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7장. 납치(4). (995/1,284)

1007장. 납치(4).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됐다. 나는 니 믿는데이.”

“감사합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강지철은 진심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단 한 번 실수했다고 그간 충성을 다 바쳐온 자신을 내쳐낸 최철혁.

진짜 배에 타게 됐다.

조직에서 전무 자리까지 오른 자신을 배에 진짜 태울 줄은 몰랐다.

배에 타는 순간 죽는 줄 알았다.

부산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지만 고기잡이 배를 타보는 건 처음이었다.

과거 악명 높은 멍텅구리 배까지는 아니었지만 새우잡이 배를 탔을 때 경험했던 지옥 그 자체였다.

물때에 맞춰 하루에 몇 번씩이나 그물을 당겨야 했다.

그 무게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났다.

끼니도 잡은 물고기들 중에 폐기 처리할 수준의 것들로만 주어졌다.

생수도 고작 하루에 정해진 몇 병이 전부였다.

샤워는 빗물에 의존했고 거센 바람이 불어도 배에서 하선할 수 없었다.

그만큼 감시가 심했다.

자신이 내로라하는 조직의 조직원이라는 걸 알면서도 선원들은 아무렇지 않게 구타했다.

첫날 개기다가 엄청 얻어 터졌다.

최철혁이 직접 관리하는 배이다 보니 배 타기 전의 지위 같은 건 전혀 소용이 없었다.

무거운 그물을 끌다 줄에 걸려 왼쪽 손가락 마디가 끊어져 나갔다.

병원 치료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닌 듯 놈들은 생살을 바늘로 꿰매고 빨간약을 발라주는 걸로 처치를 끝냈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켰다.

맞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육지에 내려서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발이 육지에 닿는 순간 사시미로 최철혁의 배를 뚫어 버리리라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잔혹하고 인정머리 없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헌신해 온 자신을 이렇게까지 패대기 칠 줄은 몰랐다.

배 위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려움보다 오기가 쌓였다.

하지만 배에서 하선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선원들 모두가 작심한 듯 자신을 감시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던 듯 눈에서 살기가 읽혔다.

자칫 잘못 걸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바다에 수장 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독하게 마음먹고 참고 인내했다.

그렇게 영혼까지 빼놓고 버티던 중에 구원의 밧줄이 내려왔다.

갑자기 스피드 보트를 타고 구성파 조직원들이 배 근처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구성파가 자신의 처지를 알고 이번 기회에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찾아온 줄로만 알았다.

강지철은 구성파와 전쟁 당시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더 이상 영역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손을 썼었다.

이제 하늘까지도 완전히 자신을 버린 줄 알았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성파 보스가 직접 자신의 손을 잡아줬다.

오히려 항구파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강지철이 필요했던 것이다.

원한이 쌓일 대로 쌓여 있던 강지철은 항구파를 박살내는 데 앞장섰다.

구성파는 그래도 의리라는 게 남아 있었지만 항구파는 그마저도 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최철혁을 믿지도 않았다.

항구파가 구성파를 박살내는 걸 보고 중소조직에 몸담고 있다 스스로 투신한 자신이었다.

아쉬운 미련도 없었다.

“강 전무. 솜씨 한번 보여 주이소. 흐흐흐.”

“오늘 한번 보입시데이.”

구성파 조직원들이 이를 드러내며 걸걸하게 웃었다.

과거 잘나가던 행동대원들은 최철혁의 오른팔 최도철이 판 함정에 걸려들어 한꺼번에 바다에 수장됐다.

그 이후 외곽으로 밀려난 구성파였지만 그간 이를 갈며 힘을 회복하고 기회를 노려왔다.

항구파와는 뭔가 달랐다.

이들에게서는 끈끈한 정이 느껴졌다.

“기다려 보십시오.”

강지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입던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고 항구파 핵심 아지트로 사용 중인 냉동 창고 앞에 섰다.

안에서 문이 잠겼다.

