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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장. 다시 전쟁(7). (1,026/1,284)

1040장. 다시 전쟁(7).

- 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방법을 찾아내셨습니까!

“이게 바로 짬밥이야. 동생도 잘 배워. 비정한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장의 한 수가 필요해.”

- 존경합니다!

“존경은 무슨…… 허수아비 당대표가.”

- 형님이 아니었다면 누가 그런 묘수를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들 주순자 눈치 보기 바빠서 꼬리를 마는데.

‘주순자! 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년!’

이유성은 속으로 또 이를 갈았다.

조근영을 대통령으로 만들 당시에도 주순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비밀회의 때마다 조근영과 같이 등장했던 주순자였다.

솔직한 말로 조근영의 치부였다.

오래전 고인이 된 부친을 닮은 카리스마 이미지는 모두 포장된 것으로 조근영의 실체는 모두 다 거짓 그 자체였다.

단독으로 독대해 보면 금방 어리석은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간단한 말귀 하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비유와 은유가 적절하게 섞여 있는 정치수사에 대해서는 아예 깜깜이었다.

조근영을 허수아비로 세우기로 마음먹었던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이었다.

주순자는 당시만 해도 고분고분한 일개 아낙네에 불과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조근영을 정치에 입문시킨 동기 또한 그 때문이었다.

허수아비 왕을 앞에 세우고 당권과 미래 대권까지 야심차게 노렸던 이유성.

왕승문도 그때 같이 합류했다.

대구에서 지역구를 잡고 있는 왕승문과 손을 잡았다.

이유성 다음 기수로 왕승문이 뒤를 이어받기로 했다.

이미 공인된 한국대 출신으로 머리가 비상한 인물이었다.

어느 정도 정치적 인지도도 갖추어진 상태.

하지만 그 야심찬 정치적 꿈은 주순자가 탈을 벗는 순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두 사람 모두 뒤바뀐 현실에 크게 당황했다.

주순자의 부친인 주철성의 야비함과 교활한 두뇌를 철저하게 닮아있던 주순자.

조근영을 앞세워 권력을 잡자 괴물의 본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일개 아낙네의 무지하고 무식한 행태까지 더해져 파괴적 행동을 일삼았다.

간신배들이 알아서 그녀의 뒤를 받쳤다.

기본 룰을 철저히 무시하는 조근영과 주순자는 그간 이어져온 정치적 역사를 유린했다.

거기에는 피아를 가리지 않았다.

이유성은 이를 득득 갈았다.

절치부심 노력한 끝에 당권을 쥐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가장 강력한 패로 기사회생을 도모했다.

동시에 함께 움직여 줄 많은 동료가 필요했다.

혼자 이 길을 갈 수는 없었다.

정치인들에게 있어 계파가 바로 전진할 수 있는 힘이었다.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왕승문은 당연히 이유성의 계파였다.

“동생은 내가 확실하게 도와줄게.”

지금 이유성으로서는 왕승문을 반드시 잡아야 했다.

성골 지역구 출신으로 긍정적 효과를 노려볼 수 있었다.

이렇다 할 흠 잡을 거리도 없는 인물이다.

차기 정치 잠룡으로 충분히 키워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 저를요? 쉽지 않을 텐데…….

왕승문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

대구 지역구를 빼앗겨 버린 상황.

조근영에게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뱉었다고 주순자가 친위부대를 보내 공천 학살을 자행했다.

대구에서 조근영은 영원한 공주였다.

그녀의 지지 없이는 누구도 대구에서 승기를 잡을 수 없었다.

“나만 믿어. 혼자 살겠다고 옥쇄 들고 부산까지 왔겠어?”

- 방법이 있습니까?

왕승문의 귀가 솔깃해졌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생각할 때는 묘수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공천에서 배제되었고 당협위원장은 특정인으로 내정되었다.

이유성 당대표의 도장이 찍히는 순간 바로 선거운동에 돌입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조근영과 주순자에게 너무 밉보인 상태였다.

원내대표 시절 청와대와 계속 부딪쳤던 일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후회됐다.

“최소한 날 따르는 후배들은 지켜낼 거야.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카드도 있겠지만 동생만큼은 걱정 마.”

이유성은 뭔가 결심한 듯 힘주어 말했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 저를 이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평생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진심이 전해진 듯 왕승문의 목소리가 금세 촉촉해졌다.

하루아침에 동료를 팔아먹기도 하는 정치판에서 이 정도 의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유성은 인덕은 있었다.

“은혜는 무슨. 동생이 원내대표 시절 나 대신 총알받이 해줬잖아. 그 공은 갚아야지.”

