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2장. 너 가져.
“쌍발이라ⵈⵈ. 이것들이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놔두십시오. 어차피 망할 사업입니다. 전자식 레이더를 비롯해 여러 전자장치 개발이 쉬웠다면 우리도 진작 개발에 성공했을 겁니다.”
“맞아요. 조센징 놈들이 발악해 봐야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하. 관방 장관님 말이 맞습니다.”
일본 총리관저의 내각회의실.
자민당 소속 중의원들로 구성된 각료들이 한국 측 쌍발 전투기 확정 결과 보고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다 총리의 최측근들이었다.
“그래도 아쉽습니다. 단발로 결정되어야 위험의 싹이 모두 제거되는데ⵈⵈ.”
“F-15K 들여놓고 얼마나 으스대던지 다들 보셨죠? 우리는 20년 전에 이미 사용하던 물건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물 안 개구리 조센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고노 방위대신이 격멸의 눈빛을 아끼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인사들 중에 가장 우익적 성향을 보이는 인물이다.
자신의 집무실 뒤편에 욱일기와 한국 전도를 걸어 놓았다.
언젠가 다시 수복해야 할 영토로 한국을 꿈꾸는 것이다.
그 사실을 대다수 한국인들은 전혀 몰랐다.
겉으로 웃으며 한국 관광객들을 응대하면서도 뒤에서는 더러운 조센징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았다.
특히 과거 일본의 경제 영광을 누렸던 고령자들 상당수가 그랬다.
강점기 당시 미개한 한민족을 개조해 오늘날 먹고 살게 해줬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대신들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신이 온전히 박혀 있는 자들이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뼛속까지 한국을 격멸했다.
매년 엄청난 흑자를 얻어내는 봉 정도로 생각했다.
인류애적 관점이나 예의라고는 이들 정신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자국 중심의 극우적으로 내각 회의는 굴러갔다.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독도 문제를 수면 위에 올려 걸고 넘어졌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반도체를 비롯해 여러 산업이 한국에 밀리면서부터 그 분노가 깊고 넓어졌다.
영원히 발아래에 둬야 할 식민지 노예들이 자신들보다 잘사는 모습에 배가 아팠다.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회의 상석에 앉아 있던 총리 아베가 굵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생각이 많은 눈빛이다.
“조심까지 필요하겠습니까?”
기시다 외무대신이 은근히 의문을 드러냈다.
“맞습니다. 조센징들의 기술력은 아직 형편없습니다. 베어링조차 아직 제대로 못 만드는 놈들입니다.”
“반도체야 어찌해서 석권했지만 전체적인 산업 생산과 품질 능력은 우리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전투기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특수 합금부터 시작해 수만 가지 부품이 총체적으로 결합돼야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락히트 마린에서 제공한 훈련기나 겨우 조립하는 놈들이 무슨ⵈⵈ.”
“10년 뒤에 5세대 전투기는 고사하고 4세대 전투기나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우리는 그때쯤이면 진정한 5세대 전투기가 하늘을 날고 있을 겁니다!”
내각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한국을 타도하기 위해 모인 우익들 회의장 같았다.
실상은 말도 안 되는 비하의 성토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언뜻 보이는 불안감은 모두 다 느끼고 있었다.
어느새 부쩍 성장해 버린 한국.
반도체로부터 시작해 조선과 LCD에서 뼈아픈 일격을 맛본 일본이었다.
한때 세계 시장을 주도했던 일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은 국가 세금으로 겨우 연명하는 신세가 됐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방심했던 결과가 부른 처절한 패배.
다시 시장을 제패하려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지만 기술력이 따라가지 못했다.
인건비도 한국보다 비쌌다.
그리고 전 국민적으로 깔려 있는 은근한 패배 의식이 더 큰 문제였다.
연일 보도되는 한국 대형 산업들의 호황에 일본 우익들은 과거를 한탄하며 자주 술을 마셨다.
“무시하지 마세요. 놈들은 독종입니다.”
“ⵈⵈ.”
아베가 또 한 번 초를 치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 가장 명성이 높은 명문가였다.
민주주의 국가지만 알고 보면 상당히 폐쇄적인 국가 일본.
