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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7장. 다시 전쟁(4). (1,023/1,284)

1037장. 다시 전쟁(4).

“확실한가요?”

“힐러리 후보가 방송국 여론조사에서 월등히 앞서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각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시 돌풍이 불고 있지만 누가 봐도 트럼프는 대통령 자질이 없습니다. 일개 부동산 사기꾼을 뽑을 만큼 우리나라 국민들이 멍청하지 않습니다.”

보좌관의 보고를 진지하게 살피는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

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있지만 마음속에서 고개를 드는 불길함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돌연 트럼프가 돌풍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다들 지금과 같은 반응을 두고 미쳤다고 생각했다.

트럼프의 돌발 행동은 그간 미국에서도 톡톡히 유명세를 치렀다.

섹스 스캔들에다가 어디를 가든 트러블 메이커로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천박한 언행과 돈과 여자를 밝히는 그의 행실은 시시때때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과거에는 민주당 소속으로도 의원 출마를 시도했던 그가 이번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처음에는 모두들 그를 두고 우습게 여겼다. 다른 대선 후보들은 경쟁의식조차 갖지 않았다.

모두가 선거 흥행의 들러리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흐름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될 만큼 트럼프에 대한 자국민들의 반응이 상승세를 탔다.

이 현상에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 대선주자들도 깜짝 놀랐다.

특유의 거친 입담과 제스쳐에 특히 백인 중산층들의 호응도가 높았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통용되었던 보편적 자유과 가치, 평등을 내세우는 민주당 주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미국은 동맹국은 물론 여러 나라에 너무 많은 혜택을 베풀고 있다며 이제는 그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거침없는 발언까지 불사했다.

과거라면 자유민주주의도 모르는 무식한 부동산 업자로 취급받으며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그런 트럼프의 거칠고 이기적인 발언들이 먹혀들었다.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미국 백인 중산층.

고등 교육을 받지 않아도 미국 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배불리 먹고 살았던 백인 중산층.

두 번의 금융위기에 경제력을 잃고 주저앉았다.

평생 저축이라는 걸 모르고 신용으로만 살아온 그들에게 금융위기로 닥친 실업은 죽음의 수렁과 같았다.

제조업을 내치고 금융과 소비 중심으로 살아온 미국인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 좌절감과 분노를 적절하게 선거 유세에 이용한 트럼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전투에 임했다.

그 기세를 몰아 서서히 바람몰이를 시작하는 미국의 대안 우파.

전통적으로 청렴한 기독교 신앙과 보수적 가치를 주장하는 보수 중도 우파와 궤적을 달리했다.

대안 우파는 백인의 본래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취득한 흑인과 아시아, 라틴계열 민족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에 더해 앞으로 10년 뒤 미국 인종 주류가 바뀔 거라는 결과를 극단적 우파 언론에서 주장하고 나섰다.

놀란 백인들은 ‘백인 내셔널리즘’을 내세웠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선거 구호는 백인 보수주의자들에게 구원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기가 막히게 눈치가 빠르고 주도면밀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교묘한 말투로 백인 우월주의로 세뇌시켰다.

움츠러들었던 대안 우파 백인들이 그런 트럼프의 연설에 열렬히 반응했다.

KKK 극우 폭력 단체처럼 소수민족을 억압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금기시되는 인종과 여성, 종교, 장애, 성적 자유 차별을 주장하며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앞세웠다.

그 바탕에는 미국 문화 보호주의가 이면에 깔렸다.

극단적으로 이방인들로 인해 미국민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착각에 빠졌다.

경기가 좋았던 때 누구도 선뜻 하지 않았던 일들.

공사장 잡부나 청소부 일 같은 3D 업종은 현재 이민자들의 일자리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문제의 핵심을 망각하고 트럼프의 선동적 연설에 빨려드는 미국 백인들.

자신들의 게으름과 무능은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SNS를 중심으로 트럼프의 주장이 담긴 연설이 확산되며 리트윗됐다.

열화와 같은 백인 미국민의 반응에 트럼프는 쾌재를 불렀다.

거기서 더 나아가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까지 주장했다.

금융업을 중시하며 제조업을 멸시하던 과거를 반성하는 일은 결코 기대할 수 없었다.

일체의 반성 없이 이웃 국가들에게 그 화살을 돌렸다.

트럼프는 분위기에 휩쓸려 일어선 무지한 대중들의 주장에 발맞춰 적극 동의하며 선동에 나섰다.

지금까지 미국이 누렸던 헤게모니가 미국이 행해온 세계 경찰권 행사 덕분이라는 것은 절대 언급하지 않았다.

세계 모든 국가가 분열을 거듭하고 패망한다 해도 자국만 잘 살면 된다는 오만한 착각에 사로잡혀 버린 미국민들.

