 목사님!”

“고 교수님!”

중년의 두 남자가 만나자마자 손을 맞잡고 활짝 웃었다.

북한산 계곡에 위치한 백숙집.

아무도 없는 별채에 자리를 마련했다.

그들이 자주 접선하는 장소 중 한 곳이었다.

“잘 지내셨죠?”

“물론입니다. 하나님과 교수님 같은 분들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가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신도들이 좀 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신도수가 늘었다니.”

“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앉으십시오. 먼저 주문해 놨습니다.”

넓은 상 위에는 푹 삶아진 큼지막한 토종닭과 황금빛으로 우러난 인삼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별일 없으시죠?”

“괜찮습니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라서 마음이 아픕니다. 빨갱이들이 다시 준동하고 있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 같은 태평성대가 요근래 어딨다고. 쯧쯧.”

“맞습니다. 장로님이 대통령으로 다스리던 나라에 이어 귀한 분의 따님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셨지 않습니까.”

“저와 신도들이 기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를 이만큼 먹고 살게 해 준 분의 따님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살아 있는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고용호와 오랜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장광태 목사.

사람 좋은 미소를 한껏 지었다.

누가 봐도 평범하고 선량한 얼굴에 인자한 모습이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여인네들을 매로 다스려 훈육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며 교회를 운영하는 전형적인 꼰대 목사였다.

신도들을 향해 목사가 하는 말 한마디에 속옷까지 다 벗을 수 있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설교할 정도다.

신앙의 중심인 믿음, 소망, 사랑보다 십일조와 온갖 감사 헌금이 제일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히는 인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결정적으로 장광태 목사는 극우개신교의 선두에 섰던 신봉자였다.

대한민국 실존 인물 중 가장 강력한 극우 성향의 인물로 테러조직을 조직했던 주경진 목사를 따랐던 인물 중 한 명이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조직은 지주, 신사 참배를 했던 변절 목회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북한에서 월남한 친일파 지주 등 그들의 자식들이 주축이 되어 꾸려졌다.

강력한 방공 이데올로기를 이념 삼아 제주와 대구봉기에서 수만 명의 무고한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엄연히 하나님을 믿는 개신교 신자들이었음에도 버젓이 벌였던 엄청난 학살이었다.

주경진 목사를 따르던 당시 친일파 출신 경무부장, 동포들을 고문하고 심문했던 일제강점기 시절에 임명된 현직 공안검사, 장로 신분이었던 당시 만주군 장교 출신 장군들.

조직의 주축을 이루었던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의 집사이자 장로였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고 같은 동포들에게 죽창을 휘둘렀던 이들.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친일파 청산을 외치던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재판도 없이 죽였다.

그들에 의해 옹호되고 권력을 잡은 대한민국의 독재 정권이 한두 번이 아니다.

초대 대통령부터 시작해 조정희와 그 뒤를 이은 독재 군사정권 등을 이들이 주도해 지지했다.

자신들이 저지른 친일의 역사를 감추기 위해서는 어떤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에 따른 엄청난 혜택도 받았다.

독재 정권의 핵심 지지층으로 자리매김하며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혜택을 누렸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형 교회 상당수가 서북 개신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일과 유신, 자유당이 서로 공생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이들은 다 알았다.

국영방송을 통해 일요일 아침마다 선교 방송이 송출됐다.

종교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에서 특정 종교에 대한 선교 특혜가 곳곳에서 주어졌다.

종교인 과세를 비롯해 여러 면세 혜택이 주어졌다.

대부분 현금으로 헌납되는 무수한 신도들의 헌금은 암암리에 종교인들을 타락시켰다.

어떤 감시나 제재도 없이 수십, 수백, 수천억에 달하는 현금을 대형 교회 목사들은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했다.

도리어 그런 종교 단체 수장의 눈치를 정치인들이 보는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형 보수 교회들의 신도들 수는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렀다.

유권자로 볼 수 있는 그들을 누구도 손을 댈 수 없었다.