비바람에 CCTV는 먹통이 됐다.

아주 튼튼했기에 밖에서는 절대 열 수 없는 구조였다.

탕탕!

강지철이 주먹으로 문을 쳤다.

“누굽니꺼?”

안에서 들려오는 심드렁한 말투.

폭풍우가 불어 닥친 늦은 밤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 찾아올 간 큰 인간은 많지 않았다.

“나 강지철 전무다.”

“네? 지철 전무님예?”

“문 열어.”

“아니 행님은 지금 배에…….”

“이 새끼가 너 나 무시해? 회장님 명령으로 지금 방금 복귀했어! 문 열라고!”

조직의 넘버3에 오른 강지철이 버럭 화를 냈다.

“알겠심더…….”

문지기 조직원이 안에서 쫄았다.

딸깍.

그르르르르르르.

내부에서 걸어놓은 걸쇠가 치워지고 육중한 문이 열렸다.

“전무님 어인 일입니꺼?”

문을 열며 조직원이 물었다.

강지철이 배를 탔다는 소문은 이미 몇 바퀴는 돈 상태였다.

그런 그가 야밤에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약간의 경계심을 품었다.

“다른 애들은?”

“회장님 부르셔서 별장에 갔음더.”

“안에 몇 명이나 있어?”

“20명 정도 쉬고 있습니더.”

“그래……. 잘됐네.”

“네?”

푸욱!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지철이 허리춤에서 날 선 짧은 사시미를 뽑아 조직원의 배를 빠르게 찔렀다.

“컥!”

단말마 비명을 토하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지철을 쳐다보는 조직원.

“너한테 원한은 없다. 다음 생에는 만나지 말자.”

“배, 배신…….”

칼 빵을 맞고 배를 붙들며 더듬더듬 무슨 말을 내뱉는 조직원.

처벅처벅.

강지철이 문을 완전히 열자 그의 뒤로 30여 명의 구성파 조직원들이 도열했다.

손에는 하나같이 사시미 한 대씩을 들었다.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놈들이 항구파의 핵심들이었다.

중간이 무너지면 올챙이들은 알아서 무릎을 꿇을 것.

“수고했다.”

“아닙니다. 형님.”

“됐다마.”

툭툭 강지철의 어깨를 몇 차례 두들기는 구성파 보스 방만식.

“가……. 담가라.”

“넵!”

타다다다다다닥.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성파 조직원들이 우르르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10년 전 당했던 치욕을 갚을 기회.

“뭐야 씨발!”

“으아아아! 습격이다!”

우당탕탕.

“뒈져! 새끼들아!”

“사, 살려줘!!!”

“크아아아아아아아!”

욕설이 난무하고 기물이 파손되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하지만 모든 소음은 돌풍을 동반한 비바람에 묻혔다.

“그런데 최철혁이는…….”

강지철이 구성파 방만식에게 물었다.

가장 중요한 항구파 보스와 최측근인 행동대원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에 대한 공격 명령이 따로 없었다.

“기다린데이.”

“네?”

기다린다는 말과 함께 차분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방만식.

그의 알 수 없는 행동에 강지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철혁과 똘마니들이 살아 있으면 오늘 습격은 말짱 꽝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태평해 보이는 방만식.

‘최철혁이를 잡을 저승사자라고 했지.’

방만식은 그의 말대로 기다렸다.

최철혁을 처리할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접수하라는 전화.

누군가는 그 말을 미친 소리로 들었겠지만 방만식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의 말을 믿었다.

방만식이 요즘 믿고 의지하고 있는 용한 무당이 어제 분명 그랬다.

‘내일 귀인이 전화를 할 텐데 그 말을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

***

“그노마 참 씨그럽데이.”

최철혁은 빗소리를 뚫고 들어오는 문짝 부서지는 소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정해진 승리였다.

어떤 놈들을 데리고 왔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키운 칼잡이들은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다.

