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장. 애국(愛國)(4).
“으윽…….”
포럼 회의를 끝내고 개인 사무실로 돌아온 방대섭 의장.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쓰디쓴 신물을 억지로 삼켰다.
갈수록 몸 상태가 나빠졌다.
암 정도의 병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간이 나빠져 있는 상태다.
합참의장에 오르는 동안 계속된 군대에서의 과도한 음주와 흡연이 문제가 됐다.
간경변 중에서도 악성이다.
증상이 나타나고 병증을 확인했을 때는 치료 시기가 이미 늦어버렸다.
병이 발병하기 전까지 무척 건강한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구보를 할 정도로 건강에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침묵의 암살자 격인 간이 이렇게까지 망가져 버린 상태인 줄은 전혀 몰랐다.
이제 간 이식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실정.
그것도 부분 이식으로 끝나지 않고 간 전체를 이식해야 하는 상황이다.
복수가 차는 건 당연했다.
간 기능의 10%밖에 남지 않아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지 꽤 됐다.
당장 이 자리에서 쓰러져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서 더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들의 지시를 따라야만 했다.
“의장님. 오늘 회의도 무사히 끝난 것 같습니다.”
“조 비서 덕분이야.”
“아닙니다. 의장님의 탁월하신 영도력 덕분입니다.”
존경의 의미로 고개를 숙이는 비서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비서 역시 그들이 보낸 끄나풀이다.
감시자인 동시에 조종자였다.
퇴직하자마자 조 비서가 배당됐다.
위에서 내려오는 모든 지시 내용은 조 비서가 전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됐고……. 이제 수술 날짜 잡아줘. 더 이상 몸이 버텨주질 못해.”
방대섭 의장이 말을 끊고 울컥 감춰왔던 심정을 드러냈다.
전체 간 이식은 오로지 사후 기증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이런저런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적합자로 판명이 나야 가능했다.
급하다고 적합하지 않은 간을 이식받았다가는 부작용으로 며칠 안에 사망할 수도 있다.
방대섭은 시간이 흐를수록 애가 달았다.
쉽게 찾을 수도 없고 찾아지지도 않는 기증자.
그즈음 본격적으로 그들의 강도 높은 요구가 들어왔다.
간 이식이 가능한 적합자를 찾아냈다는 말도 함께 전해졌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것처럼 감사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합참의장까지 지냈지만 마지막 남은 꿈이 있었다.
국회의원.
꼭 이 나라의 국회의원이 되어 금배지를 가슴에 달고 싶었다.
국회 출마를 염두에 두고 살았기 때문에 벌어 놓은 돈도 마음껏 써보지도 못했다.
군대 권력의 최상부라고 할 만한 고위 간부였어도 아직 돈 쓰는 재미 같은 건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군인이라는 신분 자체가 사치스러운 삶과 거리가 멀었다.
몰래 축적한 돈이 제법 되긴 했지만 퇴직 때까지 근검절약하는 모습으로 살았다.
그리고 이제야 그 돈을 풀어 멋지게 남은 삶을 살아보려 했는데 하늘이 그 복까지는 허락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때 하늘에서 준 기회가 이번 임무였다.
자신을 지금까지 이끌어주었던 조직에서 온 제안.
이번 차기 전투기 사업에서 단발기 쪽으로 손을 들어주면 간 이식 수술을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선뜻 믿기 어려웠지만 적합 판정 결과지를 내밀었다.
이식 받게 될 간도 건강했다.
올해 스무 살이 된 건강한 청년의 간이었다.
그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간을 이식 받기만 하면 너끈히 10년 이상은 재발 걱정 없이 팔팔하게 살 수 있었다.
목숨을 붙들기 위해서 방대섭은 군인으로서의 꼿꼿했던 마지막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아직 최종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아. 오늘 결정 나서 공문 보냈잖아. 국방부 장관이 내가 키운 후배야. 이건 반드시 돼!”
“어차피 두 달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정도 시간은 버텨주셔야 합니다.”
“두 달? 내가 밤마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 맞고 자는 거 몰라?”
“주치의가 석 달 정도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정말 독하군.”
“살아 있는 사람의 생간은 싼값에 구하는 게 아닙니다.”
방대섭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쉬운 건 자신이었다.
어차피 지금 하고 있는 업무는 자신이 아니어도 쓸 만한 대타가 많았다.
장성이 되기 위해 절치부심 앞만 보고 노력하던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지금의 조직.
그들은 은밀히 다가와 방대섭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군이 되고 싶다면 자신들의 손을 잡으라고 말했던 무서운 조직이다.
면전에서 해온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대령에서 장군이 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었다.
또 동기들보다 월등히 낮은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육사의 내로라하는 동기들과 날고 긴다는 선후배들 모두가 경쟁자인 셈이었다.
