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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7장. 인연의 그물(2). (956/1,284)

967장. 인연의 그물(2).

“저 자식이 왜 여기에 있어!”

인천공항 입국장.

5번 게이트를 지켜보던 남자가 당황했다.

이곳에서 절대 마주치면 안 될 놈의 모습이 보였다.

‘왜 장태산 저 새끼가!’

리앤장 소속 정보요원은 장태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로펌에서 특별관리 대상으로 찍은 VIP였다.

어떤 형태로든 장태산과 엮여서 잘된 인간이 없었다.

웬만한 인사들 모두 장태산의 이름만 들어도 뒷걸음질을 칠 지경이다.

어디가 되었든 놈만 출현했다 하면 약속이나 한 듯 큰 사건이 하나씩 맞물려 터졌다.

최근에는 위에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절대 부딪치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그런데 오늘 하필이면 공항에 나타났다.

‘설마?’

프랑스에서 손유리의 동선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체크했다.

통신 기록도 마찬가지.

아무리 철저하게 감시했다 해도 어쩌면 정보가 샜을 수도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손유리가 마음먹는다면 장태산에게 연락할 방법은 많았다.

“…….”

그러나 눈에 보이는 두 사람의 태도가 이상했다.

분명 서로를 확인했음에도 별 다른 말이 없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두 사람도 예상치 못한 급작스러운 조우를 맞은 듯했다.

‘그런데…… 저 사람은 뭐야? 이사님이 말하던 중요한 손님?’

장태산만 나타난 게 아니었다.

아주 반갑게 손유리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키가 크고 인물이 훤칠했다.

밝은 표정이 특히나 보기 좋았다.

중요한 손님이 손유리를 마중 나갈 것이라고 이사님이 미리 언질을 주었다.

구도상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장태산이 손유리를 향해 이름을 부른 남자를 쳐다봤다.

손유리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묘한 삼각관계 구조가 연출되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오빠!!!”

그때 손유리 옆에 있던 미모의 여성이 장태산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저 계집은 쌍둥이 장주아……. 그럼 장태산은 여동생을 마중 나온 것이었어? 그런데 왜 장주아는 유리 양과 가까운 사이처럼 보이지?’

정보원은 네 사람을 번갈아 살피며 혼란에 빠졌다.

딱 봐도 장태산의 여동생은 손유리와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도저히 저들의 관계가 어떻게 된 건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스륵.

안쪽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뚜르르르르.

- 도착했나?

손대균 이사의 목소리가 바로 들렸다.

“지금 출국장에서 나왔습니다.”

- 손님은 마중 나왔고?

“이십대 후반의 청년이 유리 양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 중요한 분이야. 잘 지켜봐.

“그런데 이사님…….”

정보원이 잠시 뜸을 들였다.

손대균과 장태산 사이에 있었던 악연에 대해 정보원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 문제가 있나?

“장태산이 나타났습니다.”

- 뭐라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유리 양과 같이 장태산의 여동생이 나란히 입국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듯합니다.”

- 그런 말도 안 되는…….

전화기 너머의 손대균이 당황했다.

그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 ……일단 지켜봐. 그리고 이상한 점이 있으면 바로 보고해.

“넵!”

정보원은 짧고 확실하게 답했다.

띠릭.

통화는 끝났다.

“오빠. 인사해. 여기 이 언니는 미대 선배님이세요. 이름은…….”

“손유리…….”

장태산의 입에서 손유리의 이름이 먼저 흘러나왔다.

“어? 두 사람 아는 사이야?”

장주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짝 놀랐다.

처음 본 유리 선배를 오빠는 이미 아는 눈치였다.

오빠의 반응과 눈빛으로 보아 보통 사이는 아닌 분위기였다.

“태산 씨…….”

손유리 역시 격정에 찬 눈으로 장태산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만 들어도 아련함이 가득 담긴 음색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귀국 선물.

옆자리에 앉아 함께 많은 얘기를 나누며 왔던 장주아의 오빠가 장태산이었다.

퍼뜩 인연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주아를 봤을 때 언뜻 떠오른 사람의 그림자가 장태산이었다.

핏줄이 주는 인상의 끌림은 손유리의 마음을 쉽게 무장 해제시켰다.

문제는.

“어? 유리 씨 아는 분들입니까?”

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비행기를 타기 전 아빠에게 출발을 알릴 때 전해들었다.

귀한 분의 자제가 자신을 마중 나올 거라는 얘기였다.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다.

어린 시절 몇 번 흘려들었던 일, 할아버지가 정해 놓은 손유리의 약혼자였다.

얼굴도 전혀 모르고 당사자의 승낙이 있었던 일도 아니었기에 심적으로 부담이 갔다.

할아버지와 아빠가 손유리의 의사 따위는 묻지 않고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라면 정말 엄청난 신분이 확실했다.

“언니. 아는 분이셔?”

장주아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손유리와 남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게…….”

손유리는 입장이 무척 난처해졌다.

본 적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 집안이 정한 약혼자.

“처음 뵙겠습니다. 손유리 양 약혼자 오광재라고 합니다.”

***

- 형님! 약혼자래요! 저 여자 분이 유리 양 맞죠? 손대균 이사라는 분이 말했던 그 손유리 양 말입니다!