과거 그 이름이 쟁쟁하던 부산의 구성파도 몰락시켰다.

그 이후로도 거침없이 사람들을 담가 왔다.

지금 밖에 있는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몇 명씩 사람을 담가본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진짜 조폭이라 함은 목을 따 본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뉜다.

아무리 덩치가 좋고 문신이 화려해도 사람을 죽여 본 자의 기세를 따라오지 못했다.

“우리 오빠…… 어떻게 하실 거예요…….”

서련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덜덜 떨며 물었다.

자신을 구하겠다고 장태산이 현장에 온 게 분명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너무 두려웠다.

장태산의 실력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진짜 깡패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만큼 서련의 마음은 불안했다.

“가시나. 참 궁금한 것도 많네.”

최철혁은 여전히 비릿한 시선으로 서련을 훑었다.

최철혁도 서련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안다.

TV를 켤 때마다 여기저기 나오고 광고에서도 수시로 나왔다.

실물이 더 예쁘고 몸매도 실감나게 좋았다.

세컨드로 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건이었다.

“니는 조신하게 이 오빠 말만 듣거래이. 내 니를 부자로 만들어 줄기고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오빠’라 칭하는 최철혁.

서련은 자신의 몸을 훑는 징그러운 최철혁의 시선에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태산 오빠……. 무사하세요.’

공포에 떠는 중에도 장태산의 무탈함만을 바랐다.

탕! 타다다다당!

그때 느닷없이 총소리가 들렸다.

“머꼬?”

최철혁이 처음으로 당황해 인상을 썼다.

사시미로 제압이 안 될 때를 대비해 다음 파트로 나서는 놈들이 총잡이들이었다.

총을 지급하긴 했지만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뒤를 봐주는 경찰들도 총질에는 눈을 감아주지 못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의 총기 사건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행히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라 총소리가 빠르게 묻혔다.

그 대신.

“크아아아아악!”

“컥!”

별장 안까지 들려오는 격한 비명.

소리는 별장 내실과 점점 가까워졌다.

“문딩이들……. 단디하랬더만 얼라 하나를 못 잡아서…….”

최철혁은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조직원들의 교육을 다시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놈을 본보기로 삼아 손가락을 자르고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듯했다.

“…….”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비명이 끊겼다.

콰아아아앙! 콰르르르릉!

거친 천둥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앗.

연신 별장의 대형 창문을 때리는 거센 빗줄기.

“덕복아! 다 끝났노?”

밖에서 대기 중인 최측근 행동대원의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

하지만 아무 대꾸가 없다.

“망태야! 득만아!”

최철혁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그러나 평소라면 부리나케 대답했을 그들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무신…….”

심기가 불편해진 최철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능이 말해주는 경계심이 위험 상황임을 알려왔다.

그리고.

타다닷.

번개같이 몸을 움직여 서련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아악!”

서련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목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끼이이이익.

그때 별장 내실 현관문이 조용히 열렸다.

“누꼬!!!”

예민해진 최철혁이 소리를 질렀다.

저벅.

안으로 들어서는 발 하나.

젖은 검은 운동화에 흙이 잔뜩 묻었다.

그리고 쓱 안으로 들어서는 키 큰 한 남자.

최철혁과 서련이 동시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니 뭐꼬!”

“오빠!!!”

회귀의 전설 2부

1008장. 악인은 지옥으로.

“전쟁? 지금 구성파가 항구파를 쳤다고?”

“그런 거 같심더.”

“미친놈들! 하필 이렇게 태풍 부는 날 쌈질이야!”

“어찌 할까예?”

“상황은?”

“그게…… 잘 모르겠심더.”

“뭐라고? 몰라?”

부산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은 야근 중 찾아온 강력계 계장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다시 물었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부산지방경찰청까지 내려와 근무하고 있다.

몇 달만 더 견디면 승진이 확정됐다.

그런 중요한 시점에 터진 강력 사건.

