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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장. 파격 제안(2). (1,002/1,284)

1015장. 파격 제안(2).

“장태산이라고?”

“그렇습니다. 부회장님.”

“빠가야로!!!”

일본 동경에 위치한 랏데 홀딩스 본사의 부회장실.

방금 올라온 따끈한 정보를 보고 받자마자 성동국이 시원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장태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놈과의 만남은 처음부터 악연이었다.

부하 직원인 비서와 경호원들 앞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그런 모욕적인 굴욕을 당했다.

놈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 진작부터 기회를 노렸지만 하고 있는 일이 바빴다.

말하기도 싫은 동생과 권력 암투 중이다.

서로 자신의 줄을 세우느라 바빴고 없는 인맥까지 만들어 동원했다.

한국에서는 입지가 위태로웠지만 일본에서는 지지기반이 탄탄했다.

아내가 엄마처럼 유력 정치 가문의 딸인 관계로 그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

나름 일본에서 엮인 인맥도 적지 않았다.

자민당 고위 인사들과도 수시로 안부를 물을 정도는 됐다.

한국 랏데가 종업원 수나 매출 면에서 수치가 높았지만 지배주식은 일본에 설립한 법인에 있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모호한 작은 법인이지만 랏데의 심장부와 같았다.

성동국은 그곳을 노렸다.

시기적절하게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었다.

‘노망난 늙은이 때문에 이게 뭐야! 일찍 뒈질 것이지!’

그런 아버지는 재계의 황태자로만 수십 년을 군림했다.

황제가 생존해 있는 한 황태자는 권력의 이방인이나 진배없었다.

이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의 시간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시간이 다 되기 전에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몸에 좋은 것들을 수시로 복용해 온 아버지는 현역에서 물러나서도 90이 넘도록 정정했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모르나?”

“……죄송합니다.”

담당 일본 비서가 고개를 90도로 꺾었다.

윤창호 비서가 중간에 웬만한 정보들은 다 차단했다.

한국에 파견된 일본 직원들은 거의 몇 명 되지 않았다.

돈과 미래를 약속하며 매수한 자들이 몇 있었지만 성경호 회장의 주변에 배치돼 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성동국은 앉아서 당할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성격 자체는 오만하기 이를 데 없지만 경영수완은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

다만 한국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냈다는 게 문제였다.

일본말을 사용하는 한국 기업 경영자를 한국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뇌물을 쏟아부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뇌물 받을 때만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좋아라 했다.

아무리 밑밥을 뿌려 놓아도 반일 문제가 터질 때면 매번 랏데와 성동국은 약속이나 한 듯 소환됐다.

“최대한 알아보겠습니다.”

비서가 어쩔 줄 모르며 쩔쩔맸다.

최측근 인물이라 성동국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잘 알았다.

차갑고 냉정했다.

자신이 지시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바로 쳐냈다.

태생이 황태자 신분이라 누구를 배려하는 마음 자체가 없었다.

아예 그런 건 배우지도 못했다.

특히 한국 쪽 직원들에게 자비심이 더 없었다.

“됐어. 자네가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죄송합니다!”

“나가봐.”

“넵!”

비서는 식은땀을 흘리며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성동국.

“이제 남은 건…….”

성동국은 고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는 거의 연락을 안 하고 지내는 불편한 존재를 떠올렸다.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스마트폰을 들었다.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라라라라~♬.

웅장한 오페라 선율이 들려왔다.

- 이게 누구야?

상대가 의식적으로 놀라는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성동국.

“누님. 잘 지내셨습니까.”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 호호호.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우리 큰 동생이 나한테 전화를 다 하고.

전화기 너머 여인은 동생을 위해 일본어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상대는 성경호 회장의 큰딸 성미라였다.

성경호 회장의 이혼한 첫 번째 부인에게서 난 장녀였다.

이렇다 할 사랑은 못 받았지만 그룹 상장 초반에 지분 상속을 꽤 받았다.

그러다 보니 랏데 형제의 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그녀가 손을 들어주는 쪽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컸다.

“중요한 일로 뵈었으면 합니다.”

- 중요한 일? 뭐? 아버지 지금 만나는 손님?

“!!!”

‘벌써?’

성동국은 내심 깜짝 놀랐다.

자신과 같은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 누님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 놀라지 마. 나도 랏데 상속에 관심이 많은 상속권자잖아.

누님 성미라의 말에 성동국은 결심을 굳혔다.

말이 통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누님. 절 밀어주십시오! 보답은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성동국은 톡 까놓고 입장을 밝혔다.

이렇게 어영부영 보내다 다 빼앗길 수도 있다는 조급함이 그를 떠밀었다.

- 그 말은 동민이도 하던데…….

‘죽일 놈!’

성동국은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은 화를 참고 딜을 할 시간.

“지금 찾아봬도 되겠습니까?”

- 물론이지. 난 선물 보따리를 좋아해.

아예 노골적으로 선물을 요구하는 성미라.

성동국은 개의치 않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어릴 적부터 베팅에는 남다른 소질을 보였던 자신이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 그럼 어여 와. 맛있는 사케 준비해 놓을게.

“하이!”

힘차게 답하는 송동국.

그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지금 성경호 회장이 랏데를 누구에게 넘기려 하고 있는지 말이다.

***

딸? 주인?

성경호 회장의 베팅에 웃음이 났다.

아직도 과거처럼 혼맥으로 그룹을 유지하려는 구시대적 발상에 사로잡힌 어르신들이 많았다.

오정 임성철 회장을 비롯해 엘자, 대웅 회장님까지 모두 다 그런 식으로 나를 노렸다.

야훼 같은 신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NO!

