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장. 납치(3).
“좌우지간 우리 형님 화끈하시다니까. 크크.”
스타투르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실.
소속사 대표 배우 최수혁이 다리를 꼬아 올리며 비웃음을 날렸다.
“흐흐. 우리 회장님 화끈한 건 대한민국 탑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잘나가는 걸 그룹 센터 서련이를 납치하다니……. 정말 용잡니다. 하하하하.”
최수혁은 내심 속이 다 시원했다.
문효진 앞에서 자신을 엿 먹였던 장태산과 끈끈하게 엮여 있는 FOB의 센터 서련을 납치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스타투르 엔터테인먼트사 대표도 사실 본업은 조직 폭력배였다.
스타투르는 항구파의 사업 확장과 맞물려 여러 경로를 통한 세금 탈세를 목적으로 쓸 만한 중소 업체를 겁박해 강제로 인수한 곳이었다.
이후 인맥과 적극적인 접대로 단숨에 회사 몸집을 키웠다.
최수혁의 대중적 인기도 한몫했다.
항구파 보스 최철혁과 달리 조카 최수혁은 마스크와 이미지에서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최철혁은 조카인 최수혁을 전면에 내세워 적극적으로 연예 지망생들을 포섭했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기본 투자금을 뜯어내다 나중에는 스폰을 붙여 팔아먹는 수법을 썼다.
뜻대로 되지 않는 연예인들은 뒷소문을 잡아내 협박으로 계약을 맺었다.
말도 안 되는 비율로 이익금을 배당했지만 어느 누구도 따지지 못했다.
강남하나회가 사라진 뒤에 항구파는 더 잔인하게 대한민국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암암리에 야쿠자 쪽 자금도 흘러들어왔다.
중국 조직들도 은근슬쩍 발을 들였다.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하다 보니 세는 하루가 다르게 확장돼 갔다.
주변에 포진하는 사업체가 다양해질수록 자금 세탁도 쉬워졌다.
돈이 되는 게 눈에 보이자 최철혁은 자신이 믿는 조직원을 허수아비 대표로 심었다.
그가 바로 지금의 차용표 대표였다.
“내가 그래서 회장님 존경하잖아. 깡과 맨주먹으로 부산 다 집어삼키고 이제 서울도 곧 접수하실 테고 말이야.”
“사촌형님 태몽이 기가 막히지 않았습니까. 큰어머니가 하늘에서 시커먼 용을 받아서 태어난 분이 우리 형님입니다.”
최수혁은 깡패 두목이면서 업체 대표인 사촌형을 한껏 치켜세웠다.
어린 시절에는 다른 친척들 사이에서 깡패라고 손가락질 당했던 최철혁.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최철혁을 면전에 두고 쉽게 말하지 못했다.
집안 행사 때마다 보란 듯이 거액의 돈을 투척했다.
게다가 자질구레한 사업체들은 알아서 식구들에게 나눠줬다.
이제는 누구도 찍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가 됐다.
그중에서도 최수혁이 가장 큰 특혜를 받았다.
나이 차이가 좀 나긴 했지만 최수혁은 어린 시절부터 최철혁을 친형처럼 따랐다.
묘한 끌림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 덕분에 오늘 같은 자리에 올라 스타로서의 명성을 누릴 수 있었다.
괜찮은 작품들은 전부 최수혁이 사촌형을 통해 직접 받아냈다.
영화계에서 내로라하는 갑질 전문 감독들도 대형 조직폭력배 앞에서는 도리 없이 무릎을 꿇었다.
“우리도 이제 작업 들어가야지. 수혁이 너 진척은 있어?”
“제가 누굽니까. 1000만 배우 최수혁입니다. 그깟 걸 그룹 애들 포섭하는 건 일도 아니죠.”
“그래서 끝났어?”
“곧…… FOB 무너질 겁니다.”
“진짜?”
“부모들 욕심 장난 아닌 거 모르십니까? 서련이만 밀어준다고 다들 시기 질투가 꼭지까지 찼습니다.”
“멍청한 것들이지. 제 자식들 모자란 건 생각지도 않고 쯧쯧.”
“걔들 두 명이면 되죠?”
“맞아. 일본에서 좋다더라.”
“며칠 내로 도장 찍으러 올 겁니다.”
“황연태 그 새끼 얼굴 아주 볼만하겠네.”
“MTS 요즘 잘나가는데 그럴까요?”
