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1장. 수술실에서(4). (921/1,284)

931장. 수술실에서(4).

스윽.

손 소독을 마치고 양손을 들어올렸다.

대기하고 있던 보조 간호사가 수술장갑을 끼워주었다.

개흉을 하는 만큼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작은 실수 하나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됐다.

‘산만하군.’

황승재는 수술실 공기를 감지하고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수술실은 흉부외과 집도의에게 진정한 업무 공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한눈에 모든 걸 파악했다.

다른 날 같지 않게 뭔가 이질적인 기운이 감지됐다.

단원들 같은 수술팀의 오늘 컨디션과 상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단기간 공을 들여 완성한 수술팀.

과장급이 아니다 보니 베스트들을 섭외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모아 놓은 팀이다.

다행히 팀원 모두 인성이 좋았다.

마취과 전문의도 펠로우급인데 실력이 좋았다.

수술에 투입된 간호사도 베테랑이다.

또 다른 손이 되어줄 레지던트 4년차 우남우도 믿을 만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고승윤……. 아직도 적응을 못 했군.’

외과보다 정신과가 더 잘 어울리는 레지던트 1년차 고승윤.

할아버지 때부터 외과 전문의를 배출한 의사 집안의 인재였다.

공부 머리는 누구보다 좋았다.

학과 시절이나 인턴 때도 고승윤의 성적은 누구보다 우수했다.

다만 외과와 상성이 맞지 않았다.

문제는 피를 무서워한다는 것.

몇 번의 수술 참관 때 보였던 피에 대한 고승윤의 트라우마.

외과의로서는 최악의 증상이었다.

그러나 결국 트라우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 바라는 대로 외과 레지던트가 됐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만큼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2년 차부터는 본격적으로 메스를 들어야만 한다.

야간에 응급실 콜이 오면 긴급 수술에 투입되는 일도 다반사다.

외과 레지던트는 한국대라고 해도 인원이 풍족한 수준이 못됐다.

오늘 수술 방에 들어온 것도 순차적으로 배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 혼을 내놓아 주눅이 든 고승윤.

부드러운 눈매와 곱상한 얼굴은 뼈를 가르고 피가 튀는 외과의와 전혀 매칭이 되지 않았다.

‘사고만 치지 말아라.’

써드에 섰기에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보조적인 잡일만 잘 처리해 주면 된다.

‘장주희.’

주눅이 든 고승윤과 달리 당당하게 서 있는 장주희.

여자에 무관심하다시피 한 황승재도 눈길이 저절로 갔다.

외모는 한국대 의대에서는 놀랄 만한 정도지만 다른 곳에 가면 가끔 볼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장주희 고유의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가 남달랐다.

독특한 분위기와 결합된 장주희만의 색깔은 품격이 달랐다.

그에 어울리는 묘한 카리스마.

저 정도라면 정식 의사가 되는 순간 환자들을 리드할 게 자명했다.

성격 약한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장주희는 외과와 잘 어울렸다.

특히 외과는 수술 동의서를 받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외과 수술은 자칫 작은 수술에서도 목숨을 잃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죽음에 대한 면책권을 설명하고 사인을 받는 일은 황승재도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장주희는 주의력도 상당히 좋았다.

직접 살핀 레지던트들도 잊고 있던 환자의 병력에 대해 단 한 번의 관찰로 알아냈다.

말은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판단이다.

의사도 인간인지라 만능일 수 없다.

환자의 가족력과 현재 병력 및 생활 습관은 그만큼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됐다.

그런 것들을 잘 파악해 낸 장주희는 이미 합격점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깡도 넘쳤다.

한국대 병원 외과의 절대 권력자나 마찬가지인 신상주 교수를 아침부터 엿 먹였다.

가벼운 대화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하극상을 허용하지 않는 외과에서는 큰일이었다.

황승재도 신상주 교수에게 그 정도로 함부로 대꾸하지 못했다.

직속 펠로우라지만 그가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걸 알고 있어서 더 그랬다.

황승재와 성향이 맞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직접 경험한 신상주 교수의 야비함과 저열함은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강직한 장교 출신의 부친을 두었던 황승재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안 가훈이 정직이었다.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 몇 번 부딪친 경험도 있었다.

