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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장. 저격(2). (959/1,284)

970장. 저격(2).

와락!

“헛!”

갑자기 장태산이 자신을 힘껏 안았다.

장태산의 격한 행동에 손유리는 그만 비명을 터뜨렸다.

키스를 하기 직전의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갑작스러운 장태산의 행동에 놀랐다.

멋도 모르고 장태산의 품에 덥석 안겼다.

물론 이런 식의 포옹도 나쁘지 않았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남자의 품인가.

그의 품은 예전보다 더 넓어져 있었다.

불과 몇 년 전 장태산의 품에 안겼을 때만 해도 둘 다 너무 어렸다.

말 그대로 풋풋했던 대학생 시절.

그러나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충분히 각자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나이였다.

더욱이 두 사람 모두 어떠한 끝을 본 사이였다.

손유리는 느닷없이 안긴 장태산의 품에서 그의 체취를 깊이 느꼈다.

까앙!

귓가에 의심스러운 강렬한 소음이 파고들기 전까지.

“!!!”

손유리는 깜짝 놀랐다.

귀가 멍멍해질 만큼 소름 끼치는 엄청난 쇳소리였다.

무언가 스치듯 비켜가 쇠벽에 부딪친 것 같았다.

“그대로 있어요!”

조금 전과 달리 차갑게 날이 선 목소리로 장태산이 낮게 속삭였다.

‘무슨 일이야?’

품에 안긴 채 손유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저격이다!!!”

그때 들려오는 저격이라는 한마디 외침.

‘저격? 설마 그 저격?’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총기 안전 국가였다.

프랑스나 유럽처럼 총기를 이용한 테러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방금 귀를 의심하게 하는 단어가 들렸다.

손유리의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아ⵈⵈ빠가?’

손유리는 본능적으로 아빠를 떠올렸다.

장태산과 애증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아빠였다.

정황상 이런 일을 충분히 꾸밀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스! 위험합니다! 피하십시오!”

방탄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몰려왔다.

“손님을 안으로 모십시오!”

“보스!”

“태산 씨!”

“빨리!”

“넵!”

장태산은 허공을 넘어 저 멀리 있는 고층 아파트를 노려봤다.

손유리와 경호원들 눈으로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따라오십시오.”

경호원들이 손유리를 포위하듯 사방을 에워싸며 맞은편 건물로 인도했다.

“???”

그 짧은 틈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장태산.

손유리는 다급한 시선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정말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지금 뭐야!’

손유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귀국한 지 몇 시간 만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

“하라쇼!”

이고르는 회심의 외침을 터트렸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의뢰가 들어왔다.

한국에서 한 명을 저격한 대가로 10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기회가 무척 좋았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교향악단의 객원 첼로 연주자인 이고르.

천운처럼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초청이 있는 시점이었다.

주업은 교향악 연주자였지만 부업은 실력 좋은 히트맨이다.

특히 이고르는 군대에서 저격수로 활동한 전력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져 있는 셈이었다.

저격수들 중에서도 특급 대우를 받는 이고르.

세계 3대 특수부대로 통하는 스페츠나츠 중에서도 FSB 알파 부대원이다.

스페츠나츠의 얼굴 마담이라고도 불리는 알파 소속 특급 저격수.

그들의 실력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유명했다.

그중에서도 고독한 사신으로 불리는 이고르에 대해서는 모든 게 비밀에 부쳐져 있다.

러시아연방에서도 특별하게 관리했다.

군대에서도 특수 임무를 수행하고 제대했다.

결코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 작전을 수행했기에 그 파장을 염두해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그의 활동에 관련한 모든 자료들이 소각됐다.

상부와 오직 이고르만 알고 있는 계약.

그 일을 수행하고 난 뒤 자유를 찾은 이고르는 첼로 연주자로 변신했다.

하지만 이고르는 살인을 취미로 삼을 만큼 살생을 즐겼다.

군대 근무 시절 그의 저격총에 100명이 넘는 적들의 머리통이 박살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신체 그 어떤 부위도 아닌 오직 머리통을 노렸다.

수박통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머리통을 볼 때마다 이고르는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오늘도 그런 취미의 일환으로 선뜻 의뢰를 받은 이고르.

저격 대상에 대한 정보는 위성으로 파악했다.

최적의 장소를 물색했다.

거리는 약 1.5km.

대상의 모든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고층 아파트 옥상을 택했다.

나름 보안이 철저한 한국 아파트였지만 전문 저격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간 살펴본 대상은 항상 혼자 움직였다.

지내고 있는 집 유리창은 모두 다 방탄유리로 돼 있는 것을 파악했다.

그래서 차량 이동 중일 때 놈을 저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하늘이 준 기회답게 운이 따랐다.

여성과 함께 산책을 나온 대상.

러시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SV- 98이 아니라 비밀리에 개발되어 스페츠나츠가 사용 중인 세계 최강의 저격총을 들었다.

SVLK- 14.

이고르는 해당 저격총의 초기 테스트를 담당했다.

그때 확신했다.

사거리가 3km가 넘는 이놈만 있다면 저격의 왕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상당한 금액을 주고 뒤로 빼돌렸다.

다층 탄소, 유리, 케블러 섬유로 제작된 살인 병기.

풍향과 각도 계산을 마치고 총구에서 총알이 발사됐다.

한 치의 실수도 있을 수 없었다.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지만 그것 또한 이미 변수에 넣었다.

다년간의 저격총 사수로서 간단하게 성공할 것을 확신했다.

소음기를 뚫고 나간 탄환은 대상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노렸다.

같이 있던 여자는 덤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막 키스를 하려던 순간을 노렸다.

