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2장. 선택(2).
‘장인어른? 그럼 이 괴물 같은 녀석이?’
손대균은 눈앞의 상황을 확인하고 충격을 받았다.
사무실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대형 유리창은 장난감 부서지듯 산산이 박살났다.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팔다리가 부러진 채 사무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딸 유리의 약혼자로 보이는 오광재는 셔츠가 엉망으로 찢어진 채다.
단단하고 거대한 근육이 셔츠를 찢고 드러나 있었다.
눈동자는 독사처럼 노란빛을 내뿜었다.
누가 봐도 인간 같지 않았다.
그런 자가 자신을 향해 태연하게 장인어른 운운하며 입을 뗐다.
상의가 함부로 뜯겨진 딸은 장태산의 등 뒤에 몸을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림.
이 모든 상황이 연출되기까지의 클리셰 같은 빤한 그림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개자식!”
오광재를 향해 손대균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어떤 아버지가 이런 상황에서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회주! 당신은 진정 누굽니까!’
이쯤 되자 아버지 손국중도 두려워하던 회주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움켜쥔 회주는 인간 같지 않은 자식을 키워냈다.
일송회는 단순히 권력의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 조직된 게 아님이 분명했다.
손대균은 아버지에 이어 일송회에서 활동하면서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회주를 만나보지 못했다.
오늘, 그의 아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배신인가? 크크크.”
오광재가 번뜩이는 눈동자로 손대균을 똑바로 뚫어보며 물었다.
“넌 누구냐!”
손대균이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물었다.
최소한 인간의 모습은 하고 있어야 상식적으로 말이 됐다.
“사위도 못 알아보는 어리석은 자로군.”
‘미친놈!’
손대균은 분노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이성을 지키려 노력했다.
오광재가 반말을 내뱉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침을 삼켰다.
봉변을 당한 유리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아내까지 손대균의 처신에 걸려 있었다.
회주와 관련된 일은 리앤장 이사 신분 정도로 보호받을 수 없었다.
회주가 마음먹는다면 단박에 무너지고 말 모래성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 생각에 손대균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기회를 주지.”
“???”
“네 딸을 가져와 바쳐라.”
“!!!”
“뭘 그렇게 놀라나? 너와 네 가문이 누렸던 모든 게 공짜라 여긴 건가?”
오광재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말이었지만 누군가가 그의 의식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아.”
손대균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터졌다.
그토록 막고 싶었던 가문의 업보가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의 요구대로 딸을 바치면 완벽하게 회주의 편에 설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당연히 인간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부와 명예를 누리고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손유리가 두려움에 떨리는 눈으로 손대균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리야.’
딸에게 평생 보여주고 싶지 않던 최악의 순간을 겪게 하고 말았다.
유리를 던지면 나머지 사람들은 남은 삶을 잘 영위하겠지만 제 딸은 지옥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저 악마 같은 놈의 노리개가 될 건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일.
선택의 순간이었다.
파바밧.
장태산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다.
결단을 내릴 것을 요구하는 단호한 표정.
“흐흐흐흐.”
악마의 화신 같은 오광재도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 당신이 진정 원했던 손씨 가문의 갈 길이 이런 것이었습니까!’
손국중도 과거 어느 날 지금의 손대균과 같은 선택을 요구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를 위해 선택했을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 엄청난 혜택을 누려왔을 가문.
아버지의 그런 선택 덕에 손대균과 그 일가까지도 대한민국 상류층이 되어 꽃길을 걸어왔다.
다만 선택의 대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확인했다.
그 누구도 아닌 사랑하는 딸을 악마에게 저당 잡혀야만 했다.
오광재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원하는 선택을 할 거라 의심하지 않는 눈치다.
장태산은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다.
손유리를 등 뒤에 감추고 손대균을 응시했다.
“ⵈⵈ.”
손유리는 더 절실한 시선으로 결정을 기다렸다.
잠시간의 침묵이 숨막힐 듯 흘렀다.
그리고.
털썩.
다른 사람도 아닌 장태산에게 손대균이 무릎 꿇었다.
“아, 아빠!”
“장태산, 유리를 부탁한다. 앞으로 유리는 내 딸이 아니다!”
손대균의 목구멍에서 절규하듯 소리를 꺽꺽 토해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말 끝에 광소를 터트리는 오광재.
광기에 절은 놈의 웃음소리가 깨진 창문을 통해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그 선택ⵈⵈ 제가 지켜드리죠.”
장태산이 두 무릎을 꿇은 손대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난 조센징이 싫어! 약속을 모르는 천박한 놈들! 모조리ⵈⵈ 노예로 삼아야 해!!!”
오광재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쇳소리 섞은 음성.
우두두둑.
놈의 몸이 한층 더 커지며 믿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쇄애앳.
그리고 장태산을 정면으로 향해 달려들었다.
단숨에 목을 부러뜨려 놓을 것 같은 강한 돌격.
날카롭게 뻗친 손톱이 사시미 칼날처럼 공간을 가르며 장태산을 향했다.
“꺼져! 더러운 뱀 새끼야!”
장태산이 주먹을 움켜쥐고 마주 달려갔다.
***
- 형님! 엄청나게 큰 뱀이에요!!!
확실히 실체를 드러낸 오광재의 기운.
새카만 독을 품은 뱀이 분명했다.
오광재를 집어삼킨 뱀의 기운이 놈과 동화됐다.
오광재와 하나의 개체로 동화된 놈의 살기는 대단했다.
이 정도면 빙의를 넘어선 상태.
