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3장. 긴급 회수. (923/1,284)

933장. 긴급 회수.

“장주희를 써드에?”

“네! 교수님.”

“미친 거 아냐? 그러다 의료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질 건데!”

신상주 교수는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에 찾아온 치프 조원식의 보고에 불같이 화를 냈다.

자칫 밖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개망신이다.

대한민국 최고라 불리는 한국대 병원에서 폴리클이 외과 수술에 메인으로 참여했다.

자격증이 있는 인턴이라면 어느 정도 명분이 서겠지만 실습생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잘못해 수술이 실패했다면 담당 집도의는 물론 외과 과장인 자신에까지 그 파장이 미칠 일이었다.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인 신상주 인생에 있어 오점이 될 뻔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부원장 승진 심사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다른 과의 과장들에게 빌미가 될 수도 있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답니다.”

“도대체 누가 써드 자리에 있었어!”

“1년차 고승윤입니다.”

“고승윤?”

“네.”

“그 자식……. 기어이 사고를 쳤네. 쯧쯧.”

신상주가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화를 크게 내지 않았다.

고승윤의 아버지가 자신의 동기일 뿐만 아니라 명망 있는 의사 집안이었다.

게다가 한국의협의 중요한 직책을 맡은 임원이기도 했다.

또 한국대 의대 총동문회에서는 감사 역할을 맡고 있다.

고승윤 할아버지 또한 외과 협회의 회장을 지낸 막강 인사다.

그런 까닭에 고승윤의 자질이 한참 모자람에도 신상주는 군말하지 않고 받아줬다.

부원장 승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이들이 모두 그 집안사람들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치프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큰 일이 될 만한 사건이 분명하지만 다행히 수술은 완벽하게 끝났다.

꼬투리를 잡기 위해 경과를 살펴봤지만 후유증은 따로 없었다.

수술 예후도 대단히 좋았다.

그만큼 수술팀이 완벽했다는 뜻이다.

“기다려.”

“네?”

“다시 한 번 말해줘? 기다리라고!”

“넵!”

‘아직은 때가 아냐.’

괜히 건드려 봐야 본인의 치부를 긁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승재 놈 성격에 다른 사고를 칠 게 확실해. 그때 친다!’

어차피 한 번은 손을 보려고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황승재의 명성이 은근히 자꾸 올라갔다.

어려운 수술에 과감하게 도전했고 결과적으로는 계속 성공했다.

심장내과와 협진해 심장이식도 성공시켰다.

펠로우지만 조만간 독립해 과장이 될 싹수가 보였다.

위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신상주에게는 그야말로 계륵이었다.

이쯤에서 정리가 필요했다.

본인 그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게 훤히 보였다.

‘선택은 단 하나. 나에게 무릎을 꿇거나……. 그게 아니면 나가야지.’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대 병원을 삼키는 게 목표인 신상주.

정권 인사들과도 돈독하게 친분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번에 다른 때보다 더 느낌이 좋았다.

“나가봐.”

“수술실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치프가 나갔다.

췌장 말기암 환자 수술이 잡혀 있었다.

어차피 수술이 잘 끝나도 1년도 버티기 힘들겠지만 본인이 간절히 원했다.

돈이 넘치는 강남에 빌딩을 갖고 있는 부자.

베푸는 데 인색했지만 주색잡기와 세입자들 갈구는 재미로 살아가던 자였다.

신상주도 익히 알고 있는 악덕 부자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며 울면서 신상주를 찾아왔다.

해외로 나가 치료를 받고 싶어도 답이 없었다.

주변 장기로 암 세포가 전이된 상태.

그럼에도 쥐고 있는 재물과 삶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수술이 제 마지막 소원이라며 양손에 거금을 들고 찾아왔다.

못 이기는 척 수술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수술이 끝나도 연이어 예약되어 있는 지독한 방사능 치료.

‘나 같으면 그냥 죽고 만다.’

의사들도 4기가 넘는 전이암 케이스는 치료를 권하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수술을 해도 별 진전이 없었고 소용도 없었다.

죽을 때까지 더 극심한 고통을 느낄 뿐이었다.

안락사가 인정되지 않는 만큼 최대의 치료 방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건 모르핀 투약뿐.

신상주는 다짐했다.

‘굵고 오래 살 거야!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는데!’

시시때때로 빼먹지 않고 최첨단 의료기기를 통해 검진을 받아왔다.

“장주희. 네년도 기다려라. 황가 놈과 같이 보내주마! 흐흐흐.”

머릿속에 그려지는 복수 방법.

한국대 외과 과장의 무서움을 뼈에 각인시켜 줄 날이 멀지 않았다.

***

- 반칙입니다! 어떻게 죽은 자를 살리고도 포인트를 쌓을 수 있죠? 진선님은 특혜를 받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저승사자가 억울한지 공평을 외쳤다.

상황이 웃겼다.

공평은 아무 때나 외치는 게 아니다.

공부를 해야 할 시점에는 펑펑 놀다가 사회에 나와 매서운 맛을 맛본 후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외치는 자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놀고 싶은 욕구를 참아가며 피 땀 흘려 공부해 자기 계발을 한 이들과 똑같은 대우와 소득을 얻으려는 마음 자체가 불공평한 처사인 것이다.

그 사실을 너무 잘 아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여전히 공부에 대한 잔소리를 퍼부을 수밖에 없다.

완벽한 평등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불가능하다.

내가 흘린 땀방울이 그 증거일 수밖에 없다.

나의 회귀된 이 삶도 죽음으로써 얻은 기회였다.

노량진 대로 한복판에서 아이 하나를 살리려고 뛰어들었다 죽었다.