트럼프는 그야말로 무지한 백성들의 우두머리인 사이비 교주가 되어 갔다.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됩니다. 여론조사에서 우세하게 나와도 패배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바마는 지금의 분위기에 신중을 기했다.

트럼프는 유세 현장에서 대놓고 오바마를 격멸했다.

그 부분에 있어 오바마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인류애와 공평과 공정이라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인간.

오로지 미국 시장 우선주의를 부르짖는 괴물이 이 시대의 대통령 후보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한 일이었다.

만약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선조들이 피로써 쌓아온 모든 권리와 힘을 싸구려로 팔아먹는 신세가 될 것이다.

“선거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후보가 10% 이상 앞서고 있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이 수치를 뒤집는 건 불가능합니다.”

보좌관이 확신에 찬 어조로 다시 한 번 현재 수치를 확인시켰다.

“로버트 라이언은 여전한가요?”

“……힐러리 후보 측에 선거 자금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트럼프에게는 상당한 금액을 기부했습니다.”

이번엔 보좌관이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으음…….”

오바마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깊은 생각에 빠진 오바마.

그런 오바마를 조용히 바라보던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일을 열었다.

“그리고 각하…… 놀포스와 에브라모위츠 분석 모델에서 트럼프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된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보좌관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며 새로운 사실을 알려왔다.

“뭐라고요?”

오바마가 크게 놀라며 물었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선거 예측 분석 모델입니다. 루이스벡 모델은 힐러리 후보를 당선 후보자로 선정했었습니다.”

‘뭔가 이상해. 뭔가…….’

오바마도 잘 알고 있는 선거 예측 모델.

여론과 달리 완벽하게 힐러리의 당선을 말하지 않았다.

“아직 공화당 예비 선거가 진행 중입니다. TV 토론도 남아 있고, 그 자리에서 트럼프에 대한 속살이 모두 까발려질 겁니다.”

“그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네?”

“트럼프의 세 치 혀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요사스럽습니다.”

오바마는 몇 차례 트럼프와 마주한 적이 있다.

대놓고 민감한 주제로 설전을 벌인 적도 있었다.

묘하게 신경에 거슬리는 사기꾼처럼 느껴지는 부동산 업자.

현직 대통령인 자신 앞에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그자는 아직 그대로입니까?”

“누구 말입니까?”

“다니엘 장. 그자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너, 너 지금 말 다 했어!”

주순자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처럼 화가 났다.

2년 만에 다짜고짜 전화해서 협박부터 하는 장태산.

새파랗게 질린 분노가 온몸을 태울 것처럼 차올랐다.

‘장태산, 이 개자식!’

누구도 이렇게 자신을 대하지 못했다.

유독 이놈만 깐족거리며 자신의 말을 끊거나 들어 처먹질 않았다.

성질 같아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도 능력이 되지 않았다.

언급한 미국 친구 얘기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왜 장태산이 망해가는 한국해운을 노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실속 있는 알짜 기업도 아니고 빚만 잔뜩 깔고 앉아 침몰해가는 배와 같은 형국인 한국해운.

- 누님. 적당히 사고치고 사십시오. 그러다 큰일 납니다.

억누르고 있던 부아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요즘 들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신경이 제어가 되지 않았다.

취임 초창기와 달리 레임덕이 곳곳에서 고개를 들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말 잘 듣던 언론도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그런 마당에 장태산까지 기름을 끼얹으며 자신을 능멸했다.

“야! 장태산! 너 죽고 싶어!!!”

주순자는 참지 못하고 살기를 담아 목청을 높였다.

- 한국해운……. 제가 접수합니다. 그렇게 아십시오.

앞뒤 없는 간단한 통보.

“너 이딴 식으로 전화하면 진짜 가만 안 놔둘 거야!”

- 맛있는 거 많이 드십시오. 곧 지금 이 순간들이 그리워지는 때가 올 겁니다.

“!!!”

장태산의 밑도 끝도 없는 기이한 협박에 주순자는 그만 몸이 굳었다.

뭔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 그럼.

띠릭.

전화는 장태산 쪽에서 일방적으로 끊겼다.

“아아아악!”

끊긴 전화기를 든 채 주순자는 비명을 질렀다.

와장창창창.

그리고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바닥에 세차게 내던져 박살을 냈다.

“무, 무슨 일 있나요?”

관저 진짜 주인이 주순자의 행동에 당황해하며 물었다.

주순자가 자신 앞에서 저렇게 크게 화를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게 VIP가 다 물러터져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주순자는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고 서 있는 애꿎은 대상한테 화풀이를 했다.

“……미안해요.”

그 소리에 조근영이 고개를 숙였다.