왕이라 불리는 존재를 신처럼 모셨다.
메이지 유신으로 문명은 많이 개화됐지만 정신 수준은 21세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외조부님이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끈질긴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가진 놈들이라고 말입니다.”
아베의 눈빛이 사악하게 번뜩였다.
가문의 모임 때마다 선조들이 주지시켰다.
한국은 언젠가 일본이 회복해야 할 고토이며 영지라고 말이다.
그래서 패망 이후로도 끊임없이 거대 자금을 투척해 가며 친일파들을 키워온 것이다.
멍청한 한국 위정자들은 일본 강점기 시절 관료들을 그대로 포용했다.
용서라는 이름으로 화해하고 한민족이라는 명분으로 끌어안았지만 그게 독이 된 걸 몰랐다.
한 번 악을 맛본 자들은 선한 길로 가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려는 인간은 성인군자나 선택하는 일.
정신이 좀먹어 바로 독재로 이어지는 게 순서였다.
일본은 철저하게 그 생리를 이용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본 식민지가 되도록 적절하게 기술을 이전했다.
나름 방비를 철저히 했음에도 잡초 중에도 똑똑한 놈들이 섞여 있어 일본의 뒤통수를 쳤다.
“쌍발기 개발은 어쩔 수 없는 대세가 됐습니다.”
“그럼ⵈⵈ.”
“우호 언론들과 세력들을 이용해 방해 공작을 진행해 주세요. 초를 치다보면 세월이 금방 흐를 겁니다.”
“역시 각하십니다!”
“흐흐흐. 황국 식민이 되기를 꿈꾸는 자들이 많다는 걸 조센징들이 알까요?”
“모르겠죠. 그들을 다스리는 지도자급 상당수가 우리 편이라는 걸 놈들이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문부대신은 문화 교류를 핑계로 포섭할 인재들을 일본에 초청하세요. 그리고 지금처럼 회유하면 됩니다.”
“걱정 마십시오. 수십 년간 해왔던 작업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 중인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한국 측에 군사 기술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조치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국 대통령 뒤를 캐보세요. 뭔가 기분이 찝찝합니다.”
“그 말씀은ⵈⵈ.”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순진한 인상과 달리 아베는 치밀한 인재였다.
그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장태산ⵈⵈ 그 조센징 놈이 개입했을 수도 있어.’
***
순진한 연지 양 눈빛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2014년을 이제 살기 시작한 이들은 아직 미래를 전혀 짐작도 못 했다.
세상 두려울 게 없는 장사꾼 미국 대통령의 폭주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삶의 지혜도 인간적 도리나 연민도 없는 인간이 세계를 진두지휘하는 꼴이 됐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고 약속한 대로 행동했다.
무지의 발로였다.
세상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무지한 아메리칸 금발 형님.
긴 시간 세계 경찰 노릇을 했기에 전 세계가 그 공로를 인정해 봐줬다는 걸 미국민들은 몰랐다.
그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드잡이질을 즐겼다.
시진핑도 트럼프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 가능했다.
다만 좀 더 지적이고 생각이라는 걸 약간 할 줄 안다는 게 달랐다.
트럼프는 사적 이익에 우선했지만 시진핑은 공산당과 인민을 그 중심에 두었다.
그런 두 사람의 차이는 다른 세계 각국이 보기에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정상으로 인해 조용히 굴러가던 세상이 계속 시끄럽고 폭풍에 휩싸였다.
물론 장점이라고 할 만한 것도 있었다.
전혀 짐작 못 할 무식한 방법으로 중국을 몰아세웠던 트럼프.
재선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중국을 물어뜯었다.
“그럼ⵈⵈ 어떻게 되는 거야?”
아직까지 중국은 한국에 우호적 제스처를 취한다.
하지만 곧 큰 사건이 터질 것이다.
그때 드러나는 중국인들의 본심.
공산당 지령을 받은 선전부원들이 날뛰며 화끈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진다.
그 뒤로 이어지는 중국 공산당의 공갈 협박과 국가 폭력.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그 맛을 결코 상상할 수 없다.
“빼야지.”
“뭘?”
