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장. 누님 찬스.
“이 양반들이 몸이 달았어. 쯧쯧.”
청와대 국가안보실.
실장 장관진이 혀를 찼다.
애국 장성 포럼에서 결의문이 공문으로 전달됐다.
사방에서 제대로 로비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실장님 대세는 이미 정해진 것 같습니다.”
과거부터 인연이 있던 현역 대령이 안보실 보좌관으로 파견돼 들어왔다.
그가 씨익 웃었다.
“그러게, 선배님들 덕분에 일이 편하게 됐어.”
국가안보실 실장 장관진도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육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고 이제는 대한민국 안보에 관한 최고 책임자가 됐다.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공길춘 비서실장과 맞먹는 권력을 행사했다.
군사 부분에 관해서는 일체 터치받지 않았다.
서로 자기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고 꿀을 빨았다.
일반 장관이나 고위 공무원의 임명에 있어서는 공길춘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독사회와 알지회를 중심으로 한 장관진 계열은 군대 요직을 차지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둘은 사이좋게 공존을 택했다.
“공군 참모총장 얼굴이 썩겠는데요.”
“건방지게 공군 따위가 전력 강화에 주둥이를 씨부려. 우리 같은 좁은 국토에서는 단발만으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어. 주제도 모르게 쌍발에 스텔스라니. 차라리 그럴 돈 있으면 공격헬기나 탱크를 더 깔아야지.”
“맞습니다. 이번에 단단히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해군 새끼들은 그래도 얌전히 닥치고라도 있잖아.”
“전투기 대신 배를 구입해 준다는 약조를 철석같이 믿는 것 같습니다.”
“그것들도 정상은 아냐. 대양 해군을 지향? 우리가 나갈 대양이 어딨어? 적당히 연안 정도 방어할 함정이나 잠수함이면 충분해.”
뼛속 깊이까지 육군 장성인 장관진은 공군과 해군을 대놓고 무시하며 까댔다.
국방부 주요 보직을 거의 다 자기 라인으로 도배했다.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을 동시에 모신 국방부 장관.
이번에는 국가안보실까지 점령하자 두려울 게 하나도 없었다.
증여세 탈루를 비롯해 여러 범죄 혐의가 그의 뒤에 꼬리표처럼 붙어 있었지만 모두 다 묻혔다.
청와대 실권자를 상대로 먼지를 털 만한 간 큰 공무원이 현재로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무소불위 권력을 손에 쥔 장관진은 DF-X 사업에 아주 깊숙이 관여했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실시되면 군 전략 구입비 중 상당수가 공군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육군으로 흘러들어올 세금이 줄어들 건 불을 보듯 빤했다.
장관진 라인을 타고 줄을 선 후배들의 불만이 많아졌다.
그래서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
미국업체에서 제시한 기존 기체 개량형 사업.
은밀하게 책정된 마진 금액이 기대 이상으로 엄청났다.
어차피 퇴직하게 되면 장관진은 자식들이 있는 미국에서 거주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듯 과거부터 장관진은 대표적인 친미주의자였다.
자식들도 이미 미국 시민권자이면서 영주권자였다.
속사정이 그렇다 보니 이것저것 미국 로비스트들과 밀접하게 엮이는 것도 당연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순순히 길을 잡아주고 국내에서 방향을 틀 때마다 탄탄한 미래가 보장됐다.
“국방부에 통보할까요?”
“그래.”
“비서실장에게 보고는 하죠.”
“어차피 며칠 전에 얘기 마무리해놨어.”
“VIP도 별 문제없죠.”
“그쪽도 말했어. 알아서 하라더라.”
대통령을 ‘그쪽’이라 가볍게 지칭하는 장관진.
엄연한 무시였다.
최고 상사로 모시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상대할 수 없을 만큼 무식한 여자라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국방에 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딱 유치원 수준에 그쳤다.
전투기, 탱크, 전함, 잠수함이라는 단어밖에 언급할 줄 몰았다.
국방 최고 통수권자임에도 불구하고 분단국가의 수장으로서 군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다.
말 그대로 군인들은 총만 있으면 나라를 지켜내는 존재라 믿고 있었다.
적당히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사탕발림 발언으로 장단을 맞추면 웬만한 것들은 무조건 오케이였다.
그리고 이런 일로 대통령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었다.
국방예산이라는 게 고정적으로 쏟아져 나가는 세금이라 터치할 게 없었다.
이번 DF-X 사업도 그중에 하나였다.
쌍발이든 단발이든 대통령한테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해 머리 아프지 않은 쪽으로만 결정하면 된다.
특히 언제나 목을 매는 미국 쪽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기를 원했다.
말이 나온 뒤 얘기가 길어지는 것을 가장 귀찮아하고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특히 군인들을 좋아했다.
부친이 정권을 휘둘렀던 시절 독재 쟁권을 지지하던 초급 장교들이 이제 어엿한 장성급이 됐다.