“짜증나…….”

주순자도 가끔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길한 상상에 빠질 때가 있었다.

지금 당장 모든 상황이 낱낱이 밝혀져 옴짝달싹 못 하고 감옥에 갇히는 섬뜩한 상상.

‘좀 더 서둘러서 일을 진행해야겠어. 늦기 전에!’

주순자는 괜히 불안한 마음에 다급해졌다.

생각보다 진행되고 있는 일들에 처리가 늦어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주순자가 VIP에게 시선을 돌렸다.

신경질적으로 분노를 표출한 주순자의 시선을 피해 눈을 딴 곳으로 돌리는 미래를 위한 담보.

아직까지 이용가치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

“왜 갑자기 귀가 이렇게 간지러워?”

주순자와 통화를 간단하게 끝냈다.

회귀 후 애국에 발을 들이면서 알게 된 주순자는 영락없이 조미료 같은 존재였다.

되도록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캐릭터였지만 주순자를 통하면 어떤 길이든 가장 빠른 지름길로 접근할 수 있었다.

악인을 선인으로 바꾸기 위해 교육시키는 일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건지는 진작 깨달았다.

특히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원치 않아도 이 방법이 최고였다.

위에서 결정되어 하달되면 무엇이 되었든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관계부처들.

이런 일일수록 가장 윗선을 공략해 빠르게 처리해야 피를 보지 않고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다.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도 역시 바쁘게 살아 움직이는 도시의 삶들.

“긴 시간이었어.”

회귀한 뒤로 하루도 쉬지 않고 바쁘게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여러 라인으로 특혜를 받아 일궈낸 성과도 상당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위한 일에서는 아직도 배가 고팠다.

갈 길도 멀었다.

리장창과의 휴전 협정도 곧 끝이 난다.

호시탐탐 틈만 보고 있는 일본도 우리의 뒤통수를 노리고 있었다.

모든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역사의 도도한 강물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몇 달 후면 한국 총선이다.

지금은 누구도 예상치 못하고 있지만 야당이 승리를 거둔다.

민심이 변한 걸 알아채지 못한 결과다.

영원한 기득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자책골을 넣게 되는 여당.

사실은 그 같은 결과는 조근영과 주순자의 합작품이다.

그래서 더 주순자를 자극했다.

오늘 내가 염장을 지른 덕분에 주순자는 앞으로 더욱 길길이 날뛸 것이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요란하게 뒤틀어질 당청 관계.

그사이 난 한국해운을 수중에 넣게 될 것이다.

대웅조선을 접수한 상황이어서 대형 선박은 바로 발주된다.

노아의 방주처럼 더 넓고 큰 배를 마련해 닥쳐올 위기에 대비해야만 했다.

세심한 계획이 요구됐다.

당장 몇 년 뒤부터는 나도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아니 지금도 조금씩 여러 상황들이 전과 같지 않게 뒤틀리고 있었다.

큰 흐름은 변하지 않았지만 유가와 환율에서 변동 폭이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몇 달 후면 사드 보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

조근영은 탄핵 전에 제대로 큰 똥을 싼다.

북한을 경계하는 것보다 중국을 감시하기 위해 배치되는 사드 미사일.

그 일을 두고 중국이 크게 분노한다.

그리고 그 여파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 튄다.

고래들 감정싸움에 고등어 신세인 한국이 끼게 된다.

한창 잘나가던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된서리를 맞는다.

아무 대책 없이 저지른 조근영과 국방부 관계자들의 수준이 딱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일에 대해 누구 하나 나서서 책임지지 않는다.

랏데에 가장 큰 불똥이 튀었다.

이 일로 랏데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게 된다.

그 일을 알고 있지만 결코 경고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아니 알리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았다.

안타깝지만 중국의 본래 성질을 모두 다 겪고 스스로 깨닫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트럼프를 통해서는 미국인들 마음속에 감춰진 사악한 가치관을 낱낱이 보여줄 생각이다.

할리우드 영화와 스포츠 같은 문화 사업을 통해 세뇌시켜 온 위대한 미국인들의 모습.

그 모든 게 다 허상이었음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약육강식.

스스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법이다.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아.”

다시 리플레이 된 듯한 생을 살면서 알게 된 감춰진 세계의 진실.

꼭 총칼이 아니어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늘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이웃한 국가들과는 필연적인 업으로 엮여 등을 보이는 순간 전쟁이 시작되는 형국이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

지난 2년 동안 재산 증식을 제외하고도 미래를 위한 계획을 촘촘히 짜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티디딕.

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요즘 한참 정신없이 바쁜 시절을 보내고 있을 그 남자.

띠이이잇.

신호가 울렸다.

그리고.

- 회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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