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0장. 매국(賣國). (1,017/1,284)

1030장. 매국(賣國).

“이게 바로 일거양득 아니겠습니까. 엘자텔레콤은 싼값에 신용과 성능이 확실한 LTE 통신망을 깔고 우리는 엘자의 모니터를 구입하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미덕이지요.”

“맞습니다. 주웨이의 파격 행보 덕분에 우리는 경쟁사들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에 서게 됐습니다.”

“고 전무님의 지원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구평 부회장님 덕이지요.”

“하하하. 이래서 우리가 통하나 봅니다.”

고선택은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한때 북경지사에서 근무하기도 했었다.

그때 틈틈이 배워놓은 중국어가 수준급에 이르렀다.

고선택은 북경에서 주웨이 구평 부회장의 접대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이 친구 잘 부탁합니다. 제 친구면서 엘자의 핵심 인재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Mr. LTE라 불리는 조상준 대표님은 엘자와 함께 우리 주웨이가 동행할 동료입니다. 조 대표님 덕분에 우리 주웨이가 수출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고선택의 옆에서 안경을 쓴 중년남자가 미소지었다.

2년 전 엘자 엘플러스 대표로 부임한 조상준이다.

대표를 맡자마자 과감한 정책을 폈다.

만년 업계 3위인 엘자 엘플러스를 상위권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미래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주웨이와의 협업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엄청난 사업 확장력을 보이는 주웨이.

중국을 평정한 뒤 해외로 눈을 돌렸다.

저가 공세를 펼쳐 시세를 확장하는 데 열을 올렸지만 성능에 대한 검증이 따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 엘자가 도움을 주었다.

LTE 최초 서비스를 실시 중인 한국의 대기업이 보증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가 갖춰졌다.

그 이후 더 승승장구하고 있는 주웨이.

스마트폰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중국 중저 지원과 애국심 마케팅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스마트폰 화면용으로 엘자의 LCD 패널을 구입해 사용했다.

스마트폰 시장에 늦게 뛰어들어 고전하던 엘자그룹은 주웨이의 도움 덕분에 흑자를 낼 수 있었다.

그룹 전략기획실을 비롯해 계열사 곳곳에서 주웨이가 곧 사업 영역을 침범할 거라고 경고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룹 회장 자리를 노리고 있는 고선택은 무엇보다 실적이 필요했다.

조상준은 미래를 갉아먹으며 엘플러스를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렸다.

‘멍청한 새끼들. 크크.’

접대 자리를 마련한 구평 부회장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주웨이 그룹은 늑대 정신 경영으로 유명했다.

예민한 감각으로 칠 때와 빠질 때를 기가 막히게 알았다.

먹잇감을 노리는 불굴의 정신은 그 어떤 맹수보다 뛰어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늑대는 팀플레이가 뭔지 알았다.

주웨이의 진짜 주인인 공산당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발판삼아 여러 기업들을 보이지 않게 지배했다.

미국과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고급 기술력들을 거대 자금으로 매수했다.

해커를 동원한 기술 절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야생 늑대보다 더 치밀한 팀플레이.

그 주웨이가 대한민국의 엘자를 잠시나마 동료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물론 동맹 기간은 길지 않았다.

엘자는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치기 위해 밟고 일어설 발판에 불과했다.

고선택의 욕심으로 엘자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들은 몇 년 안에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엘자가 무선통신망을 허락한 덕분에 기업 기술 신용이 올라가서 유럽과 남미, 아시아에서도 주웨이 제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저가에 싹쓸이 수주를 따냈다.

실제 엘자도 파악 못 할 만큼 이미 몸집이 거대해지고 있는 괴물.

‘바보 같은 새끼. 친구? 웃기네.’

조상준 역시 속으로 이를 갈았다.

태어날 때부터 로열패밀리였던 고선택이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고선택은 당시 조상준을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엘자그룹에 들어온 후 필요에 의해 친구 관계를 설정했다.

오늘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조상준은 피눈물을 삼키며 실력을 키웠다.

내색하지 않는 조상준에게 고선택의 위선적인 친구 발언은 귓등에도 들리지 않았다.

‘너희들 잔머리를 내가 모를까 봐? 주제도 모르고 욕심만 많은 큰 너구리 한 마리하고……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아귀 같은……. 둘이 잘해봐라. 난 내 돈만 챙긴다.’

조상준에게 엘자에 대한 의리 따위는 애초 없었다.

그나마 기업 경영이 투명하다고 평가되는 엘자도 결국 로열패밀리들을 위한 놀이터에 불과했다.

