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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장. 미! 라! 클! (940/1,284)

950장. 미! 라! 클!

‘긴급수술!’

황승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의과적 상식으로 판단했을 때 아이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준수 과장이 최선을 다했지만 다발성 장기 손상은 단시간 내 치료가 불가능했다.

대한민국 최고라 불리는 한국대 외과 수술팀도 손을 놓아야 할 상황이다.

이미 골든 타이밍을 놓쳤다.

아이의 배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고 입으로 피가 역류했다.

이 정도면 몸속의 각종 장기가 안에서 손상을 입어 배에 복수까지 차올랐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직 개복도 하지 않은 상황.

엑스레이는 물론 MRI 같은 측정 장비를 가져다 댈 수도 없는 상태였다.

각종 뼈들은 조각조각.

다행히 머리 쪽은 특별한 외상이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차에 제대로 부딪힌 가슴 쪽은 외관상으로 봐도 함몰되어 있었다.

갈비뼈 다수 골절과 심장은 물론 간과 폐 같은 중요 장기가 손상 입었을 확률이 높았다.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지는 아들의 상태.

꿀꺽.

바짝 마른침이 타는 듯한 목구멍을 넘어갔다.

죽음의 문턱에 선 아들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자가 자신이 되어 있었다.

아이 엄마는 정신이 반쯤 나갔다.

보통 이런 긴급수술은 보호자 동의가 필수였다.

수술 도중 사망을 하더라도 일체 민,형사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가 되는 셈이다.

대부분 보호자들이 마지막 동아줄을 붙잡듯 손을 떨며 끔찍한 상상을 애써 외면한 채로 사인했다.

황승재는 처음으로 반대의 그 입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정식으로 확인된 생물학적 부자관계가 아니었기에 법적 보호자는 될 수 없었지만 최종 결정은 자신이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응급실에 모여 있는 이들의 시선이 결정을 내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황…… 교수.”

노준수 과장이 다시 한 번 침중한 표정으로 황승재를 불렀다.

잠깐 바이탈이 잡힌 상황이지만 언제 다시 떨어질지 알 수 없었다.

가능하다면 그전에 긴급수술을 해 작은 희망의 불씨라도 살려봐야 했다.

테이블 데스는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하는 판이었다.

여기서 손을 놓는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침상에 늘어져 있는 아이가 황승재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할 뿐이었다.

“다른 수술팀은 없습니까?”

“……다들 학회에 갔어. 황 교수팀만 남았어.”

“…….”

보통 이럴 때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환자와 관계없는 팀이 수술을 맡았다.

아무리 냉혈의 외과 의사라고 하더라도 피붙이에게 메스를 들이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승재 씨…….”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던 정민희가 황승재를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에 여러 가지 의미가 복합적으로 담겨 있었다.

갑자기 아이와 조우한 황승재였다.

그런 그에게 아이의 존재를 알린 것도 모자라 생사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죽도록 싫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현재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건 황승재뿐이었다.

“내가 도와줄까?”

노준수 과장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황승재를 보며 안타까운 듯 물었다.

응급실 담당 과장도 가끔 급하면 수술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응급실 전문의들은 만능 치트키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 시도하려는 수술을 맡기기에는 무리였다.

‘지금 우리 팀은…….’

레지던트 4년차 우남우가 응급실로 급하게 들어왔다.

오후에 수술이 하나밖에 잡혀 있지 않아 의국에 남아 쉬고 있었던 우남우.

당황한 기색이 엿보이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의 호출을 받고 온 듯했다.

게다가 피를 무서워하는 고승윤이 황승재와 눈빛을 마주쳤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상황에서 긴급수술을 언급한 건 폴리클 장주희뿐이었다.

긴급수술에 들어가기에는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어느 장기를 치료해야 할지는 개복하면서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상황이 급박하면 동시에 여러 장기를 손대야 할 수도 있었다.

완벽한 팀워크와 그것을 받쳐줄 상당한 실력이 절실했다.

그러나 지금 응급실에 보이는 팀원은 우회수술 정도가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의 최대치였다.

다발성 장기 부전 치료 같은 고난이도 외과 수술은 지금은 꿈도 못 꿀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포기하실 생각이세요?”

겁도 없이 장주희가 채근하듯 물어왔다.

“넌 뭐야!”

노준수 과장이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장주희를 보며 버럭 소리를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의 발언은 적어도 레지던트 이상급만 눈치껏 끼어들 수 있었다.

그것도 우남우 정도 되는 4년차는 돼야 했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실 겁니다. 그러니 수술하세요. 세상에 어떤 부모도 자식을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지는 않아요.”

폴리클 장주희의 권고는 강했다.

누가 들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 난 아빠다!’

갑작스럽게 아이의 아빠가 되었지만 피의 끌림은 강렬했다.

결코 쉽게 놓을 수 없는 아들의 목숨.

