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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장. 약속 이행 (999/1,284)

1012장. 약속 이행

- 속보입니다! 오늘 MTS엔터테인먼트 소속 한국 대표 걸그룹 FOB가 전격 해체를 결정했습니다. 올해 1월 전속계약 기간이 끝났지만 이렇다 할 언급이 없던 소속사와 FOB는 서로의 건승을 빌며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속보 뉴스가 흘러나왔다.

각 포탈 연예란도 난리가 났다.

전성기 정점에 서 있던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의 갑작스러운 해체 선언.

당연히 팬들이 뒤집어졌다.

특히 남자 팬들은 마초 사이트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울분을 토했다.

- 포에버 FOB가 이렇게 가다니! 이게 실화냐?

⌞진심 눈물 난다. 우리 아버지 갈 때도 이렇게 슬프지 않았다.

⌞쓰레기 인정. 그렇지만 나도 슬프다.

⌞그동안 행복했다. 내 여동생들아!

⌞내 군바리시절 버티게 해준 여신들이 이렇게 떠나다니…….

⌞서련이와 주민이만 남았음. ㅠㅠ

⌞둘은 노래빨이 되잖아.

⌞리더와 센터만 남다니……. 불화설 찌라시 레알인 듯.

⌞불화설?

⌞듣보잡 빅토리 스타는 뭐하는 곳임?

⌞사촌형이 그 바닥에서 일하는데 중국 쪽 자본이라고 함.

⌞헐……. 짱개 자금으로 쪼개진 거라는 말?

⌞돈이 좋긴 좋지.

⌞근데 MTS에서 FOB 이름 사용하라고 했다던데 실화임?

⌞대표 대인배 ㅇㅈ.

확인되지 않은 여론과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소속사와 FOB는 해체 선언을 짧게 발표하고 입을 다물었다.

언론사들이 특종을 노리고 멤버들에게 접근했지만 그들도 함구했다.

하지만 그 틈에서 진실에 근접한 얘기들도 꽤 오갔다.

수십억 대 계약금을 받고 중국 쪽으로 진출하기로 한 다른 멤버들.

“오늘 내가 만나자고 한 이유는 다들 짐작하고 있을 거야.”

먼저 FOB의 리더 주민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최근 주민이 구입한 강남에 위치한 건물.

회사 측 조언을 착실하게 따라 주민은 강남 상가에 투자했다.

알짜배기 투자였다.

가장 위층은 자신의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다.

그곳으로 멤버들 모두를 불러 모았다.

“어제는 장태산 이사님과의 이별 자리였다면 오늘은 우리끼리만 얘기를 나누는 진짜 마지막 날이 될 거야.”

주민은 멤버들과 한 사람씩 눈 맞추며 말을 이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함께했던 동생들.

모두가 한 사람처럼 성격이 다 맞을 수는 없었다.

이들 중에 몇몇은 여전히 친했지만 다른 몇은 요즘 들어 서로를 보면 피할 만큼 사이가 벌어져 있었다.

멤버들 모두 성인인 만큼 저마다 생각 차이가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언니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주민과 가장 사이가 좋지 않은 미나가 끼어들었다.

왠지 목소리에 날이 섰다.

“미안해.”

“뭐?”

뜬금없이 사과로 제 말을 받자 도리어 눈이 동그랗게 커진 미나.

평소 서운한 게 많았다.

한창 잘나가던 때에 남자 문제로 그룹 활동에 지장을 줬던 주민이었다.

그 당시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주민.

“예전에 사과했어야 맞지만 부끄럽고 무안해서 말 못 했어. 그러니까 너희들이 이해해줘. 언니가 리더로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어.”

“…….”

주민의 사과에 멤버들은 달리 할 말이 없는 듯 침묵했다.

“그래서 부탁이야. 오늘 이후로 우리가 이렇게 만날 일은 없겠지만…….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하지는 말자. 다른 걸그룹들처럼 헤어진 뒤에 언론에 가십거리로 오르내리기에는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추억이 너무 소중해.”

주민의 목소리는 잠잠했지만 멤버들 모두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도 정이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무척 많았다.

혹시라도 그 사적인 내용들이 시기 질투로 인해 언론에 알려지게 되면 멤버들 모두에게 타격이 될 건 불을 보듯 빤했다.

“알겠어. 우리도 바라는 바야.”

미나가 가장 먼저 동의 의사를 밝혔다.

그녀의 엄마가 바로 해체 주동자였다.