“첫정이라는 게 있어. 나도 이 바닥에서 굴러먹지만 내 손으로 키운 애들은 뭔가 달라. 자식 같다고나 할까?”
“에이, 그건 아니죠. 대표님하고 애인 사이라면 모를까.”
“그게 그거지. 흐흐흐. 둘 다 가족이잖아.”
“제가 그래서 용표 형님 사랑한다니까.”
“고맙다. 우리 대표 배우님.”
“그건 그렇고 서련이 확실히 보내버리죠.”
“준비 거의 다 끝냈다. 형님이 시간 맞춰 작업하면 기자들 움직일 거야. 서련이 스폰이 조직 폭력배라고.”
“서련이 그년 도도한 콧대 부러지는 꼴 상상하니 가슴이…….”
쾅! 쾅!
그때 대표실 문을 누군가 발로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차용표 대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
직원들 대다수가 퇴근하고 경호원 겸 매니저로 불리는 조직원들만 몇 명 남아 있었다.
“차용표 대표 안에 있지?”
예상밖에 나긋나긋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뭡니까?”
“어떤 X년이 시비야!”
가끔 소속사 여자 연예인들 중에 늦은 시간 술에 취해 차용표를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대부분 인생이 억울하다며 술의 힘을 빌려 욕을 퍼붓고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게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차용표는 그들을 용서치 않았다.
폭력을 행사해 결국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오늘도 그런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차용표가 대표실 문을 열었다.
최수혁과 긴히 할 말이 있어 잠궜던 문.
스르륵.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문밖에는 상당한 미모의 여자가 웃으며 서 있었다.
그 뒤로 정장 차림의 남자들과 다소 험상궂은 얼굴을 한 이들도 함께 보였다.
“당신 뭐야! 죽고 싶어!”
차용표가 가타부타 버럭 큰소리를 쳤다.
스윽.
그때 차용표 앞으로 내밀어지는 몇 장의 서류.
“1973년 5월 5일생 스타투르 대표 차용표. 당신을 사기 및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간 및 강제추행죄, 조직폭력 구성 및 폭력죄로 긴급 체포한다. 돈 많으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닥치고 싶으면 아가리 다물어도 된다. 이해됐지.”
여자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차게 나왔다.
“이게 무슨…….”
“아! 내 소개가 늦었네. 중앙지검 형사부 부부장 구서현 검사야.”
씨익 웃는 미녀 검사.
차용표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이런 야밤에 시행한 긴급 체포라면 그간의 범죄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는 것.
‘시발! 갑자기 이게 뭐야!’
분명 그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경호를 서고 있는 조직원들뿐만 아니라 스타투르와 연관 있는 검사나 형사들도 한마디 언질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도 이 일을 모르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눈깔 굴리지 마. 너 잡으려고 긴급하게 쳐들어왔으니까.”
구서현이 입가에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
“다,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차용표가 이를 악물며 구서현을 노려봤다.
“왜? 너희 보스 최철혁이가 너 빼내주고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
순간 차용표는 깜짝 놀랐다.
분명하게 항구파 보스를 알고 있음에도 전혀 겁 없이 나대는 여검사.
‘그러고 보니…… 낯이 익은데…… 이 계집…… 통영 그 검사!’
항구파와 악연이 깊은 여검사의 이름이 퍼뜩 떠올랐다.
“한 가지 더 알려줄까?”
구서현이 사람 좋은 얼굴로 표정을 바꾸며 생긋 웃었다.
“너희 조직 오늘 밤. X 됐어! 씨발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에서 걸쭉하게 터져 나오는 욕설.
“체포해!!!”
“넵!”
뒤에 대기하고 있던 검찰 수사관들이 앞으로 나섰다.
“압수수색도 철저히!”
구서현의 지휘는 칼 같았다.
그런 구서현의 시선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파에서 엉거주춤 일어나고 있는 최수혁을 향했다.
“최수혁 씨, 우리 구면인 거 알죠?”
최수혁을 향해 활짝 웃으며 친절한 어투로 말을 건네는 구서현.
“저는 일이 있어서 그만…….”
최수혁은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왜 이 사달이 났는지 한시바삐 사촌형에게 확인해야 했다.
“가긴 어딜 가요.”
“네?”
“최수혁. 너님도 체포 대상이야. 씹새야!”
“제……가 왜요!”
최수혁은 느닷없이 불똥이 자신에게 튀자 강하게 반발했다.
“너 약 빨았잖아 새끼야!”
