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1장. 사과의 방법. (960/1,284)

971장. 사과의 방법.

“내가 왜?”

“인명 사고를 내지 않으셨습니까. 운전 중에 핸드폰을 조작하는 건 중범죄입니다.”

“중범죄? 당신 날 지금 범죄자로 보는 거야? 내가 핸드폰 만졌다는 증거 있어? 그리고 내가 바본 줄 알아? 아파트 내 주행로는 도로가 아니잖아. 내가 다 알아봤어. 우리 애 아빠 회사 고문 변호사가 그러던데. 보험으로만 처리해도 된다고.”

“도의적 책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까. 최소한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라도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관악구에 위치한 제법 큰 단지의 아파트 부녀회 회의실.

JS로펌 소속 변호사인 신덕수가 사고 차량 운전자를 상대하다가 크게 분노했다.

형님인 장태산으로부터 사건 수임을 부탁받았다.

여동생이 실습하고 있는 병원에서 일하는 외과 교수의 아들이 다친 사건이었다.

사건 기록을 살필 당시에도 화가 치밀었었다.

지금은 더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휴대폰을 조작하다 아이를 치어버린 뻔뻔한 아줌마는 시간이 흘러도 일체의 사과도 없었다.

응급실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말을 들었을 만큼 처음 병원에 실려 갔을 당시 아이는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사고 현장에서 재수 없다며 계속 혼잣말을 내뱉었다는 아줌마.

단 한 번의 병문안도 없었던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변호사님,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우리 부녀 회장님도 사고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어요.”

“맞아요. 위로하느라 술값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아세요?”

“여편네가 애새끼 관리를 칠칠치 못하게 하니까 사고가 나지.”

“그 애기 아빠도 없다면서요.”

“글쎄 미혼모라네요.”

“이혼한 게 아니야?”

“처녀 시절에 유부남이랑 바람이 나서 난 애기래.”

“어머머. 어쩐지 수상하더라.”

“얼굴 예쁜 것들은 다 뒤가 구려.”

“우리 남편도 그 여우같은 아줌마만 보면 넋을 놓는다니까.”

“아유! 망측한 것.”

몇몇 아줌마의 입을 거치며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부녀 회의실에 모인 다섯 명의 아줌마들이 돌아가며 입방아를 놀렸다.

‘정말 상종 못 할 것들이군.’

신덕수는 속이 메스껍고 입안이 텁텁해졌다.

변호사가 된 이후 그전엔 몰랐던 세상의 다른 면면을 봐버렸다.

자신을 바보로 만든 주인집과 다를 바 없는 인간 군상들이 도처에 흔하게 섞여 있었다.

지금 이 아파트도 최근 유명세를 탔다.

부녀회에서 아파트 가격 담합을 주도했다.

일정 이하 급매물은 개인 사정이 어찌 되었건 상관없이 매물로 내놓지 못하게 만들었던 악질 아파트 부녀회.

텃세와 악질이 얼마나 심했던지 신문에 나기도 했다.

그 중심에 부녀회장 조 여사가 있었다.

사십대 후반의 후덕한 몸매를 자랑하는 아줌마다.

얼굴과 몸뚱이에 덕지덕지 탐욕스러운 욕심이 살과 뒤엉켜 몸집을 불렸다.

사고가 난 아이가 생사의 기로를 헤맬 때 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려 술을 퍼마셨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찾아와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자신에게 인간 같지 않은 뻔뻔함을 보였다.

“정말 사과하지 않을 생각입니까?”

“당연하지. 내가 왜? 사고 나서 보험료도 올라 남편에게 한소리 들었는데 과일 바구니 들고 넉살 좋게 찾아가서 사과까지 하라고? 난 못 해!”

부녀회장 조 여사는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전혀 느끼지 않았다.

아예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꿈쩍도 안 했다.

“변호사 아저씨. 우리 부녀 회장님 남편이 누군 줄 아세요?”

“누굽니까?”

“TS그룹 본사 전무님이셔. 요즘 TS그룹 잘나가는 거 알지?”

“모르면 바보지. 우리 조 여사가 전무님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데.”

“승진 턱도 며칠 전에 거하게 쐈잖아.”

“우리 조 여사님 좋겠다. 미모에 잘난 서방님까지 둬서.”

아줌마들이 그 틈에도 조 여사에게 잘 보이려 아부를 아끼지 않았다.

“호호호. 내가 힘들긴 했지.”

조 여사가 거만한 모습으로 웃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신덕수의 눈가에 회심의 미소가 스치는 건 눈치 채지 못했다.

“남편 분은 뭐라고 하십니까? 사과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남편? 당연히 뭐라고 했지. 운전 잘 좀 하라고. 그러다 연약한 몸이라도 다치면 어떡하냐고 말이야.”