대형 교회일수록 연단에 선 목사는 그 무리에서 대통령보다 더한 권력을 행사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현직 대통령도 목사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교회가 얼마나 큰 대박 사업인지 아는 목사들은 악착같이 자식들에게 부를 세습하려 애썼다.

물질이 차고 넘치는 만큼 정신은 빠른 속도로 썩어들어갔다.

신앙을 기반으로 한 신도들의 믿음이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되자 각종 무허가 신학교가 우후죽순 세워졌다.

신앙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이들이 버젓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

비리와 세습, 성추행 및 사회적 범죄들이 끊이지 않고 벌어졌다.

더 이상 그런 교회 안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았고 물욕에 사로잡힌 인간이 주인이 됐다.

결코 스스로 반성하거나 교단 내에서도 자정 작용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놈이 그놈이었다.

오랜 세월 그들이 뿌린 오염된 정신의 씨앗은 대한민국 곳곳에 침투해 싹을 틔웠다.

뿌리 뽑지 못한 친일과 독재의 잔재와 맥을 같이 하는 극우개신교들은 은밀하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로 마귀들을 키워냈다.

결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받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터질 것 같은 기름진 배를 내밀고 꼿꼿하게 서서 참회하라 소리치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우며 눈에 핏발을 세웠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책 속에 갇힌 말이 된 지 오래였다.

급기야 하나님도 이렇게 성장해 온 대형 교회 목사 앞에서 까불면 죽는 세상이 돼 버렸다.

목사가, 인간이 하나님을 발아래 놓는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부탁요?”

“십알단을 다시 부활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 정도로 심각한가요?”

장광태 목사의 눈동자가 빛났다.

과거에도 십알단을 조직하고 짭짤하게 뒷돈을 받아온 터였다.

자신을 따르는 극우 성향의 목사를 통해 철저히 관리해 왔던 십자군 알림단.

조근영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국정원과 국방부, 경찰 같은 국가 기관 말고도 수십 개의 인터넷 여론 조작단이 결성됐다.

그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집단이 십자군 알림단.

“네. 빨갱이들이 다시 곳곳에서 부활했습니다.”

“악마의 독버섯 같은 놈들입니다. 과거 선배들이 인정을 거두고 죽창을 들었을 때 모두 다 지옥으로 보냈어야 했는데.”

목사라는 자가 입에서 서슴없이 튀어나오는 죽창이라는 말을 전혀 개의치 않고 사용했다.

도리어 살기를 보이는 눈동자가 빨갛게 충혈됐다.

“과거가 그립습니다. 하나님이 임명한 대통령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따를 것이지 뭐 이렇게 불만들이 많은 건지…….”

“다들 배가 불러서 그렇습니다. 자유와 공정이 밥 먹여 줍니까? 그게 다 빨갱이들 사상 아닙니까. 그저 하나님이 임명한 대통령과 목회자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이 나라가 천국이 될 것인데 다들 그걸 몰라요.”

장광태가 침을 튀기며 흥분했다.

“그래서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지요. 그런데 십알단 신도들이 요즘 바빠서…….”

말끝을 약간 흐리는 장광태.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아시는 분이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오! 그래요. 이렇게 고마운 분이 있나.”

장광태의 얼굴이 금세 활짝 펴졌다.

십알단을 운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목사들과 전도사들을 통해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신도들을 동원하면 못 할 일이 없었다.

신앙이 두터운 이들로 100명 정도만 모이면 소란스러운 여론을 조작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신도들 명부에 작성된 개인 정보를 활용해 십알단 전사를 모집하고, 한 사람당 아이디 수십 개씩 배분해 잠깐만 움직여도 금방 판세는 뒤바뀐다.

“그럼 목사님만 믿겠습니다.”

인삼주를 큼지막한 잔에 가득 채웠다.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위대하게 만들어 봅시다!”

“빨갱이 없는 세상을 위하여!!!”

시름을 내려놓고 잔을 부딪치는 사악한 사역자들.

그들의 머리 위로 악마의 어두운 은총이 듬뿍 내려앉았다.

***

이게 무슨 소리지?

형님 살려줘???