그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새롭게 활동하는 데 있어 이미지에 큰 타격이 올 게 자명했다.

“미안해……. 주민 언니.”

막내 아정이 눈시울이 불거진 채 조용히 입을 뗐다.

그녀를 가장 많이 챙겨준 멤버가 주민이었다.

“우리 막내 왜 울어. 뚝!”

주민이 장난스럽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나 언니한테 연락해도 되지?”

“그럼. 한 번 언니 동생은 영원히 언니 동생인 거 몰라?”

“고마워……. 자주 연락할게.”

“그래. 새로운 회사 가서도 언니들 말 잘 따르고 파이팅하자. 우리는 죽기 전까지 영원한 FOB 멤버들이잖아.”

“응!”

아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대답했다.

“나도 부탁이 있어.”

그때 듣고만 있던 서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길게 말하지 않을게.”

서련은 주민과 달리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차가운 표정으로 흩어지게 된 멤버들을 바라보는 서련.

“오빠가 어제 어떤 심정으로 우리를 불렀는지 알지?”

그녀의 눈에는 전투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몰라 멤버들 모두 긴장했다.

“날 씹어도 좋아. 하지만…… 우리 회사와 태산이 오빠에 대한 이야기가 단 한 번이라도 나온다면……. 뒷일은 책임지지 못해.”

아주 남이 된 듯한 시선으로 싸늘하게 말하는 서련.

“…….”

둥지를 떠나가는 멤버들 모두 서련의 말을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었다.

평소 장난기 넘치는 서련이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켜내는 악바리 근성이 있음을 멤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모두들 잘 살길 바랄게. 그리고…… 당부하는데. 혹시 이적해 간 회사에서 무슨 문제가 생겨도 태산 오빠한테 연락하지 말아줘. 이제 다들 성인이잖아? 앞가림은 스스로 잘하기를 바랄게.”

서련의 바람을 담은 마지막 경고.

떠나는 멤버들 모두 왠지 모를 불안감에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들도 이렇게 떠나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남고 싶었지만 마음에 품고 있는 질투와 시기심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도록 했다.

그걸 알고 자식을 위하는 척하며 교묘히 이용한 부모들.

입이 두 개라도 서련의 말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못하고 사태를 이렇게 만든 자신들 또한 부모들과 공범이라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었다.

***

“서운하지 않아요?”

“뭐가 말입니까?”

“FOB 말이에요. 회장님이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특별히 신경을 많이 썼잖아요. 멤버들은 그걸 잘 모르겠지만.”

“제가 그랬나요?”

“네! 가끔 세라 언니랑 제가 다 질투 날 정도로 꼼꼼하게 챙기셨어요.”

어제 FOB와 깔끔하게 이별했다.

만남이 소중하듯 이별 또한 그러하다.

이생에서 다시 안 볼 것처럼 행동하고 뒤돌아서지만 결국은 맺어진 업으로 인해 다음 생에 또 엮일 수밖에 없다.

내가 스치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인연들이 그 증거다.

어리석은 이들은 죽음 뒤의 존재를 극구 부정하지만 무지와 두려움에서 비롯된 착각일 뿐이다.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도 소중한 것들이 차고 넘칠 만큼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빛과 어둠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과 죽음.

인연에도 역시 생과 사의 법칙이 존재한다.

난 어제 FOB 멤버들과의 인연을 아름답게 정리했다.

서로 후회가 없을 만큼 깔끔하게 그들을 보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만날 수야 있겠지만 과거의 나처럼 그들을 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를 싫다고 떠난 이들을 다시 마음 활짝 열어 받아줄 만큼 포용력이 큰 사람은 아니다.

바로 이런 게 보이지 않는 카르마의 정산 원칙이자 또 대가다.

“유 상무님. 제 얼굴이 서운해 보입니까?”

“흐음……. 그건 아닌 것 같네요. 별 감정이 없으십니다.”

“언니는 그렇게 느껴져?”

“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런 것도 같네.”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개운했다.

밀린 숙제를 이제야 완료한 것 같다.

기꺼이 떠나가는 그들을 위해 축복을 빌어줬다.

안타깝게 내 눈에 그들의 미래가 훤히 보였지만 말릴 수는 없었다.

부모와 여러 인연들이 얽혀 만들어 낸 또 다른 업의 생성이니만큼 내가 관여할 수 없었다.

관상은 미래 예측 프로그램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한 가장 수준 높은 과학이다.

