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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3장. 부탁의 방법(3). (972/1,284)

983장. 부탁의 방법(3).

“미친 거 아냐! 놈을 왜 청와대까지 끌어들여!”

윤병운은 부속 비서관실을 통해 올라온 보고에 할 말을 잃었다.

출근한 이후 골치 아픈 사건의 연속이었다.

장태산을 한 방에 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와중에 터진 사건.

멍청한 주순자가 장태산을 청와대까지 끌어들였다.

“누가 마중 나갔어?”

“정재근 비서관이 나갔습니다.”

“뭐야! 정재근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재근은 주순자의 오른팔과 같은 자였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측근 행정 부속 비서들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았다.

다른 측근 부속비서들은 대부분 무식했다.

근접 경호를 담당하며 운전대나 잡고 막걸리나 퍼마시던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청와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큰소리를 쳤다.

경찰 인사권에 개입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일도 눈감아 줬다.

큰 건도 아니고 겨우 서장급 인사에 개입한 상황.

특히 대통령은 심복들을 신뢰했다.

괜히 원칙 운운하며 들쑤셔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정재근은 달랐다.

그는 대통령의 수행 비서관 출신이다.

머리가 비상한 자다.

주순자가 정재근을 보냈다는 사실은 그만큼 장태산을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였다.

“지금쯤이면 도착할 시간입니다.”

청와대의 하루는 빨리 시작됐다.

대통령은 일주일에 겨우 한두 번 집무실에 나올까 말까 하지만 다른 이들의 처지는 달랐다.

할 일이 산재해 있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권력을 챙겨먹는 것도 부지런해야 가능했다.

십상시들도 서로를 견제했다.

어느 때건 이권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였다.

“하아아아. 씨발.”

윤병운은 한숨을 쉬며 한바탕 욕을 내깔렸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주순자의 돌출행동.

“나중에 진짜 크게 후회할 날이 올 거다ⵈ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윤병운.

사실 그 역시 한 치 앞을 몰랐다.

주순자를 향한 불길한 예감이 사실이 되어 기습 폭우처럼 모두에게 쏟아지게 되리라는 것을.

“오고 있다고?”

“네. 문 앞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유선주 3급 행정관이 대답했다.

청와대 입성하기 전에는 유명 연예인들의 개인 트레이너로 활동했던 유선주.

운명에도 없는 고위 3급 행정관이 됐다.

그런 그녀를 두고 여론에서도 말이 많았다.

일개 트레이너를 3급 행정관에 임명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의견이 주였다.

하지만 주순자의 명을 받은 청와대는 여론을 무시하고 꿋꿋하게 밀어붙였다.

청와대에서 주순자의 시중을 드는 동시에 믿을 만한 시녀가 필요했다.

대통령은 손이 많이 가는 자였다.

칠칠치 못한 면도 많아 주순자가 일일이 손을 대거나 비밀에 부쳐야 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대통령이 잠을 자는 곳은 더욱 더 철저하게 아는 인맥들로 채워졌다.

입맛도 까다로워 청와대 부속 요리사가 아닌 호텔 주방장을 직원으로 고용했다.

손수 라면 하나도 끓이지 못하는 대통령.

헤어스타일을 위해서 바깥 헤어샵 원장을 호출해 이용할 정도였다.

머리 스타일이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옷도 주순자가 지정한 것만 착용했다.

모든 걸 맞춰줘야만 움직일 수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공주님 조근영.

“호호.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구나. 장태산!”

호가호위라는 말이 어울리는 주순자는 만족한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집까지 들어와 면전에서 협박하던 장태산.

오늘은 그가 두렵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호가 삼엄한 청와대였다.

천하의 장태산도 허튼 짓을 할 수 없었다.

“점심 식사를 준비할까요?”

“됐어. 그 자식 하고 같이 밥 먹다가는 체해.”

주순자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필요에 의해 장태산을 청와대로 불러들였지만 식사는 내키지 않았다.

“그럼 차만 준비하겠습니다.”

“오늘 수고 좀 해줘. 장태산 그놈 기를 팍 죽여야 하니까.”

