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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장. 교육 보내다. (987/1,284)

998장. 교육 보내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국 시절에는 그래도 간간이 봤는데 말입니다.”

“그동안 정치 상황이 녹록치 않지 않았습니까. 제국이 갑작스럽게 멸망한 뒤부터는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래도 다들 건강해 보입니다.”

“그 문제만 아니라면 발뻗고 자도 되겠지만 신경에 영 거슬립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흐음.”

중년을 훌쩍 넘긴 일곱 명의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들 하나같이 복장이 화려했다.

미스릴 실과 금실이 적절히 섞인 수가 놓인 화려한 옷을 걸쳤다.

모인 장소도 다른 곳과는 격조가 달랐다.

고풍스럽고 운치가 넘쳤지만 그렇다고 낙후된 공간은 아니었다.

살짝 둘러봐도 주기적으로 돈을 발라온 듯한 대형 회의실.

수정과 미스릴로 만든 마법 샹들리에 불빛이 공간을 매혹적인 빛으로 물들였다.

꽤 값이 나가 보이는 무구들이 벽에 장식처럼 걸려 있다.

바닥에 깔린 마수 가죽 또한 최상급.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거대한 부로 도배된 회의실에 일곱 명의 남자들이 거만한 자세로 서로를 마주봤다.

이들은 현 대륙의 실권자들.

국왕을 대신하거나 왕국과 맞먹는 공작 가문의 주인들이다.

그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중앙 상좌에는 이곳의 주인인 테론 공작이 앉았다.

공작령은 왕국과 대 영주들 영지 중앙에 위치했다.

이동 마법진을 이용해 모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정치 성향도 중립적이다.

보통 왕성을 비롯해 중요 영지성에는 공간 왜곡 마법진이 상시로 가동됐다.

마법력이 강한 왕국이나 귀족들의 이동 마법진 공격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들 모두가 서로를 믿지 못했다.

권력이라는 것은 자식이 아버지의 목에, 아버지가 자식의 등에 칼을 꽂도록 만드는 괴물이었다.

“그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테론 공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특이하게 대대로 대지 정령의 축복을 받았다.

역대 가주들 모두 대지의 정령과 계약을 맺어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점에서는 테론도 마찬가지다.

상급 대지의 정령을 소환하는 그는 기사이기도 했다.

허풍만 떠는 귀족이 아니라 무력이 담보되는 진짜 귀족이다.

대지의 정령사답게 진중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지켜봤다.

“다들 아시다시피 팰트론 왕국의 멸망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언제 그 검날이 우리에게 향할지 모릅니다.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황녀는…….”

“샤를 경. 황녀가 아닙니다. 근본도 모르는 계집에게 황녀라니요.”

“맞습니다. 제국은 망했고 황족도 씨가 말랐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계집을 황녀라 호칭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스스로 황제라 칭한 계집입니다. 이건 우리 모두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계집 옆에 있는 베커라는 놈이 마족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사악한 괴물과 손을 잡은 계집이 황녀일 리 없습니다.”

황녀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순간 곳곳에서 항의성 발언이 터졌다.

“제가 잠시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샤를이 바로 모두에게 사과했다.

왕을 대신해 전권을 가지고 회의에 참석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조금의 경거망동도 있을 수 없었다.

제국 시절과 달리 왕국들은 사방에서 각자 주인이 됐다.

그런 만큼 수시로 작은 충돌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영지가 안정세로 돌아선 왕국과 고위 귀족들은 모든 면에서 성장을 꿈꿨다.

왕에 그치지 않고 황제가 되고자 하는 마음에 단단히 칼을 갈았다.

한창 열기가 강해지던 순간에 느닷없이 나타난 황녀 아린.

처음에는 미약한 바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점점 거세져서 세력을 늘리더니 이제는 왕국까지 삼켰다.

아직 대륙에는 곳곳에 순수한 기사와 귀족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기다렸다는 듯 황녀에게 몰려갔다.

일반 백성들은 물론 영지민들도 동요했다.

