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8장. 다시 전쟁(5). (1,024/1,284)

1038장. 다시 전쟁(5).

“주순자. 이게 날 만만한 핫바지로 아나…….”

여당 당대표실.

이유성 대표가 인상을 쓰며 각 지역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선출 목록을 살폈다.

자신이 추천했던 인사들은 죄다 빨간 줄이 착착 그어져 있었다.

대신 어디서 듣도 보도 못 한 인간들 이름이 그 자리를 메웠다.

청와대 몫으로 넘겨주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았다.

도가 지나쳐도 정도를 넘은 수준이었다.

어떻게 보면 학살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가차 없이 쳐냈다.

당대표와도 일체 협의가 없는 독단적인 행보였다.

쥐새끼 같은 친조계 핵심 인사가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으면서 망나니 칼을 휘둘러댔다.

이유성은 속으로 분을 삭이며 이를 갈았다.

자신마저 그들 시야에서 완벽하게 배척됐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내가 투자한 시간 값이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돼?”

조근영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실행 과정에서 이유성 역시 엄청난 공을 들였다.

친조 1호라 불릴 정도로 친조계의 좌장 역할을 도맡아 했다.

2000년도 초반에는 그렇다 할 지지세력이 없었던 조근영.

그런 그녀를 앞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케어하며 도왔던 인물도 이유성이었다.

2007년에는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조근영을 위해 직접 캠프를 조직하고 선거자금을 끌어왔다.

그동안의 정치 인생 전부를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인 사비만 해도 수십억이 투입됐다.

정치적 목적이 뒤에 깔려 있었지만 누가 봐도 열성적인 행보를 보였다.

왕승문 의원과 함께 국민들이 호응할 만한 여러 정책을 입안하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 선택 막판까지 열기는 치열했다.

그 일이 빌미가 되어 새로 대통령이 된 최병박에게 제대로 찍혔다.

18대 총선에서 공천 학살의 희생양이 됐다.

조박 무소속 연대를 구성하면서 겨우 살아남았고 천신만고 끝에 국회에 입성했다.

의원이 되지 못했다면 정치 인생이 끝났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목숨 바쳐 충성을 해 왔건만 의견 몇 번 부딪쳤다고 자신을 잘라내려 했다.

속 좁은 아녀자의 토사구팽.

치명타가 됐다.

세종시 수정안 파동으로 조근영과 제대로 틀어졌다.

그 이후 이유성은 탈조 의원계로 분류됐다.

결정적으로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조근영이 비상대책위원장이 되면서 친조계가 확실히 당권을 잡았다.

이유성은 또다시 공천을 받지 못했다.

재보궐선거로 겨우 원내로 북귀한 케이스였다.

자존심에 심각하게 상처를 입은 이유성.

조근영이 대통령이 된 뒤에는 아예 대놓고 찬밥 신세가 됐다.

하지만 영원히 군림할 수 있는 권력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조근영의 실정으로 그녀의 인기가 떨어지자 운 좋게 이유성이 당대표가 됐다.

그녀에게 찍혔던 의원이 원내대표가 됐다.

시기가 좋았다.

다시 찾아온 선거의 계절.

2016년 3월 당대표 이유성은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며 청와대의 압력을 차단하려 했다.

민심 이반이 뚜렷해지자 완전 국민 경선제를 통해 난국을 돌파하려 수를 낸 것이다.

당연히 친조계 의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조근영 정부와 묶여 순장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주순자와 조근영도 훗날을 대비해야만 했다.

보이지 않았지만 피 튀기는 공천 전쟁이 벌어졌다.

야당과의 싸움이 아닌 자신들끼리 내부에서 피를 튀기며 싸웠다.

그리고.

“조근영 씨.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돼. 야비한 애비를 똑 닮아가지고……. 쯧쯧.”

지근거리에서 조근영을 살펴온 이유성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낱낱히 조근영의 민낯을 봐온 인물이었다.

고인이 된 부친의 장점은 전부 버리고 야비한 모습만 물려받았다.

주순자를 책사로 앉혀 놓고 아예 그녀의 허수아비처럼 지시대로만 움직였다.

같이 회의해 결정한 사항도 뒤에서 주순자의 의견이 더해지면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조근영 정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던 이유성은 그 결정에도 따라야 했다.

대권주자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곧바로 정치력으로 연결됐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의 최종 꿈이 바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 희망이 보이는 곳에 힘이 모이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 점에서 조근영에 밀렸고 이유성은 치명타를 입었다.