일반 조폭들도 아니고 대한민국 성인들 상당수가 알고 있는 부산 조폭들 간의 전쟁이었다.

살인 사건이라도 발생하게 되면 경찰에 바로 불똥이 튈 것이다.

여기에 개코 저리 가라 할 만한 기자들까지 달라붙으면 예정된 승진은 물 건너갈 수도 있었다.

더구나 형사과 과장이기에 이런 사건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워낙 은밀하게 습격한 것 같아예.”

사투리가 심한 토박이 계장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보고를 이어갔다.

“공격한 건 맞아?”

“정보원들이 놀라가코 연락이 왔슴더. 항구파 본거지인 냉동창고가 털렸다고예.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무것도 없었음니더.”

“그래?”

형사과장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어차피 개새끼들 몇 마리 뒤진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항구파와 구성파 모두 사회적 해충이라 여기는 형사과장이었다.

더 이상의 소문만 나지 않는다면 자기들끼리 사시미 쑤시고 바다에 묻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부산 사람들도 이런 일들에는 무덤덤했다.

조폭 실종 신고 접수는 웬만해서는 다들 놀라지도 않았다.

실종 후 신변 확보가 되거나 시체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깊은 바다 한복판까지 가서 시체를 쇠사슬로 감고 밑에 돌을 달아 던져 버리면 결코 다시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염산을 사용해 아예 녹여 버리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렇게 돼 버리면 DNA도 검출되지 않았다.

“오 계장 생각은 어떤 거야?”

“네?”

눈치 없는 오 계장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형사과장.

“과학수사대라도 보내줘? 아니면 언론에 알려?”

“그게…….”

오 계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과장이 말하는 바를 눈치챘다.

상황이 완벽하게 드러나기 전까지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무언의 압박.

‘마누라가 이번에 꼭 승진하라고 했는데.’

오 계장은 형사로서 갖고 있는 양심으로는 사건을 샅샅이 캐고 싶었다.

하지만 접수된 정보를 토대로 냉동창고를 찾아갔을 땐 아무것도 없었다.

오 계장도 익히 얼굴을 알고 있던 구성파 조직원들이 도리어 반갑게 반겼다.

이미 바닥은 깔끔하게 치워지고 주변은 정리된 상태였다.

그사이 거센 태풍으로 비가 들어찼다고 해도 믿을 만큼 바닥은 물이 흥건했다.

진한 락스 냄새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말끔하게 청소까지 끝낸 뒤라 비린내도 전혀 없었다.

항구파 조직원들에 대해서 질문하자 낯익은 구성파 중간 보스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뗐다.

그 정도면 이미 작업이 끝났다는 의미였다.

10년 전 부산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두 조직 간의 전쟁이 다시 시작됐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칫 피바다가 될 수 있음더.”

“피바다?”

“항구파 보스 최철혁이가 가만두지 않을 것임니더.”

“으음…….”

최철혁이라는 말에 과장이 짧은 신음을 흘렸다.

다른 조폭이라면 모를까 최철혁이 엮이면 문제가 되고도 남았다.

그 악독한 놈은 보란 듯이 경찰을 회유하고 또 협박했다.

“방만식 위치는?”

구성파 보스에 대해 물었다.

“잘 모르겠심더.”

“오 계장, 지금 나랑 장난해? 이것도 몰라 저것도 몰라! 그런데 무슨 전쟁이란 말이야!”

“죄송합니더.”

“하아. 내가 답답해서 원.”

과장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삐리리리릿.

그때 과장의 직통 전화가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야?’

낮과 달리 야간에 형사과장을 직접 찾을 만한 전화는 평소에도 별로 없었다.

“형사과 과장입니다.”

- 나 청장일세.

“넵! 청장님!”

- 아직 퇴근 안 했지?

“오늘 민생치안 100일 작전으로 인해 야간 근무 중입니다.”

- 그럼 간단히 얘기하지.

“하명하십시오.”

- 오늘 혹시 조폭들 간에 뭔 일 터져도……. 웬만하면 움직이지 마.

