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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장. 선택(3). (982/1,284)

993장. 선택(3).

‘왜?’

손유리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부호로 가득 찼다.

지금 보고 듣는 모든 게 비상식적인 것들뿐이다.

할아버지가 이미 오래 전 자신의 반려로 정해 두었던 약혼자는 괴물이 됐다.

변태 사이코 수준을 넘어 기괴한 내용의 만화에나 나올법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장태산의 모습도 믿기지 않았다.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모습으로 고층 사무실 창문을 깨고 실내로 진입했다.

그리고 큰 힘 들이지 않고 경호원들의 팔다리를 못쓰게 만들어 버렸다.

급기야 괴물과 다름없는 오광재와 맞섰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빈 허공에서 홀연히 검을 뽑아 들었다.

판타지 드라마에서나 연출될 만한 장면이었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갑작스럽게 현장을 찾은 아빠의 태도도 마찬가지.

괴물이 돼 버린 오광재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무엇인가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눈빛.

오광재가 내뱉은 말에 잠시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종 선택은 실망스럽지 않았지만 잠깐 주저함을 보였다.

“크크크, 왜 멈추지? 어서 날 죽여! 내 심장에 칼을 꽂아!”

오광재가 완전히 미친놈처럼 웃었다.

자신을 죽여 달라고 장태산을 조롱하듯 떠들어대는 오광재.

오히려 장태산이 머뭇거렸다.

“승강기가 멈췄습니다!”

“계단으로 올라가!!!”

타다다닥.

여러 명의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 될 게 확실했다.

‘태산 씨ⵈⵈ.’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손유리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한 남자.

인간이 아닌 괴물과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 모습.

도대체 무슨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뜬금없이 오광재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을 언급했다.

또 그런 그를 두고 거침없이 친구라 말하는 장태산.

두 사람 모두 인간이 분명한데 또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손유리가 알고 있는 장태산에 관한 것들은 단편적인 정보가 다였다.

그러나 오늘 분명하게 한 가지는 확인했다.

그가 자신을 누구보다 걱정한다는 것.

‘아빠.’

그건 아빠 손대균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오광재 같은 사람에게 넘긴 아빠를 오해했다.

자신의 두 눈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악마나 마찬가지인 오광재에게 서슴없이 욕을 내뱉고 장태산을 향해서는 자신을 부탁한다는 말을 건넸다.

그것만으로도 배신감은 치유됐다.

반면 가슴 속에 안타까움이 들어찼다.

도대체 가문이 뭐라고 저렇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분에 부족함 없이 살아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엄연히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의 개척자는 자신이었다.

배부른 투정이 아니었다.

손유리는 자신의 장점을 너무 잘 알았다.

지금껏 누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이런 태도를 가진 스스로를 보건대, 집이 가난했다 해서 꿈을 포기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죽여! 이 버러지 같은 쇠탈의 후예여!”

오광재가 발광하며 날뛰었다.

뱀의 것 같은 긴 혀를 날름거리며 장태산을 자극했다.

“후후훗.”

묘하게 웃음 짓는 장태산.

평소 보이던 다정했던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말 악을 멸하려 현신한 정의의 사도처럼 보였다.

“넌 날 못 죽여. 아직 때가 도래하지 않았다.”

오광재가 알 수 없는 말을 뱉었다.

“영악한 새끼.”

“크크크. 그게 우리 특기지. 비열하고 음흉하게.”

오광재는 장태산의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

오광재가 장태산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내가 너 같은 놈 한둘 상대하는 줄 알아? 저쪽 동네에 가면 오크 새끼도 너만큼은 대가리 굴리고 살아.”

‘오크?’

손유리는 두 사람의 대화에 최대한 집중했지만 장태산의 말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오크까지 언급됐다.

“헛소리 말고 빨리 꺼져. 경찰들이 올라오고 있어. 나야 괜찮지만 넌 곤란해질걸?”

“똑똑한 놈.”

“저 계집과 아비는 남겨놔. 너는ⵈⵈ 봐주지.”

오광재가 시선이 손유리를 향했다.

그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진한 비린내.

시선에서 비린내가 맡아진다는 게 신기했다.

“그건 아니지. 너만 남고 우리는 간다.”

“???”

오광재가 장태산의 반응에 이해를 못 하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콰드드드득.

그 순간 장태산이 검에 힘을 주입했다.

파장이 얼마나 센지 오광재가 뒤로 밀렸다.

어느새 창가.

“뭐, 뭐 하려는 거야! 넌 날 못 죽여!!!”

“똑똑하니까 알 거 아냐. 내가 널 직접 죽이지는 못하지만ⵈⵈ 간접적으로는 보낼 수 있지.”

“뭐라고?”

“이렇게!”

콰아아앙!

장태산이 가차 없이 오광재를 힘껏 발로 걷어찼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깨진 창문을 통해 창밖으로 떨어지는 오광재.

날개 없는 뱀의 몸뚱이가 수직으로 지상 낙하했다.

하필 방향이 봉은사 쪽이다.

파지지지지직.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낙하한 오광재와 부딪치며 스파크를 튀겼다.

마치 신성한 곳에 떨어진 쓰레기 때문에 분노를 일으킨 듯했다.