사위와 딸이 마약 사범으로 법망에 걸렸다.

가진 권력을 이용해 겨우 빠져나갔지만 멍청한 사위 놈이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에서 재차 걸려들었다.

가족사에 흠결이 발생하면 대권주자가 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였다.

이유성은 목표를 바꿔 선회했다.

대권은 포기하더라도 계파 수장은 되고 싶었다.

한때 자신은 민주투사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조부가 일제 강점기 때 친일을 했다.

“난 살아남을 거야. 그래서 조근영 당신과 주순자 이 잡년을……. 반드시 내 손으로 제거할 것이야!”

사람 좋은 인상과 달리 이유성의 본성은 잔혹한 면도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풍족하게 살았던 그였다.

지금의 수모는 죽어서도 잊을 수 없었다.

스윽.

이유성이 당대표 직인을 들어 올렸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당대표만 행사할 수 있는 직인.

선관위에 도장 사본이 보관되어 있기에 위조할 수도 없다.

이 도장을 받지 못하면 공천 자체가 무효가 됐다.

“흐흐흐흐. 날 죽이겠다고 했지. 잡놈의 새끼들.”

당대표임에도 불구하고 공천 심사를 받으러 갔을 때 나이 어린 친조계 의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비례 대표 선출에서도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리고 친조계 의원의 입에서 ‘개새끼 죽어버려’라는 협박도 들었다.

이제는 원수 관계가 된 조근영과 친조계 의원들.

이유성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통렬한 복수의 방법.

삐이잇.

인터폰을 눌렀다.

- 네. 대표님!

“나 지역구에 내려갈 테니까 차 대기시켜.”

- 오후에 공천 인사 확정 회의가 있습니다.

“뒤로 밀어.”

- 대표님. 공천위원장님이 아시면…….

“야! 대기시키라면 대기시키면 되지, 뭔 말이 많아! 나! 당대표야! 당대표!!!”

버럭 큰소리로 호통을 내지르는 이유성.

금세 비서가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시작된 또 다른 전쟁.

치열하게 서로를 향해 포화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

“이게 얼마 만입니까!”

“2년만인가요?”

“벌써 그렇게 됐습니다.”

“앉으십시오.”

“감사합니다.”

남자가 나타났다.

한때 별 볼 일 없던 지역구 정치인이었던 사내.

내 작업 덕분에 2선을 넘어 3선에 도전하려 하고 있었다.

2선 의원만 돼도 뭔가 달랐다.

얼굴에 여유가 넘쳤다.

공천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여론도 압도적으로 호의적이었다.

이학희 사건을 통해 전국구 스타가 된 덕이었다.

당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었다.

내가 제공한 정치자금을 통해 탄탄하게 인맥을 쌓았다.

사나운 들개들이 어슬렁거리는 정치판에서 동료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가볍게 한 잔?”

“좋습니다.”

팰튼 호텔 스위트룸이다.

비밀스럽게 방을 빌려 양우석 의원을 초대했다.

나와 라인이 닿아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감시를 받았다.

그래서 2년 동안 거의 연락을 끊고 지냈다.

사실 양우석 의원에게 부탁할 만한 일도 없었다.

힘 없는 야당 의원은 크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 권력자가 아니었다.

띠릭.

스위트룸에 비치된 21년산 양주를 개봉했다.

안주는 고급 땅콩.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바쁜 시간 내셔서 왔는데 이거라도 대접해야죠.”

“회장님 왜 그러십니까. 부르신다면 회기 중에도 냉큼 달려오겠습니다.”

여유뿐만 아니라 넉살도 좋아졌다.

또로록.

스트레이트 잔에 호박색 술이 채워졌다.

“한강에서 마셨던 캔맥주 생각이 납니다.”

“저도 가끔 그때가 떠오릅니다. 당시에 대단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충격요?”

“나이도 어린 분이 대단한 식견을 갖고 계셨지 말입니다.”

“건방진 게 아니고요?”

부드럽게 빙긋 웃으며 되물었다.

“무슨 소립니까. 요즘 회장님 생각 많이 했습니다.”

“저를요?”

“예전에 만났을 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곧 분리수거의 계절이 온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될 거다.”

양우석 의원은 그때도 내가 던진 말들을 허투루 듣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제가 그랬었나요?”

“왜 그러십니까.”

“요즘 기억력이 예전만 못해서 말입니다.”

“그럼 전 죽으라는 말입니까?”