이유성은 항상 상벌을 확실하게 하는 인물로도 정평이 나 있었다.

눈에 띄는 듬직한 덩치만큼 내 식구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넉넉한 주인어른처럼 굴었다.

- 기한이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바쁜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야.”

- 그렇군요.

“똥줄이 타겠지. 원철용이 만나자고 했는데 내가 깠어.”

- 그럼…….

“주순자가 김한규를 달달 볶겠지. 공기업에서 한밑천 챙기려는 사냥개가 주인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어.”

이제 곧 정권 말기에 들어선다.

그동안 못 챙겼던 인사들에 대한 논공행상 2차가 펼쳐질 때였다.

1차 때 꿀 잘 빨았던 이들이 자리를 내놓고 후임에게 뒤를 물려줄 시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공천위원장이 되면서 본인 공천을 하지 않은 김한규는 그걸 노렸다.

뻔한 속셈이 다 보였다.

- 김한규가 연락이 올까요?

왕승문은 이번에 김한규의 본 모습에 크게 놀란 상태였다.

주순자만큼이나 행보가 충격적이었다.

나름 엘리트라고 보통 때도 거만하게 굴었던 인물이지만 그동안 선배들에게는 깍듯했었다.

하지만 학살 완장을 차면서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차별적으로 망나니 칼을 휘두르는 공천 악귀가 따로 없었다.

“기다려보면 알겠지.”

이유성은 그 어느 때보다 느긋했다.

자신의 계산대로라면 지금쯤.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통화 대기음이 들려왔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이름, 김한규.

‘이겼다!’

이름을 확인하고 승리를 확신한 이유성.

장담할 수 없었던 한판의 도박이 멋지게 승리했다는 걸 확신했다.

“사냥개가 미끼를 물었어.”

- 그럼. 김한규가?

“하루만 기다려. 내가 동생한테 근사한 선물 안겨줄 테니까.”

- 넵! 형님! 발 뻗고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말과 함께 대기 통화를 받기 위해 버튼을 누른 이유성.

“바쁘신 분이 어쩐 일이신가.”

넉살을 떨며 느긋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이유성 대표.

- ……대표님. 지금 내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회에 소주 한잔하시죠.

“그럴까? 본격적으로 선거에 돌입하면 바빠질 테니까 좋지.”

- 그럼 곧 뵙겠습니다.

차분하게 팍 가라앉은 김한규 공천위원장의 태도.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걸 이유성은 확실히 눈치챘다.

“천천히 와. 우리 오늘 밤 안주로 나눌 얘기가 많잖아. 흐흐흐.”

***

“지금 이 사실도 알고 계셨습니까?”

양우석이 잔을 비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독한 양주가 마치 맹물 같았다.

만약 알고 있다고 말하면 장태산은 그 자체가 신이나 진배없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미래를 단 한 치 앞이라도 내다볼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능력이었다.

빙긋.

여전히 장태산은 대답 대신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

양우석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이미 오래전 그가 결코 평범한 인간이 아닌 거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예 신처럼 보였다.

모든 것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판을 읽어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각각의 인물들을 장기판 위의 말처럼 이리저리 옮기며 조종하는 것 같은 장태산.

경외를 넘어 이제는 공포심까지 들었다.

자신이 얼마나 장태산을 오판해 왔는지 믿기지 않았다.

가끔 의구심이 들었던 인간적 의심들은 모두 사라졌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장태산도 사람인지라 허점이 존재할 거라고 여겼다.

정치적 견해에서도 방향이 다를 때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비해 가늠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온 연륜에서는 아무래도 자신이 앞서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다 오판에 지나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가요?”

장태산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물었다.

“회장님…… 지금 제 심정은…….”

양우석의 목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공손해졌다.

얼마 전 공천 심사를 받을 때도 이렇게까지 공손하지는 않았다.

당에서 가장 어려운 당대표나 계파 수장인 나국찬 의원을 대할 때도 이렇게 어렵지 않았다.

장태산의 몸에서 후광이 비추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제야 제대로 보이는 그 무엇.

마치 특정 정교 교주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사이비 따위의 종교가 아닌 올바른 정통 교단.

“과거 제가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네.”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의원님이 체감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유성 대표의 반란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변화를 위한 불쏘시개 같은 것들입니다.”

장태산은 확신에 찬 시선으로 예언자처럼 말했다.

양우석은 경건한 자세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귀가 기울여졌으며 진심으로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 선배 의원들의 가벼운 조언과 확실히 차별됐다.

“죽어서 천국에 갈 생각 마십시오. 선악불이(善惡不二)를 잊지 마십시오. 전쟁 중입니다. 자비를 베풀 때는 적의 심장이 완전히 멈췄을 때뿐입니다.”