운 좋게 대령까지는 올라섰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진급에서 한두 번 누락되면 만년 대령으로 예편해야만 했다.
그런 시점에 눈앞에 내려온 구명줄을 마다할 어리석은 자는 없었다.
거짓말처럼 약속대로 장군이 됐다.
별이 된 이후로도 거침없이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방대섭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했다.
후배들을 교묘하게 납득시켜 국방비를 여러 경로로 유용하기도 했다.
가장 흔하게는 불량 전략 무기 획득을 눈감아 주고 뒤에서는 비리를 조장했다.
그들은 방대섭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듯 때가 되면 알아서 요직에 꽂아줬다.
국력을 증진시키고 국민들을 깨울 만한 사업들에는 적당한 순간 고춧가루를 뿌렸다.
전투기나 이지스 같은 일본을 위협할 만한 전략무기 획득에는 기를 쓰고 최대한 지연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물량을 줄였다.
투입되는 장비에도 장난질을 치는 건 당연했다.
서로 밀고 끌어주는 사이로 발전한 관계에서는 제삼자에게 발각될 염려가 없었다.
군인으로서 양심에는 가끔 찔렸지만 역시 금세 잊어버렸다.
어차피 자신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해먹을 판이었다.
차라리 개인의 양심을 팔아 후대 자손들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게 되는 걸 바랐다.
“정말 줄 수 있는 거 맞지?”
“물론입니다. 의장님도 알다시피 이식 받은 분들이 꽤 있지 않습니까.”
“끙…….”
방대섭은 신음을 흘렸다.
자신에게만 그들이 접근한 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방대섭이 아는 사회 고위층 인사들 중에서도 불법 장기 이식 수혜자가 제법 있었다.
대부분 위중한 상태로 뇌사자의 장기 공여밖에 답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무한 대기해야 가능한 뇌사자의 장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조직에서 구한 건강하고 팔팔한 장기로 이식해 목숨을 연장했다.
“조금만 힘내십시오. 몇 달 뒤에는 건강한 몸으로 큰일 한번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 비서가 인간 같지 않은 얼굴로 사악하게 웃었다.
“알겠네. 자네만 믿겠네.”
“제가 아니라 회주님을 믿으십시오.”
방대섭은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 회주.
“물론이야……. 난 회주님만 믿어왔고 앞으로도 충성을 다할 뿐이야.”
“말씀하신 대로 의장님의 신실한 믿음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빙긋 웃는 조 비서.
‘늙은 바퀴벌레 같은 새끼.’
조 비서는 웃고 있었지만 방대섭을 격멸했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 타인의 죽음에는 전혀 신경 쓰지 다.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검은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쓰레기 상류층 인사였다.
그들의 탐욕스러운 이기심 덕분에 회가 영원히 대한민국의 주인으로 군림할 수밖에 없었다.
***
뭘 그렇게 놀라시나.
가볍게 내뱉은 몇 조라는 말에 정지용 소장이 입을 떡 벌린 채 눈만 껌벅거렸다.
몇 십억이나 몇 백억도 아니고 조 단위의 자금 지원.
그래 이 정도 규모의 지원은 처음일 것이다.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 했을 테니 말이다.
ADD 수십 년 예산보다 훨씬 많은 금액인 건 안다.
하지만 애국하려면 그 정도 돈은 써야 빛이 나지 않겠는가.
일제강점기 당시 악질 친일파들도 돈을 모아 천황이라는 작자에게 비행기를 헌납했다.
그 일에 비하면 아주 값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농담이 과하십니다.”
믿지 못하겠는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정지용 소장.
속고만 살았는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정지용 소장이어도 같은 반응일 것이다.
“농담이 과했나요?”
“아닙니다. 배포가 보기 좋습니다. 하하하.”
정지용 소장은 웃음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날렸다.
진짜 농담이나 배포 자랑이 아닌데 정지용 소장은 끝내 믿지 않았다.
한 발 물러날 시점.
어차피 ADD에 직접 기증도 안 될 뿐더러 되더라도 다 국고로 들어가게 된다.
추호도 윗대가리들 배 불릴 생각 없다.
“고기가 탑니다. 드십시오.”
“그러죠.”
진지한 제안은 가벼운 농담이 되어 버리고 식사가 이어졌다.
맛집답게 한우는 고소하고 기름진 데다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소주가 몇 잔 더 돌았다.
“힘드시죠?”
“???”
“소장님은 쌍발 전투기를 민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태클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우리 주제에 단발이면 됐지 무슨 쌍발 전투기냐고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전 투자자입니다. 저에 대한 소문을 어떻게 들었는지 몰라도 저 역시 이익을 좇는 장사치입니다.”
“…….”
“F-16 전력 이상의 4.5세대 쌍발 기체……. 소장님은 답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직접적으로 물었다.
