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장. 떠나는 자와 남는 자(3).
흐흐흐. 아줌마들은 눈 돌아가면 진짜 무섭다니까.”
빅토리 스타 엔터테인먼트 건물.
대표 주한성은 FOB 멤버 부모들이 벌이는 행각에 대한 실시간 보고를 받고 흐뭇한 웃음을 터트렸다.
KI아트캐스트 임주황 대표의 말을 믿고 사업을 진행하다 멈췄다.
갑작스러운 지시였다.
거의 다 끝난 일이었는데 느닷없이 스톱 명령이 하달됐다.
계약금으로 60억이나 쏟아부었는데 막상 일이 틀어지니 돈이 아까웠다.
그러나 KI그룹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거 맞지?”
한때 제비 짓을 하며 연예계 바닥에서 굴렀던 주한성은 가방끈이 꽤 짧았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학교 일진들과의 시비에 휘말려 고향을 떠나면서 일찍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잘생긴 얼굴로 호빠 선수가 되어 바람난 아줌마들을 상대로 등 처먹어가며 청년 시절을 보냈다.
외모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일이 잘 풀렸다.
또 연예인 매니저 일을 하면서 윗선 눈에 들기도 했다.
주한성이 연예계에 입문하던 때만 해도 연예계는 난장판이나 진배없었다.
상납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크지 못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뜨는 이들은 뒤에 스폰이 다 붙었다.
그걸 교묘하게 이용해 주한성은 자신의 잇속을 쏙쏙 챙겼다.
그만큼 빠르게 업계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나이 마흔에 이렇게 어엿한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가 됐다.
순진한 연예인 지망생을 작업해 결혼도 했다.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주한성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어떻게 하면 바보 같은 이들을 상대로 더 많이 벗겨 먹느냐 하는 것이다.
매 순간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고심하는 주한성의 입이 지금 찢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KI그룹 임주황이 아닌 임주혁 회장이 그를 불렀다.
감옥에 잠깐 있던 그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다 보니 여론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돈의 힘으로 언론사를 찍어 누른 임주혁.
그가 주한성을 불렀다.
그리고 잠깐 멈추라고 했던 작업을 다시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더불어 자금도 더 확보됐다.
미나와 윤나가 아닌 나머지 멤버들 다섯을 노렸다.
중국 측에서 뒤늦게 FOB의 인기가 치솟았다.
서련이가 빠진 게 아쉬웠지만 그녀는 소속사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섯이면 두 당……. 5억씩. 참 돈 벌기 쉬워요.”
커미션이 책정됐다.
전속 계약서를 작성하는 순간 주한성은 짭짤한 용돈을 챙기게 될 것이다.
“황연태 대표……. 이 바닥은 말이야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정화가 안 돼. 당신이 아무리 깨끗한 척해도 태생 자체가 아사리 판이야. 흐흐흐.”
돈과 명성을 좇아 들어온 불나방 같은 지망생들이 끊이지 않았다.
몸을 불사를 준비를 하고 뛰어든 그들에게 깨끗한 바닥에서 놀라고 요구하는 건 실례다.
누군가를 누르고 짓밟고 올라가야 정상에서 달콤한 열매를 취할 수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 바닥도 상위 1% 정도만 돈다운 돈을 쥐었다.
나머지는 아무리 반짝 빛을 보더라도 결국 들러리나 정상에 오를 재목의 발판에 불과했다.
그걸 잘 알기에 주한성은 거침없이 나쁜 짓을 감행할 수 있었다.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해 이 바닥에 들어왔다.
그리고 운 좋게도 자신의 먹잇감이 되는 이들 대부분이 돈만 따르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인간적인 우정이나 의리는 사치다.
물론 몇몇 연예인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꼿꼿하게 그런 길을 가고 있지만 말이다.
하긴 그들은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미 스타였다.
“니들은 들어오기만 해봐. 아주 제대로 굴려주겠어. 흐흐흐.”
주한성은 이를 드러내놓고 환하게 웃었다.
중국에 진출하게 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뻔했다.
한국의 20년 전 연예계 판과 같은 패턴을 보이는 중국.
그곳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혼까지 탈탈 털어 팔아야 한다.
주한성은 그들의 개인 사정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에게 소속사 연예인들은 쓰다가 고장 나면 교체해 버리면 그만인 소모품에 불과했다.
***
‘이 기생오라비 같은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싸가지없이 말하네! 내가 누군데!’
미나 엄마 노현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요즘 들어 사모님 소리만 듣고 지냈다.
강남 요지에 사업체가 몇 개나 됐다.
