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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장. 선택(4). (983/1,284)

994장. 선택(4).

“감히ⵈⵈ 내 아들을!!!”

남자는 몹시 분노했다.

겁도 없이 제 손바닥 안에 있는 대한민국 땅에서 자신의 귀한 아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심혈을 기울여 키워온 경호원들도 중요한 순간이 되자 전혀 쓸모 없었다.

장태산의 능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

경찰들과 시민들의 시선을 피해 유유히 사라졌다.

그것도 손대균과 그의 딸도 함께 사라졌다.

“크으ⵈⵈ.”

침대 위에 누운 아들은 영혼이 만신창이가 된 채 비명을 토했다.

각성된 상태에서 건물 최상층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불사급까지는 아니었지만 각성된 몸은 강철과 같아 쉽사리 부서지지 않는다.

다만 떨어진 장소가 가히 좋지 않았다.

아들과 상극인 절터로 추락한 것이 문제였다.

오랫동안 그 터를 수호해 온 신장들의 매질과 빗자루질에 아들의 영혼이 상했다.

119 구급대원들이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다면 그곳의 신장들에게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몸은 멀쩡했다.

하지만 영혼에 가해진 충격 때문에 아들은 연신 신음했다.

“장태산ⵈⵈ. 내가 네놈을. 으드득.”

남자는 곱씹고 곱씹으며 이를 갈았다.

각성의 기회가 온 것은 좋았지만 아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다.

어떻게든 장태산을 죽여 버리지 않으면 분노에 타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띠리리리.

남자의 구형 휴대폰이 울렸다.

“!!!”

남자가 깜짝 놀랐다.

아주 가끔씩 오는 국제 전화.

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모시모시.”

자연스럽게 일본어가 튀어나왔다.

- 아프더냐?

상대는 다짜고짜 안위를 물었다.

쇳소리를 가는 듯한 소름 돋는 음성.

“아닙니다ⵈⵈ.”

남자는 황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 아들이 각성했더구나.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 홍복이다.

“하해와 같은 은총 덕분입니다.”

남자는 한 마디 한 마디 절도 있게 답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과 같은 위치에 앉은 자신이었지만 지금 상대하는 이에게는 언제나 고개를 숙여야 하는 하찮은 존재이기도 했다.

결코 넘을 수 없는 영혼의 주인.

- 사자들을 보냈다.

“네?”

- 네 아들은 그분들께 선택됐다. 보내라.

“!!!”

그 순간, 남자는 벅찬 마음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자신도 나름 선택받은 자였지만 그분들께는 아니었다.

열도에서 태어난 자식들만이 지금처럼 그분들께 직접 선택을 받았다.

성골의 징표와 같았다.

반면 남자는 진골 정도에 해당하는 신분이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순간에 아들이 그분의 선택을 받았다.

- 싫더냐?

“아닙니다! 이 감동과 은혜를 어찌해야 할지ⵈⵈ.”

남자는 서서히 더 격동에 빠졌다.

영원히 받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광영이었다.

그토록 충성했지만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은혜.

하지만 아들은 놀랍게도 각성과 동시에 그분들의 은혜와 선택을 받았다.

- 너희 일족을 어여삐 여기시는 그분의 축복이다.

“영혼을 다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 곧 멈췄던 전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때를 위하여 힘을 아껴라. 그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가 될 것이다. 오직 그분만을 섬기는 그 시기가 빛처럼 임할지니라.

그토록 고대했던 꿈같은 속삭임.

“믿습니다! 갈렸던 두 땅이 합쳐지면 만년 왕국의 완성될 것이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희망에 심하게 떨었다.

그토록 염원했던 통일 전쟁이 멀지 않았다.

감춰져 왔던 신들의 전쟁.

- 네 아들은 선택됐다. 과거 오래전 이 땅을 지배하셨던 분들의 진정한 자녀가 되었다. 경배하라! 너와 네 아들은 새로운 왕국에서 빛나는 권좌에 앉을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다.

“경배하옵니다! 찬양하옵니다!!!”

뚝.