“전무님 참 자상하다니까.”

“회장님. 너무 부러워요.”

부녀회원들은 진심으로 부녀회장 조 여사를 부러워했다.

“그게 답니까?”

어이가 없어 다시 확인하듯 묻는 신덕수.

“그럼? 거기서 뭘 더해. 마누라만 챙기면 됐지.”

“그래요ⵈⵈ.”

신덕수가 말끝을 흐렸다.

“근데 변호사 아저씨 총각이야? 잘생겼네.”

“덩치가 완전 곰이야.”

“근육 좀 봐. 힘 좋겠네.”

“명함 한 장 줘 봐요. 나도 사건 의뢰할 게 있는데.”

“나도 한 장 줘요.”

아줌마들이 짜기라도 한 듯 갑자기 신덕수를 공략하며 눈독을 들였다.

과거와 달리 말끔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 신덕수.

공수진이 옆에서 완벽하게 신덕수를 관리한 덕이었다.

누가 봐도 훈훈한 스타일의 상남자 변호사.

“저도 TS그룹에 아는 분이 계시는데 잘됐군요. 남편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우리 남편? 박준수 전무.”

본사에 소속된 전무라면 상당히 높은 자리의 임원이었다.

계열사 사장급과 맞먹는 신분이다.

조 여사는 남편의 이름을 당당하게 밝혔다.

일개 변호사가 아는 사람이 있어봤자 얼마나 대단한 존재를 알겠나 하고 쉽게 생각했다.

스윽.

부녀회 회의실 책상 위로 스마트폰을 꺼내 놓는 신덕수.

틱티딕.

그리고 빠르게 번호를 눌렀다.

형님의 주기적인 케어로 완벽하게 치료가 되어 뛰어난 오성을 되찾았다.

띠리리리릿.

평범한 벨소리가 울렸다.

- 이게 누군가. 신 변호사 아닌가.

“바쁘신데 갑자기 전화 드려 죄송합니다.”

- 아니야. 신 변호사 전화는 아무리 바빠도 바로 받아야지. 우리 회장님이 사랑하는 동생이 아닌가.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기세 넘치는 중년 남자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

부녀회원들이 의아한 듯 신덕수와 스마트폰을 쳐다봤다.

갑작스런 신덕수의 행동을 이해 못 했다.

“혹시 박준수 전무님에 대해 알 수 있습니까?”

- 박 전무. 잘 알지. 능력이 뛰어난 친구야.

그때 부녀회장 남편을 편하게 하대하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무언가 잘못된 걸 알아챈 조 여사의 살찐 눈동자가 화들짝 놀라며 커졌다.

회사 내에서 전무를 이렇게 편하게 하대할 수 있을 정도면ⵈⵈ.

“회장님. 외람되지만 박 전무님 인성은 어떻습니까?”

- 인성이라ⵈⵈ. 그건 갑자기 왜 묻나?

“형님께 중요한 문제로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해당 인물 인사 자료 로펌에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무슨 일이 있구만. 알겠네. 비서실 통해서 바로 보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회장님.”

- 우리 사이에 감사는ⵈⵈ. 혹시 박 전무가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말하게. 빠르게 조치하겠네.

요구하지도 않은 일에 상대 쪽에서 더 거침없이 나왔다.

“따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 그래 알겠네. 중요한 일이면 회사에 바로 와도 돼.

“알겠습니다.”

- 수고하게.

띠릭.

통화가 끝났다.

“ⵈⵈ.”

그리고 찾아온 침묵.

머리라는 걸 장식품으로 달고 있지 않다면 방금 변호사가 누구와 통화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요즘 재계 순위가 상승하고 있는 TS그룹 회장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룹 중요 임원에 대한 인사 자료까지 넘기겠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 일이 있다면 곧바로 조치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룹 임원들은 말이 좋아 임원이지 비정규직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조 여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버렸다.

“이ⵈⵈ런 내 정신 좀 봐. 빨래를 돌려놓고 깜빡했네.”

“우리 강아지 밥 줄 시간이네ⵈⵈ.”

눈치를 보던 아줌마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기업 회장을 편하게 상대하는 신덕수가 다르게 보였다.

조금 전까지는 체격 좋고 힘 좋은 젊은 남자였지만 이제는 호랑이도 때려잡을 무서운 곰으로 보인 것이다.

“조 여사님. 이제 다시 사건에 대해서 얘기하실까요?”

평정심을 되찾은 신덕수.

“네? 네ⵈⵈ.”

한껏 조신한 모습으로 꼬리를 만 부녀회장을 지그시 바라봤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전형적인 속물형 인간이었다.

신덕수의 전화 한 통에 바로 고개를 조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신덕수는 다시 한 번 확실히 깨달았다.

‘죽을 때까지 형님 그늘에서 2인자로!’