앞서 제거한 신광법사라는 놈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을 소유했다.
인간을 타깃으로 한 악신의 직접 빙의였다.
인간을 숙주삼아 몸 안에 오래전부터 똬리를 틀고 살아오다 때가 되면 각성했다.
아사신과 비슷했다.
- 조센징? 한국인 비하 발언 맞죠?
해외 화교라 자세히 모르는 장립 귀신의 질문.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도 빙의된 자의 실체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
한국산 악귀가 아니었다.
물 건너온 일본 잡신이 오광재를 숙주로 삼았다.
일송회의 본체가 일본임이 증명됐다.
쇄애애앳.
그사이 날다시피 허공을 가르며 덤벼오는 오광재의 손.
손톱이 새카맣게 자라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찔리거나 베이면 단박에 중독되어 사망할 것 같은 비주얼.
이렇게 독한 놈은 한국 땅에서 처음 목격한다.
악신의 충실한 종이 된 사이비 종교인들은 오광재에 비하면 발톱의 때에 불과했다.
그냥 맞부딪칠 수 없었다.
실드!
마법을 펼쳤다.
카아아아앙!
보호막에 부딪치는 오광재의 손톱.
쩌어어엉!
- 이 자식 세네요!
놀랍게도 실드 마법의 보호막에 금이 갔다.
“잔재주가 많은 놈이군. 크크.”
날카롭게 자란 손톱을 자랑이라도 하듯 열손가락을 교차한 채 나를 응시하며 입맛을 다시는 오광재.
순식간에 치고 빠지는 솜씨가 대단했다.
콰드득.
“크아악!”
오광재가 나를 향해 오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경호원을 밟았다.
부러진 다리를 붙잡은 채 비명을 내지르는 경호원.
푸욱.
신경에 거슬린 듯 가차 없이 오른팔을 뻗어 날선 손톱을 경호원 이마에 박아버리는 오광재.
“컥!”
단말마 비명을 토하는 동시에 순식간에 쪼글쪼글해지며 미라처럼 변해버리는 경호원.
- 기, 기를 흡수해 갔습니다!
흡정대법처럼 인간의 기운을 실제 흡수한 오광재.
놈의 손톱이 더욱 새카맣게 변했다.
“우욱.”
지켜보고 있던 손유리가 구역질을 시작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과 영화 같은 데서 연출되는 장면은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흑마법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고난위도 수법 중 하나였기에 나는 놀라지 않았다.
다만.
“악마 새끼군.”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괴물임은 확실해졌다.
오광재는 악신이 심혈을 기울여 숙주로 삼은 자가 분명했다.
나로 인해 각성했고 그 실체가 드러난 듯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건만ⵈⵈ 네놈 때문에 드러났다. 그 대가는ⵈⵈ. 크크.”
뱀 새끼가 사무실에 있는 나와 유리, 손대균을 비정상적으로 훑었다.
결코 살려두지 않겠다는 의미.
- 헉! 저 새끼가 나도 봤어요!
귀신에게도 눈길을 준 오광재.
장립이 바짝 쫄았다.
삐뽀 삐뽀 삐뽀.
그사이 순찰차는 더 늘어났다.
기동타격대도 등장했다.
시민들이 호기심에 구경차 모였다.
아직 위층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
아래 패싸움은 정리가 된 듯했다.
씨큐리티 직원들과 오광재 측 경호원들이 두 패로 갈라져 있었다.
해당 변호사들도 긴급하게 출동해 있을 것이다.
“위층도 수색해!”
경찰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정체가 발각되면 귀찮아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스윽.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앗!
아공간이 열리면서 손에 들어온 검.
“ⵈⵈ솔로몬의 후예더냐?”
놈이 검을 보자 솔로몬 왕을 언급했다.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던 과거 이스라엘의 왕.
“친구다.
“맹약을 깨트리다니ⵈⵈ. 사막 놈들은 언제나 마음에 안 들어.”
혀를 날름거리며 또 다른 분노를 표출해 보이는 오광재.
내가 모르는 감춰진 신들의 비밀이 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악마는 지옥으로.”
검에 내공을 담아 오광재의 심장을 가리켰다.
- 오! 그 대사 멋집니다!
파아아아앗.
검에 내공이 담기며 빛을 뿜어냈다.
“크크크크크.”
그럼에도 두려움의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 오광재.
“쇠탈의 남은 무쇠뿔을 뽑아주지.”
“뱀의 이빨 먼저.”
“죽엇!”
오광재가 다시 달려들었다.
조금 전보다 더 빠르고 강해진 오광재의 손톱.
“탓!”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내가 멈칫하는 순간 도리어 유리와 손대균이 다칠 수 있었다.
파밧.
놈과 눈이 마주쳤다.
날 잡아 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두 눈에서 번뜩이며 살기가 넘쳤다.
쇄애애앳.
놈의 손톱과 검이 부딪쳤다.
카가가가가강!
사이에서 연달아 터지는 불꽃.
힘을 아끼지 않고 쏟았다.
검이 놈의 손톱 사이에 끼었다.
양손에 붙잡히며 손톱 틈에 걸린 검.
“으득.”
인간이 아닌 악신과의 본격적인 대결이었다.
그그그극.
아직은 나의 힘이 더 강했다.
점점 오광재의 손톱을 밀어내며 놈의 머리통으로 향하는 검.
“크크크크.”
그러나 놈은 임박한 죽음 앞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 순간.
- 아직 허락되지 않은 전쟁입니다.
- 제거할 수 없습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