그 라인을 철저하게 정치적 배경으로 삼았다.
“그럼 미국산으로…….”
“물어볼 게 뭐 있어. 우리 전투기들은 다 미국산이지.”
“그렇죠. 피아식별장치 문제도 있으니 무조건 미국산으로 들여와야 합니다.”
“최종 결정 회의가 언제라고 했지?”
“내일입니다.”
“자료 준비해.”
“알겠습니다.”
“다 정해져도 요식행위가 중요해. 빠진 것 없나 잘 체크해.”
“넵!”
“양쪽에서 보낸 조건들이 비슷하지.”
“거의 똑같습니다. 말을 어느 정도 맞춘 것 같습니다.”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마무리 답변을 했다.
미국 양대 전투기 업체에서 제시한 조건이 비교가 어려울 만큼 비슷비슷했다.
“그래도 좀 더 국익 쪽으로 기울일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해봐.”
말이 국익이지 최대한 마진을 많이 주는 쪽으로 밀어붙이라는 속뜻이 담겨 있었다.
최대로 버텨야 3년이었다.
그 안에 무조건 뽕을 뽑아야만 했다.
“최종 타진해 보겠습니다.”
“그래. 유 대령. 난 자네만 믿어.”
“충성!”
보좌관 유 대령은 장관진 앞에서 강직한 모습으로 경례를 올렸다.
일이 이렇게만 흘러가면 올해가 가기 전에 별을 달 수 있을 게 확실했다.
그리고 장관진과 함께 도모한 비리가 여러 건 있는 만큼 최소 소장 진급은 따 놓은 당상이다.
“뒷말 안 나오도록 조심해. 변수란 항상 존재하는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누가 감히 실장님 하시는 일에 가타부타 토를 달겠습니까.”
아부 전용 딸랑이처럼 듣기 좋은 말을 쏟아내는 보좌관.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곧 토를 다는 것을 넘어 뒤통수를 후려칠 순간이 다가온다는 걸.
***
“…….”
정지용 소장은 나의 말에 눈만 껌벅였다.
국가의 중차대한 결정을 일개 동네 누님에게 부탁한다?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 말이 분명했다.
물론 이해는 갔다.
전투기 개발에 국가기관도 아닌 개인 연구단지에서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믿어야 한다.
스텔스 제조 기술?
그거 극비도 아니다.
블라드미르가 진작 다 빼돌렸다.
다만 러시아도 그걸 활용 못 했을 뿐이다.
똑똑한 러시아 해커는 F-22 중요 설계도와 기술을 빼돌려 자기만 아는 곳에 보관해 놨다.
사실 그게 그렇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아니다.
F-22는 오직 요격기로서만 최상이다.
폭격 임무까지 포함한 멀티 롤에는 한계가 있다.
공군이 원하는 건 요격 임무뿐만 아니라 폭격까지 가능한 기체다.
워낙 돈이 없는 공군이라 한쪽에 몰빵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소장님은 아는 누님 없습니까?”
“저요?”
“네. 뭐든 부탁하면 신경질 내면서도 다 들어주는 그런 누님 말입니다.”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그렇군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저 회장님…….”
“네.”
“그 동네 누님이 누군지 알려주시면…….”
“알면 피곤해집니다.”
“네?”
“힘은 좋은데 피곤한 스타일입니다. 강남 아줌마들 특징 있지 않습니까. 잘난 척도 심하고 성격도 안 좋은.”
“아!”
강남 아줌마라는 소리에 권력자의 와이프 정도를 상상하는 눈치다.
번지수가 틀렸다.
내가 아는 동네 누님은 권력 그 자체다.
물론 그 권력 행사 기간이 앞으로 몇 년 남지 않았지만 지금 현재는 넘사벽이다.
“절 믿어 주십시오.”
“저야 회장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내일 방사청에서 기체 관련해 최종 회의가 있습니다. 이번 결정은 그동안 말이 많았던 만큼 기자들과 국방위 의원님들, 국방부 관계자까지 모두 모입니다.”
“그래요?”
“시간이 촉박합니다. 단발기로 결정되면 뒤집을 수 없습니다. 미국 측에서 로비가 장난 아니게 들어가고 있을 겁니다. 자신들의 단종되었거나 낡은 기종을 공장까지 패키지로 묶어 팔아먹으려 할 겁니다.”
정지용 소장의 은근한 분노가 감지됐다.
“그럴 일 없습니다.”
“회장님…….”
“내일 소장님과 공군이 원하는 방향으로 쌍발 스텔스 기종이 결정되리라는 걸 제 이름을 걸고 보증합니다.”
“…….”
말을 멈추고 날 지그시 바라보는 정지용 소장.
마치 내가 도깨비처럼 보일 것이다.
처음 보자마자 10년 동안 결정 내지 못한 기체 선정을 끝내겠다고 한 내가 미친놈으로 보이는 건 지극히 정상이다.
