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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장. 구해줘(4). (936/1,284)

946장. 구해줘(4).

‘잡았다 쥐새끼!’

항구파 보스 오른팔 강지철은 눈앞의 장태산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보스의 조카를 괴롭힌 대가로 처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과거 통영 조직원 실종과도 연관되어 있는 장태산.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었지만 쉽게 대면할 수가 없었다.

집 앞은 항상 경비가 심했다.

오고 가는 동선도 종잡기 힘들었다.

수시로 해외 출장을 나가는 바람에 동선 쫓기도 힘들었다.

부산과 달리 서울은 도로부터가 복잡했다.

작업할 조직원들을 진작 구해 놓았지만 대상을 만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운 좋게 오늘 하늘이 기회를 줬다.

겁도 없이 항구파가 접수해 관리하는 강남 룸살롱에 직접 걸음한 장태산.

깽판을 치고 있다는 말에 휘하 행동대원들을 모조리 끌고 왔다.

경찰이 출동한 상태였지만 상관없었다.

조직으로부터 돈을 받고 특별히 관리해 주는 경찰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동석해 있는 오 경위는 부패 경찰 중 대표적인 한 명이다.

“저를 아세요?”

두려움을 상실한 장태산이 도리어 자신을 아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죠. 제가 오늘 같은 만남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강지철은 능숙하게 표준어를 구사했다.

수준 낮게 반말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쏘아붙여지는 눈빛은 독사처럼 차갑고 예리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실까요?”

“차차 알게 될 겁니다.”

강지철은 한껏 여유를 부렸다.

“선배님, 바로 지원 요청할까요?”

이 순경이 일단의 조폭들 등장에 발발 떨며 오 경위의 의견을 구했다.

“가만히 있어!”

오 경위는 찌그러져가던 기운을 다시 슬그머니 쳐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눈치 없는 후배가 바보 천치처럼 보였다.

‘이 깡패 새끼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유 상무가 느닷없이 나타난 일단의 무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걸 유심히 살폈다.

딱 봐도 고위 조폭이라는 의미였다.

분명 강간죄 신고는 접수됐다.

강남경찰서 관할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성범죄 신고가 접수됐다.

술에 취한 젊은 청춘 남녀들 사이에 일상으로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태반이었다.

야근 근무자들 모두에게 오늘 같은 일은 이골이 나 있었다.

대충 상황을 봐서 몇몇 사건은 적당히 무마시키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얽히면 피차 피곤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오늘같이 조폭들이 관리하는 이런 대형 사업장은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었다.

대부분이 장장한 윗선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 만큼 때때마다 적지 않은 떡값이 뒤로 들어왔다.

프로 조폭들은 그대로 놔두면 알아서 지기들끼리 해결했다.

오늘 건도 적당히 사건을 무마하고 두둑하게 용돈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상하게 사건이 흘렀다.

재수 없게도 강간 신고자가 변호사였다.

말투와 기세로 보아 진짜 경찰청장과 인맥이 있는 놈으로 보였다.

이런 분위기라면 눈치껏 행동을 잘해야만 한다.

퇴직이 몇 년 남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골이 아픈데 짜증나는 일들이 겹치고 있다.

갑작스럽게 봉고차 한 대가 나타났고 거기서 진짜 조폭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이 정도면 어떤 형태로든 언론에 노출되기 딱 좋은 장면이다.

심각한 갈등의 기로에 선 오 경위.

떡값이 들어오는 쪽 편을 들어야 할지 변호사를 옹호해야 할지 결단이 필요한 시점.

“여자분은 놔두고 저와 같이 가실까요?”

강지철은 대놓고 장태산에게 동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 말은 여성의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면 따라오라는 뜻.

“나 비싼 남잔데. 능력이 될라나 모르겠네? 그리고 눈앞에 민중의 지팡이 분들은 안 보이십니까? 대놓고 납치 협박하는데 가만히 계실까요?”

