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5장. 납치(2). (993/1,284)

1005장. 납치(2).

후루룩 후루룩.

굵은 짬뽕 면발이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우우우.”

큰 대접을 들어 올린 채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국물을 들이켜는 중년 남자.

작지만 단단한 체구를 가진 남자의 배가 점점 빵빵해져갔다.

이마에 그어진 흉터가 짬뽕을 먹을 때마다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우적우적.

젓가락에 면발을 감아 빠르게 흡입하고 단무지를 들어 반만 베어 먹고 다시 그릇에 뱉었다.

그리고는 면발과 뱉어놓은 단무지를 또다시 젓가락으로 건져 흡입했다.

“쩝쩝.”

먹어치우는 폼으로 보아 교양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해물이 듬뿍 들어간 매칼한 짬뽕을 순식간에 게걸스레 해치웠다.

“밥.”

“여기 있습니다.”

옆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 슈트 차림의 사내가 곧장 밥을 가져와 건넸다.

수걱수걱.

남자는 차갑게 식은 찬밥을 짬뽕 국물에 말았다.

“쩝쩝쩝.”

보는 이가 정신없을 정도로 먹어댔다. 짬뽕 국물에 말은 밥을 빠르게 입속에 밀어 넣는 남자.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쉬지 않고 입안에 짬뽕 국물과 밥을 쑤셔 넣었다.

“꺼어어억.”

그리고 순식간에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짬뽕 그릇을 비웠다.

“물 드십시오.”

옆에 있던 남자가 이번에는 물을 건넸다.

“카르르르르르르.”

입안에 생수를 넣고 거칠게 헹구는 남자.

헹군 물을 뱉지 않고 그대로 삼켰다.

“오늘 맛있었데이.”

“특별히 주문했습니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이면 짬뽕 한 사발 땡겨야 입맛이 산다카이.”

남자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서련이는 아직 배 안 고픈갑네. 짜짱 싫노?”

“보, 보내주세요.”

남자를 보는 서련의 몸이 떨렸다. 겨우 입을 떼어내 대답했다.

몇 시간 전 닥친 악몽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지금은 팀 휴식기였다.

다들 재충전 중이었지만 서련은 혼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쉬는 동안 짬을 내 한 영화의 조연으로 출연했다.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운이 좋게도 1000만을 찍었다.

신스틸러로 주목받으며 여주인공보다 사람들의 입에 더 많이 오르내렸다.

FOB 맴버들 중에도 쓸 만한 광고가 들어오는 건 서련이밖에 없었다.

최근 찍었던 스마트폰 광고도 히트 쳤다.

솔로로 낸 여름 음반도 음원 시장에서 대박을 냈다.

그냥 가볍게 작업했던 음반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효자 상품이 됐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 여름 축제장에 불려 다니게 됐다.

다른 멤버들이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갖는 동안에도 서련은 혼이 빠질 만큼 정신없이 일이 몰렸다.

이번 부산 행사도 그 일의 연장선이었다.

시청에서 주관하는 지역 행사였다.

아침에 대전에서 행사 한 건을 소화하고 저녁 무렵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 출발했다.

그러다 도중에 가벼운 교통사고가 났다.

고속도로로 빠져나가기 위해 외진 곳으로 방향을 돌리던 찰나였다.

피로 때문에 차에서 한참 졸고 있던 서련.

갑자기 운전자가 바뀌었다.

차에 타고 있던 매니저와 코디, 메이크업 담당자와 함께 납치됐다.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차량 특성상 선팅이 진했고 방음이 잘된 차량이다 보니 비명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조폭이 분명한 이들이 뒷자리에 앉아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말만 나직이 내뱉었다.

그걸로 모든 상황이 끝나 버렸다.

매니저는 눈을 한 대 맞아 새파랗게 멍이 든 채 수갑이 채워졌다.

평소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던 경호원들도 맥없이 당했다.

그리고 지금 걸뱅이 같은 남자와 마주했다.

“니 내가 누군지 알제?”

“모, 몰라요.”

서련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니 내 명함 안 줐나?”

“주었는데……. 찢었습니다.”

“찢어? 이 가시나가?”