“헛!”
“뭣들 합니까. 이 새끼도 엮어요.”
“넵! 검사님!”
몇몇 수사관들이 최수혁에게 다가왔다.
“오, 오지 마! 나 최수혁이야! 우리 팬들이 가만있을 것 같아?”
최수혁이 겁에 질려 눈을 동그랗게 치뜨며 소리쳤다.
“팬? 미친 새끼야. 뽕쟁이를 어떤 팬들이 좋아해. 그리고 네 스마트폰 털면 재미난 게 더 있을 것 같은데…… 아니야?”
사악한 마녀처럼 웃는 구서현.
최수혁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파랗게 변해 있었다.
***
콰르르르르릉! 쿵!
쏴아아아아아아아앗.
벼락이 치고 천둥이 울리는 밤.
태풍이 몰려오는 밤, 억수 비까지 더해 휘몰아쳤다.
촤아아아아아아앗.
별장 주변으로 서 있던 나무들이 돌풍과 함께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미친 듯 휘청거렸다.
“씨발 날씨 X 같네.”
“마. 이런 날에는 쐬주에 꼼장어 씹어야카는데.”
“그러게 말입니더.”
최철혁이 거주하는 부산 구곡산 자락 아래에 자리한 별장.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해운대의 배산으로 인근에서는 유명했다.
요즘 들어 돈 많은 부산 쪽과 경남 쪽 유지들의 별장이 하나둘 들어섰다.
그중에서도 바다가 한눈에 훤히 보이고 주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치면 항구파 최철혁의 별장이 최고였다.
핵심 조직원 수십 명이 우비를 착용한 채 사방을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가슴에는 사시미를 품었다.
구성파 조직원들과 전쟁을 치를 때의 수준이다.
느긋한 말과 달리 모두들 보스의 명령을 받은 터라 신경을 곧추세웠다.
오늘 다른 파트에서 서련을 납치한 걸 알고 있었다.
누군가 서련을 구하러 올 거라는 소문이 쫙 돌았다.
“대갈빡이 미치지 않고서야 오겠습니까?”
“가끔 미친 쌔리들 있다 아이가.”
“흐흐흐. 사시미 오늘 피에 좀 담가 보는 겁니까?”
“피 보기 좋은 밤이래이.”
머릿수를 믿고 조직원들은 이미 승리를 점쳤다.
처벅처벅.
그때 정문 쪽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내리치는 빗발을 온몸으로 받으며 가까이 다가오는 상대.
차도 없이 산길을 걸어온 모양이었다.
모자가 달린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누구야!”
정문을 담당하는 조직원이 큰소리로 외쳤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보이는 상대의 실루엣이 섬뜩하고 기분 나빴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놀랍게도 몸이 전혀 젖지 않았다.
마치 유령을 보는 것 같은 기분.
스윽.
조직원이 가슴팍에서 사시미를 꺼냈다.
그 순간.
뻐어억!
채 사시미를 다 뽑기도 전에 무언가 날아와 조직원의 머리통에 구멍을 냈다.
“습격이다!!!”
“죽여!”
그게 신호탄이 됐다.
기다리고 있던 상대가 나타난 걸 알고 사시미를 든 조직원들이 우르르 정문 쪽으로 몰려왔다.
촤아아앗.
거추장스러운 우비를 찢어 벗어던졌다.
조직원들의 흉포한 눈길이 빗속에서 번들거렸다.
저벅저벅.
그럼에도 상대 남자의 발걸음은 거침없이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고.
몸을 가볍게 띄워 단단한 철문을 두 발로 걷어찼다.
콰아아아아앙!
폭우에 섞여 철문이 뜯어져 나갔다.
콰장차차차차차창.
놀랍게도 몇 사람이 동시에 밀어야 열릴 만큼 단단한 철문이 발길질 한 번에 가볍게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헛!”
“미……친!”
말도 안 되는 괴력에 조직원들이 입을 떡 벌리고 멈춰 섰다.
저벅저벅저벅.
검정 운동화를 신은 남자는 빗물을 밟고 안으로 들어섰다.
“…….”
홀로 조직원들 앞을 유유히 비켜 갔지만 항구파 조직원들 누구도 그의 앞을 막아서지 못했다.
자신들이 방금 목격한 장면도 이해되지 못한 상태.
스윽.
폭우를 뚫고 온 습격자는 느릿느릿한 손짓으로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최철혁……. 안에 있지?”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