청장의 은밀한 지시였다.

‘작은 사건이 아니다!’

부산지방경찰청장은 차기 경찰청장이 될 수 있는 후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지방경찰청장에게 누군가 압력을 넣은 게 분명했다.

이 정도 라인이라면 이번 사건은 고위층과 얽혀 있다는 소리였다.

그 파장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 애들도 입단속 잘 시키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충성!”

청장의 간단한 지시 사항을 과장은 철석같이 알아들었다.

“청장님입니까?”

오 계장이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다 물어왔다.

“청장님 지시야. 오늘 이대로 조용하면 웬만한 건 다 묻어.”

“……알겠습니다.”

오 계장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조폭들이라면 자다가도 경기가 날 정도로 치가 떨렸다.

지난 20년 동안 그렇게 때려잡아도 바퀴벌레보다 더한 생존력으로 살아남은 조폭들.

이제는 반쯤 포기했다.

일반 시민들에게 해를 가하지만 않는다면 자기들끼리 사시미로 회를 떠먹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고약한 쓰레기를 치운다고 해도 그 자리에 어느새 다른 쓰레기가 잔뜩 채워지게 마련.

이제는 쉬고 싶은 나이.

무엇보다 올해는 꼭 승진해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오 계장은 눈치껏 윗선과 타협했다.

“그래 가서 쉬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충성!”

힘차게 경례를 마친 오 계장.

‘설마 최철혁이가 당하지는 않았겠지?’

지난 10년간 부산 바닥을 관리해 온 최철혁은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베테랑 형사들도 겁을 먹을 만큼 그의 손속은 거침이 없고 잔혹했다.

야쿠자와 알게 모르게 연관되어 부산을 휘어잡은 무법자.

‘귀신은 뭐 하는지 몰라. 그 깡패 새끼 안 잡아가고…….’

오 계장은 뒤돌아서며 쓴 입맛을 다셨다.

지금 최철혁의 눈앞에 저승사자가 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로.

***

‘태산 오빠…….’

두 눈으로 장태산을 직접 확인하자 서련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목에 칼날이 닿아 있음에도 공포보다 기쁨이 앞섰다.

위기에 처한 자신을 위해 오늘 같은 폭풍을 뚫고 깡패 소굴로 찾아온 장태산.

휘이이이이이잉.

열린 문 사이로 바람이 거칠게 들이쳤다.

가을 태풍이 몰아온 바람은 유난히 거칠었다.

지금 서련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대변하는 듯했다.

“내려놔.”

장태산은 최철혁을 무심히 바라보며 권고했다.

“뭐라꼬? 치우라고? 이 시키 미칬나. 크크크.”

최철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비웃음을 날렸다.

어떻게 장장했던 부하들을 꺾고 내실까지 들어왔는지 궁금했지만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이런 예기치 못한 위기는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 겪은 경험이 있었다.

‘이 가시나를 놓치면 죽는다!’

최철혁은 장태산의 실물을 처음 봤지만 분명한 위기감 느꼈다.

자신과 같은 종자였다.

사람 목숨 거두는 것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강한 눈빛을 갖고 있었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손에 한두 번 피를 묻힌 솜씨가 아님이 분명했다.

밖을 지키고 있던 부하들의 숨소리 한 자락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다 저놈 손에 죽어나갔다는 증거였다.

“최철혁이.”

장태산이 최철혁의 이름을 불렀다.

“와!”

왼손으로 단단히 서련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목에 칼을 댄 채 최철혁이 대답했다.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니 시다바리가. 크크크.”

최철혁은 참으로 오랜만에 심장이 끓어오르는 흥분을 느꼈다.

팽팽하게 날 선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에 맛보고 있었다.

10년 전 그때가 떠올랐다.

구성파와 얽혀 수십 명이 죽어나가던 날.

직접 손에 피를 묻혀 가면서 지금의 역사를 쟁취했던 최철혁.

