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장. 애국(愛國)(2).
“하아…….”
대전에 위치한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실.
희끗희끗한 흰 머리칼이 대부분인 남자가 새하얀 연구원 가운을 입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소장 정지용.
내일모레가 환갑이다.
애국의 꿈을 품고 같이 입사했던 동기들 대부분은 퇴직한 지 오래다.
정지용만 소장을 달고 아직 연구소에 남아 있었다.
긴 세월이 흘렀다.
자주국방의 이념을 품고 이곳에서 젊은 시절의 청춘을 다 불태웠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고 긴 전쟁과 같은 싸움이었다.
집보다 연구소에서 산 날이 더 많았다.
고작 한 달에 몇 번 기어들어가는 집은 낯설기까지 했다.
주말도 없이 일하는 남편을 진작 포기한 아내는 친구들과 등산을 다니거나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느라 늘 바빴다.
어느새 다 커버린 아이들은 이제 아버지 정지용을 어려워했다.
어쩌다 집에 들어가면 어색한 기운이 집안에 감돌았다.
돈은 부족하지 않을 만큼 벌어다 주지만 가족 간의 정은 배양해 주지 못했다.
소장 정지용에게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
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개발은 언제나 분초를 다퉜다.
게다가 연구비는 늘 빡빡했다.
한두 차례 시험에 실패하면 수억에서 수십억이 날아갔다.
그때마다 엄하게 문책이 떨어졌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방부 감찰뿐만 아니라 감사원까지 동원됐다.
미국이나 방위 산업의 선진국들에서는 연구 실패를 당연시했지만 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얘기였다.
언론도 문제를 키웠다.
개발 과정에 있어 단박에 실전 사용이 가능하지 않으면 일단 물어뜯었다.
개뿔도 모르는 것들이 국방 전문 기자랍시고 멋대로 펜대를 굴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방산 부패라는 말에 걸려 무조건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럴 때마다 연구원들 모두의 피가 바짝바짝 말랐다.
같이 피땀 흘려 개발에 참여한 협력 업체 직원들과 술자리 한 번 편하게 갖지 못하는 현실.
기껏해야 삼겹살에 소주가 전부였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나름 즐거웠다.
애국은 애초 돈 보고 뛰어든 자들이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개발만 성공하면 방위사업청과 생산 업체 간부들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었다.
질펀하게 놀고 돈을 나눠 가져도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우리 손으로 개발한 무기로 방위만 튼튼하게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인간이다 보니 심리적으로 용인하는 데 그 한계가 존재했다.
문과생 위주로 구성된 국방연구원을 정부와 언론은 더 신뢰했다.
그들은 입으로 말만 하면 모든 것들이 바로바로 쑥쑥 나오는 줄 아는 인사들이었다.
국방연구소 연구원들만 죽어 나가는 구조.
한 번 목표가 정해지면 일상생활은 거의 불가능했다.
개념정리부터 시작해 설계와 개발, 실증까지 모든 것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끝나야 인정받았다.
쓸 만한 연구원들에게는 암암리에 각국 무기 연구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은밀히 들어왔다.
쥐꼬리만 한 박봉에 누명까지 써가며 애국하지 말고 편하게 연구만 하자고 말이다.
지금의 연봉 몇 배는 기본으로 제시했다.
이적해 한 번의 연구 실적만 보여도 평생 먹고 살 만한 돈이 주어졌다.
최근에는 중국 쪽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 추세다.
이래저래 외부에서 계속 흔들어 대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윗선에서는 애국만 강요했다.
“사공이 너무 많아.”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정지용 소장이 쓴 입맛을 다셨다.
국방과학연구소를 다들 도깨비방망이로 여기는 게 기분 나빴다.
예산은 쥐꼬리만하게 책정하면서 추진하는 사업들은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
간단하게 소총부터 시작해 장갑차, 전차, 대포, 수상함, 잠수함, 항공기, 미사일까지.
모든 현대 군사 물품이 사업 추진 메뉴와 관련되어 있었다.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첨단 과학 방산 기술도 주문해 왔다.
방산 선진국에서만 취급하는 레이저포, 레일건, 초공동 어뢰와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정부와 국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쇼를 연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막상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는 인원도 얼마 되지 않았다.
고작 연구원 몇 명이 팀을 이뤘다.
수석연구원, 책임연구원, 선임연구원.
그리고 일반연구원 몇 명이 한 팀이다.
한 팀당 인원이 10명을 넘는 경우는 드물었다.
미국 방산 업체 같은 경우만 봐도 보통 100여 명이 달라붙어 연구하지만 한국에서는 그것도 불가능했다.
개발이 성공하면 어느 정도의 포상금이 나왔지만 실패하면 각종 감사뿐만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가해졌다.