환자의 생명보다는 자신 파트의 수술 성공률에 더 집착했다.

수시로 타박과 구박을 받았지만 처지가 처지인 만큼 많이 참았다.

황승재의 꿈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흉부외과 전문의였다.

대한민국에서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 드물었다.

신상주는 생각보다 능력이 좋았다.

그의 밑에서 이를 악물고 참으며 펠로우까지 올랐다.

당시 자존심은 모두 내려놓았다.

그에 비하면 황승재는 아직도 명성이 많이 부족했다.

차근차근 실력과 명성을 쌓아 올려 부조리한 한국대 병원의 적폐들을 부셔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돈이 아니라 인술이 정의가 되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황승재가 꿈꾸는 진짜 의술이었다.

“환자 상태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으며 황승재가 물었다.

본격적으로 연주가 시작될 타이밍.

한 번 메스를 들면 멈출 수 없다.

“트로포닌 수치가 35로 증가했습니다. LAD가 discrete 91%…….”

레지던트 우남우가 수술 전 최종 환자 상태를 보고했다.

“상태는 예상대로군.”

개흉을 해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환자 상태는 심각했다.

조금만 응급실에 늦게 도착했거나 지금 바로 수술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100% 사망이었다.

‘환자가 알려나 모르겠네. 병아리가 자신을 살렸다는 걸.’

보고를 들으며 황승재는 담담히 수술복을 입고 대기 중인 장주희를 힐끗 쳐다봤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이 귀여웠다.

‘훗……. 나도 아직 남자인가?’

과거 뜨겁게 시작했던 첫사랑과 인연을 다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한국대 미대에 재학 중이었던 그녀.

여느 연인들처럼 첫눈에 반했다.

예과 시절만 해도 그녀에게 올인 했었다.

그녀가 마음을 열면서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됐고 연인이 됐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행복의 유효기간은 무척 짧았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공부 지옥인 본과에 올랐다.

공부밖에 모르던 자신과 달리 그녀는 섬세하고 예민한 예술학도였다.

10년 간 그녀를 힘들게 했다.

배려가 부족한 탓이었다.

자신을 이해해 달라며 매일처럼 큰소리를 치는 게 다였다.

해바라기처럼 자신만을 바라봤던 그녀였지만 끝내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

심장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는 데 시간을 쏟느라 더 소홀해졌다.

전문의 자격증을 획득한 뒤 한시름 놓고 있던 어느 날.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그녀는 홀연히 편지 한 장만 남기고 해외로 떠나버렸다.

쉬는 날이면 술잔을 기울였고 그때마다 눈물을 쏟았다.

솔직히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해준 게 너무 없어서 더 마음이 아팠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그녀는 이미 곁을 떠난 지 오래였다.

힘든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 자신을 사랑해 준 그녀의 미소와 격려로 버텼다.

‘민희. 잘 지내고 있지?’

잠시 옛사랑을 추억하는 황승재.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주 선생. 바이탈은?”

“마취 OK! 바이탈도 OK!”

수술대 옆에서 마취와 바이탈을 체크하고 있던 마취과 전문의 주상규.

손가락을 들어 사인을 보냈다.

“수술 전 말한 대로 혈관 확보는 내흉동맥과 허벅지 복제정맥을 사용한다. 시작.”

황승재가 본격적으로 수술에 들어갔다.

오늘 막히기 일보직전인 심장 관상동맥 중 두 개를 교체해야 한다.

스윽.

소독이 된 수술 부위가 예리한 메스 끝에 의해 가볍게 절개됐다.

“…….”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수술.

팽팽한 긴장감이 수술실 공기를 묵직하게 물들였다

***

- 그게 무슨 말이야? 명부색이 약해지다니? 혹시 초짜 아니야?

- 무슨 개소리야! 이래봬도 지금껏 약 1,287건의 영혼을 무사히 명부 하나로 인도한 베테랑이야!

- 그 정도가 많은 거야? 다른 베테랑들은 얼마나 했는데?

- …….

오 차사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도 초짜인 것 같다.

그렇게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명부를 보고도 우물쭈물했다.