“넵! 선생님.”

“누가 와요?”

그때 머리가 젖은 채로 나타난 대통령 조근영.

이제 일어나 씻은 듯 평안한 잠옷 차림이다.

“오늘은 좀 빨리 움직이라니까 왜 이렇게 늦었어요.”

주순자가 대통령을 힐책했다.

“미안해요. 밀린 드라마를 보느라 늦잠을 좀 잤어요.”

피곤한 표정이 역력한 조근영이 주순자를 보며 죄송한 표정을 지었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포커페이스 달인이지만 주순자 앞에서는 선생님의 앞의 초등학생처럼 굴었다.

“밥은요?”

“누룽지 먹을까요?”

“오늘 회의 있다는 거 몰라요? 밥 드세요. 된장국에 밥 말아 드시고 회의 참석하세요.”

“네.”

“쓸데없는 말 하지 마세요. 미리 내용 다 돌려놨어요. 대충 외우고 읽으세요. 그리고 방송사에서 몇 컷 찍을 거니까 머리에 신경 써요. 옷은 옷 방에 걸어뒀어요.”

“고마워요. 주 선생.”

조근영이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자신에게 손 내밀어준 고마운 주순자.

그녀 덕분에 지금의 대통령 자리에 올라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방울방울 한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잘하세요.”

“네!!!”

“그리고 오늘 중요한 손님 만나니까 괜히 부속 회의실에 오지 마세요. 봐서 좋을 것 없어요.”

“알았어요. 일 끝나면 불러요.”

“저녁에는 마사지 받을 거예요. 기대하고 있어요.”

“정말요?”

조근영 대통령의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주순자가 추천하는 마사지는 언제나 옳았다.

살아 있는 생명의 충만함을 한껏 품게 만드는 신비한 마사지.

오늘 밤은 꿀잠을 잘 수 있을 터였다.

***

- 여기가 청와대인가요! 우와와와와! 왕성이다!!!

경복궁과 박물관을 지나쳐 들어가는 청와대.

정문이 아니다.

몇 개의 청와대 문들 중에 일명 개구멍이라 불리는 문으로 이동했다.

겨우 차 한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철문이 다였다.

물론 무장한 경호 경찰이 존재했다.

스르르륵.

차 창문으로 정재근을 확인하자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 어라? 검문 없어요? 여기 대통령이 사는 곳 맞아요?

귀신이 그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난 진작 알고 있었던 일이라 입을 다물었다.

대한민국 국군을 통솔하고 국가를 지휘할 행정부 수반이 머무는 곳이 이렇게 허술했다.

정재근 비서의 얼굴만 확인하고 바로 문이 열렸다.

뒷자리에 외부인인 내가 버젓이 타고 있었지만 경호원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소리였다.

사실을 직접 확인하니 입맛이 씁쓸했다.

과거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아니 실망감이 더 컸다.

부우우웅.

경내로 차가 진입하자 정재근은 액셀러레이터를 가볍게 밟기 시작했다.

차는 거침없이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안경을 쓴 그는 말이 거의 없었다.

나를 태우고 오면서도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성격 까칠한 주순자 밑에서 밥 먹고 살려면 그도 선택의 여지가 없을 터였다.

대한민국 최고 행정부 수반이 어느 정도 엉터리라는 걸 알면서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지금이야 밑에서 콩고물 받아먹느라 눈치껏 움직이고 있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은 불편할 것이다.

자신이 모시는 주군으로 인해 나라가 개판이 되어가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좌석 옆에 신분증 있습니다. 그거 착용하세요.”

“네.”

“다시 한 번 당부드리지만 비공식 방문입니다. 다른 곳으로 절대 이동하시면 안 됩니다. 괜히 움직이셨다가 총 맞습니다.”

협박이 치졸하기 그지없었다.

- 총? 푸하하하하하. 이 아저씨 정말 웃기네.

귀신이 비웃었다.

그가 봐도 너무나 허술한 청와대 경비가 아닐 수 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ⵈⵈ.”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을 지나쳐 관저로 차가 이동했다.