“우남우! 바로 수술한다! 마취과 주상규 선생님과 오 간호사님 바로 호출해 줘.”

“넵! 교수님!”

“고승윤……. 네 도움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황승재는 한참 어린 후배 장주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지금 수술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그녀였다.

두 명의 레지던트보다 더 신뢰가 가는 폴리클 장주희.

“잘될 겁니다.”

장주희가 눈이 마주친 황승재를 향해 똑부러지게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그래……. 고맙다.”

다급하게 결정된 긴급수술.

“팩 더 달고 바로 테이블 태우겠습니다!”

“비켜요! 긴급입니다!”

무거웠던 침묵이 걷히며 응급실에 활기가 돌았다.

죽음 문턱에 걸친 자를 다시 살려냈을 때 더 기운이 도는 응급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움직였다.

“승재 씨…….”

다시금 정신 차리려 애쓰는 정민희도 마찬가지.

어느새 교수로, 의사로 인정받는 듬직한 기둥이 되어 있는 한 남자.

한때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이고, 지금은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응원했다.

***

- 이거 월권입니다! 마법은 이쪽 세계에서 반칙이라고요!

- 무슨 소리야. 지구에도 마법사들이 있었다고!

- 그거야 옛날 일이고 현시대에서는 반칙이야.

- 누구 마음대로? 정해진 법률 있어?

- 상식적이지 않잖아!

- 그럼 우리는! 저 사람들이 우리 실체를 안다면 그건 상식적이냐?

- 그거야 다들 죽어보면 아는 사실이고!

- 마법도 마찬가지야. 다들 마법 맛을 보면 알 수 있는 거잖아.

- 야! 잡귀!

- 왜! 쪼잔 차사!

둘 다 닥쳐줄래?

머리가 아주 복잡해졌다.

수술방이 열렸다.

“리도카인과 포플 주입했습니다. 혈압은 80에 60입니다. 잡힌 것 같지만 계속 흔들립니다.”

오후에 있을 간단한 수술을 준비 중이던 마취과 주상규 선생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새 소문이 쫙 돌았다.

지금 수술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가 절친인 황승재 교수의 아들이라고 했다.

“교수님. 혈액이…….”

꽂아 놓은 혈액 팩의 피가 쭉쭉 줄어들었다.

배가 이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는 건 이미 장기 손상이 됐다는 의미였다.

외관상 보이는 찢어진 상처 부위에서 연신 피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복부 상태가 이 정도라면 대응해야 하는 급이 달랐다.

마취는 완벽하게 이뤄졌다.

이제 남은 건 온전히 황승재 교수가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베테랑 간호사가 수술 기구 세팅을 마쳤다.

긴급수술에 맞게 배치됐다.

수술팀 모두가 긴급수술을 위해 복장을 갖추고 장갑을 꼈다.

아이의 몸 사방에는 피멍이 잔뜩 들었다.

멍이 든 작은 몸을 소독액으로 닦아냈다.

“헤드라이트.”

황승재 교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수술대 위에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음에도 헤드라이트를 또 확인하는 건 아주 작은 것까지 모두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척.

보조 간호사가 황승재 교수 머리 위에 헤드라이트를 걸었다.

“메스.”

스윽.

쥐 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 건네지는 메스.

운명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

모두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숨을 죽였다.

배를 여는 순간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기본 중의 기본인 CT도 찍지 못하고 수술방에 들어왔다.

기적처럼 바이탈이 잡힌 상태지만 어느 순간 바로 데스 테이블이 될지 아무도 몰랐다.

파르르르.

처음 접촉하는 아들의 배에 메스를 들이대는 황승재 교수의 손이 떨렸다.

“떨지 마세요. 지금은 아들이 아닌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일 뿐입니다.”

냉정하게 내 입에서 흘러나와 버린 한마디.

나에게 생전의 지식과 정보를 넘겨준 신선도 생전에 이런 경우가 있었다.

본인 손으로 교통사고가 나 실려 온 아내의 배를 가른 일이었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다.

워낙 큰 사고였다보니 수술 도중 아내는 사망했다.

그럼에도 의사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수술하다 임종을 맞이한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했던 외과 의사.

푹.

과감하게 메스가 아이의 배를 가르며 지나갔다.

스으으으윽.

짧지 않은 긴 절개가 이어졌다.

“전기칼!”

정신을 차린 듯 황승재 교수의 말투가 평소 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치지지지직.

살이 찌지 않은 어린아이라 깔끔하게 절개가 됐다.

그럼에도 훅 풍기는 지방 타는 냄새.

그리고.

꿀럭.

복막이 열리면서 안에 잔뜩 고여 있던 핏물이 왈칵 쏟아지며 흘러내렸다.

“석션! 정밀한 것보다 일단 빠른 수순이 필요합니다.”

“네!”