“몰라서 묻는 거 아니지?”
“설마!”
내 말뜻을 이제야 알아듣는 고연지.
“다시 빼서 깔아야 해.”
“그게 가능해? 내가 알기로 기지국 건설하는 데 조 단위가 넘는 자금이 들어가는데ⵈⵈ. 그건 불가능해.”
“서비스가 엉망이 되겠지.”
“그래도 미국이잖아. 그렇게 막 타국 사기업에 대해 간섭할 권한이 있는 건 아니잖아?”
세상 공부를 교과서로 배운 티가 바로 여기서 났다.
과거에는 이 모든 작업들이 은밀하게 진행됐다.
상대 국가를 협박해서 조용히 처리되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
“전쟁 중에는 가능해.”
“아무리 그래도ⵈⵈ.”
“고연지 대표님.”
그녀를 부르는 호칭을 정정했다.
“ⵈⵈ.”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고연지.
아직 가르칠 게 많았다.
“미국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디언과 멕시코인들을 죽였는지 알지?”
“응ⵈⵈ.”
“그게 1000년 전 일이 아니야. 불과 수백 년도 안 됐어.”
꿀꺽.
소주잔을 비웠다.
안주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 버렸다.
“이모, 순대 모둠 하나 주세요.”
“그랴.”
안주를 새로 주문했다.
“이런 거야.”
“응???”
“미국 마음대로.”
“그게 무슨 말이야?”
“그들이 보기에 안주가 맘에 안 들면 바꾸듯 뭐든 언제든 바꾸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있어.”
“아!”
“엘자그룹이 미국 대통령보다 파워가 쎄?”
“아니ⵈⵈ.”
“그럼 까라고 하면 까야지.”
“한국 정부가 있잖아.”
“동맹이라고 최대한 점잖게 대우하겠지. 하지만 그게 다야. 본격적으로 전쟁이 발발하면ⵈⵈ. 엘자는 입장을 바꾸든지 망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거야.”
꿀꺽.
속이 타는지 고연지는 술잔을 한 호흡에 비웠다.
“한 잔 더 줘.”
얼굴이 불콰하게 상기된 고연지가 잔을 내밀었다.
“화가 나도 어쩔 수 없어. 그게 바로 힘의 논리야. 과거부터 현대까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용하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지존법칙이지.”
피와 살이 되는 세상 운영 법칙을 깨우쳐 줬다.
“ⵈⵈ무섭네.”
“연지 네가 보기에 난 무적으로 보이겠지만 상위 클래스로 가면 이제 난 보이스카우트 수준이야.”
“그 거짓말 진짜야?”
“어.”
“더 무서워지네.”
“그래서 강해지려고 하는 거야. 엘자도 세계적 그룹이잖아. 그래서 적이 많아. 상대를 꺾여야 내가 살 수 있는 법이잖아.”
“아빠가 존경스러워.”
“대단하신 분이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현 엘자 회장은 한계가 명확했다.
과거 공동 경영 방식은 더 이상 앞으로의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수차례 찍어내라 조언을 했지만 그럴 만한 힘이 약했다.
그래서 생각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엘자를 통째로 중국에 넘겨줄 수는 없었다.
“태산이 넌 확실하게 엘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거 같은데ⵈⵈ. 맞아?”
고연지가 용기를 낸 듯 물었다.
“어.”
“ⵈⵈ말해줘.”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
“귀를 씻고 경청할게.”
고연지가 한 단계 성숙해져 가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지혜로운 여성이다.
기업가의 피는 분명 뭔가 달랐다.
눈동자에도 결의가 넘쳤다.
“너 나 믿어?”
“ⵈⵈ갑자기 그게 무슨.”
“중요한 문제야.”
날 지긋이 바라보는 고연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
“응?”
“앞으로 10년 동안ⵈⵈ.”
말을 잠시 끊었다.
“내 밑에서 잘 배워.”
“지금도 믿고 따라가잖아.”
고연지가 예쁜 미소로 생긋 웃는다.
그녀를 보며 나도 웃었다.
그리고.
“그럼 엘자그룹ⵈⵈ. 너 줄게.”
“뭐, 뭐라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