스윽.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는 정지용 소장.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축적한 한국의 국력과 반도체, 과학 기술 정도면 충분히 개발 가능합니다.”
정지용 소장의 눈빛에는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이대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저돌성과 힘, 그리고 열정이 느껴졌다.
“만만치 않을 겁니다. 미국 군수업체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그리고 단발을 밀고 있는 DAI의 로비가 장난 아닐 테니까요.”
“……맞습니다. 지금도 제가 얼마 전 써낸 칼럼을 두고 속속 압력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과 맞서려고 하십니까? 편하게 가는 방법도 많을 텐데요.”
“이번에는 물러서는 순간 앞으로 대한민국 항공과 우주 분야는 영원히 후퇴하게 됩니다.”
“너무 과장된 말씀 아닙니까?”
“아닙니다. 기존 단발 개량형 기체는 더 이상 확장 능력이 없습니다. 락히트 마틴사의 간섭으로 기술을 축적할 만한 대상이 못됩니다. 그리고 이익 관계인 여러 미국 군수 업체의 견제로 마음대로 무기나 폭장량 개량도 못 할 뿐더러 수출도 불가능합니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 아닙니까? 덩어리가 가장 큰 호구 중 하나가 대한민국일 텐데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고 부끄럽습니다.”
“아닙니다. 소장님이 무슨 부끄러워할 입니까. 돈에 눈먼 정치 권력자들이 더 문제죠.”
“장태산 회장님. 우리의 주적이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예민한 질문입니다.”
“다들 북한을 무서워하지만 그들은 핵무기를 제외한 재래식 무기로는 대한민국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6.25시절도 아니고 저 한반도 상공에 떠 있는 정찰 위성들로 모든 움직임이 파악됩니다. 만약 조금만 군사적 이상이 감지되면 미사일을 비롯해 항공 전력으로 단 하루면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지상전이 의미가 있을까요?”
“의미가 없겠죠.”
“사실 지금 항공 전력도 북한에 비하면 고스팩입니다. 덜덜거리는 고물 같은 북한 잠수함도 상대가 안 됩니다. 함정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현직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의 진단이 이렇다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쌍발 전투기 개발 의미는…….”
“생각하시는 바가 맞습니다. 미래 한국의 주적은 바로 통일 후 국경을 맞대게 될 중국과 독도를 호시탐탐 노리는 일본입니다!”
정지용 소장의 목소리에 힘이 더 들어갔다.
아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주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핵무기밖에 내세울 게 없는 북한이다.
어차피 그건 있어도 사용 불가능하다.
머리에 총 맞지 않는 이상 서로 죽자고 핵무기를 발사하는 멍청이는 없다.
방사능에 오염된 땅은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이라…….”
“중국과 일본, 미국 쪽 로비스트들이 시작부터 움직였습니다. 방해만 없었다면 진작 기체선정 탐색개발, 체계개발을 끝냈을 겁니다. 로비스트들에 휘둘려 벌써 10년째 타당성 평가만 몇 차례 반복해서 진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아.”
정지용 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꿀꺽.
답답한 듯 소주잔을 비웠다.
“그사이 수십 년 된 공군 전력기들 상당수가 퇴역 시점이 됐습니다. 그걸 모두 비싼 수입 전투기로 대처할 수 없습니다. 전투기는 구매비용보다 유지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걸 대부분 국민들은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더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영영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5세대를 넘어 6세대 연구가 진행되는 마당에 이제 우리는 걸음마 수준을 조금 넘어섰을 뿐입니다. 후손들을 위해서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미래 중요한 먹거리 중 하나인 항공우주분야를 반드시 키워야 합니다.”
소신을 넘어 오로지 미래 대한민국을 위한 신념으로 똘똘 뭉친 듯 보이는 정지용 소장.
목소리에 확신이 넘쳤다.
진짜 애국자가 맞았다.
개인적인 욕망이나 이익을 위한 게 아닌 대한민국 후손을 절대적으로 위하는 정지용 소장.
마치 그의 몸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우리 손으로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대로 개량하고 고칠 수 있는 장점은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단숨에 반도체처럼 도약할 수 있는 인재와 그만한 능력이 우리 안에 잠재돼 있습니다. 그걸 깨울 수만 있다면……. 충분히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든든하게 담당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음…….”
듣고 있는 나의 가슴까지 뜨거워졌다.
진정한 애국의 힘이 이런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어리바리하다가는 일본처럼 미국의 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주국방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과업을 완수해야 합니다!”
정지용 소장이 뜨거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같이 갈 동지로서 한 치의 부족함도 없었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막아주십시오.”
“네?”
“저를 지금의 자리에서 끌어내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굽니까?”
“장 회장님은 모르실 겁니다.”
말을 하다말고 고뇌에 찬 눈빛을 보이는 정지용 소장.
“일송회……라고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