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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장. 긴급 수술. (937/1,284)

947장. 긴급 수술.

“그노마가 날 회 뜨러 온다 캐?”

“그렇게 말했습니다. 회장님.”

“클클. 오랜만에 재미난 소리를 다 듣는다카이.”

강지철은 장태산의 신변확보에 실패한 뒤 곧바로 차를 몰아 부산으로 내려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장태산은 정황 돌아가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강지철 수준에서 대응할 수 있는 판이 아니었다.

보스이자 회장한테 바로 보고가 들어갔다.

하루에 몇 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않는 보스 최철혁.

호텔에 딸린 사우나에서 새벽에 그와 대면했다.

“날은 잡았노?”

“직접 연락을 준다고 했습니다.”

“카아! 배포 쥑이네. 그노마 탐난다아이가.”

최철혁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부산 토박이 구성파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작냈다.

싹수가 보이는 놈은 죽이고 아킬레스건 정도만 끊을 놈은 직접 사시미 들고 작업한 최철혁이었다.

웃고 있지만 눈동자는 진한 살기로 번들거렸다.

“대단한 놈입니다. 이미 회장님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모. 그래야제. 그 정도 깡다구는 있으니 날 회치러 온다 한 거 아이가.”

최철혁이 은근히 승부욕을 드러냈다.

조직을 꾸리면서 꿈꿨던 소원이 강남 진출이었는데 거뜬히 이루었다.

구광필이 죽고 난 뒤 대한민국 조폭 대부가 되고 싶었던 최철혁.

이런저런 소문이 자자한 장태산과 맞짱 뜰 생각을 하니 흥분됐다.

“일본 칼잡이들을 부르겠습니다.”

“갸들까지 필요 있나?”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흐흐. 우리 강 전무 단디 쫄아삣네.”

“아, 아닙니다.”

“됐다아이가. 사내새끼가 뭐 이리 간이 작노. 니 배 좀 타고 온나.”

“네?”

“멍텅구리가 깡 키우는 데 최고아이가.”

전혀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지만 최철혁이 단단히 추궁하고 있다는 걸 강지철은 알았다.

일말의 저항은 있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강지철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회 뜨면 탕도 끓여야제. 기가 막히게 내가 탕을 끓이제. 흐흐흐.”

최철혁이 입맛을 다셨다.

진짜 사람을 죽이고 난 뒤 회를 떠 인육도 씹어 먹던 최철혁이었다.

그 정도 독기를 품고 있었기에 지금 부산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장태산이…… 후딱 온나. 내 판은 거하게 벌여 놀끼다. 흐흐흐.”

음흉하게 웃음을 흘리는 최철혁.

그의 몸 이곳저곳에 난자된 흉터가 그를 따라 악마의 미소 지었다.

***

- 형님! 그게 말이 됩니까? 저도 아는 그 분위기에서 어떻게 그런 망발을 뱉을 수 있습니까!

망발?

장립, 짧은 귀신 생활에 많이 컸다.

- 다음에 맛있는 라면을 끓여 달라고요? 그 말이 뭡니까!

장립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라면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 잡귀.

시끄럽다.

- 저도 라면의 의미는 압니다! 다만 그 타이밍이 아깝다는 거죠. 칼칼한 미녀가 모든 걸 의탁하듯 말했는데……. ‘네가 오양식품 라면으로 맛있게 끓여주는 그날을 기다릴게.’ 와아아……. 진짜 그 상황 보고 있다 제가 성불할 뻔했습니다. 형님 고자라니세요?

위기에 처한 아유라를 구해주고 그 대가로 욕망을 채우는 양아치로 남고 싶지 않았다.

아유라도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오양식품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

사실 크게 관심도 없었다.

회귀 전의 과거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2020년까지 내실 있는 중견기업으로 잘 버텼다.

오양식품 라면 특유의 맛을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형성된 상태였다.

무리한 투자를 시도하지 않아 나름 국내에서는 잘 버텼다.

아무래도 날 만난 뒤로 아유라의 운명이 많이 바뀐 것 같다.

날 뛰어넘겠다는 욕심에 과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큰 코를 다친 셈이다.

내가 발단이 된 만큼 열심히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쪽저쪽 알아보니 2000억 정도 자금이면 무리 없이 회생 가능했다.

앞으로가 더 탄탄했기에 투자금으로 생각해도 손해 날 일은 없었다.

회수한 주식을 담보로 잡으면 대주주가 될 수도 있다.

대관령의 푸른 양떼 목장주도 썩 나쁘지 않았다.

평생 먹을 라면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양식품은 한국에 꼭 필요한 기업들 중 하나다.

투자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유동성 위기만 벗어나면 원금은 보장받을 수 있다.

그리고 친구 좋다는 게 뭔가.

어차피 내 돈은 안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운 좋게 주가로 후려치는 공매도 세력을 포착했다.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기 위해 이미 작전에 돌입했다.

사채야 사채왕에게 가서 부탁하면 간단했다.

은행권도 대출만 갚으면 끝.

재무구조만 탄탄하면 재밌는 회사가 될 가능성이 아주 큰 오양 식품이었다.

“오늘 화장 좀 잘 받았나?”

거울 앞에 섰다.

전신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

화장빨, 옷빨이 제대로다.

아침이 밝자마자 밥까지 해 먹여 아유라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혹시 몰라 경호원도 붙였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변신을 시작했다.

심히 아름다웠다.

- 흐흐흐. 형님 다음 생에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미친놈! 닥쳐!

- 뭘 닥쳐요?

귀신과 노닥거리는 사이 저승사자 오난향이 나타났다.