“네.”

“살갱이처럼 생긴 것마냥 앙칼진 맛이 있다아이가.”

남자는 흐뭇한 시선으로 서련을 쳐다봤다.

작고 예리한 눈동자에 피어나는 끈적한 욕망.

“나 최철혁이다.”

“…….”

“서울 가시나라 날 잘 모르나본데. 여기 부산이 전부 내 나와바리다.”

항구파 보스 최철혁이 어깨를 쫙 펴며 오만하게 말했다.

“보내주세요…….”

서련이는 연신 바들바들 떨면서 보내달라는 말만 겨우 내뱉었다.

과거 여자 선배들이 지방 행사를 가면 이런 수난을 종종 당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말 그대로 과거에나 일어났던 일이라고 치부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깡패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합법적으로 기획사까지 차려 자신들의 탐욕을 해소하고 욕심을 채웠다.

이런 식의 막무가내 납치 행각은 벌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와. 내가 잡아 묵을까 봐 겁 나나. 크크크.”

최철혁이 능글능글한 눈빛을 띠며 비릿하게 웃었다.

“걱정 마라. 시간은 많다 아이가.”

“흐으으윽.”

서련은 어쩔 수 없이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탑을 달리는 여자 아이돌 중 한 명인 자신을 이렇게 납치하고도 큰소리치는 부산 깡패가 무서웠다.

전혀 생각지 못한 사고였다.

“가시나. 우는 것도 애간장을 녹인다카이.”

최철혁은 눈물을 보이는 서련을 보며 파괴 본능이 솟구쳤다.

잡아 놓은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 즐기는 맹수 같았다.

파르르르르.

서련은 연신 몸을 떨었다.

같이 있던 매니저와 스텝들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서련이 용기를 내서 물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깡패 두목이었다.

자신을 좋아해서 이런 일을 저지른 스토커도 아닌 것 같았다.

“니 장태산 알제?”

“네? 태, 태산 오빠요.”

“그래. 장태산이.”

“태산 오빠가 왜요?”

“가가, 날 담근다고 했다 아이가.”

“!!!”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데 영 안 온다 아이가. 내 쫀심도 상하고 기분도 나빠서 방법을 찾다 니를 납치했다.”

“그게 무슨…….”

“니 장태산이 깔치 아이가?”

최철혁이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펴서 흔들었다.

“오래 됐다 그러던데 그 노마가 힘이 좋나?”

서련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장태산을 좋아하지만 일정 이상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관계에는 진전이 없었다.

멋모르던 어린 시절 만났던 그때의 장태산이 아니었다.

서련도 장태산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을 들어 웬만한 건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자수성가해 대한민국을 뒤흔든다는 말도 들었다.

소속된 회사도 장태산이 주인이라는 걸 얼마 전 알았다.

내로라하는 몇몇 기업들도 장태산이 뒤에 있다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다.

그런 얘기를 들은 후 사실 서련은 기가 많이 죽었다.

사법 시험을 뒷바라지하겠다고 큰소리를 친 적도 있지만 그 모든 게 다 망상에 불과했다.

장태산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남자였다.

“아니에요. 우리 그런 사이.”

서련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깡패 두목 말처럼 그런 사이였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장태산 주변에는 자신 못지않은 미녀들이 수두룩했다.

같은 멤버들 중에도 그를 좋아하는 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다들 포기한 상태였다.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불가능한 관계였다.

“그래? 그래도 내는 상관없다.”

“???”

“그노마 깔치가 아니면…… 니 내 꺼 해라.”

“!!!”

“내 보기보다 돈도 많고 아직 힘도 쓸 만하다 아이가. 내 좋다는 가시나들 억수로 많다.”

최철혁이 누런 이를 드러내놓고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주변에 여자가 많은 건 사실이었다.

부산을 떠나 대한민국 내에서 그가 마음만 먹으면 취하지 못할 여자는 거의 없었다.

늘 끓어오르는 피에 취해 살기와 욕망의 흐름에 충실했다.

서울 진출과 연예 기획사를 설립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바로 눈앞에 요즘 들어 꽤 마음이 가던 여자가 떡하니 앉아 있다.