***

“누구신지ⵈⵈ.”

구치소에 수감된 신태주.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모두 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착착 사건이 진행됐다.

신태주가 구속되자 들불처럼 번지던 언론도 잠잠해졌다.

타개 대상인 악인이 감옥에 수감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사람들은 만족감을 느꼈다.

그 와중에 가장 불행한 한 남자가 있었다.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수감 생활을 시작한 신태주.

갑작스런 변호사 접견 요청에 의아했다.

JS로펌 소속 변호사들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로펌이지만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런데 막상 접견실에는 남자 한 명만 있었다.

비밀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변호사 접견실.

처음 보는 젊고 잘생긴 남자 변호사에 신태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억울한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해 주는 JS로펌 소속 변호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장태산!!!”

‘이 자식이 왜!’

신태주는 장태산이라는 이름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결코 어떤 식으로든 만나지 말아야 할 악연이었다.

장태산과 그의 동생을 건드렸다가 멀쩡하게 운영되던 사업이 박살이 났다.

잘나가던 기업인수합병 전문회사 대표에서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됐다.

집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동생 신상주도 구속됐다.

아내와 딸은 벌벌 떨며 밖에는 나오지도 못하고 집에서 칩거 중이다.

모든 사건의 원흉이 장태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버젓이 눈앞에 찾아왔다.

인간이 아닌 악마가 분명했다.

무슨 꿍꿍이가 있어 놈이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의아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것저것 확인할 사항도 있고 혐의에 대해 상의도 드릴 게 있어서 말입니다.”

장태산은 속내를 감추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ⵈⵈ개새끼.”

신태주의 얼굴이 굳어지며 바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입이 거치십니다. 요즘 구치소 식단에 보리밥이 없는 걸로 아는데.”

장태산이 농담을 걸어왔다.

웃고 있는 표정과 달리 눈빛은 특별한 감정이 없어 보였다.

“여기는 왜 왔어? 내 꼴 보러 온 거야? 이제는 만족해?”

신태주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여유를 보였다.

어차피 형량에 대해서 검찰과 입을 맞춘 상태였다.

판사 쪽도 모두 섭외가 되어 있어 재판은 신속하게 마무리될 것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별로 달라질 건 없었다.

천하의 장태산도 구치소 안에서는 두렵지 않았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표정입니다.”

“맞아.”

신태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만한 태도로 장태산을 똑바로 쳐다봤다.

세상에 대한 원망도 이미 다 버렸다.

어차피 냉정한 돈과 권력 게임에서 밀린 것뿐이다.

그것도 눈앞의 어린 애송이에게 운 나쁘게 걸려서 말이다.

“제 계산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ⵈⵈ. 아니군요.”

“원래 각자의 계산은 다 다른 거야. 노름판에서 원금이 맞는 거 봤어?”

신태주가 장태산을 가르치듯 말했다.

“안타깝군요.”

“뭐가? 안타까워! 네놈 때문에 다 날렸는데!”

신태주는 날것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버럭버럭 소리친다고 달라질 게 없었다.

욕이라도 실컷 쏟아내야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

“보낸 저격수는 잘 받았습니다.”

“!!!”

저격수라는 말에 신태주가 입을 닫았다.

‘뭐야? 실행했는데ⵈⵈ 실패한 거야?’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월가에 근무하던 시절 알게 된 국제 청부 사이트에 거금을 주고 의뢰를 맡겼다.

한 번 맡은 임무는 반드시 해낸다는 청부 사이트.

성공 확률이 높은 히트맨일수록 가격이 높았다.

그중에서도 최고 상위권에 있는 자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고 보니 장태산이 멀쩡하게 살아있다.

“무, 무슨 개소리야!”

신태주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일단 모르는 일처럼 나갔다.

“돌려드리죠. 받은 그대로.”

하지만 부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뭐ⵈⵈ라고?”

“형벌을 받고 있는 신태주 씨 말고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대상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청부를 맡기겠다고 선포하는 장태산.

그가 웃고 있었다.

눈빛은 한없이 차갑고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의 목숨을 겁박하는 미친놈.

“야! 너 미쳤어!!!”

신태주가 버럭 호통을 쳤다.

장태산의 눈빛으로 보아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거리낌이 없는 놈이라는 건 직접 보고 확인했다.

“신태주ⵈⵈ 당신 계속 반말할 거야?”

장태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치켜 올라갔다.

꿀꺽.

신태주가 본능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신태주를 향해 거침없이 치고 들어와 박히는 한마디.

“진심으로 사과하는 방법 몰라?”

“ⵈⵈ.”

목청이 뚫린 듯 화끈하게 뿜어져 나오는 장태산의 엄청난 목소리와 포스.

“일단 꿇어!! 개자식아!!!”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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