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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장. 긴급 수술(2). (938/1,284)

948장. 긴급 수술(2).

‘갑자기 날? 왜?’

황승재는 안내방송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급실은 항상 긴급 환자로 붐볐지만, 대한민국 탑인 한국대 응급의학과는 그 정도는 가뿐히 소화했다.

즉 웬만한 일들은 단독으로 커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베테랑들 수십 명이 근무하는 곳이다.

그리고 레지던트들이 항상 각 의국에 대기하고 있어서 교수급인 자신을 부를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긴급 방송으로 자신을 찾을 정도라면 급박한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들어왔다는 얘기였다.

오늘은 신상주 교수를 비롯해 상당수 외과의와 레지던트들이 학회에 참여했다.

당대 학회 부회장이 신상주여서 아무래도 세를 과시하기 위해 외과팀이 움직인 것으로 보였다.

그만큼 잡혀 있는 수술도 많지 않았다.

긴급하지 않은 수술만 한 건 있는 상태.

황승재도 이 같은 오늘 스케줄을 알고 있어서 어제 마취의와 저녁에 술을 마셨다.

긴장감 돌던 평소와 다른 느긋한 아침 시간.

“교수님. 빨리 가셔야죠.”

장주희가 생각에 빠진 황승재를 깨웠다.

“어? 그래 가자.”

“뛰어가야 할 것 같아요.”

“어?”

“그런 느낌이 들어요.”

“너도 갈래?”

“네!”

장주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폴리클이라 그런 거겠지.’

수련 중에 긴급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는 외과와 응급실밖에 없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장주희가 많이 긴장한 것 같았다.

탁탁탁.

빠른 걸음으로 응급실로 향했다.

병동 구조상 가까운 거리였다.

응급실에서 바로 외과로 트랜스퍼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동선 구조가 그렇게 됐다.

“선배 뭐 해요. 교수님이 오라고 하시잖아요!”

“어? 어!!!”

장주희가 고승윤을 다그쳐 황승재의 뒤를 따랐다.

‘자식 멋대로네.’

장주희가 하는 행동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고승윤에게 호통을 쳤지만 심정 변화를 어느 정도 눈치 챈 상태였다.

확인 후 가벼운 수술에 참가시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

황승재는 갑자기 무언가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기묘한 마음의 떨림이 계속 전해졌다.

항상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외과의는 냉혈의 집도의라 불렸다.

피가 튀고 생사가 오가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야 하는 직업이었다.

설사 가족이 본인의 수술대에 올라도 한결같이 마음을 유지해야 했다.

다행인지 아직 황승재는 그런 경우와 직면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노환으로 사망했다.

한 분뿐인 어머니는 기력이 쇠해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다.

다른 형제가 없는 외동아들이었기에 걱정해야 할 피붙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사촌들은 진짜 가족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둥! 둥!

응급실에 가까워질수록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뭐지?’

타다닥.

이상한 기분에 황승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지이잉.

응급실 문이 열렸다.

“뭐 해! 빨리 지혈해! 터진 곳 잡아내란 말이야!”

“워낙 상처가 심합니다!”

“소아과 과장님 연결했어?”

“지금 내려오고 있답니다!”

“외과는!”

“레지던트 샘이 황승재 교수님을 호출했습니다.”

“다른 외과 과장들은?”

“오늘 대부분 학회에 갔다고…….”

“미치겠네!”

“과장님! 혈압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팩 아끼지 말고 투입해! 혈압 꽉 잡아!”

“AB형 혈액 재고가 부족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일을 하는 거야! 바로 은행에 연락하고 급한 대로 방송 때려!”

응급실 한쪽의 중환자 처치대.

응급의학과 전문의 노준수 과장의 호통 소리가 연신 터지고 있었다.

큰일이 벌어진 게 확실했다.

말을 들어보니 아이가 다친 게 분명했다.

일반 성인들과 달리 아이들 수술은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아직 뼈는 물론 온갖 장기가 완벽하게 자라지 않은 몸이었다.

장기들의 위치도 애매한 경우가 많아 소아과 협진은 필수였다.

“무슨 일입니까?”

황승재가 응급실의 안면 있는 응급실 수간호사에게 물었다.

“아이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습니다.”

“상태는요?”

“MODS(Multiple Organ Dysfunction Syndrome)요. 살리기 힘들 것 같아요.”

간호사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다.

“아!”

황승재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외과의인 자신을 급하게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교통사고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에 빠지면 대부분이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정도 사고라면 어지간한 수술팀은 손도 못 댄다.

지방 병원 같은 경우에는 다발성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받지 않고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중요 장기 전반이 망가져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살아남아도 후유증이 극심했다.

어찌어찌해 수술을 시작한다 해도 도중에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하나의 장기를 치료하다가 다른 장기를 상하게 만드는 상극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베테랑 의사들도 수술을 꺼렸다.

특이 아이들이 수술대 위에서 사망하면 가정과 아이가 있는 의사들도 후유증을 겪게 된다.

아이의 죽음을 목도한 부모들을 달래는 것도 쉽지 않다.

대부분 가정이 아이가 한둘밖에 없는 요즘은 더 그랬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전부인 아이의 죽음은 그들을 극한으로 몰아세운다.

결과별로 의료소송도 빈번했기에 외과 교수들은 실낱같은 가망성이 남아 있음에도 대부분 포기한다.

황승재도 일단 마음을 접었다.

수간호사가 살리기 힘들다고 말하면 99% 이상 사망각이다.

“황 교수! 뭐 해! 빨리 와!”