돈을 어찌나 펑펑 뿌려댔는지 만나는 사람 모두 다 그녀를 우러러봤다.
그런데 일개 이사 따위가 내놓고 아주머니라고 불렀다.
절대 용서가 되지 않았다.
“황 대표. 이건 막나가자는 거지?”
한때는 ‘대표님’이라 부르며 아양을 떨던 노현정의 모습은 없었다.
어차피 오늘 보고 나면 볼 일이 없는 사이였다.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
황연태도 편하게 말을 놓았다.
“당신들 너무한 거 아냐! 아주머니? 반말까지? 언론에 뿌려버리는 수가 있어!”
노현정이 황연태 대표까지 같은 태도를 보이자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노현정 씨. 그쪽이 먼저 말을 놨잖아요. 그리고 나이는 내가 더 먹은 거 같은데 아닌가?”
“이이이!!!”
노현정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대표하고 이사하고 아주 볼만 하네요.”
“세상에……. 이렇게 둘 다 속이 새카만 사람들인 줄 몰랐네.”
나머지 멤버들의 엄마들도 상황을 지켜보다 노현정에게 전염됐다.
평소에는 ‘어머니’라고 깍듯하게 호칭하던 황 대표의 변심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머님들! 툭 까놓고 말해봅시다.”
황연태가 표정 없이 입을 열었다.
“해보세요.”
김서현이 끼어들었다.
“그동안 저희 회사에서 섭섭하게 해드린 적 있습니까?”
황연태가 대놓고 물었다.
“차별하잖아요! 서련이만 밀어주고!”
“맞아요! 좋은 광고는 다 서련이에게 단독으로 줘놓고 지금 섭섭하냐고요?”
“우리 애 배우하고 싶다는데 신경이나 썼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제 와서 섭섭하지 않냐니……. 기가 막혀서.”
엄마들이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여과 없이 터트렸다.
“반대로는 생각해 본 적 없습니까?”
황연태가 냉정한 표정으로 물었다.
“반대요?”
“그게 무슨…….”
“광고주가 바봅니까. 그들은 이 바닥 갑입니다. 그런 광고주들이 서련이만 원하는데 제가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최고로 잘나가는 연기 지도자 선생님을 붙여줘도 실력이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조아가 진짜 연기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황연태가 배우를 굼꾸는 조아 엄마를 보며 추궁하듯 물었다.
“그, 그거야. 하다 보면 늘지 않겠어요? 처음부터 잘하는 배우가 어딨어요!”
“있습니다. 그리고 조아는 연기력이 절대 늘지 않습니다. 제 업계 경력을 놓고 솔직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황연태도 물러서지 않고 쏘아붙였다.
오늘 이렇게 몰려온 멤버들 엄마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명절은 당연하고, 멤버들의 부모 생일 때도 빠짐없이 선물을 챙겨 보냈다.
혹시라도 서련이만 밀어준다고 서운해할까 봐 정산 비율도 올려줬다.
그런데 이제 와서 뭘 했냐 묻는 염치없는 아줌마들.
마음 같아서는 화를 내고 쫓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함께 고생했던 멤버들의 얼굴을 봐서 참았다.
자신들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막상 그들은 모르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머. 별꼴이야…….”
조아 엄마가 열이 나는지 손바닥을 펼쳐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자신도 딸이 연기자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만 서면 발음이 자꾸 셌고 얼굴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미나 어머니. 그만하시죠. 주동하지 않아도 깔끔하게 놔드리겠습니다.”
“주동? 황 대표! 지금 말 다 했어요!”
‘내가 서두른 걸 알고 있었다는 소리네?’
입으로는 부정하며 큰소리를 쳤지만 노현정은 속으로 움찔했다.
연예계 바닥이 좁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장태산이 나섰다.
“……뭐긴 뭐에요. 깔끔하게 도장 찍고 그동안 밀린 거 정산해 달라는 거죠.”
“정산? 그 얘기는 다 끝난 거 아닙니까! 선지급해드린 금액만 해도 회사에 적잖이 손해입니다!”
황 대표가 버럭 호통을 쳤다.
“그거야 회사 계산이고, 내가 알아보니까 메이크업 비용이랑 이것저것 뺄 게 많잖아요!”
“미나 개인 스케쥴에 따라 회사에서 최대한 지원한 겁니다!”
“몰라요. 법정으로 가기 싫으면 그냥 정리해 줘요. 구질구질한 당신들과 더 이상 말 섞기 싫어요.”
노현정이 딱 잘라 말했다.
“이러시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황연태가 눈빛을 바꿔 으르렁거렸다.
“가만히 안 있으면 어떻게 할 건데요?”