“굳이 더 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

말을 끊었다.

솔직히 청와대 구경은 흥미 없었다.

상징적인 의미 말고 청와대는 시설이 뛰어난 편이 아니다.

주순자가 말했던 나랏일이 궁금해서 찾아왔을 뿐이다.

오늘은 수업도 오후에 있었다.

“소문처럼 기운이 대단하시네요.”

정재근이 나에 대해 아는 체를 했다.

“저에 대해 아십니까?”

“웬만큼 압니다.”

정재근이 처음으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적당히 아십시오. 깊이 알면 다칩니다.”

“네?”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다.

정재근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얼굴에 만성 피로감이 가득했다.

노처녀와 말 많은 아줌마를 상대하는 일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성격도 예민해 보였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다 먹고 살자고 한 세상 사는 겁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ⵈⵈ.”

충고 한마디를 던졌다.

끼익.

어느새 차는 관저 앞에 이르렀다.

“휴우.”

짧은 한숨을 내쉬는 정재근.

“힘내십시오. 세월 금방 갑니다.”

딸깍.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누가 와서 문을 열어주는 호사는 없었다.

경호원들이 저 멀리 보였지만 애써 나를 외면하는 게 보였다.

오늘 이곳을 방문한 나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썩어버린 대한민국의 구중궁궐 심처.

발만 내딛었을 뿐인데 썩은 내가 진동했다.

“따라오십시오.”

정재근이 차를 주차하고 앞장섰다.

기와 나무 대문을 지나 관저로 들어섰다.

긴긴 세월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이 거처했던 관저.

- 여기 전체적으로 터가 센데요? 저 같은 귀신들이나 놀면 딱 좋은 곳인데.

귀신이 사방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

방위를 잘못 잡아 앉았다.

청와대 배산으로 자리 잡은 북악산은 탐랑목성(貪狼木星)의 목(木)이 강했다.

동시에 바위가 커서 살기도 강했다.

파군의 역할을 맡아 금극 목으로 주인을 쳤다.

군인 같은 이들이 대통령이 되기에 알맞은 터라는 말이였다.

물론 살기를 뽑아 사용하기에 대부분 주인으로 앉은 자의 말년이 좋지 않았다.

자리도 너무 중앙에 자리잡았다.

좌선 맥에 우선 룡, 우선 수에 좌선 좌로써 음양박잡인 데다 황천 살까지 범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백호가 청룡을 억누르는 형상이다.

또 가장 중요한 안산과 조산 역시 혈장(穴場)을 누르고 있음이 보였다.

그러면서 터 주인이 온갖 도전과 시련들을 겪게 되는 흉지가 됐다.

안타까웠다.

겉보기에는 명당 같아 보이나 실제적으로는 흉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운명이겠지.”

“네?”

잠시 터를 살피고 한마디를 뱉자 정재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정재근이 안경을 매만지며 다시 앞장을 섰다.

아늑한 기와집이 보였다.

왕성과 어울릴 만한 그림 같은 기와집.

이곳 또한 평안하지 않았다.

거주하는 동안에 계속 사건이 터지는 곳이다.

입을 무겁게 하고 행동을 조심하지 않는 이상 반드시 사달이 나는 장소.

이곳 안주인들의 운명이 기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스르르릇.

관저 자동문이 열렸다.

실내화로 바꿔 신었다.

내부에서 중년 여자들이 사용하는 향수 냄새가 훅 풍겨왔다.

“이곳입니다.”

내부는 단아했다.

나무 창살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공기청정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바깥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바람에 가지를 흔들었다.

현재 주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곳.

스르륵.

제1부속 회의실이라는 곳의 문이 열렸다.

“어서 와 장태산.”

안쪽 가죽 의자에 앉아 활짝 웃고 있는 주순자.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왕국에 나를 초대한 것처럼.

씨익.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털썩.

정면 의자로 자리를 권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가 앉았다.

그리고.

“누가 보면 순자 누님이 진짜 주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습니다.”

“뭐라고!!!”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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