여유를 부리며 실실 웃는 장태산.

옆에 출동해 있는 경찰을 물고 늘어졌다.

‘이 새끼 겁대가리를 상실했군.’

애초 강지철 눈에 경찰은 들어오지 않았다.

유 상무가 룸살롱을 통해 관리하고 있는 놈들이라는 보고를 받은 상태였다.

유 상무만 통해도 서장까지 커버가 됐다.

보는 눈도 적고 부하들로 장막을 쳐서 끌고 가면 그만이었다.

‘오늘 반드시 끝장낸다!’

항구파 최철혁의 인내심은 생각보다 얕았다.

당장 이 기회를 날리면 강지철 역시 멍텅구리배를 타야 할 수도 있었다.

“얘들아!”

“넵! 전무님!”

“고객 모셔라.”

“넵!”

명령이 떨어졌다.

“형씨. 조용히 같이 가이소.”

“흐흐흐.”

항구파 조직원들이 사방을 포위하며 장태산을 둘러쌌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도 경찰은 신경도 안 썼다.

‘X발! 이 새끼들 뭐 하는 거야!’

하지만 속으로 오 경위는 당황했다.

그때.

타앙!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모두 멈춰!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쏜다!”

예상치 못한 순간, 이 순경이 총을 꺼내들어 조폭들 다리를 겨누었다.

“아! 이 경찰 누님 한 성깔 하시네?”

“짭새 누나! 그거 맞으면 아프기나 합니까?”

“마! 함 댕겨 보이소.”

“클클클.”

사람의 피를 보통으로 봐온 항구파 행동대원들은 총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순경! 뭐 해! 어서 총 내려놓아!”

오 경위가 놀라서 소리쳤다.

“경위님! 이 자식들 지금 변호사님을 납치하려고 하잖아요! 어서 본부에 지원 요청하세요!”

이 순경은 꿋꿋하게 총을 겨눈 채 자리를 지켰다.

이래 봬도 어린 시절부터 경찰을 꿈꾸며 살아왔었다.

연약한 시민을 보호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훌륭한 여자 경찰.

말단 순경으로 시작했지만, 언젠가는 경찰 총장이 되리라 포부를 다졌다.

이제 시작인 지점에서 양심을 버릴 수 없었다.

성적이 좋아 강남으로 첫 발령이 났다.

그러나 부풀었던 꿈과 달리 복병을 만났다.

강남경찰서는 말로만 듣던 타락한 경찰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곳이었다.

짧은 근무기간 동안 목격한 유흥업계와 경찰들의 유착.

힘든 경찰들의 업무에 대한 위로의 떡값이라고 선배들이 그럴싸하게 꾸며댔다.

또 직접 연루돼 있지 않더라도 그걸 나눠 회식비나 끼리끼리 만나 나눠 분배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자괴감이 자주 들던 이 순경.

오늘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평범한 일반 시민이 범죄 행위를 신고했음에도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내가 지켜줄 거야!’

이 순경은 깡패들 앞에서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바로 그때.

부아아아아아앙.

멀리서부터 거친 엔진음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이익.

그리고 깡패들이 타고 온 봉고차 앞뒤를 막으며 멈춰선 검은 대형 SUV 차량 두 대.

미국 영화에서만 보던 최고급 수입 대형 SUV차량이었다.

덜컹.

운전석 문과 뒷문이 동시에 거칠게 열렸다.

“회장님!! 호위해!”

“넵!”

순식간에 차에서 우르르 내리는 일단의 무리들.

대략 봐도 약 40여 명에 달하는 건장한 남자들이었다.

새카만 슈트 차림의 깔끔한 모습을 한 체격이 좋은 남자들.

소위 대통령을 경호하는 이들보다 더 날렵하고 강해 보였다.

그 무리가 순식간에 장태산의 앞뒤는 물론 깡패들까지 에워싸고 원형으로 포위했다.