의욕을 꺾는 행정이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모두가 묵묵히 참고 연구에 매진해 왔다.
애국이라는 거창한 명분 앞에 백의종군의 길을 걸었다.
“내가 죽기 전에 전투기를 볼 수 있을까…….”
정지용 소장에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한 꿈이 있었다.
국산 전투기를 개발해 영공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개발된 국산 비행기는 대부분 무늬만 국산인 것들이다.
면허 생산의 제공호부터 시작해 기본 훈련기까지 핵심 부품은 모두 외국산이다.
최근 생산된 훈련기도 마찬가지.
자체 훈련기를 개발하려 했지만 미국 방산 업체가 고춧가루를 뿌렸다.
국방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지하는 대한민국은 그들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F-16 전투기의 변형 기체를 가져다 훈련기로 만들었다.
다운그레이드형 기체라 개조에 한계가 있었다.
핵심 부품은 뜯어보지도 못했다.
함께 제공하기로 했던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
그 와중에도 여러 방해 공작들이 심하게 이루어졌다.
미국 방산 업체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도 개입했다.
대한민국 국방이 강해지는 걸 두려워하는 만큼 친일 언론과 정치인들을 동원해 의지를 꺾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진정한 애국자들의 기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ADD를 비롯해 민간 기업들이 합심해 단시간에 훈련기를 제작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기본 공격기로도 변형시켰다.
분명 계약서에는 협의가 되어 있었지만 기술 제공을 거부한 미국 업체.
이를 갈며 타국에서 기술을 이전받았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뼈를 깎는 심정으로 연구해 개발해 냈다.
그렇게 탄생한 훈련기는 기초 공격기로도 사용 가능할 정도의 성과를 보였다.
“아직도 친일파들이 너무 많아.”
정지용 소장은 곳곳에 섞여 있는 친일파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2000년 초반부터 시작한 한국형 전투기 개발은 아직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표류 상태다.
좌파 정부라 불리지만 국방에 힘을 쏟는 기존 정부와 달리 보수 정부라 불리는 자들이 국방 예산을 사정없이 삭감했다.
그 자금을 쓸어다 오대강에 쏟아붓고 각종 비리 사업에 갈아 넣었다.
전투기는 물론 군함 예산도 토막 냈다.
다섯 대가 세 대로 줄었다.
결실 없는 연구에만 몇 년씩이나 허송세월을 보냈다.
친일파 언론과 정치인들은 어용 기관 연구발주를 통해 국산 전투기 개발이 부질없다고 부채질했다.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단발기에 소형 기체만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국방 기술은 미천하다는 이유와 개발비가 너무 비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
미래 먹거리 중 하나가 항공 기술이라는 점을 철저히 외면했다.
달콤하게 꿀처럼 떨어지는 일본이나 미국 군수업체 측에서 뿌리는 로비 자금에 중독된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앞으로 나서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호도됐다.
평화 통일을 주장하는 일부 극진 세력들도 그에 동조했다.
강한 국방력이 받침이 될 때 자주적인 통일도 가능하다는 걸 그들은 직시하지 못했다.
세기가 바뀌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힘의 논리대로 움직였다.
국력이 바로 국가의 미래인 셈이다.
타국에 국방을 맡겼다가 망해 버린 로마를 비롯해 여러 국가들의 역사들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사실에 애써 두 눈을 감았다.
그런 현실이 너무 답답한 정지용 소장.
퇴직하기 전에 DF-X 사업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대한민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
우리 손으로 제작해서 언제든 개조가 가능하고 나아가 미래 전장을 지배할 5세대와 6세대 전투기까지 노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사방에서 들어오는 압력이 만만치가 않았다.
국방의 국자도 모르는 현 여당 국회의원들의 방해가 가장 극심했다.
다행히 그중에도 깨어 있는 자들이 간간이 있어 지금까지는 이렇게 버티고 있지만 이도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몰랐다.
더 이상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을 갈아치우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연구 소장도 나랏밥을 먹는 공무원일 뿐이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은 따라야 했다.
그런 와중에 발견하게 된 한 줄기 희망의 빛.
“장태산이라…….”
일주일 전 잠시 미국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기술 이전 문제로 미국 바잉사 간부를 만나야 했다.
그때 그곳에서 듣게 된 한국인의 이름.
바잉사 회장뿐만 아니라 락히트 마린사 회장을 정치인이 참여한 한 파티에서 한 방 먹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믿기 힘들었지만 한국을 건들면 박살내 버리겠다고 했다는 인물.
“날 만나줄까?”
부랴부랴 그에 대해서 수소문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 내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다.
ADD와 연관이 있었다.