통화가 거짓말처럼 끝났다.

“크크크.”

통화하는 내내 격동에 차 있던 남자가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나? 장태산 고맙다. 네 덕분에 내 아들이 선택됐다. 그리고 기다려라ⵈⵈ. 멀지 않은 시간에 아들의 발톱이 네놈의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니!”

희번덕거리는 남자의 눈동자가 기괴했다.

분노에 차 있던 눈동자는 어느새 붉은 욕망으로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휘이이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끝없는 들판 위를 휩쓸고 달려와 부딪쳤다.

가을이 시작되는 한국과는 날씨가 달랐다.

한낮의 태양이 모습을 감추자 어느새 영하권까지 내려온 기온.

파라라랏.

성벽 위에 서서 들녘을 바라보는 내내 바람이 옷자락이 펄럭였다.

“시원해ⵈⵈ.”

손유리가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긴 머리칼이 바람을 타고 함께 춤을 췄다.

깊은 잠에서 깬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낯선 환경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괜찮아요?”

“뭐가?”

“허락도 없이ⵈⵈ 데려와서 말입니다.”

“좋아. 진심으로.”

손유리의 목소리는 위기를 겪은 사람 같지 않게 담백했다.

“다행입니다.”

“당분간 나 여기서 살면 돼?”

“네.”

“마음껏 그림이나 그리면 되겠네.”

손유리의 긍정 마인드가 빛을 발했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기존 인터넷 아이디는 전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잔인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알렸다.

제법 큰 사고였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뉴스에 나오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올렸던 영상들도 여러 기관을 동원해 그때그때 삭제됐다.

명예훼손은 물론 기타 등등의 법률적 사유를 들이대 처리했다.

모르긴 몰라도 국정원까지 동원된 게 확실했다.

씨큐리티 직원들도 곧바로 훈방 조치됐다.

오광재는 119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독한 놈이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았다.

그래도 팔다리 정도는 너덜거리며 베드에 실려갔다.

사람들은 못 봤지만 나는 그가 봉은사를 지키던 신장들의 빗자루에 진탕 얻어터지는 꼴을 똑똑히 보았다.

얻어맞으며 오광재의 영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실로 웃픈 장면이었지만 웃지 않았다.

손대균은 미래에 자신이 다른 모습을 보이면 기꺼이 죽이라 했다.

눈빛으로 보아 농담이 아니었다.

손유리를 자가용 비행기에 태웠다.

투명화 마법으로 이동했기에 그녀의 동선은 누구도 파악할 수 없었다.

사하 공화국 내에 있는 나의 영지로 피신했다.

손유리는 눈앞의 펼쳐진 풍경을 마음에 들어 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어서 간략하게 대답해 줬다.

당분간 한국에 갈 수 없게 됐으며 가능하다면 가족들을 잊고 살라고 요구했다.

큰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손유리.

그사이 나름 단단해진 게 느껴졌다.

성숙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 열매를 맺었다.

아픔과 고난 속에서 인간은 성장해 가는 게 맞았다.

“제 그림 보셨죠?”

“대단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학교 다닐 때부터 느낀 건데 태산 씨 진짜 천재야. 그림에 관해서는 신화적이야.”

성에 내가 완성해 놓은 그림들이 꽤 많았다.

심심할 때마다 여러 그림 신들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다.

“심심하지 않을 겁니다. 이곳에서 자연을 눈에 담아 화폭에 옮기다 보면 저와 비슷한 대가가 될 겁니다.”

“시집도 못 가고 늙어 죽을 것 같은데?”

“걱정되세요?”

“나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야?”

손유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봤다.

목소리는 가볍지만 눈빛이 촉촉하게 젖었다.

웃고 있지만 마음은 여러 상처로 너덜너널해진 게 보였다.

이제 가족과도 만날 수 없게 된 손유리.

친구도 없는 손유리에게 남은 건 캔버스와 붓, 물감, 그리고 나밖에 없었다.

처지가 안쓰러웠다.

풍경이 아름다운 성이지만 무척 외로울 것이다.