처가집 재산을 탐한 대가로 노예처럼 살다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간 쓸개 다 빼줄 것 같아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다.

막상 무슨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건 피붙이다.

백년손님은 말 그대로 그저 손님일 뿐이다.

“구미 당기지 않나?”

느릿한 말투 대신 승부에 집착하는 기업가로 탈바꿈한 성경호 회장이 은밀하게 속삭였다.

1도 안 당긴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뭐, 뭐라고?”

빠르게 그에 답하자 휠체어에 앉은 채 크게 놀라는 성경호 회장.

“랏데가 자네 것이 될 수도 있어. 내가 만든 제국의 주인 말이야.”

깨달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 부처님, 알라 앞에 나타난 악마처럼 속삭이는 성경호 회장.

“자녀분들이 절 가만두겠습니까?”

“가만 안 두면? 제깟 놈들이 뭐!”

다 큰 자식들을 아직도 어린애처럼 만만하게 보고 있는 성경호 회장.

그들도 세상 살 만큼 산 능구렁이가 됐다는 걸 성경호 회장만 모르고 있는 눈치다.

“회장님. 저로 인해 랏데가 분란에 빠지는 건 싫습니다.”

정중하게 거절했다.

지그시 날 바라보던 성경호 회장이 내 확고한 결심을 읽었다.

“으음……. 그럼 우리 딸이라도 한번 만나봐. 정말 예뻐.”

성경호 회장은 끈질긴 구석이 있었다.

막내딸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했다.

아름답다는 소문은 익히 나도 들었다.

그러나.

“회장님, 저 돈 많습니다.”

“응?”

“아시지 않습니까. 회장님도 부자들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흐흐흐.”

성경호 회장이 들릴 듯 말 듯 나직한 소리로 웃었다.

“괜찮아. 꿀이 달콤하면 뭇 나비가 날아드는 법이지.”

성격이 쿨했다.

자기 딸을 넘기려 하면서도 윤리적으로 도덕적인 부분은 개의치 않았다.

“이 또한 마음만 받겠습니다.”

“……고얀 청년이군.”

성경호 회장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랏데 후계자에 대한 조언을 듣겠다고 운을 떼더니 이제는 나에게 떠넘기려는 노인의 음흉한 심보를 드러냈다.

파격적인 제안이긴 하지만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내가 여론의 집중포화 속에 놓일 건 당연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랏데그룹은 제 입맛에 맞지 않습니다.”

“입맛? 그럼 어떤 게 자네 입맛에 맞는데? 대한민국에서 랏데 말고 더 구미가 당길 만한 게 있나?”

“오정 회장님 제안도 제가 거절했다는 사실을 아시나 모르겠습니다.”

“오정? 성철이가 나 같은 제안을 했다고?”

진심으로 놀라는 성경호 회장.

“엘자그룹도 마찬가지입니다.”

“으음…….”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직간접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사업체가 여러 개 있습니다. 그들 모두 합치면 랏데를 뛰어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 더 주겠다고.”

“리스크가 큽니다.”

“무슨 리스크?”

이건 몰라서 묻는 것 같은 표정이다.

가볍게 짓고 있던 미소를 거두었다.

그리고.

“친일.”

“!!!”

단 한마디에 성경호 회장의 표정이 눈에 띄게 딱딱하게 굳었다.

“회장님이 평생 짊어졌던 짐을 저에게 넘기시면 안 됩니다.”

“……그렇군.”

“어렵게 일군 사업체라는 건 압니다. 그래서 더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랏데는 성씨 가문 후계자가 이어야 합니다.”

성씨 가문의 업으로 완성된 제국이다.

굳이 한 숟가락 더 퍼먹겠다고 달려들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는 더 시끄러울 일만 남았다.

2020년 내가 살던 시절까지 내내 우여곡절이 많았던 랏데다.

그걸 굳이 알면서 안고 갈 필요가 없었다.

“아쉽군.”

“아드님들이 잘하지 않습니까.”

“알면서 그렇게 말하는 거지?”

성경호 회장이 탐탁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욕심 많은 그에게 자식들의 능력은 썩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었다.

“믿으십시오. 그리고 제가 한 번 더 도와드리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 번?”

“조언 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싸게 후려쳤어.”

“지혜는 얻게 되면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

“지혜라…….”

내 말에 성경호 회장이 말을 곱씹었다.

어둠 속을 헤매는 이에게 촛불 하나는 어둠 전체를 물리고 얻는 생명과 같았다.

“아깝습니까?”

“그건 아니네만…….”

말은 그렇게 해도 아까울 거다.

그러나 배는 항구를 떠났다.

“앞으로 랏데는 몇 번의 위기를 더 겪게 될 겁니다.”

“사업하다 보면 당연한 일이야.”

“과연 그럴까요?”

“뭔가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군.”

다시 빙긋 웃었다.

“그럼 후계자는 내가 주고 싶은 놈에게 주어야겠군.”

그사이 성경호 회장은 마음을 정한 것 같다.

다만.

“회장님은 회장님을 믿습니까?”

“그게 무슨…….”

두 눈을 껌벅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구순의 노인.

자신의 육신이 늙고 병든 걸 몰랐다.

“회장님…….”

그를 조용히 불렀다.

“???”

의문 가득한 눈으로 여전히 날 바라보는 성경호 회장.

“후계자 문제는 확실하게 매듭지으시죠.”

“확실하게? 어떻게?”

“작성하시죠.”

“뭘 말인가?”

“유언장.”

“뭐, 뭐라고 유언장!”

화들짝 놀라는 성경호 회장.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저 변호사입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저렴한 비용으로 모시겠습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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