안타깝게도 가장 행복한 순간의 남자의 머리통을 관통한 탄환은 여자의 머리통까지 하나로 꿰뚫을 것이다.

깡!

“???”

이고르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거리가 멀었지만 관통 시 들렸어야 할 환상의 소리가 없었다.

야구 선수가 홈런을 칠 때 느끼는 감각 이상으로, 대상에 총알이 박히면 저격수들은 그에 앞서 직관적으로 그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연히 다른 소음이 들렸다.

두툼한 쇳덩어리에 부딪혀 총알이 다른 곳으로 튕겨나가는 소음이었다.

“저격이다!”

놈이 거주하는 곳을 상시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이 어느새 튀어나왔다.

차작.

고배율 조준경을 통해 대상을 살폈다.

“!!!”

이고르는 크게 놀랐다.

아파트 옥상에 있는 자신을 정확하게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대상.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을 수 없었다.

1.5km에 거리에 비가 오는 야간이었다.

이 거리를 뚫고 인간의 시력으로 자신을 정확하게 본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분명 저격 대상은 이고르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저 자식 뭐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저격에 실패했다.

2차 공격에 나서야 했지만 이미 충격에 평정심이 깨져 버린 상태였다.

이고르가 지금 같은 특급 저격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첼로 연주자였기 때문이었다.

마음의 평정심을 통해 음악의 궁극에 다가서려던 습관이 저격수로서도 성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람 머리통이 깨져도 동요가 없던 이고르는 지금 심장이 거칠게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위험해!’

상대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고르는 당장 철수를 결심했다.

저격수의 제1계명은 은밀함.

발각됐다는 것을 안 이고르는 바로 임무를 포기했다.

100만 달러라는 돈도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현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어떤 임무도 이미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처저적.

목숨과도 같은 저격총을 빠르게 분리해 첼로 가방에 정리해 넣었다.

“아무리 빨라도 최소 10분. 충분해.”

한국 경찰이 이고르를 찾아낼 가능성은 희박했다.

혹시 모를 퇴각까지 필요한 시간은 타이트하게 10분으로 잡았다.

촤아아아아아앗.

그사이 빗줄기가 굵어졌다.

“예부치!”

러시아 말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케이스 안에는 첼로가 들어 있었다.

그냥 봐도 무척 고가의 몸값을 자랑하는 놈이었다.

저격총을 수납하기 위한 이중 공간을 열면서 고가의 첼로가 젖었다.

“다음에 만나면ⵈⵈ 반드시 박살내 버리겠어!”

이고르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모든 게 완벽했는데 어떻게 실패했는지 용납할 수 없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순간.

“어디를 가려고 서두르나?”

갑자기 등 뒤쪽에서 들려온 차가운 러시아 말.

“!!!”

이고르의 몸이 그대로 돌처럼 굳었다.

“올 때는 멋대로 왔는지 모르지만 돌아갈 때는ⵈⵈ 각오했어야지.”

지옥에서 막 나온 자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음성.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얼음 결정체처럼 느껴졌다.

파르르르.

이고르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힌 채 몸을 떨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 경험했다.

전투에서 수없이 사선을 넘었다.

적 저격수와 1대1로 붙은 경우도 허다했다.

0.01초 차이로 상대가 죽고 이고르가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때 순간에도 지금만큼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떨리는 몸으로 이고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헉!”

짧은 비명이 터졌다.

선명하게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눈앞에 서 있지 않았다.

마주한 공간은 허공.

놀랍게도 그는 고층 아파트 높이 허공에 버젓이 떠 있었다.

그것도 방금 제거하기 위해 타깃으로 잡았던 대상.

“말도 안 돼ⵈⵈ.”

이고르의 정상적인 사고 회로가 작동을 멈췄다.

그의 몸 어디에도 특수 장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단한 땅을 밟고 서 있는 듯한 자세로 유유히 허공에 떠 있는 대상.

한국 이름은 장태산.

정보를 알려주던 대사관 무관 동료가 귀띔했다.

계급이 낮은 자신은 정확하게 모르지만 러시아 쪽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한 귀로 흘려들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촤락.

이고르가 첼로 가방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GSH18.

총알이 18발이나 들어 있는 스페츠나츠들이 주로 사용하는 권총.

탕! 타다다다다당!

연속 총알이 발사되며 불꽃이 터졌다.

망설일 이유도 틈도 없었다.

상대에 대한 연민 한 번이 자신의 목숨과 바뀔 뿐이다.

‘넌 죽었어!’

어떻게 허공에 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방탄복도 없는 놈이 근거리에서 권총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이고르는 권총 사격 솜씨 또한 발군이었다.

하지만

카가가가가강!

허공에서 터지는 작은 불꽃을 보며 이고르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총구에서 총알은 더 이상 한 발도 발사되지 못했다.

놀랍게도 발사된 총알 모두를 튕겨내 버리는 대상.

처럭.

유령처럼 허공에 떠 있던 놈이 이고르 곁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재롱은 끝났나?”

귀에 착착 감기는 러시아어.

“넌ⵈⵈ 도대체ⵈⵈ 컥!”

이고르는 마지막 말을 미처 다 뱉지 못했다.

상당히 키가 큰 장신의 몸이 허공으로 들려 올려졌다.

멱살을 움켜잡힌 채 장태산의 무지막지한 손에 의해 끌어올려졌다.

“이제부터 질문은 내가 한다ⵈⵈ. 넌 대답만 해.”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는 저격 대상이었던 장태산.

‘으아아아! 누가 이런 괴물을 의뢰한 거야!!!’

이고르는 한마디 말도 뱉지 못한 채 숨을 컥컥대며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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