성 외곽에는 훈련과 경호를 담당하는 씨큐리티 직원들이 있긴 하지만 내성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청소해 주는 사하 공화국 마을 여자 몇 명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내가 자주 찾아올 수도 없었다.

이것저것 할 일이 태산이었다.

손유리 홀로 시간과 싸우며 성장해야 할 시기.

스윽.

손유리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저항하지 않고 살포시 안겨오는 손유리.

“흐읍ⵈⵈ.”

아니나 다를까 품에 안기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는 그녀.

“이제 괜찮아요.”

첫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했지만 손유리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그날 밤.

토닥토닥 그녀 어깨를 엄마 손길처럼 다독여줬다.

“태산 씨ⵈⵈ. 나 이제.”

강한 것처럼 보였지만 역시 연약한 여자였다.

세상에서 가장 듬직했던 아빠 손대균도 이제는 손유리에게 보호막이 될 수 없었다.

낯선 환경에서 살게 된 손유리.

“내가 있잖아요. 힘내요.”

“흐으윽ⵈⵈ. 흑.”

소리 내어 울지 않으려 애썼지만 어떻게 벅차오르는 슬픔을 막을 수 있겠는가.

“울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가끔 슬픈 일이다.

아이처럼 다친 뒤에도 소리 내어 울 수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육체보다 영혼이 상처를 더 많이 입게 된다.

심장을 쑤시는 거친 말들을 수시로 듣고 견뎌야 한다.

애써 웃으며 버티지만 보이지 않게 생채기는 남는 법이다.

손유리도 마찬가지다.

나로 인해 프랑스로 유학길에 올랐다 이제는 러시아에서 살게 됐다.

고국으로의 귀국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며 언제까지든 잊혀진 채로 살아야 했다.

“흡ⵈⵈ 흑.”

품에 안겨 울면서도 애써 눈물을 참아보려 하는 손유리.

가문의 업보로 인해 받게 될 그녀의 모든 고통에 지금 이 순간이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 이거 그림이 좋다고 말해야 하나ⵈⵈ.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귀신이 옆에서 초를 쳤다.

이럴 때는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주는 게 좋은 걸 절대 몰랐다.

- 좌우지간 정말 형님은 진짜 부럽습니다.

아직도 미인 타령이다.

그래서 귀신을 위해 준비했다.

기다려라. 흐흐흐.

- 뭘 말입니까? 혹시ⵈⵈ.

귀 얇은 귀신이 관심을 보였다.

확실히 기대해도 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될 터이니.

- 오오오! 역시 형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 남아 임 회장님과 장씨 집안 핏줄과 시간을 보내라고 했더니 기어코 따라나서겠다고 우기던 거머리 같은 장립.

녀석에게 선물할 미래의 순간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태산 씨ⵈⵈ.”

그때 품에 안겨 울던 손유리가 날 올려다봤다.

“네. 선배.”

“ⵈⵈ나 추워.”

“???”

품에 안겨 있던 손유리가 갑자기 춥단다.

사락.

그러더니 순식간에 손유리의 두 팔이 나의 허리를 감았다.

“!!!”

갑자기 후끈 기운이 치솟았다.

지금 손유리는 안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안정을 위해서는ⵈⵈ. 용기 있는 선택이 필요했다.

번쩍 손유리를 안아올렸다.

두 팔을 자연스럽게 내 목에 두르는 그녀.

눈을 감고 있는 그녀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 지금 이건ⵈⵈ 그린.

귀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 흐흐. 그게 제 마음대로 됩니까.

저급하게 음흉한 웃음을 흘리는 귀신.

그런데 그거 모르지?

- 뭘 말입니까?

와이파이 끊는 것처럼ⵈⵈ. 카르마 포인트 사용하면 너도 끊을 수 있다!

- 아니 그건 반칙이죠! 형님!! 형ⵈⵈ.

지지지지지직.

순식간에 시끄러운 지방 방송이 차단됐다.

저벅저벅.

그리고 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지쳐 위로가 필요한 공주님을 품에 가뿐히 안고ⵈⵈ.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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