임원들과 일반 사원들은 모두 다 소모품처럼 이용되었다.

일찍 그 사실을 안 조상준은 최우선으로 돈을 추구했다.

주웨이를 LTE 망 구축에 참가시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덕에 엄청난 뒷돈을 챙겼다.

퇴직 후 고액의 고문 자리도 약속받았다.

주웨이가 공산당이 운영하는 그룹이라는 건 웬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이 설치한 무선통비시설은 해킹과 도감청에 활용될 가능성이 컸다.

중국은 그걸 활용해 정보를 빼돌리고 세계를 감시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조상준 대표.

너구리와 아귀 같은 놈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조소를 흘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볼까요.”

“그럴까요?”

고선택이 은근히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국에서와 달리 북경에 오면 젊은 미녀들이 언제나 대기 중에 있었다.

그것도 손때가 묻지 않는 풋풋하고 젊은 여인들로.

짝짝.

구평이 손바닥을 두 번 쳤다.

스르르릇.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그리고 옆트임이 시원한 치파오를 입은 미녀 세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천하절색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미모가 대단했다.

고선택과 조상준의 눈이 순식간에 벌겋게 충혈됐다.

“여기 있는 미녀들은 모두 다 연기학원에서 주목하고 있는 전도유망한 재원들입니다. 앞으로 몇 년 후면 TV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 겁니다.”

구평이 자신만만하게 여성들을 소개했다.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지금은 접대 자리에 나와 있는 상황이지만 나중에는 스폰으로 묶였다.

주웨이그룹이 그녀들의 뒤를 밀어줄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해 인기를 끄는 순간 인기는 하늘 높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그 뒤에도 계속되는 스폰 관리.

섹스 비디오를 비롯해 여러 경로로 성공한 여성들 개인의 약점을 차곡차곡 쌓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차피 공산당 정권이 뒤를 봐주고 있어 주웨이를 거부할 힘도 없었다.

그렇게 성공한 미녀들을 이용해 또 다시 미인계를 사업적 수단으로 사용했다.

대부분 남자들은 그 사실을 알고도 당했다.

세계적으로 주웨이가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는 발판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녀를 마다할 남자는 세상에 없었다.

오늘 이 자리처럼.

“잘들 모셔.”

“네. 대인.”

이곳에 오기 전 이미 스타일을 알아둔 만큼 자연스럽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파트너에게 다가가는 미녀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구평은 왼팔로 가느다란 여인의 허리를 감으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접대를 핑계로 한 미녀 품기.

구평이 공식적으로 즐기는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였다.

***

“고 전무님 알아?”

“알지.”

“어떻게?”

“회장님 사촌이잖아.”

“맞아. 나에게는 당숙이야.”

고선택은 회귀 전 내 인생에서 전혀 관심 밖의 인물이었다.

그룹 회장과 후계자들은 뉴스를 통해 봐서 알고 있었지만 그룹을 이룬 가문의 방계들은 알 턱이 없었다.

3대를 걸쳐 4대까지 그룹 후계자들이 탄생했다.

그중에서 진짜 후계자도 있지만 상당수는 망나니로 살다 인생을 끝냈다.

그저 그런 회사의 후계자이며 재벌 그룹 회장의 손자 정도로 소개되던 이들.

“그리고 고자룡 회장님의 라이벌이고.”

“그것도 사실. 아빠나 오빠가 추진하는 일에 사사건건 트집이야.”

“쫓아내.”

“안 돼. 아빠와 거의 같은 양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어. 거기에 그룹 핵심 계열사 임원들 중 상당수가 고 전무님 라인이야.”

“엘자 엘플러스도?”

“응.”

“흐음……. 그래서 그랬군.”

“뭐 아는 거 있어?”

고연지가 내 표정을 읽고 관심을 보였다.

과거와 달리 사회 돌아가는 걸 웬만큼 알아가고 있는 그녀.

“어느 정도.”

“말해줘. 뭘 알고 있는데?”

“공짜로?”

“오늘 술 값 쏠게.”

“겨우?”

“태산이 너하고 다르게 난 월급 받는 대표이사야. 법카 한도도 얼마 안 돼.”

고연지가 앓는 소리를 냈다.

“매국.”

“매국? 설마 내가 아는 그 매국?”

“응.”

“뭐가 매국이야?”

“엘자 엘플러스가 작년에 결정한 일은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거야.”

“작년 일이라면……. 주웨이 무선 통신 사업 선정?”

“어.”

“그건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어. 오정에서 스마트폰 경쟁업체라고 설비를 싸게 공급해 주지도 않고 당시에 투자비가 많이 들어서…….”