지금의 형편은 제국 시절보다 생활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제국 통치 시절에는 험난한 일이라고 해 봐야 몬스터와 싸우는 게 다였다.

영지 세금도 황령에 의해 일정 수준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제국 멸망 후 왕들과 귀족들은 기준 없이 제멋대로 백성들을 착취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 틈틈이 수시로 전쟁은 벌어졌고 몬스터들의 공격에도 보호받지 못했다.

백성들의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던 혼란의 때에 나타난 적통 황녀.

이제 그 이름이 대륙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 중요한 건 황녀 호칭 문제가 아닙니다. 논의하고자 하는 진짜 문제를 빨리 매듭지어야 합니다.”

테론 공작이 소란을 일시에 중단시켰다.

중립을 표방했지만 그도 야심 넘치는 사람이었다.

강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영지는 사라질 것이다.

자식들에게 물려 주기 위해서라도 온 힘을 다 쏟아야만 했다.

결코 황녀를 따를 수는 없었다.

지정학적 위치로 보면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도 있었다.

아직은 황녀 측 보다는 기존 왕들이 대세를 보이고 있다.

“국왕폐하께서 이리 전하라 하셨습니다.”

루베사 왕국의 오르트 공작이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왕국 연합을 결성해 단숨에 악의 씨앗을 뿌리 뽑아야 한다 하셨습니다.”

“…….”

기다렸던 말이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결성된 적 없는 왕국 연합군.

“팰트론 왕국에 병사들을 보내자는 말입니까?”

“일반 병사들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

“팰트론 왕국과 인접한 하데인과 자론 공작가에 각 왕국과 가문에서 선발한 기사들과 마법사를 파견하도록 하면 됩니다. 병사들이야 넘치지 않습니까.”

“두 개의 전선을 만들자는 말입니까?”

“다들 알다시피 베커 장이라는 마족이 문제입니다. 놈은 매우 강합니다. 팰트론 국왕이 누굽니까? 그런 위인을 단숨에 박살냈습니다.”

오르트 공작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만에 대륙에 진정한 공포로 자리 잡은 베커 장.

마족이라는 소문이 더해지면서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도 두려워하는 자들이 생겼을 정도였다.

“세부적으로 전술을 논의해야겠지만 놈 말고는 계집 곁에는 이렇다 할 실력자가 없습니다.”

“엘프들이 돕는다고 했습니다.”

“전쟁에 나서지는 않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확언하십니까?”

“베커가 소유하고 있는 절대반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드래곤과의 약속이 있었을 테니 엘프들은 황녀의 경호에만 신경 쓸 겁니다. 과거 그들이 세상을 향해 약조한 말들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멸족할 때까지 인간들의 전쟁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는 신들에 대한 맹약 말입니다.”

“아!!!”

“맞아요. 그랬지요.”

“그렇다면…….”

오르트 공작 말에 모두 눈동자를 반짝였다.

베커 장만 끌어낼 수 있다면 전쟁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

“황녀가 같이 동행하지 않을까요?”

“상관없습니다. 왕성만 빼앗아도 남는 장사입니다. 과거와 달리 모두 경각심을 품고 있습니다. 본거지를 빼앗긴 황녀와 베커 장은 황야를 떠돌다 죽게 될 겁니다. 흐흐흐.”

오르트 공작은 승리를 확신했다.

“좋은 계책입니다.”

테론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왕국 연합군을 결성하도록 하죠. 길게 끌 것도 없이 오늘 담판을 지읍시다.”

“좋습니다. 어차피 다들 전권을 위임받아 오시지 않았겠습니까.”

“세부 사항이야 나중에 다시 협의하면 되고 오늘은 큰 틀을 잡도록 하죠.”

“찬성입니다!”

“우리 왕국도 동참합니다.”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진행된 왕국 연합군 결성.

그만큼 위기감이 증폭되어 있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야 할 제국의 부활.

온 힘을 다해 막아내야 했다.

만약 제국의 깃발이 다시 바람에 휘날리게 되면 여기 있는 이들 상당수가 반역죄로 처형당해 사라질 게 자명했다.