손에 들려 있는 두툼한 각종 서류 뭉치로 보아 어제 바쁜 밤을 보낸 듯했다.

- 오 차사! 좋은 아침!

- 잡귀야, 관심 꺼줄래?

- 왜 이래. 누가 보면 모르는 사이라고 하겠다.

- 잡귀하고 차사가 어울리기나 해?

- 사랑에는 차별이 없는 법이야. 누가 알아? 다음 생에 내가 오 차사 연인이 될지.

- 꿈 깨라. 너와 사느니 내가 차사직 1000년은 더 하고 만다.

만나자마자 둘이 티격태격이다.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내저었다.

한편으로 천생연분 같아 보이기도 했다.

또각또각.

하얀 가운을 걸치고 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오늘도 수술이 잡혀 있었다.

무슨 일인지 지난밤 임성철 회장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예감에 아들과 만난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럴 때일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라 그냥 모른 척 놔뒀다.

“교수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안 돼. 넌 앞으로 내 수술실에 들어올 수 없어.”

“부탁드립니다! 최고의 외과 전문의가 되고 싶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심장파열과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저에게는 이뤄야 할 꿈이 있습니다!”

“꿈은 깨라고 존재하는 거다. 피를 무서워하면서 무슨 외과 전문의야!”

아침부터 여기도 시끄럽다.

외과 병동으로 이어지는 교수실 한쪽 복도.

고승윤이 황승재 교수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나에게 얻어터지고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엄마 귀신과의 조우로 트라우마도 말끔하게 치유된 듯했다.

그 사실을 나만 알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가 참혹했기에 황승재 교수로서는 다시 받아줄 수 없을 것이다.

“저 이제 피 안 무서워합니다! 직접 보여드릴까요?”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타다닥.

빠르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고승윤의 손에 커터칼이 들려 있었다.

자신의 팔을 긋기 위해 폼을 잡는 무식한 레지던트.

아직 덜 맞은 것 같다.

“고 선배. 좋은 말 할 때 그 칼 내려놓으시죠?”

싸늘한 톤의 고음이 터졌다.

“!!!”

내 목소리에 고승윤이 화들짝 놀랐다.

어제 그렇게 얻어터졌는데 벌써 잊으면 말이 안 됐다.

“이 새끼가 어디서 협박질이야! 너 미쳤어!”

황승재 교수가 아주 빡 돌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려야 했다.

“교수님.”

차분하게 황승재를 불렀다.

“무슨 일이야?”

날이 아직 바짝 서 있는 황승재가 까칠하게 나왔다.

“수술실에 들여보내주세요.”

“뭐라고?”

어이가 없다는 듯 날 바라봤다.

“잘못될까 걱정이세요?”

“그럼 어제 그 난리를 쳤는데 너 같으면 들여보내겠냐?”

“아니요.”

“그런데 왜 들여보내라고 그래!”

“저 의지를 보세요. 뭔가 할 것 같지 않나요?”

“뭘 해?”

“최고의 한국대, 아니 대한민국 심장외과 수술팀요.”

“하하하. 아침부터 농담이 과하다. 어이 장주희 폴리클!”

“넵! 교수님.”

“그 말 네가 책임질 수 있어? 만약 수술이 잘못되면 어떻게 할 거야?”

황승재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추궁을 해왔다.

덩치만큼 버럭거리는 포스가 장난 아니다.

그래봐야 내 눈에는 어린애들 장난으로 보일 뿐이다.

세계적 기업가와 정치 거물들과도 서슴없이 말장난하던 나다.

“책임지겠습니다.”

“책임? 네가?”

“네. 어제처럼 책임지면 되는 거 아닌가요?”

“…….”

내 말에 황승재 교수가 어리둥절하며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내 실력이다.

고승윤이 사고 치면 커버 가능하다는 건 이미 확인한 사실.

“하아……. 내 살다 살다 폴리클이 레지던트 보증서는 건 처음 본다.”

“그래서 살다보면 가끔 이벤트가 발생하는 거잖아요.”

- 그런데 그 서류들 뭐야? 오늘 처리할 것들이야?

- 거의 다 끝났어. 이제 한 건만 남았어.

- 중요한 일인 거야?

- 슬픈 일.

- 뭐가? 슬퍼.

- 저기 있는 교수 있지.

- 어.

- 그 교수가 오늘을 기점으로 폐인이 되었다가 성자가 될 거야.

어느새 또 관계가 편안해진 차사와 귀신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마침 오난향 차사가 황승재 교수를 가리키며 폐인 어쩌고 지껄였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가 봐도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소유한 남자다.

아직 죽음의 기운도 보이지 않았다.

관상에 고난상이 여러 개 두드러져 보였지만 일반인들도 대부분 그 정도 고난상은 갖고 있었다.

사는 게 호락호락 쉽다면 누구나 인생을 만만하게 볼 것이다.

-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 네가 운명을 어떻게 알아?

- 나도 대충 보면…….

- 왔다!

그때 오난향 차사가 들고 있는 서류에서 황금빛이 터졌다.

심상치 않는 기운이 감돌았다.

- 뭐가 와?

-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 성자를 위한 귀인의 등장이야!

귀인?

오난향이 황승재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때.

- 황승재 교수님. 급히 응급실로 와주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병동에 계시는 외과 황승재 교수님은 지금 급히 응급실로 와주십시오!

평소와 다른 긴급한 안내방송이 들렸다.

느낌이 싸했다.

- 안타깝네……. 본인 손으로 자기 핏줄을 거둬야 하는 운명이라니.

뭐라고???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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