방산 협력 업체 중 TS그룹 산하 기업이 들어 있었다.
그쪽 라인을 통해 협조를 구했다.
“부디 그가 애국자이기를…….”
정지용 소장은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있는 인맥을 다 동원해 부탁했지만 실제 만남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방산 사업은 생각보다 돈이 남지 않는다.
잘되면 언론을 통해 칭찬 몇 줄 정도는 들을 수 있지만 잘못하면 하루아침에 매국이 되는 험난한 길이다.
정지용 소장은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기도했다.
부디 장태산이라는 인물이 애국자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전투기 개발?
하관우 회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의문이 들었다.
나와 전투기는 별 상관이 없는 관계다.
특히나 그쪽 분야는 투자할 대상이 아니다.
트럼프 파티에서 우리나라 세금까지 빼먹으려던 바잉사와 락히트 마린사 회장을 한 방 먹이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방산 쪽은 함부로 다가갈 영역이 아니다.
그쪽도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이 엄연히 존재했다.
미국만 해도 방산 기업들이 정부를 멋대로 주물렀다.
천문학적인 판돈이 오가는 상상 초월의 영역이다.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전력은 전 국가적으로 돈을 많이 먹는 하마다.
특히 한국은 아직 휴전 중인 국가.
핵무기까지 보유한 북한을 제지하기 위해 엄청난 세금이 쏟아 부어졌다.
수십만에 달하는 군인들 유지비용과 방산 물자, 새로운 무기 공급은 국가 예산의 중심축을 차지하고 있는 지경이다.
특히 꿀단지 방산 쪽은 창군 이래로 지금껏 계속되어 온 고위 장성들과 업체의 밀월 관계로 비리가 더 심각했다.
선후배가 서로 밀어주고 챙겨주며 알뜰하게 자신들의 잇속을 차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 차례씩 털었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법이 개똥만도 못했다.
방산 비리자는 내란죄에 준하게 엄벌에 처해야 합당할 텐데 솜방망이처럼 미약하기만 했다.
군사법원도 군조직의 한 부분이다.
기업 횡령죄만도 못하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경우가 다반사.
어차피 퇴직하면 자신들도 그쪽에서 용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아 서로 눈감아주는 격이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해외 방위 사업체들의 로비로 끊이지 않게 꿀을 빨았다.
정권 핵심들은 알게 모르게 뒤로 되돌아오는 마진을 받아 챙겼다.
국회의원은 로비 자금을, 언론은 해외 연수를 빌미로 각종 혜택을 다 받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튼튼하고 공고한 카르텔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근근이 국방과학연구소만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실정이다.
애국으로 똘똘 뭉쳐 불가능을 가능의 영역으로 만들어 내는 진짜 애국자들인 셈이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이과생들의 애국을 위한 놀이터.
몇 명 되지도 않는 인원으로 대한민국 국방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과거 시대의 최무선 조상님 같은 이들이다.
“우리가 도와줄 일이 있습니까?”
일단 만나서 들어는 봐야 할 것 같다.
다른 곳도 아니라 국방과학연구소의 부탁이니 말이다.
“현 소장님이 능력자입니다. 연구소에서 수십 년 동안 혁혁한 성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요?”
“정치권과도 원만합니다. 어차피 연구가 주 분야였기에 낙하산 내리꽂힐 일이 드뭅니다.”
“돈이 남는 곳이 아니니까요.”
믿기 어렵겠지만 연구소는 진짜 연구만 한다.
연구물이 개발되고 나면 방산청으로 넘어가 그들이 열매를 따먹었다.
전형적으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구조다.
“어떻게 할까요?”
“TS 자회사와 연관 있는 분야죠?”
“방산 기업이 있습니다. 적자는 안 나지만 그렇다고 크게 이익이 창출되는 구조는 아닙니다.”
한국에 몇 개 없는 방산 업체가 TS그룹 소속이다.
외국 기업에 팔아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굳이 없애고 싶지 않았다.
튼튼한 국방은 대한민국을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하 회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개인적으로는 만나 뵈라고 하고 싶지만……. 사업 쪽으로는 아닙니다.”
“왜요?”
“소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번 DF-X 사업에 연관되어 있는 벌레들이 장난 아닙니다. 미국 유수의 방산 업체들뿐만 아니라 정치권, 퇴임한 장성들에 언론사까지……. 골치가 아픕니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하관우 회장.
“개인적으로 찬성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정지용 소장님은 애국자입니다. 제가 만난 누구보다도.”
하관우 회장이 두 눈을 반짝이며 확언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났다.
“연락하십시오.”
“네?”
“시간이 나면 오늘이라도 괜찮다고 전하십시오.”
“!!!”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