***

마? 그게 뭐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입을 닫는 아린.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몽롱하게 풀렸다.

“아린?”

“네???”

내 부름에 마치 잠에서 깬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누구야?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그 성녀 말이야.”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성녀라니요?

어? 지금 이거 뭐지?

아린이 갑자기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행동한다.

오히려 나에게 반문을 한다.

- 와! 마성녀. 너 지금 약 뿌렸냐?

귀신이 마성녀 알파닥을 추궁했다.

나도 강하게 의심이 든다.

아린을 이렇게 만들 능력자는 지금 이곳에…….

- 감춰진 비밀은 들춰내봐야 저 황녀만 괴로워. 너희들도 굳이 알려고 하지 마.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뜨거운 맛을 맛보게 될 테니까.

알파닥이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를 쫙 깔았다.

영 기분이 찝찝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아 더 불안하다.

- 그런다고 나와 형님이 쫄 것 같아? 마성녀 네 협박은 인간들 5대 허언과 똑같아.

- 5대 허언! 그게 뭔데!

- 나 오늘부터 살 뺀다. 나 오늘부터 금주한다. 나 오늘부터 돈 아껴 쓸 거다. 나 오늘부터 연애한다. 나 오늘 여자친구랑 헤어진다! 방금 네 말도 6대 허언에 들어가. 나 무서운 사람이다. 그러니까 밤길 조심해라!!!

- 뭐라고! 이게 어디서 말 같지도 않는 비유질이야!

- 흐흐흐. 그럼 당장 보여줘. 비싼 밥 먹고 비싼 똥 싸는 소리 하지 말고.

저기……. 장립아. 너무 막 나간다.

내가 다 움찔했다.

상황을 정리하면 결론은 ‘알파닥은 보이지 않는 신적 존재’다.

내가 이곳에 왔을 때부터 나를 관찰하고 살펴온 알파닥.

가끔 말다툼을 하지만 그녀가 나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쯤은 안다.

괜히 건드려봐야 골치 아픈 건 내 쪽일 게 빤하다.

- 형님! 쫄지 마세요. 밤길 한두 번 걸으세요? 이 동생 믿으십시오. 쌍라이트 같은 이 눈으로 닥쳐올 위험을 싹 걸러버리겠습니다!

진짜, 저 입을 찢어 버리고 싶다.

능력도 없으면서 큰소리다.

갑자기 떠오르는 미래 속어가 떠올랐다.

슬세권의 고수.

말 그대로 슬리퍼 신고 돌아다닐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큰소리치는 놈이 딱 지금의 장립이다.

큰소리는 본인이 다 치면서 꼭 나를 물고 늘어진다.

- 흐흐흐흐.

알파닥이 화를 꾹꾹 눌러 담은 듯한 웃음을 흘렸다.

온몸의 털이 오싹하게 솟았다.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 마성녀. 분위기 그만 잡아라. 나도 그 정도 능력은 되거든!

- 이계 쓰레기. 정말 고맙다. 으드득.

그때 갑자기 귀에 섬뜩하게 울리는 알파닥의 목소리.

뭐, 뭐가 고마워?

이를 가는 소리가 살벌하다.

- XX을 섬기는 XX 공포로 불리는 성녀의 적개심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 미래의 당신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합니다.

아니! 저기요! 제가 안 그랬어요!

저 자식이 그랬다고요!

- 안 쫄아! 안 들려! 안 무서워! 

장립은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 채 마성녀를 놀리는 재미에 열을 올렸다.

보이지 않는 마성녀 주변을 맴돌며 약을 슬슬 올렸다.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상황.

단단히 정신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었다.

형님! 잠깐 나타나 보세요!

비장의 한 수를 빼들었다.

- 형님요? 여기 아는 형님 계세요?

잡귀가 귀를 솔깃하며 흥미를 보였다.

신들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대화다 보니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아린은 눈도 껌뻑이지 않고 그대로 굳어 있는 상태.

그리고 그 순간.

파앗!

빛이 터졌다.

그리고.

- 동생, 나 불렀어?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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