장태산의 목소리가 비장하기까지 했다.

황산벌에서 나당 연합군과 맞서 싸우는 계백 장군의 헌신이 있다면 지금의 장태산과 같을까.

‘기득권 뿌리가 깊기는 하지.’

장태산 회장이 빠지지 않고 언급했던 기득권의 뿌리.

청산하지 못했던 친일파들이 독재정권과 결합해 엄청난 세를 확장하며 장성했다.

국회의원이 되어 마주한 그 같은 현실의 벽에 양우석은 수십 번 좌절했다.

가히 만리장성과 비교될 만한 수준이었다.

길게 늘어선 거대하고 높은 끝없는 기득권의 벽.

한국을 이끄는 엘리트들 다수가 포진해 있으면서 국민들을 개, 돼지 부리듯 조종했다.

여론을 주도해 곳곳에서 국민들을 지역과 출신, 학연, 혈연 등으로 각각 분리시켰다.

국민 모두가 서로 분열하고 물어뜯어야만 권력을 행사하는 그들에게 승산이 있었다.

깨어날 시민들의 의식이 두려워 기필코 행사해야 하는 투표도 독려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고 굴러가는 것이 가장 원망스러운 기득권 세력들.

마음 같아서는 다시 쿠데타라도 일으켜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야당에도 그들의 간자들이 투입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어느 정도 정리돼 나갔지만 동료라는 이들을 믿지 마십시오. 정치판에 뛰어든 순간, 욕망 앞에서는 몇 번이나 악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슬픈 현실이군요.”

평소 민주화 신념이 투철했던 이들도 변절하는 순간 더 무섭게 변하는 걸 몇 번이나 봐왔다.

양우석도 그들과 같은 인간이라 가끔 그런 욕망이 고개를 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철새정치인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권력의 승기를 잡기 위해 어제의 적과 손을 잡는 이들.

“일송회.”

그때 갑자기 장태산 회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일송회라는 말.

“네?”

“그들이 모든 음모의 주재자들입니다.”

“!!!”

“작금의 대한민국을 암중으로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 바로 일송회라는 조직입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양우석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지금껏 장태산과 몇 번이나 만나왔지만 한 번도 그의 입에서 언급된 적이 없었던 조직이었다.

“독립군을 토벌하던 조선인 일본 장교들이 조직한 사조직. 그 조직이 뿌리를 깊게 내려 모든 걸 집어삼켰습니다.”

“아!”

“군대의 하나회 같은 그런 이익 단체가 아닙니다. 친일파 뿌리답게 일본과도 현재까지 내통하고 있습니다. 일본 황제 생일 파티에 찾아가는 정치인들이나 일본 정부 자금으로 운영되는 재단의 돈으로 공부하고, 이후 사회에 복귀해 국민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어용학자들, 대놓고 일본과 친교하라 떠들어대는 언론들. 그들 대부분이 일송회가 뿌리는 공작의 결과물들입니다.”

“음…….”

양우석이 몇몇 국회의원들을 떠올렸다.

뻔뻔하게 그런 자리에 참석하고도 몰랐다는 변명 한마디로 핑계를 대던 한 여자 의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한때 대한민국 법조계 요직에 있던 그녀는 지금도 국회의원 신분으로 잘 나갔다.

최병박 대통령의 비리를 엄호하고, 지금은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고 조근영까지 잘 빨아주고 있는 그녀.

“아직 깨어나지 못한 우매한 국민들이 많습니다. 100년 세월이 지났으니 용서해 줘야 한다고 세뇌되어 주장합니다.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장태산 회장의 음성은 가늠할 수 없는 신념으로 뜨거웠다.

“진정한 참회와 용서란 단지 입으로 미안하다고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내 뼈와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속죄하고, 이해를 받을 때 용서가 되는 겁니다. 나치 정권에 협력했던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용서를 받았는지 잘 아실 겁니다.”

다소 떠올리기 무거운 사실들이다.

프랑스 납치 협력자들은 대부분 중형을 받거나 죽임을 당했다.

피로써 갚아야만 속죄의 의미 있는 민족 반역행위.

우리는 그때 당시 본보기를 보이지 않고 끌어안은 탓에 국론이 지금까지 회복되지 못하고 분열돼있는 것이다.

“민족의 얼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얼!’

한민족의 민족정신이라 일컬어지는 얼.

양우석은 심장을 통과하는 피가 차차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친일파 놈들은 곳곳에 숨어 더러운 공작질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을 반드시 정죄해야만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세상과 진정한 독립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장태산이 뜨거운 시선으로 양우석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가 뱉었던 뜨거운 말들.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自主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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