“한잔하시죠.”
굳이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애국자 소장님에게는 지금 휴식이 필요했다.
소주병을 들었다.
투두둑 투두두둑.
분위기를 맞추기라도 하듯 가을비가 내렸다.
별채 지붕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정지용 소장이 잔을 들었다.
“애국하기 힘드시죠.”
“아, 아닙니다.”
“그 심정 이해합니다. 애국하려고 해도 친일파 후손들과 친중국, 친미파들이 애국을 방해할 겁니다. 지정학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땅 덩어리가 참 매력적인 곳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회장님 같으신 분들이 있어 버틸 만합니다.”
“힘내십시오. 저뿐만 아니라 이 땅의 뿌리와 같은 백의의 조상님들이 다 알고 지켜주실 겁니다. 긴긴 세월 동안 어떻게 지켜낸 땅입니까. 피로써 눈물로써 죽음으로써 살을 도려내며 버티고 버텨 후손들에게 허락한 땅입니다.”
목소리에 힘을 담았다.
수없는 세월 동안 오직 왜구와 오랑캐들의 침략 속에서 버텨왔던 한민족.
건들지 않으면 결코 먼저 물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화나게 하면 멧돼지에게도 덤비는 진돗개와 삽살개처럼 우리는 강하게 적들을 응징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조국을 팔아먹으려 하는 암적인 존재들.
놈들에게 한 방씩 차근차근 주먹을 날릴 것이다.
다시는 이 땅에 발 붙여 기생하지 못하도록 사랑의 에프킬러를 쫙 뿌려줄 것이다.
애국(愛國)이라는 위대한 이름으로.
***
“아~ 짜증나. 요즘 일 때문에 피부가 엉망이 됐네.”
주순자는 거울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짜증이 치솟았다.
권력을 손에 쥐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과거에는 권력자가 되면 온갖 호사를 누릴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현실이 되고 보니 생각보다 일이 많다 못해 넘쳤다.
자신이 손댄 국가사업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청탁도 사방에서 들어왔다.
푼돈 들어오는 쪽은 쳐다볼 시간도 없었다.
대기업 대관자들을 통해 적당히 압력을 넣으면 알아서 넉넉하게 가져다 바쳤다.
행정기관이 귀찮게 하는 순간 오정 같은 그룹도 사업에 차질을 빚었다.
과거 최고 권력자의 한마디에 그룹이 날아가던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해도 이런 구조는 어쩔 수 없었다.
아직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사업하는 기업들이 차고 넘쳤다.
그러니 그들을 협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 애국하다가 일찍 죽는 건 아니지?”
청와대 내실에서 주순자가 한탄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은 둘도 없는 애국자였다.
뇌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여자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세웠다.
주체 의식이 없는 수장으로 허수아비 같아 조종하기는 편했지만 관리하는 게 여간 힘들었다.
생각보다 대통령이 직접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대충하고 싶어도 골 때리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눈치 빠르고 일을 잘 처리하는 비서실장을 들인 이후에는 좀 편해졌지만 최근 큰 사고가 터지면서 모든 게 엉망이 됐다.
누구도 예상 못 한 오월호 사고.
“배가 가다가 침몰할 수도 있지. 그게 왜 대통령 탓이야? 사람들이 양심이 없어요. 양심이.”
주순자는 그 일에 대해 진심으로 화가 났다.
사고가 나면 국가 시스템이 알아서 돌아가야 하는 게 맞는데 모든 걸 청와대에 연락해 의견을 물었다.
당시 대통령과 기분 좋게 미용 시술을 받고 있었던 주순자.
그 사건 이후 일부 언론의 표적이 됐다.
그래서 요즘 더 바짝 독이 올라 있는 상황.
띠리리리리리리.
그때 스마트폰이 조용히 울렸다.
“이 밤에 누구야!”
애꿎은 전화 상대에 화풀이 할 판이었다.
대통령은 혼밥을 하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번 꽂히면 드라마에 푹 빠져 다른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대통령.
저녁에 올라온 국가의 중요 보고서를 살피던 주순자는 지친 얼굴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어라? 이 자식이 무슨 일이야?”
가끔 통화하는 싸가지 없는 새끼.
마음 같아서는 감옥에 쳐넣고 싶었지만 뒤에 깔린 배경이 만만치 않았다.
“왜!”
통화 버튼을 누르며 주순자는 빽 소리를 질렀다.
- 동네 누님. 오늘은 왜 이렇게 심기가 불편하실까?
능글거리는 뺀질이 같은 놈의 목소리.
“넌 예의도 없어? 지금 몇 신데 전화질이야! 그리고 내가 왜 동네 누님이야!”
-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지 않습니까. 그럼 동네 누님이시죠.
“하아아……. 내가 너하고 무슨 말을 하겠니.”
-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부탁? 또 뭐!”
- 누님 찬스 좀 쓰겠습니다.
“뭐라고? 누님 찬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