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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장. 누님 찬스(3). (1,016/1,284)

1029장. 누님 찬스(3).

“씨발! 뭐라고? 쌍발? 누구 마음대로 쌍발이야!!!”

국가안보실에서 인터넷 뉴스를 읽고 있던 장관진.

갑자기 뜬 속보에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도 않던 욕이 나왔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전달받은 내용도 없었던 일이다.

이 정도로 긴급한 변동 사항이 생기면 바로 보고를 올려야만 했다.

모든 상황이 단발로 확정된 상태였다.

방위사업계획추진위원회 소집 회의는 마지막 형식 절차를 따르기 위한 쇼에 불과했다.

출석 위원들의 다수 결과와 대통령의 최종 승인만 떨어지면 결정이 난다.

마지막 퍼즐 한 조각만 맞추면 끝나는 일인데 막판에 판이 뒤집어졌다.

띠리리리릿.

전직 군인답게 단순한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보좌관의 전화.

띠릭.

급하게 통화버튼을 누르는 장관진.

- 시,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보좌관의 당황한 목소리가 먼저 터져나왔다.

“지금 이 뉴스 뭐야! 쌍발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VIP 지시가 하달됐습니다.

“대, 대통령?”

장관진은 갑자기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걸 느꼈다.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다.

아무리 다른 인사들이 입을 놀려도 대통령의 한마디면 끝난다.

그게 바로 선출직 권력자의 막강한 권한이다.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대통령은 권한이 막강한 대신 정치적 책임을 진다.

그게 바로 대의민주주의다.

“그럼 바로 보고했어야지!”

- 보고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바로 의결에 들어갔고 형식적 표결에 부쳐 만장일치로 결정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자들한테 바로 알려지는 바람에…….

‘젠장! 미친 거 아냐?’

장관진은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속이 타들어갔다.

아예 뒤집을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 이유를 들어 물고 늘어지면 최종 결정된 사항도 뒤집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유야 만들면 그만이다.

“자세히 더 알아봐!”

“넵!”

띠릭.

통화를 서둘러 끝낸 장관진.

청와대 관내에서만 사용하는 직통 핫라인 전화기를 들었다.

대통령은 지금 관저에 있을 시각이다.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게으른 현 대통령.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소요되는 시간이 엄청 걸렸다.

평일에도 집무실에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경우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참관해야 하는 회의나 언론의 힘을 빌려야 할 때만 관저에서 나왔다.

- 관저입니다.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는 여성 행정관이 받았다.

“나 안보실장이야.”

- 네, 실장님.

“VIP님 바꿔줘.”

- 무슨 일이신가요? 지금 VIP께서 잠시 쉬시고 계십니다.

“무슨 일? 국가안보실장이 전화하면 급하다는 거 몰라? 바로 바꿔!”

-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어쩌다 청와대에 들어온 여성 행정관은 조직의 무서움을 몰랐다.

장관진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바로 태도를 바꿨다.

그리고 잠시 후.

- 여보세요.

“충성!”

- 무슨 일인가요?

경례에도 살짝 짜증이 밴 목소리로 묻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각하. 조금 전 차세대 전투기 사업 기종이 쌍발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시는지…….”

- 제가 지시했어요. 무슨 문제 있나요?

“며칠 전 보고했듯 쌍발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습니다. 지금 찾아뵙고 다시 한 번 설명을…….”

- 장 실장님.

잠시 말을 끊는 VIP. 곧 더 낮은 중저음으로 다음 말이 이어졌다.

“네! 각하.”

- 내가 이것저것 판단하고 지시했어요. 더 이상 이 문제로 귀찮게 하지 말아요.

VIP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주순자! 이번에도 너냐!’

갑자기 뒤집어진 결정 뒤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다는 걸 정관진은 확실히 깨달았다.

평소 보이던 VIP의 말투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뒤에서 주순자가 명확하게 지시했다는 걸 의미했다.

“각하 그럼…… 선생님이라도…….”

- 됐어요. 다른 보고 없으면 이만 끊겠습니다.

띠릭.

차갑고 냉정한 대통령의 일방적 태도.

“하아아…….”

장관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가진 무력하기 그지없는 힘의 한계를 느꼈다.

일개 아줌마도 상대하지 못할 만큼 추락하고 만 국가안보실 실장이라는 위치.

“주순자……. 언젠가 널…….”

장관진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지금 현재 주순자를 조종하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짐작 못 했다.

“무슨 일이래요?”

얼굴에 영양마스크팩을 덮은 주순자가 잘 움직여지지 않는 입술로 오물거리며 물었다.

“장관진 실장이 쌍발 전투기는 아니라고 말하네요.”

다시 편안한 안락의자에 등을 대고 누우며 조근영이 답했다.

“지가 뭐라고 하라 마라래요.”

“괜찮겠죠?”