“말이 그렇게 되나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양우석 의원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건배하시죠.”

“건배사 부탁드립니다.”

“양우석 의원님의 당선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회장님의 건배사에 힘을 받아 반드시 당선하겠습니다!”

공천도 미리 받았다.

장주시에서의 내 영향력은 확실했다.

영농 회장님을 거쳐 다선 동네 이장님이 된 아버지의 발언권이 세졌다.

장주시 시장보다 더 끗발을 날리는 이장협의회 회장이 됐다.

연구소가 설립된 이후 장주시는 무한 발전하고 있다.

연구소 직원들은 능력에 따라 그에 합당한 월급을 받았다.

무상으로 아파트에 거주했다.

집 구입에 자금이 들어가지 않게 되니 그만큼 생활이 여유로워졌다.

종합운동장을 비롯해 최신 영화관, 쇼핑몰, 병원이 줄지어 들어섰다.

진정한 지역 거점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장주시.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여당색이 옅어졌다.

거기에 더해 양우석 의원의 인기가 치솟았다.

예측 결과 여당 측에서 누구를 데려다 놓아도 20% 이상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꿀꺽.

양주가 목젖을 타고 짜르르 넘어갔다.

오늘도 술맛이 좋았다.

나이를 먹다 보니 술자리가 많아졌다.

아직까지 남자들과 대면하는 자리에서는 커피보다는 술이었다.

“역시 비싼 놈이 맛있네요.”

“그렇게 비싼 녀석은 아닙니다.”

“의원 월급으로 마시기에는 아직 벅찹니다. 전 자투리 고기에 소주가 좋습니다.”

양우석 의원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발언이다.

3선을 노리고 있는 인물이지만 여전히 눈빛이 맑다.

초심을 잃지 말라는 내 경고를 아직 잊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다음에는 순댓국에 소주 한잔하시죠.”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서로 눈을 마주보며 웃었다.

“좋은 소식이 들려오던데…….”

“희소식은 맞는데 악재도 같이 몰려와 문제입니다.”

“모든 일이 좋은 일만 몰아올 수는 없습니다.”

“회장님의 분리수거 기회가 찾아올 거라는 그 말씀만 아니었다면 화병에 드러누웠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본 모습을 알게 되는 일이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안타깝습니다. 이번에 여당을 완벽하게 KO패 시킬 수 있었는데…….”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당은 자중지란으로 지리멸렬할 겁니다.”

“그래도 150석은 무난히 차지할 겁니다. 워낙 기본 지지층이 탄탄합니다.”

양우석 의원은 아직 선거 결과를 모르는 당연한 의견이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그들은 결코 150석을 넘지 못합니다.”

“네???”

이제 곧 드러날 엄청난 대사건.

한국 정치 역사상에 한 페이지를 작성할 일이 곧 벌어진다.

오만한 자들이 벌이는 정치 패권 싸움.

국민들이 화들짝 놀라 지지를 철회하게 된다.

“쓰레기들은 다 떨어져 나갔습니까?”

“뒤도 안 돌아보더군요. 그리고 동료 의원들 회유하는 방법이 기가 막힙니다.”

“사업하는 분이 당대표라 어쩔 수 없습니다.”

“정말 더럽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그깟 돈이 뭐라고…….”

“흙탕물만 만드는 미꾸라지들입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버려야 할 구시대의 낡은 유물들입니다.”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반성해야죠.”

“네?”

“설마 몸담고 있는 당이 완벽하게 깨끗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그건 맞지만…….”

팩트 체크에 양우석 의원이 말을 흐렸다.

“적들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여당요?”

“아닙니다.”

“그럼…….”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양우석 의원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기득권 세력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대한민국 상위 0.1% 안에 포진한 채 그들은 기가 막힌 협동 공격력을 자랑합니다.”

“음…….”

양우석 의원이 신음을 흘렸다.

“조국, 중부, 동서 일보를 비롯한 경제지와 타락한 사이비 종교인들, 거대 기업을 낀 언론들, 판사, 검사, 리앤장 같은 법조계, 대대로 내려오는 친일파들과 부정부패에 중독된 독재에서 자란 세력들의 독이 바짝 오를 겁니다. 자신들이 행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과거에 반복해온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방법으로 움직일 겁니다.”

“아!”

“긴장을 늦추지 마십시오. 그들은 타락한 지혜로운 뱀이며, 불꽃 같은 욕망의 왕관을 쓴…… 진짜 악마들입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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