“이게 무슨!”

“뭐, 뭐여!”

“너희들 어디 조직이야!”

기세를 부리던 항구파 조직원들이 당황하며 움찔했다.

덩치가 산 만한 그들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같잖다는 시선으로 항구파 조직원들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경호원들.

“보스! 늦었습니다.”

“괜찮아요. 이 정도면 시간 딱 맞춰서 왔습니다.”

경호원들은 장태산을 두고 자연스럽게 ‘보스’라 칭했다.

‘보스!’

강지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썩어들어갔다.

장태산과 주변 인물들과 그 가족들을 보호하던 경호업체 직원들이 확실했다.

그들 모두가 특수부대 출신들로 구성돼 있었다.

사시미나 휘둘러 대던 잔챙이 조폭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자들이었다.

저벅.

호위무사들을 병풍처럼 세운 장태산이 강지철을 향해 다가왔다.

“최철혁한테 가서 전해.”

항구파 보스의 이름을 분명하게 언급하는 장태산.

톡톡.

손으로 강지철의 볼을 두 번 가볍게 터치했다.

강지철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으으!”

장태산의 눈을 보는 순간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사람 목숨 여럿 거두어 본 강지철보다 더 독하고 진한 죽음의 냄새를 풍겼다.

“조만간 회 한번 시원하게 뜨자고.”

사람 같지 않은 미소로 씨익 웃는 장태산.

“이 순경님. 오늘 멋있었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아직도 총을 들고 반쯤 넋이 나간 채 서 있는 이 순경을 향해 엄지척을 해 보였다.

‘내가 멋있어?’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 이 순경.

왠지 모를 뿌듯함이 그녀의 심장에 충만하게 들어찼다.

***

“아…….”

아유라는 나른한 꿈에서 막 깨어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요근래 계속 쌓였던 스트레스가 모두 개인 것처럼 몸이 무척 가벼웠다.

오랜만에 잠도 푹 잤다.

유난히 푹신한 침대와 낯설지만 향기로운 체취가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었다.

“!!!”

비몽사몽하던 아유라는 순간 눈을 번쩍 떴다.

순간 자신의 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여기는…….”

처음 보는 낯선 공간이었다.

상당히 넓은 방.

은은한 조명등에 부드럽게 드러나 보이는 광경.

눈을 뜬 아유라는 킹사이즈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에어컨은 적당한 온도로 가동되고 있었고 알맞은 온도와 습도도 유지되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큼지막한 명화는 빛깔부터 진품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엔틱 스타일의 화장대가 눈에 들어왔다.

기초화장품 세트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장태산을 만나고…….”

기억이 끊어졌다 다시 이어졌다.

대학원 선배라며 아유라에게 접근한 홍영기.

투자회사 팀장이라는 명함이 그를 신뢰하게 만들었다.

지도 교수님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아유라는 비지니스 파트너로 제법 마음에 들었다.

오양식품의 나아갈 방향을 명확하게 짚어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아유라의 욕망을 제대로 짚었다.

그는 이미 예견된 은인처럼 이것저것 각종 자료를 눈앞에 내밀었다.

아유라는 홀린 듯 그에게 빠져들었다.

경영권을 획득한 아빠를 설득해 해외 사업을 추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뭔가 이상했다.

홍영기 선배가 컨설팅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흑자가 나야 맞았지만 계속 적자만 발생했다.

초기 투자 때문에 담보가 들어가더니 어느 순간 사채를 빌려 쓰게 됐다.

몇 차례 반복되던 재정 문제는 탄탄하던 회사를 밑바닥까지 추락시켰다.

그때는 이미 후회하고 돌이키기에 늦은 시점이었다.

은행권에서 대출 연장 불가 통보를 받기에 이르렀다.

사채업자들도 기다렸다는 듯 협박을 가해왔다.

계획했던 기업의 미래가 암울해지자 아유라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즈음 홍영기가 아유라를 찾았다.