대통령이 불안한 듯 물었다.

태생적으로 상명하복 관계가 익숙한 조근영은 자신의 울타리로 여기는 장군들을 신뢰했다.

그런 이유에서 정권이 탄생하자마자 군인과 검찰 출신들 위주로 측근 인사들을 채웠다.

“걱정 말아요. 애국하다 보면 이것저것 잡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애국 맞죠? 미국 대사가 항의할 것 같은데…….”

“아버님을 떠올려 보세요. 미국과 맞짱 떠서 핵무기도 만들려 했던 분이세요. 치적 쌓으셔야 퇴임 후에 편안합니다.”

“그렇죠? 그럼 됐어요. 저도 애국 좋아해요.”

쌍발 스텔스가 왜 애국인지는 모르지만 주순자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라 여겼다.

조근영에게 가장 중요한 건 주순자의 의견이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해서 탈이 난 게 없었다.

“마스크 새로 바꿔줘요. 스트레스 받으셨으니까 당직 간호장교 불러서 비타민 주사도 놓아주시고요.”

“네.”

유선주 행정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태산. 이번에 너 도와줬다. 나중에 입 씻기만 해봐.’

솔직히 주순자는 이번 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숟가락을 담기에는 사이즈가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군인들한테도 적당히 떡고물이 떨어져야 말을 잘 듣기도 했다.

비서실장이 스스로 챙겨줄 걸 알아서 넌지시 말을 보태는 정도였다.

알아서 알 일들이라 눈 감고 있었는데 장태산이 이번 찬스를 이용했다.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잘도 포장해서 말이다.

장태산의 부탁으로 즉시 대통령을 이용해 기종 선정에 관여하게 됐다.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요? 어제 드라마에서 나왔던 밀푀유가 맛있어 보이던데.”

“주방에 말해 놓을게요.”

“맛있겠다…….”

얼굴에 마스크팩을 하며 편안하게 저녁 식사와 드라마를 볼 생각에 즐거워진 대통령.

주순자는 그냥 입을 닫았다.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정신을 쏟으며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속이 상할 뿐이었다.

***

“정말 감사합니다! 회장님!”

회의장에서 나와 방사청 산책길에서 정지용 소장은 장태산 회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단발로 결정된 판을 장태산 회장이 개입하자 단박에 뒤집혔다.

장태산 회장의 말도 안 되는 인맥과 행동력.

- 소장님과 애국하시는 분들을 한반도 선조들이 도와주신 겁니다.

겸손하기까지 했다.

“동네 누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해주십시오.”

아직 정체를 모르는 장태산 회장의 동네 누님.

정지용 소장에게는 하늘에서 보내주신 선녀님과 같았다.

- 알겠습니다. 전해드리죠.

“그리고…… 여러모로 도와주신 점 잊지 않겠습니다.”

- 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겸손한 인재가 대한민국에 있다니……. 조국의 홍복이다.’

정지용 소장은 장태산 회장의 겸손과 숨은 일꾼들에 대한 배려에 큰 감동을 받았다.

“회장님 응원에 힘입어 가장 근사하고 멋있는 녀석으로 만들어 내겠습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연구소에 내려가면 오늘부터 야근을 시작할 생각이다.

아내와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도 등에 업었다.

기종이 결정되었으니 이제는 ADD의 시간.

진작부터 애국 철마들은 묵묵히 달릴 준비를 해왔다.

- 세부적 지원 사항이나 연구 분야는 TS 산하 계열사 직원들과 협의하십시오. 필요한 것들은 바로바로 알려주셔야 합니다. 절 최대한 이용하십시오.

“넵! 최대한 회장님을 이용하겠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정지용 소장이지만 신입 직원처럼 장태산 회장을 다했다.

이제는 확실히 믿음이 갔다.

아니 맹목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존경심마저 일었다.

나이 어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상 어디를 가도 볼 수 없는 진정한 애국자.

- 그리고 힘드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소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 힘내십시오. 앞으로 지치고 어려운 일들이 더 닥쳐올 겁니다. 지금처럼 밀고 나가십시오. 우리 후손들을 위해 끝장을 내주십시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하하. 저에게 말고 국가와 국민들에게 하시면 됩니다.

짧은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졌다.

‘10년! 그 안에 반드시 띄운다!’

5세대 기체를 개발함과 동시에 6세대 무인 전투기 사업도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다.

어차피 공통된 분야가 많다.

그리고 장태산 회장의 말대로 그의 힘을 최대한 이용할 것이다.

조국과 후손들을 위해!

***

“기분 좋아 보이네.”

“그래 보여?”

“어.”

“널 만나서 그렇지.”

“됐어. 아닌 거 다 알거든.”

고연지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스텔 쌍발기로 정리되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주순자의 막강 파워는 이번에도 여실히 힘을 발휘했다.