생명을 살리는 게 세상에서 가장 보람차다고 늘 말해온 노준수 과장이 황승재를 다급하게 불렀다.

“네!”

황승재가 노준수 과장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

그때 병상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의 시선은 초점이 아예 흐려진 듯했다.

그저 아이의 상태만 무심히 바라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황승재의 눈에 어딘가 그 여인의 모습이 무척 익숙하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민희?”

자신도 모르게 반쯤 넋이 나간 여성의 이름을 불렀다.

스으윽.

거짓말처럼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여인.

마른 눈물 자국이 볼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여인은 놀랍게도 황승재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민희였다.

***

- 저 아이가 의사 아들이야?

- 어!

- 확실해?

- 보면 몰라! 부모와 자식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천륜실이 서로에게 닿아 있잖아.

- 오! 저게 바로 천륜실이야?

- 넋이 반쯤 나간 저 여자와도 연결되어 있는 거 보이지?

- 응.

- 그래서 부모와 자식 사이를 천륜이라고 하는 거야. 하늘이 가장 강하게 매듭을 지어놓은 사이야. 전생에 가장 안 좋았던 악연이거나 그 반대의 사이지.

- 그런 이치가…….

- 좀 배워라. 신선되려면 이 정도 기초 상식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아?

- 흐흐. 네가 특별 개인 과외 해주면 되겠네.

- 저리 안 가! 왜 가까이 붙어서 음흉하게 웃고 지랄이야! 

“!!!”

오 차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정신 없는 공간에서 지금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

운명은 때로 이렇게 예기치 못하게 잔인했다.

사태를 보아하니 황승재 교수는 저 아이가 본인의 자식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저들 사이에 말 못 할 사정이 있음이 확실했다.

매일같이 병원과 숙소만 오간다고 전해진 황승재 교수다.

- 그런데…… 확실히 죽어?

- 99.99%

- 아빠가 의사라면 살릴 가능성이 있잖아?

- 불가능해.

- 왜?

- 여기 명부가 황금으로 빛나는 거 보이지?

- 어.

- 이건 저 아이가 죽어서 귀인이 된다는 거야. 이번 생은 여기서 끝내고 극락 같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보증수표 같은 거지. 그리고 저 의사를 각성시키기 위해 하늘이 안배한 비장의 카드이기도 하고 말이야.

- 잔인하다.

- 그건 인간의 관점이고.

- 그런데 극락보다 이승이 좋지 않아?

- 무슨 개소리야! 극락은 이승에서 느끼는 고통도 없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과 이별하는 고통을 네가 알기나 해?

- 오 차사! 나도 내 사랑을 위해 목숨을 던졌거든!

- 그런데 지금은 왜 이따위야?

- 뭐, 뭐가!

- 몰라서 물어. 예쁜 여자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잖아.

- 그게 견문을 넓히다 보니까……. 세상은 넓고 여자도 많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야. 정말 이 깨달음을 일찍 알았다면…….

- 꺄악! 내 손은 왜 만져!

- 내가 그랬나? 흐흐흐.

오 차사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씁쓸해졌다.

하늘이 정해 놓은 운명의 길.

내 눈에도 천륜실이 분명히 보였다.

길을 걷다가 보면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저런 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혹 자식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을 하게 되면 부모들이 즉시 감으로 알아채는 것이다.

하늘이 맺어준 가장 강력한 인연의 실.

황승재 교수와 침대 위에 누운 아이, 그리고 멍하니 서 있는 중년 여인이 그 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분명 부모와 자식이라는 증거였다.

문제는 실이 점점 빛을 잃고 약해져 가고 있다는 것.

- 우리 형님이 나서면 어떨 거 같아?

- 무슨 소리야?

- 만약 우리 형님이 저 아이를 살리고자 마음먹으면 어떻게 될 거 같냐고?

- 불가능해.

- 왜?

- 귀인은 명부에서도 특별 관리해. 여기서 사망해야만 다른 인과의 법칙이 돌아가게 돼 있어. 진선님이 제아무리 대단하다지만 명부를 비롯해 우주의 인과를 거스를 수는 없어. 만약 살리게 된다면…….

- 된다면?

- 상상하기도 싫다. 으으으!

-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

- 잡귀는 알 것 없어! 

- 잡귀? 오 차사, 그 말 뱉지 말라고 했지!

- 잡귀를 잡귀라고 하지 오빠라고 하냐?

- 그래! 오빠 좋다! 

- 너 이리와! 내가 오늘은 분명히 너를 결단코 저승으로 끌고 갈 거다!

- 그래? 그럼 나 잡아 봐라!

귀신과 차사가 응급실 천장 허공에서 술래잡기를 했다.

오난향은 그 모든 사실을 내가 듣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비유적으로 경고를 날린 셈이다.

절대 이 문제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다.

“민희야. 네, 네가 왜 여기 있어?”

황승재 교수가 초췌해진 여자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이…… 바보야!!!”

멍하니 서 있던 여자가 갑자기 소리쳤다.

후두둑 쏟아지는 여자의 눈물이 모든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

정신없이 돌아가던 응급실에 있던 모두가 화들짝 놀라 돌아볼 정도로 여자의 목소리에 엄청난 힘이 담겨 있었다.

“살려내! 우리 승민이 살려내란 말이야!”

“민희야…….”

몹시 당황하는 황승재 교수.

소리를 지르던 여자가 황승재 교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 꿇고 빌게……. 승재 씨. 우리 아기, 당신과 내 아들…… 제발 살려줘!”

“뭐, 뭐……라고???”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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