우남우가 힘 있게 답했다.

“…….”

피가 튀었지만 이제는 당황하지도 뒤로 도망치지도 않는 고승윤.

살짝 긴장한 듯한 모습은 보였지만 평소 그와 달리 담대해 보였다.

그를 괴롭히던 트라우마가 치료된 게 확실했다.

“혈압이 떨어집니다!”

주상규 마취의가 신속하고 빠르게 말했다.

“팩 더 걸어주세요. 피 색깔이 좋지 않습니다. 최소 8팩 이상 추가 주문하세요.”

“넵!”

8팩은 엄청난 양이었다.

성인들도 온몸의 피를 다 갈고도 남을 정도였다.

어린아이면 두 번 정도 피가 돌 만한 대량의 피.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황승재의 의지가 엿보였다.

“승압제 투여!”

배가 열리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혈액팩 교체합니다!”

수혈되는 피의 양만큼 몸 안의 피가 빠르게 흘러나왔다.

- 형님. 뭐 하십니까? 마법 쓰셔야죠!

- 지금이라도 그만두세요. 살려내면 정말 큰일 나요!

마법이 만능은 아니다.

조금 전 펼친 마법이 양에 찰 만큼 완벽하게 먹혀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인과의 법칙에 의해 마법이 반감됐다.

처음 겪는 현상이었다.

이미 정해져 있던 미래와 내가 만들어 낸 변칙 공격이 서로 상충 됐다.

지금부터는 섣불리 마법을 펼치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팍 들었다.

꿈속 할배도 커버해 주지 못할 정도의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불길함이 느껴졌다.

이 순간부터는 나의 개입이 아닌 황승재 교수가 온전히 끌고 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면서까지 판은 깔아줬다.

이제 그가 아들과 자신의 운명을 전혀 새로운 판으로 개척해 내야만 했다.

스으윽.

황승재의 손이 아들의 열린 배 속을 거침없이 누볐다.

대량 출혈 장소를 찾기 위한 바쁜 손놀림이었다.

장기 곳곳이 파열돼 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석션!”

피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장간맥 동맥.”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뭐라고?”

황승재 교수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향해 물었다.

“이 정도 출혈량이면 복부 대동맥 파열이 의심됩니다. 중앙 갈비뼈가 안쪽으로 골절되어 있습니다. 그게 동맥에 상처를 냈을 수 있습니다.”

홀린 듯 빠르게 답변했다.

“!!!”

수술에 참여하던 모두가 어이없는 시선으로 나를 짧게 훑고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황승재 교수 손은 복부 대동맥으로 향했다.

그리고.

“찾았다!”

큰소리로 터진 탄성.

“3-0!”

“넵!”

봉합사가 재빨리 전해졌다.

“뭐 해! 나 혼자 수술해? 시야를 확보해야지!”

“넵! 교수님!”

계속해서 출혈이 일어나던 곳을 찾아냈다.

수술 중에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중요한 대목이었다.

시야까지 확보되며 수술도 그만큼 수월해졌다.

3분의 1쯤 찢겨져 나간 대동맥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고승윤 핀셋으로 잡아!”

“넵!”

펄떡대는 대동맥을 잡은 채로 그대로 수술할 수는 없었다.

“장주희 캘리!”

“넵!”

빠르게 위치를 잡았다.

캘리를 통해 느껴지는 어린 생명의 맥박.

아직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는 활력 징후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죽어가는 아들의 손을 처음 잡아보던 황승재 교수의 미안함이 가득했던 손길.

그런 아빠의 손등을 어루만지던 아이의 영혼이 전하는 손길.

그 모습이 선명하게 머릿속을 떠다녔다.

생사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운명은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또 타인을 위한 죽음으로 뒤바뀌는 운명을 직접 증명하기도 했다.

사사삭.

빠르게 혈관의 단면을 꿰매가는 황승재 교수의 매끄러운 손놀림.

“혈압이 잡혔어! 와우!”

주상규 마취의가 환호성에 가까운 소리를 터트렸다.

계속해서 복부에 고이던 피가 멈췄다.

그리고 드러난 아이의 장기 상태.

“식염수!”

식염수를 조심스럽게 부었다.

그러자 피가 흘러나오는 다른 장기들의 상처가 드러나 보였다.

다행히 심장 쪽은 무사했다.

“소작기.”

작은 상처는 소작기만 한 치료기가 없었다.

간에도 약간의 상처가 보였지만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다.

“바늘 4번. 실크.”

“넵!”

수술은 숨가쁘게 진행됐다.

대동맥 출혈이 잡히면서 한층 여유로워진 수술실 공기.

- 이게…… 뭐죠? 명부책이…….

대신 오 차사의 명부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말은 아이가 다시 이승의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는 것.

- 오 차사, 이럴 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 무슨!

- 미! 라! 클!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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