갑자기 들려오는 알림음에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폈다.

잊혀져가고 있던 그놈 목소리.

- 형님! 저 여기 있습니다!

마지막 힘을 짜내는 듯한 음성과 달리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파앗 파앗.

내 정면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그 무엇.

“뭐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분명 이계에 가서 분리수거를 확실히 하고 왔다.

그동안 전쟁 준비 때문에 이계에 몇 번 갔다 왔는 동안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 잡귀.

- 혀, 형님……. 카르마……. 포인트를 제발…….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해져 가고 있는 영체.

분명 장립이 맞았지만 장립 같지 않았다.

과거에는 뚜렷하게 보였던 장립의 영체가 소멸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눈에 봐도 심각한 상황이다.

“음…….”

잠시 고민에 빠졌다.

- 이 동생 죽어요!!! 소멸되면…….

스르르릇.

영체의 영기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상태였다.

신의 영역까지 출입이 가능했을 만큼 포인트를 모았던 녀석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에휴.”

쉼 호흡 한 번 했다.

이놈의 질기고 질긴 인연.

일단 소멸되는 영체를 살려놓고 봐야 했다.

“장립 귀신을 위해 카르마 포인트를 기증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 빈 공간에 대고 짜증난 목소리로 외쳤다.

- 기증 맞습니까?

알림음이 다시 물어왔다.

“네…….”

아깝다는 생각에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 카르마 포인트 중 장립의 생존을 위해 적정한 수준의 기증이 이루어졌습니다.

파아앗!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희미하게 사라져 가던 장립의 모습이 빛과 함께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 형니이이이이이이임! 우어어어어어어어엉!

모습을 확실히 드러난 장립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소멸될 뻔한 위기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장립.

모습이 요상했다.

“너…… 그 꼴이 뭐냐? 왜 거지꼴이야?”

카르마 포인트 축적 지수가 높아질수록 몸에서 흘러나오는 광채가 달랐다.

한때 저승사자와 맞짱 뜰 정도로 포인트가 제법 쌓였었던 장립.

지금 꼴은 겨우 중요한 곳 몇 곳만 가릴 수 있는 누더기를 걸친 모습이었다.

피죽도 못 먹은 듯 얼굴도 곧 죽을 영혼처럼 누르스름했다.

누가 봐도 무색계의 노숙자 귀신이었다.

- 저 죽다 살아났어요! 형님! 보고 싶었습니다!!!

닭똥 같은 귀신 눈물을 흘리며 장립이 나를 바라봤다.

“…….”

미안하다, 난 아니다.

차마 거짓말로도 그의 등장이 반갑지 않았다.

귀신 없던 지난 2년, 참으로 행복했다.

“어떻게 왔어?”

노바 형님에게 부탁해 장립이 꿈에 그리던 파라다이스로 보내줬다.

나를 떠날 때 보였던 그 의기양양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 쫓겨났어요. 어어엉.

쫓겨나?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 않았다.

“누가 쫓아냈어? 노바 형님이?”

- 아니요.

“그럼 누가?”

시공간을 넘어 차원을 이동하는 일은 함부로 할 일이 못 됐다.

그건 귀신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 혀, 형수님요.

“형수님? 어떤 형수?”

형수라는 말이 또 이해력을 격감시켰다.

이세계에서 장립에게 형수는…….

“설마? 그분?”

- 네! 엘프 여왕님요!!!

“!!!”

그 선량하게 생겼던 엘프 여왕이 왜 장립을 거지꼴로 만들어 그곳에서 쫓아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아직 못 만나 본 고귀한 엘프들의 전 여왕.

노바 형님과 진실한 사랑을 나누고 계시는 분이었다.

그런 분이 왜?

- 제가 소유했던 포인트가 다 떨어지자…….

“떨어지자……. 뭐?”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는 장립.

피가 있다면 곧 쏟을 정도로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리고.

- 누구는 땅 파서 장사하냐고! 가서 포인트 벌어오라고……. 절……. 으허어어어어어어엉!

“뭐, 뭐라고???”

회귀의 전설 2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