무심히 장태산의 심장을 노려봤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사시미를 깊숙이 찔러 넣고 싶었다.

“새끼 많이도 죽였네.”

“???”

“뭘 모르는 척해. 네놈 주변에 억울하다고 맴도는 영혼들만 수십 명이다.”

“니 박수가?”

최철혁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생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나쳐 왔던 모든 삶 자체가 지옥이었다.

그래서 더 냉혹하게 두 손에 피를 묻혀 왔다.

저벅.

장태산이 걸음을 옮기며 다가왔다.

“더 오면 니 깔치 디진다!”

최철혁은 겁 없이 행동하는 장태산의 행동에 바로 악을 썼다.

저런 놈들 대부분은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목숨을 제 목숨처럼 아꼈다.

지금 손에 잡힌 서련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이런 약한 인간의 감정 고리를 이용해 쉽게 쉽게 욕망을 채우며 이 자리까지 왔다.

최철혁은 인간에 대한 동정이나 공감이 1도 없었다.

“구광필도 너처럼 굴다 지옥에 갔다.”

“뭐라꼬? 구광필이?”

최철혁도 몇 번 만난 적 있었던 강남하나회 전 보스.

자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었다.

그런 구광필의 죽음을 장태산이 언급했다.

그것도 마치 자신의 손에 죽은 것처럼 말했다.

저벅저벅.

장태산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라꼬!”

최철혁은 장태산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가오는 장태산의 눈동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파르르르.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날카롭게 버려진 칼이 서련의 목을 살짝 파고들었다.

주르르륵.

칼날을 타고 흐르는 핏물.

“음…….”

목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서련은 이를 악물고 두 눈을 감았다.

‘차라리 죽자! 그러면 오빠가 자유로울 거야.’

이 악마 같은 깡패 두목이 자신을 살려둘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소리를 질렀다가는 장태산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런 마음을 먹자 거칠게 뛰던 심장 두근거림이 조용해졌다.

도리어 깨달음을 얻은 성자처럼 평안이 찾아왔다.

“스톱.”

장태산이 손을 치켜들며 한마디를 외쳤다.

그 순간.

“!!!”

최철혁은 크게 당황했다.

장태산의 그 한 마디에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강력한 최면술이라도 걸린 듯 두 팔을 비롯해 몸의 어느 곳도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새끼 뭐……꼬!’

두려움에 이어 꼬리를 물고 파고드는 공포.

“서련아. 한숨 자고 있어.”

“???”

서련은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장태산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오, 오빠…….”

더 이상 칼이 목을 파고들지 않았다.

스윽 팔을 뻗는 장태산.

우두둑.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최철혁의 양손이 꺾였다.

이어 자신의 머리카락도 더 이상 당기지 않음을 느꼈다.

장태산이 조심스럽게 서련을 당겨 품에 안았다.

“이게 지금…….”

서련은 장태산의 이끌림에 몸을 맡긴 채 뒷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찾아온 깊은 수마에 정신을 잃었다.

장태산이 최철혁의 손에서 사시미를 빼 제 손에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굳은 채 움직임이 없는 최철혁의 이마에 사시미를 가져다 댔다.

‘안 돼! 멈춰!!!’

온몸이 굳어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는 최철혁.

쿡!

사시미의 섬뜩한 칼끝이 이마에 닿는 걸 느꼈다.

그리고 천천히 피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감촉.

몸이 굳은 상태에서도 온전히 느껴지는 칼끝의 예리함과 공포 그리고 고통은 최철혁의 감각에 생생하게 전해졌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마.”

장태산이 준엄한 사형 집행자 같은 표정으로 최철혁의 눈을 보며 속삭였다.

그리고.

“악마는 지옥으로.”

짧게 내뱉는 한 마디.

푸욱!

그동안 무수히 다른 이들의 피로 목을 축였던 최철혁의 사시미.

오늘에서야 진정한 주인의 피를 맛보고 있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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