제안을 거절할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이 정도 분위기면 대부분 알아서 기기 마련.

목숨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했다.

“싫어요!”

하지만 서련은 단박에 거절했다.

“뭐라코? 싫어?”

최철혁이 어이없는 시선으로 되물었다.

“죽어도 싫어요!”

서련이 비장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혀를 깨물고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해도 저런 깡패의 여자가 되는 건 싫었다.

“이게 회장님 앞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옆에 있던 깡패가 눈을 부라리며 손을 치켜들었다.

“마. 됐다. 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네?”

“그 노마가 올끼다. 그때…… 사시미에 확 배때아지가 뚫리는 거 보면 지도 생각이 바끼질끼다.”

‘이놈은 악마야!’

서련이 입술을 깨물었다.

장태산은 서련이 납치됐다는 걸 알게 되면 구하기 위해 달려올 게 분명했다.

빤한 상황 전개에 걱정이 됐다.

사람 죽이는 일쯤 우습게 여기는 깡패들의 소굴.

이곳에 왔다가는 다칠 게 분명했다. 장태산을 생각하니 피가 바짝바짝 말랐다.

‘오빠……. 이제 나 어떡해요.’

주르르륵.

서련의 커다란 두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갑작스러운 납치에 혼돈 상태가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 계속 떠오르는 사람은 아빠도 아니고 장태산뿐이었다.

***

“위치는?”

“부산 구곡산 자락 아래에 있는 별장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항구파 최철혁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보스.”

납치 소식을 들었다.

요즘 들어 연락이 뜸했던 서련이 부산에서 납치됐다.

부산 행사에 갔다가 정체 모를 놈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보고였다.

함께 따라갔던 씨큐리티 경호원들 네 명이 다쳤다.

서련의 차량을 경호하다 당했다고 했다.

그들 모두 다 실력이 출중한 직원들이었지만 쪽수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몇 군데 부러진 씨큐리티 직원들의 입을 통해 최철혁이 빤한 경고를 해왔다.

만약 경찰에 신고하면 서련이를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그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항구파 놈들은 대한민국 조폭들 중에서도 잔인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놈들이었다.

강남 하나회 구광필도 한 수 접을 정도의 독종이 최철혁이다.

얼마 전 나 역시 놈에게 먼저 경고를 날린 바 있다.

부산에서 기다리라고 있으라고.

그런데 내 말을 무시하고 먼저 허튼수작을 부린 최철혁.

“서련이와 다른 사람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직까지는 무사한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시간을 오래 끌 수 없습니다. 최철혁이가 오늘 밤 12시까지 찾아오지 않으면…….”

나를 끌어들이기 위한 속셈이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쪽을 치고 들어왔다.

대한민국 걸그룹 탑을 달리고 있는 서련이를 납치한 대범한 미친놈.

그런 짓은 최철혁밖에 할 수 없었다.

가족까지는 아니지만 서련이는 나와 인연이 깊었다.

장주시에서부터 인연이 있었던 당돌한 그녀.

요즘 들어 연락은 뜸했지만 항상 여동생처럼 챙기고 생각했다.

한때 나를 향해 폭주했던 서련의 무한 애정.

걸그룹 탑이 되고 만인의 연인이 되어도 어느 시점까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 서련이가 나로 인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게 됐다.

투두두둑.

부산은 비가 한창 쏟아졌다.

휘이이이이이잉.

때늦은 태풍이 불어 닥쳐서 바람도 거셌다.

자가용 비행기도 겨우 착륙했다.

“지시한 일은 깔끔히 처리하십시오.”

“구성파가 움직일 겁니다.”

“오늘 밤…… 비바람이 거셀 것 같습니다.”

중대한 사건이라 한진웅 대표도 동행했다.

더불어 씨큐리티 정예 요원들도 함께 움직였다.

가만히 있던 나를 건드린 항구파.

오늘…… 그 더러운 이름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영영 사라지게 될 것이다.

번쩍!

새파란 번개가 지상을 향해 한 차례 내리꽂혔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그 뒤에 이어진 강력한 낙뢰 소리.

쓰레기를 청소하기에 오늘은 최고의 길일이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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