결정과 동시에 언론에 결과가 보도돼 쉽게 뒤집지 못할 것이다.

동네 누님이 한 자존심하다 보니 절대 외부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맛있네.”

“응. 순댓국에 소주는 진리지.”

퇴근 무렵 고연지가 날 불렀다.

대뜸 순댓국과 소주가 먹고 싶다고 말한 그녀.

돼지 뼈 육수로 푹 우려낸 담백한 국물에 청양고추, 들깨가루가 듬뿍 뿌려지고 송송 썬 파가 소복이 올라 얼큰했다.

숟가락으로 듬뿍 떠먹은 고연지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사는 거 별거 없다는 말이 정말 맞았다.

대한민국 5대 그룹 회장 딸도 먹고 마시는 건 우리랑 똑같았다.

“요즘 바쁘지?”

“누구 덕분에 아주 정신이 없어.”

“내 덕분에 대표 달았잖아.”

“그러니까 고마워 죽겠다는 거야. 평범한 문학도를 전쟁터에 던져 놓고 마음이 편해?”

“원한 거 아니었어?”

“이렇게 복잡하고 피 터질 줄 몰랐지.”

“그럼 다시 문학도 하든가.”

“이미 늦었어. 나도 사업하는 맛을 알아버렸어.”

“타락했군.”

“칭찬이지?”

“뻔뻔해지는 말투를 보니 대성할 것 같아.”

“와! 이거 디스야 칭찬이야?”

“해석하기 나름.”

내 말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보는 고연지.

“요즘 말이 많던데 괜찮아?”

“회사?”

“어.”

엘자그룹은 가끔씩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어느새 4세대 경영까지 내려갔기에 후손들 문제로 심심치 않게 사회면을 장식했다.

특히 얼마 전 터진 주가조작 사건의 여파가 컸다.

“……계열사들이 중구난방이야. 아버지 지시가 내려가도 저항하기 일쑤야.”

“그 정도야?”

“우리 그룹 권력 난맥상 잘 알잖아.”

“진작부터 떨거지들 정리하라니까.”

“선대 조상님들이 워낙 상속 문제를 인간적 도의에 맞게 해 놓으셔서…….”

“그럼 자선사업을 하셨어야지.”

“그래! 네 말이 맞아.”

고연지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셔.”

“고마워. 그래도 네가 있어 언제나 든든해.”

“나만 믿어. 엘자그룹 넘겨줄게.”

“이제 그 말이 절대 농담처럼 안 들린다.”

“능력되면 말만 해.”

“……사양할게. 우리 오빠도 먹고 살아야지.”

꿀꺽.

와인만 마시고 살 것 같은 고연지가 소주잔을 비우며 말했다.

입이 쓸 텐데 신음도 내지 않았다.

그녀도 어느새 소주 맛을 알아버렸다.

또로록.

잔을 채워줬다.

“장립은 잘 살고 있지?”

“아마도.”

“안 친해?”

“그런 사이 아냐.”

“뭐야? 평범한 사이인데 아빠에게 소개시켜 준 거야?”

“사업을 친분으로 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아빠하고 오빠는 완전 기대가 커.”

“애 키우느라 바쁜 것 같아.”

“……나도 깜짝 놀랐어. 그런 세계적 거물이 우리 회사 직원과 결혼하다니.”

진짜 감춰진 내막을 알면 깜짝 놀라다 못해 심장 마비에 걸릴 것이다.

다들 반쯤 죽어 산송장으로 취급하고 있는 임성철 회장이 장립이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어제 그와 화상 통화를 했다.

아이의 젖병을 씻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임 회장님.

그분의 대책 없음이 어이없는 한편 행복해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살다보면 믿지 못할 일이 주변에 널렸어.”

“맞아. 너와 내가 이렇게 술잔 기울이는 친구가 될 줄은 처음에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코하네는 연락 없어?”

“아직…… 없어.”

“잘 있나 모르겠네.”

“우리 일본 가서 찾아볼까?”

“됐어. 난 중국하고 일본은 안 가.”

“헐? 왜?”

“그런 게 있어.”

그곳에 발을 들였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당할 게 확실했다.

그걸 알면서 사지로 기어들어가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건 그렇고……. 너희 엘자통신 왜 그래?”

“어? 엘자통신은 왜?”

“내가 분명 몇 년 전부터 중국산 통신망 깔지 말라고 했는데……. 싼 것 잘못 삼켰다가 나중에 몇 배로 토해내야 해.”

“알고 있지만……. 엘자통신은 아빠가 어떻게 못 해.”

“왜?”

“그쪽 대표부터 시작해 임원들 상당수가 고선택 전무님 핵심 라인이야.”

상황을 알고 있는 듯 힘겹게 입을 여는 고연지.

엘자그룹의 복잡한 경영 운영 방식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났다.

“고선택이 문제라 이거지…….”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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