***

- 봉은사 청소 담당 신장이 쓰레기 처리비용을 요구해 왔습니다.

- 카르마 포인트가 차감되었습니다.

포인트가 날아갔다.

속이 쓰리다.

오광재를 발로 걷어차 보내버렸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놈은 죽지 않았다.

악마가 보호하는 놈들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장태산ⵈⵈ 도대체. 넌.”

손대균 이사가 괴물 보듯 날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오광재를 걷어찬 직후 손씨 부녀와 함께 하늘을 날았다.

몰려든 사람들이 많아 투명화 마법까지 펼쳤다.

마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내 건물 옥상.

건너편은 난리도 아니다.

오광재가 고층에서 추락했다.

반병신이 된 경호원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였다.

119와 경찰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다행스럽게 언론사 취재 차량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이 호기심에 스마트폰을 들고 이곳저곳에서 촬영을 했지만 경찰들이 일일이 제지했다.

씨큐리티 직원들은 경찰차를 타고 사라졌다.

오광재 측 경호원들도 마찬가지.

내 지시에 따라 변호사들이 출동했다.

쌍방 폭행 정도로 훈훈하게 마무리될 것이다.

오광재 쪽이나 내 쪽 모두 까놓고 상대를 정당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오광재가 누굽니까?”

“ⵈⵈ.”

손대균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손유리는 잠들었다.

더 이상 그녀에게 내 정체를 드러내 보일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도착 직전 수면 마법을 사용해 재웠다.

내 품에 안겨 고이 잠든 그녀.

하루가 고단했던지 인상을 쓴 채 잠이 들었다.

오늘 일은 누구도 평생 못 잊을 것이다.

내 옷으로 그녀의 찢겨진 상체를 덮어줬다.

“일송회와 연관돼 있습니까?”

“ⵈⵈ말할 수 없다.”

“선배님!”

“태산아ⵈⵈ.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손대균을 더 추궁할 수 없었다.

손유리만 자식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가족을 생각해야 할 가장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광재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보면 그만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가 걸어야 할 고단한 길을 알고는 더 추궁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손유리.

손대균이 나에게 딸 손유리를 정식으로 부탁했지만 난감한 상황이 됐다.

일송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손유리가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위험했다.

특히 손대균에게 손유리를 맡길 수는 없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맞지만 내가 보는 손대균은 유약했다.

- 아오! 그 뱀 새끼 목을 확 비틀어야 했는데!

장립이 뒷북을 쳤다.

막상 오광재가 자신을 알아보자 두려워하던 장립.

위험 요소가 사라지자 팔을 걷어붙이고 침을 튀겼다.

전형적인 쫄보 귀신이다.

- 그런데, 이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까? 형님한테 죄지었습니까?

자식 없는 총각 잡귀가 부모 마음을 어찌 알리요.

손대균의 시선은 손유리에게 향했다.

나쁜 아빠는 아니었다.

가문의 일로 지금껏 속을 끓여왔을 손대균.

“도와드릴까요?”

“ⵈⵈ내 가문의 업보다.”

손대균이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나와도 악연으로 얽혀 있는 상황.

손유리가 나와 손대균 사이의 가교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나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손대균은 편하게 본래 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던 과거의 리앤장처럼 돈만 주면 악마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 중심에 있었던 손대균.

나와의 예기치 않은 인연으로 인해 그때처럼 완벽한 악인으로 살지 못하고 있었다.

순수한 본성과 가문의 업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다.

“손 선배는ⵈⵈ 내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가능하겠냐?”

“네.”

“ⵈⵈ염치없지만 부탁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평안하게 살게 해다오.”

손대균은 딸을 포기해야만 손유리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안타까운 부정이 아닐 수 없다.

“걱정 마십시오. 손 선배와 인연이 작지 않습니다.”

몇 년의 세월 동안 나도 손 선배가 그리웠다.

첫 만남은 그 누구보다도 순수했던 관계.

대학교 입학 직후 우연히 만났던 미대 누나.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예기치 못하게 또 다른 길을 걸어야만 했다.

“태산아.”

손대균이 나의 이름을 부르며 바라봤다.

“할 말 있으면 하십시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일송회에서 손대균을 찾을 게 확실했다.

그 부분에서는 어떤 형태로도 개입할 수 없었다.

“어려운 부탁 하나 하자.”

“선배가 언제 쉬운 부탁했습니까?”

“죽어서 갚으마.”

손대균이 뭔가 결심한 듯한 눈빛을 보였다.

“힘든 부탁은 안 받겠습니다. 선배와 얽혀서 남는 게 없습니다.”

“간단할 수도 있다.”

어렵고 간단한 부탁?

“말씀해 보십시오.”

일단 들어봐야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흐흐. 형님을 사위 삼겠다는ⵈⵈ. 뭐 그런 부탁 아닐까요?

귀신이 과하게 김칫국을 마신다.

그런 종류의 부탁이 아닌 건 분명하다.

천하의 손대균 이사라면ⵈⵈ.

“다시 나를 만나게 되었을 때 지금의 내가 아니라면ⵈⵈ.”

말을 줄이면 손대균 이사.

“그땐ⵈⵈ 날 죽여라.”

“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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