안타까운 건 대부분 그 추측성 미래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완벽하게 뒤엎을 만큼 대오각성하는 인간은 세상에 극히 드물었다.

“그 문제는 제 손을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 일 하죠.”

깔끔하게 선을 그었다.

“우리 회장님……. 이럴 때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아. 정을 줄 때처럼 이별도 화끈하네.”

“그래서 떨어지면 안 돼. 우리는 회장님 무덤까지!”

“무덤까지 대동단결!”

“…….”

두 여성의 말도 안 되는 다짐에 할 말을 잃었다.

“시집 안 갈 겁니까?”

“시집을 왜 가요?”

“맞아요.”

“어제 저 산부인과에 갔잖아요.”

“도 대표, 어디 아픕니까?”

“상담받으러요.”

“그게 무슨…….”

“난자를 얼리면 2세 문제는 몇십 년 동안 해결되잖아요.”

“어머! 그러네! 거기 어디야? 나도 예약해줘.”

정말 무서운 분들이다.

농담이 아니라 내가 죽으면 저승까지 따라올 것 같은 분위기다.

“대웅조선 우발 채무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칫. 회장님 불리할 때는 항상 피해가시더라.”

도도희가 도수도 없는 붉은 안경테를 매만지며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회장님, 커피 다시 가져올까요?”

“감사합니다.”

유세라 상무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웠다.

FOB가 떠나도 난 여전히 바쁘다.

도도희의 말대로 내가 체급에 맞지 않게 과한 마음을 썼던 것 같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FOB 멤버들 모두 내가 보살펴 온 동네 동생들 같았던 이들이다.

“돌아온 1조 정도는 자체 재무로 처리 가능해요. 엑슨에서 발주한 LNG 선박 선수금과 카타르에서 들어온 중도금으로 올해까지는 막을 수 있어요.”

“내년에 돌아오는 채무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제문환 대표님과 상의해봐야겠지만 그쪽도 문제없을 것 같아요. 회장님이 특별히 신경 써 주신 관계로 미수금들이 착착 통장에 꽂히고 있어요.”

미수금 회수는 대한민국 국가 파워나 대웅이라는 이름으로는 받아내기 힘들었다.

이란을 비롯해 아랍권 쪽 중심으로 밀린 자금이 제법 됐다.

예상대로 부유식 선박이 골칫덩이였다.

그 부분을 로버트 라이언을 통해 협박 비슷하게 압력을 넣어 적당한 가격으로 받아냈다.

위험 요소들이 사라지자 대웅은 날개를 활짝 폈다.

“노조는 어떻습니까?”

“잘 감시하고 있어요. 한 번 날려주신 까닭에 강성 쪽 라인이 무너졌어요.”

“항상 강조하는 말입니다만, 정당한 사유는 참고하겠지만 책임질 수 없는 과한 요구는 반드시 척결해야 합니다. 세상에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노조 문제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단호한 조치를 요구했다.

회사 사정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요구하는 얌체들.

회사가 어려워도 임금 상승과 성과급을 요구하는 그들의 뻔뻔함은 2020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권리를 넘어 방종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그들.

내가 있는 한 어림없었다.

“한국해운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요.”

“인수 준비는 잘되고 있습니까?”

“기업 평가가 조용히 진행 중입니다.”

“중요한 인수입니다. 신경 써 주십시오.”

“네. 회장님.”

일 얘기로 본격 돌입하면 도도희 대표도 프로가 됐다.

착착 내가 원하는 자료를 제출하고 브리핑을 했다.

대화와 설명에 전혀 막힘이 없었다.

“타락한 정치인들과 이권 관계자들이 해외 해운 업체 로비를 받고 있습니다. 그 부분도 심도 있게 살펴봐 주십시오.”

“회장님은 그런 정보를 어디서 받아오세요?”

도도희가 문득 궁금한 듯 물어왔다.

“사업 비밀입니다.”

“우리 사이에 비밀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요?”

“됐어요! 알면서 시치미 떼는 회장님! 나빠요.”

“하하하. 그런 의미에서 오늘 회식?”

“안 믿어요.”

“뭘 말입니까?”

“회식 날만 잡으면 사건이 터지잖아요.”

“무슨 소립니까. 오늘은 아무 일도 없어…….”

띠리리리리리리리.

그때 기다렸다는 듯 스마트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아 봐요. 제 말이 맞을 거예요.”

확신하는 도도희.

“에이! 설마요.”

도도희의 예견을 부정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장태산입니다.”

- ……날세.

“!!!”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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