그가 제안한 말만 잘 들으면 기업은 물론 자신도 살 길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장소가 내키지 않았지만 그가 찾는 룸살롱으로 찾아갔다.

결과는 그곳에서 몹쓸 짓을 당할 뻔했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마지막 힘을 짜내 저항하고 문밖으로 뛰쳐나오다 장태산을 만났다.

‘구해줘’

그 한마디를 내뱉은 후 정신을 잃었다.

“설마?”

아유라는 자신의 몸이 멀쩡한지 더듬더듬 확인했다.

지난 밤, 아무 일도 없었다.

스르륵.

침대 위에서 내려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넓은 거실이 문틈으로 보였다.

클래식하면서 모던한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뤘다.

주인의 단아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인테리어였다.

자칫 촌스러운 조합인데 곳곳에 걸려 있는 명화들과 그랜드 피아노가 전체 인상을 중화시켰다.

예술적 감각이 탁월한 주인의 안목이 엿보였다.

“어? 벌써 일어났어?”

“장태산!”

커피 한 잔을 들고 창밖을 보고 있던 장태산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아유라를 돌아봤다.

아유라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반갑게 불렀다.

“왜? 줄리엣.”

“…….”

줄리엣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아유라는 어쩔 수 없이 얼굴이 화끈거렸다.

철없던 대학교 신입생 시절의 일이 떠올라서였다.

“어제 일 고마워.”

“커피?”

대답 대신 커피를 묻는 장태산.

“응.”

아유라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태산이 다정하게 다가와 커피포트에 내려놓은 커피를 잔에 따라줬다.

갓 내린 듯한 커피의 고소하면서 풍미 가득한 향이 거실에 은은하게 퍼졌다.

“마셔. 정신이 들 거야.”

아유라는 따뜻한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 입에 물었다.

창밖으로 한강이 훤히 내다보였다.

“집 좋네…….”

아유라도 이런 집은 처음이었다.

핫하게 뜨고 있는 한강이 전면에 보이는 대형 빌라였다.

“돈 벌어서 한 채 구입해.”

“……돈 없어.”

“왜 오양식품 탄탄하잖아.”

“몰라서 묻는 거 아니지?”

“모르는데? 무슨 일 있어?”

장태산의 능청스러운 물음에 아유라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신입생 시절부터 어떤 이유에서인지 번번이 장태산에게는 깨지기 일쑤였다.

무리하게 해외사업 파트를 확장하려 했던 이유 중에는 장태산도 있었다.

그보다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무언가를 멋지게 성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룻밤 꿈처럼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저기 태산아…….”

아유라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이제는 필요가 없었다.

익히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는 장태산의 사업 능력.

“왜?”

“나…… 부탁이 있어…….”

아유라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운을 뗐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장태산에게 거부당하면 사채업체에 회사는 넘어가고 자신의 신변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말해. 우리 친구잖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태산.

“우리 회사 좀 구해줘!”

아유라는 안간힘을 짜내 겨우 입을 열었다.

뻔뻔한 부탁인 건 잘 알았다.

하지만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이었다.

지금 장태산은 아유라를 구해 줄 유일한 신이나 진배없었다.

“구해 달라…….”

장태산이 말끝을 흐리며 생각에 젖어들었다.

잠깐의 몇 초가 긴 몇 시간처럼 정말 느리게 흘러갔다.

“구해줘! 그럼 어떤 일이라 해도 다 할게!”

아유라는 그만큼 절박했다.

“좋아. 구해줄게.”

“저, 정말?”

“그 대신…… 조건이 있어.”

아유라를 똑바로 바라보는 장태산의 두 눈.

쿵쿵! 

조건이라는 말에 아유라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아유라도 알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있을 수 없었다.

입술을 잘근 깨물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아유라.

그녀의 두 귀에 장태산의 뜨거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내 조건은 말이야…….”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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