“연지야.”

변명을 늘어놓는 그녀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일제 강점기 때도 친일파들이 그랬어. 다들 입이라도 맞춘 듯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이다.”

냉정하고 온기 없는 말이 튀어나갔다.

아무리 고연지라 해도 봐줄 수 없는 구석이 존재했다.

“그건…….”

고연지가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입을 닫았다.

“중국 투자를 위한 결단이었다는 걸 모르는 게 아냐. 하지만 그들은 엘자를 비롯해 대기업들의 심리를 꿰고 거대한 덫을 놓고 있어.”

“덫?”

“한번 빠지면 죽어서나 나올 수 있는 개미굴.”

“!!!”

“미래 중국 시장을 보고 선투자를 했겠지. 기술이 앞서니 방심한 측면도 있었을 테고 말이야. 하지만 중국 공산당을 만만하게 보지 마. 그들은…… 중화민족만을 위해 제국을 꿈꾸는 간 큰 도적놈들이야.”

“…….”

고연지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누이 내가 강조했던 중국 투자의 무용론.

“이익을 냈다고 하지만 결국 다시 선투자로 이어질 거야. 이익 반출도 안 되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이 맞아. 중국에서 사업해서 중국 인민들을 배불리 먹이고 덩치를 키우다……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모든 걸 빼앗기고 쫓겨난다.”

거듭 확신에 차 예언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무료로 산업단지를 배정하고 싼 인건비로 유혹하지만 그건 모두 다 공산당의 계략이다.

중국 정부는 최소 10년에서 20년을 보고 덫을 놓는 자들이다.

단기 이익에 급급한 한국 기업들은 개미굴에 빠진 것도 모르고 앞으로만 전진한다.

그러다 엄청난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모든 걸 잃고 때는 늦고 만다.

엄청난 자금으로 중국에 마련했던 중요 시절은 물론 공장과 하청 업체들까지 피를 쪽 빨리고 퇴출당한다.

헐값에 거대 자금이 흘러들어간 시설과 기술을 전부 빼앗기고 빈 몸으로 쫓겨난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

사람 좋게 웃으며 뒷짐 지고 있는 왕 서방의 감춰진 비수를 생각 못 한 탓이다.

“너……무 무서운 예언 같아.”

“내가 경고했잖아. 중국 쪽 투자는 최대한 신중하라고.”

“그럼 어떡해? 치솟는 인건비와 물류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오정반도체를 본받아야지.”

“???”

“초격차를 통한 압도적 기술력만이 짱개들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야. 어설픈 욕심은 망하는 지름길이고.”

냉정한 현실을 재확인시켰다.

내가 살다 왔던 2020.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잘나가던 사업 분야에서 2인자로 밀리거나 해당 사업을 접었다.

조선, 자동차, LCD, 스마트폰까지.

점점 설 곳이 좁아졌고 급기야 종국에는 발붙일 곳도 없어졌다.

강소 중소기업이 널린 일본과 달리 가장 빨리 중국에 따라 잡혔다.

모든 영역에서 점차 밀려나는 걸 국민들 모두가 체감했다.

중국의 거대한 야망을 간과한 결과였다.

제조업이 망해서 빚으로 연명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전 세계의 제조업 주인으로 군림하며 힘을 과시했다.

금융과 서비스업으로 거품만 생산하다 몰락해 가는 미국과 달랐다.

제조업이 흥하자 원자재를 공급하는 국가들은 알아서 고개를 조아렸다.

중국이 수입을 막는 순간 국가 시스템이 붕괴될 정도다.

게다가 물건을 파는 세계적 기업들도 입장은 마찬가지.

빚 때문에 점점 구매력이 떨어지는 미국을 대신해 내수 시장이 큰 중국으로 몰렸다.

수출국가들도 중국의 횡포를 알고 있지만 참았다.

문명적으로 성숙하고 법다운 법이라도 존재하는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공산당이 황제처럼 지배하는 중국은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은 다 순진했다.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중국 정부의 습성을 몰랐다.

긴 세월 동안 허기에 시달렸기 때문에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치울 그들.

돈이 곧 정의이며 삶의 가치였다.

내 배만 부르면 이웃이 굶어 죽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엘자 엘플러스는 그래도 중국이 빼앗아 먹기에는…….”

아직 사업적 식견이 많이 부족한 고연지.

“개미굴에 발목 하나가 빠지면…… 몸통도 순식간이야.”

그녀를 매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중국이 가장 만만하게 보는 대한민국 5대 그룹이 바로…… 사공들끼리 싸우기 바쁜 엘자야.”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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