누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때 분명 난 내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날려 아이를 구했다.

상제님도 입을 꾹 닫았다.

회귀 뒤에도 난 타인을 돕고 불의에 눈감지 않았다.

모든 계산은 정확했다.

오늘도 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주희의 탈을 뒤집어썼지만 이 인상의 주인은 의사 지망생이다.

그러니 환자를 살리는 게 업이다.

죽어가는 자를 보고 무시한다면 그건 의사가 아니다.

- 어허. 일개 저승사자가 어찌 형님의 큰 뜻을 알리오. 오 차사는 입을 다무시오!

장립이 내 능력을 직접 확인했다.

저승사자도 꼼짝 못 하는 걸 알고 제대로 라인을 정했다.

-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왜? 왜? 왜? 위에서는 아무 말이 없는 거죠? 이 정도 사건이면 지금쯤이면 감찰 사자가 나와야 하는데.

오난향 사자는 머리가 복잡해 보였다.

나도 그것까지는 모른다.

그저 마음은 평온하고 당당했다.

“시원하네.”

수술실에서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옥상에 바람 쐬러 올라왔다.

오늘 실적은 다 채웠다.

우남우 레지던트가 쉬라고 명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폴리클 일과를 마쳐도 된다고까지 했다.

4년차 레지던트의 말이니 무시할 수도 없었다.

표표히 머리칼을 날리며…….

“올! 완전 내 스타일인데?”

“각선미 봐라.”

“의사야?”

“폴리클 같은데?”

“말 좀 걸어봐라. 술 한 잔 진하게 하자고.”

“흐흐흐. 보는 것만으로도 죽인다.”

미치겠다.

남자들이 왜 늑대라는 소리를 듣고 사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의사 가운 아래로 보이는 매끈한 종아리만 보고도 침을 질질 흘렸다.

닭살이 돋았다.

평소 경험하지 못한 불쾌하고 낯선 시선.

병원 의사들만 출입할 수 있는 병원 옥상에서 담배를 피며 커피를 마시던 남자들이 모두 날 봤다.

음흉한 놈들!

여자의 몸으로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을 여실히 느꼈다.

- 저것들도 남자라고……. 걸어 다니는 위패들 주제에.

갑자기 싸늘한 말을 퍼붓는 오난향 차사.

걸어 다니는 위패라는 말이 뒷통수를 한 대 갈기는 듯했다.

- 걸어 다니는 위패? 그게 무슨 의미야?

- 뭐긴 뭐야. 저 살아 있는 시체들 말하는 거지.

- 살아 있는데 왜 시체야?

- 나에게는 위패야. 육신만 빼면 목에 위패를 차고 다니는 미래의 고객들일 뿐이거든. 100년도 못 사는 것들이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꼴들이란…….

오난향 차사의 말에 공감했다.

100년도 살지 못하면서 다들 타인의 행복을 빼앗으며 잘 먹고 잘 살려는 자들이 넘쳤다.

남들과 비교하며 세상을 원망하느라 바쁜 이들과 같았다.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기운을 담았다.

“!!!”

살기를 느낀 듯 깜짝 놀라는 젊은 의사들.

“오, 오늘 날이 춥네.”

“오후에 수술이 있었네.”

“아우! 잘 쉬었다.”

살기를 피해 슬금슬금 도망을 쳤다.

여의사들은 없었다.

올라오는 순간 남의사들에게 먹잇감이 된다는 걸 아는 것이다.

“사내새끼들이 주둥이만 살아 가지고. 쯧쯧.”

뒤꽁무니 빼는 꼴을 보며 혀를 찼다.

- 형님도 남자잖아요.

난 달라.

- 뭐가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잡귀. 너 내가 만나는 여자들 못 봤어?

나 인싸다.

푹! 잡귀의 심장에 대못을 박았다.

- 제가……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하도 여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길래 이번 기회에 여성으로 살기로 정한 줄…….

닥쳐! 잡귀!

오 차사!

- 넵! 진선님!

저 자식 잡아가면 포인트 쏜다!

곁에 차사가 있으니 정말 편했다.

- 정말요?

- 형님! 제가 충성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한국 남자들 말로 충성을 증명할 수 있다면 군대 두 번 다녀 올 수도 있습니다!

어느새 한국에 대해 많은 걸 접수한 잡귀가 진심을 다해 떠들어댔다.

그 정도 각오라면 한 번 눈감아줄 수 있다.

다만.

오 차사. 저기…… 저 영혼은 뭐야?

옥상 한쪽에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 영혼이 보였다.

무언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영혼.

- 외출증 받은 영혼입니다.

- 그걸 어떻게 알아?

- 머리 주변으로 파란색이 감돌잖아. 그게 외출증이야.

- 그렇구나.

- 그런데…… 대가가 만만치 않은데…….

- 대가?

- 저 정도 외출증 기운이면 적어도 100년 정도는 환생도 못 하고 저승에서 차사직으로 근무해야 할 텐데.

오 차사가 구석에 있는 영혼을 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다시 한 번 영혼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그녀 머리 주변으로 파란색 빛이 보이긴 했다.

그리고 여자 영혼이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멍하니 옥상 구석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레지던트.

- 앗! 긴급 회수 명령이 하달됐습니다!

갑자기 놀라는 오 차사의 목소리.

타다닥!

그사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레지던트 놈이 난간 쪽으로 달려갔다.

찰나의 순간 날 간절하게 쳐다보는 여자 영혼.

서늘한 느낌이 확 왔다.

그리고!

“멈춰! 이 개새끼야!!!”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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