귀신이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고 날뛰었다.

유리를 상대로 약혼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남자를 천천히 바라봤다.

오광재라는 인물.

- 감춰진 인연의 거대한 그물이 펼쳐집니다.

- 수많은 전생의 업들이 얽힙니다.

- 새로운 업이 갱신되었습니다.

- 당신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

갑자기 봇물 터지듯 들려오는 알림음 내용에 깜짝 놀랐다.

뭔지 몰라도 오광재와 난 꽤나 엄청난 인연으로 얽혀 있는 듯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손유리의 표정으로 보아 처음 보는 사이가 분명한데도, 자신을 약혼자라고 소개했다.

한 개인의 자신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더 있었다.

- 이거…… 수상한데요. 찜찜해요.

장립도 상대의 기운을 느꼈다.

누가 봐도 시원한 마스크였지만 그 뒤에 감춰진 그림자는 보통사람은 전혀 짐작도 못 할 만큼의 어두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말로는 직접 표현하기 힘든 이율배반적인 남자 오광재.

“언니 사실이야?”

주아도 놀란 듯 확인에 들어갔다.

입술을 잘근 깨무는 손유리.

그녀도 오광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눈치였다.

“이상하게 들리실지 몰라도 유리 양과 저는 오늘 첫 대면입니다. 요즘 세상에 어울리지 않게 고리타분하게 생각되시겠지만 집안에서 정한 약혼자입니다.”

오광재는 어리둥절해 있는 모두에게 나름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역시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런데 누구신지…….”

말을 마친 오광재가 날 보며 물었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불쾌감이 짙게 비쳤다.

- 형님을 경계하는데요? 흐흐흐.

손유리를 바라봤다.

여전히 입술을 깨문 채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손유리는 처음 만났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좀 더 성숙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내 눈에는 떠날 때 모습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찌릿.

심장이 저려왔다.

한국대에 입학한 뒤에 처음으로 마음의 교감을 나눴던 여인이다.

분위기에 맞지 않게 같이 먹었던 순대 볶음이 생각났다.

내 앞에서 야무지게 먹어대던 그녀.

어느 순간 손유리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세하게 떨었다.

손대균 이사의 개입으로 인한 이별과 예기치 못한 그녀 집안과의 악연까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운명은 또 다른 시험을 안겨오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했다.

“여기 태산 씨는…….”

“우리 오빠에요. 그리고 유리 언니와는 학교 동문이에요.”

“아! 그러십니까. 하하. 전 또 오해했습니다. 두 분 표정이 심상치 않아 유리 씨 전 남자친구라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감이 좋은 녀석 같은데요?

귀신의 말처럼 감이 좋은 오광재.

내친김에 관상을 뜯어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처음 볼 때는 정말 괜찮은 상이라 느껴졌다.

누가 봐도 잘생기고 훈훈한 얼굴이었다.

보통 이런 얼굴을 두고 귀인상이라 불렀다.

하지만 개별적 관상을 특정하려 하니 뭔가 덧씌워진 듯 흐리고 명확한 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보기에는 좋은 영산 같지만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귀기가 서려 있는 악산인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보면 볼수록 섬뜩함마저 감돌았다.

이 말은 평범한 자가 아니라는 사실.

“언니 진짜 약혼자야?”

오는 사이 얼마나 친해졌는지 주아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나도 잘 몰라.”

손유리가 날 바라보며 대꾸했다.

파바밧.

그 순간 꽂히는 남자의 뜨거운 시선.

“유리 양, 모른다는 말이 제 가슴에 비수처럼 박히는군요. 유리 양 사진을 보며 긴 시간을 버텨왔습니다.”

오광재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무게감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죄송해요.”

손유리가 무심한 듯 담담하게 대꾸했다.

- 손유리 마음에 들어요. 아빠와 다른 것 같으면서 묘하게 닮았네요.

장립 귀신이 이제 관상도 볼 줄 안다.

손유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단 있는 상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제가 무례했군요.”

오광재가 서운했던 표정을 재빨리 감추고 다시 예의 바르게 나왔다.

그러나 그 순간 난 보고 말았다.

눈동자 깊은 곳을 스치는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기운.

분명 악연이었다.

“괜찮아요.”

손유리가 가볍게 대꾸했다.

라라~ 라라라~♬.

그때 손유리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듣기 좋은 피아노 선율이었다.

띠릭.

모두가 보는 앞에서 통화를 하는 손유리.

“아빠. 도착했어요.”

- 광재 군이 마중 나갔다고 들었다.

귀에 손대균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귀한 시간 내서 마중을 나오셨네요.”

- 광재 군 차 타고 집으로 와라. 저녁 준비해 놨다.

손대균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뭔가를 이곳 상황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 어렵겠어요.”

- 뭐라고? 어려워?

손대균의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태산 씨와 학교 후배를 우연히 만났어요.”

- 그래서?

날 선 손대균의 음성이 차갑게 새어나왔다.

바로 대꾸하지 않고 손유리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나를 한 번 더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동자에 강인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태산 씨 차 타고 같이 움직일 거예요. 이번에는…….”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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