노현정이 지지 않고 맞섰다.
파바밧.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날카로운 기 싸움.
“정산 말고 퇴직금으로 1억씩 드리죠.”
그때 들려오는 장태산의 말.
“장 이사님…….”
황연태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장태산을 봤다.
멤버들듸 엄마들도 장태산 이사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라봤다.
MTS 정산은 깔끔했다.
노현정이 괜히 시비를 걸고 있다는 것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퇴직금으로 1억을 내주겠다는 장태산.
“단 조건이 있습니다.”
“???”
***
“꺄아아아아! 이사님!!!”
“우와와!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바쁘신 분이 우리를 다 불러주시고~.”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 아니지?”
“보고 싶었어요! 이사님!”
“우리를 아주 잊고 있었던 건 아니죠?”
돌고래 초음파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터졌다.
강남 팰튼 호텔 연회실을 빌렸다.
“여기 예전에 이사님이 한 턱 쏠 때 왔던 곳 맞죠?”
“맞아! 그때 진짜 배 터지게 먹었는데.”
“그때가 힘들어도 좋았는데…….”
“벌써 몇 년이 흘렀네.”
어머니 동창회 때 빌렸던 장소.
배가 고픈 걸그룹을 초대하고 호텔 주방장이 직접 요리한 특식을 쐈다.
그걸 다들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다들 저녁 아직이지?”
“그럼요! 이사님 연락받고 바로 왔어요.”
“선배들하고 술 약속 있었는데 저도 캔슬했어요.”
“그런데 이사님 진짜 얼굴 안 변했어요. 혹시 뱀파이어?”
“나 오늘은 옆에 앉을 거야. 그러니까 서련이 넌 저쪽 끝에 있어.”
“싫어! 오빠 옆은 평생 내 자리야!”
“와아아! 욕심쟁이 같으니라고!”
“됐거든! 난 이렇게 살다 죽을 거야!”
과거 숙소 생활을 하며 끈끈하게 지낼 때처럼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었다.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일단 사이가 좋았다.
그거면 됐다.
“오늘 도망치는 사람 평생 시집이나 장가 못 가는 걸로!”
“오오오오! 콜!”
“으흐흐. 이사님, 우리 과거에 알던 순진한 FOB가 아니랍니다.”
“한 잔 거하게 말까요?”
“첫 잔은 무조건 원샷!”
특별히 부탁한 요리들과 갖가지 술이 탁자 위에 쌓였다.
따로 서빙을 해주는 직원은 없었다.
이별 파티에 외부인이 섞이는 건 바라지 않았다.
부모들은 내 조건을 듣고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서련이와 주민이를 제외하고 오늘부로 FOB는 MTS 소속 가수가 아니다.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었다.
처음 시작이 그랬듯이 마지막도 깔끔한 게 좋았다.
이별도 아름다워야 추억이 되는 법이다.
촤아아아앗.
귀염둥이 막내였던 선미가 맥주잔에 양주를 섞어 폭탄주를 제조했다.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건 어디서 배운 거야?”
“이거요? 우리 오빠가……. 앗!”
말을 꺼내다 말고 얼굴을 붉히는 선미.
남자친구가 있는 눈치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사생활은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좋은 걸 배웠네.”
“헤에에.”
선미가 해맑게 웃었다.
“선미 남자친구 잘나간대요. 유명한 펀드 매니저?”
“언니도 남자친구 있잖아!”
“나만 있나? 여기에서 남자친구 없는 애는 서련 언니와 주민 언니밖에 없을 걸?”
평소 말이 없던 아정이 멤버들의 비밀 같지 않은 비밀을 폭로했다.
다들 사랑이 고픈 나이이긴 했다.
흐뭇한 생각에 빙그레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
어느새 이렇게 성장해 품을 떠나려는 FOB 멤버들.
최선을 다해 그들의 성장을 도왔기에 후회는 없었다.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이제는 짐을 내려놓을 때였다.
이제 각자 운명대로 살아가야 할 시기가 온 것이기도 했다.
“다들 잔 들자.”
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약속이나 한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그동안 수고했다. 그리고…….”
울컥 심장이 뜨거워지더니 갑자기 목이 메었다.
“…….”
도리 없이 침묵이 흘렀다.
웃고 떠들었지만 오늘 이 자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모르지 않을 나이들.
“행복했다. FOB 포에버!!!”
나를 위로하기 위한 듯 힘차게 외쳐지는 멤버들의 마지막 구호.
벌컥.
목젖을 열고 쓰디쓴 폭탄주를 활활 타오르는 심장에 들이부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