- 진짜 죽을 사람 맞아? 영화에서 보면 잘못 데려가면 큰일 나던데……. 너도 경위서 쓰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바로 지옥행?

- 무, 무슨 소리야! 난 경위서 안 써! 그리고 지옥은 아무나 가는 줄 알아!

저승사자가 귀신에게 쪼였다.

장립의 갈굼력이 갈수록 높아졌다.

나와 임성철 회장 곁에 있으면서 사회생활을 착실하게 배웠다.

- 왜 이렇게 까칠할까? 그럼 간단히 물을게. 저 환자 죽어? 아니면 살아?

- …….

팩트 체크에 들어간 장립 귀신.

둘의 대화가 의외로 아기자기하다.

현직 저승사자와 불법체류자와 같은 귀신의 만담.

누가 차사고 귀신인지 헷갈릴 정도다.

“고승윤.”

“네! 교수님.”

“OPCAB의 장점이 뭐야?”

수술 중에도 여유롭게 레지던트 교육에 들어가는 황승재 교수.

“무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의 장점은 심폐 체외순환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장기 기능의 일시적 저하 방지, 혈류투과성 증가, 색전증 및 신기능 손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바로 대답이 나왔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답변이다.

“단점은?”

“심장 박동 상태에서 수술이 진행되므로 집도의의 숙련도에 따라 수술 결과에 차이가 올 수 있습니다. 또한 심장의 위치가 평소보다 들어 올려지기에 심장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심장기능의 손상 및 부정맥, 저혈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맥혈관과 동맥혈관의 10년 후 이식혈관 개통률은?”

“정맥도관은 60에서 70%. 동맥도관은 90에서 95%를 유지합니다.”

“정맥도관 추천 경우는?”

“신부전 투석 환자, 요골동맥 석회화, 말초동맥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정맥도관이 추천됩니다.”

묻고 답하는 게 어디 하나 막히지 않았다.

진짜 대단하다.

의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내흉동맥 장점을 말해봐.”

황승재 교수는 시술 중임에도 기계적으로 물었다.

뇌가 두 개라도 되는 양 멈춤이 없었다.

“관상동맥과 직경이 거의 똑같습니다. 혈관내피세포에서 생산된 프로스타글란딘 및 산화질소등에 의해 혈관확장이 용이합니다. 혈관확장제 반응에 탁월합니다. 동맥을 흐르는 혈류는 흐름이 안정적입니다.”

교과서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 이상하네? 분명히 죽는 거로 나오는데…….

저승차사는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 오 차사.

- 왜!

- 그 정도 실력이면 나도 하겠다.

- 뭐라고? 너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영혼 잘못 데려가면 바로 지옥행이야! 너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지?

- 호~ 지옥행? 너 가봤지?

- 허, 헛소리 마!

- 가봤네. 그러니까 지금 벌벌 떨고 있잖아. 잘못 데려가면 바로 지옥행! 흐흐흐.

- 나쁜 놈!

딸깍.

그사이 허벅지 복제정맥 추출이 완료됐다.

내시경으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확보된 정맥.

“개흉에 들어갑니다.”

황승재 교수의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스으윽.

메스가 피부 위를 지나갔다.

그드드득.

그리고 도구를 사용해 활짝 열리는 가슴.

두근두근.

심폐기를 사용하지 않는 무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로 인해 심장이 뛰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밝은 수술 조명기구를 통해 보이는 사람의 살아 있는 심장.

피는 튀지 않았다.

여러 전투 중에 심장을 부수거나 뚫어 봤지만, 생명을 건지기 위해 개흉하는 건 처음 본다.

“내흉동맥 확보합니다.”

심장과 붙어 있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흉동맥.

막힌 다른 혈관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용해야 할 귀중한 요소였다.

그그륵.

우남우 레지던트가 절개된 피부를 견인기를 통해 열어 시야를 확보했다.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는 장면.

벌컥거리며 뛰는 심장 사이로 니들홀더를 비롯해 여러 기구들이 바쁘게 드나들며 움직였다.

사각 찰칵.

황승재 교수의 솜씨는 예술이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흉동맥을 확보했다.

“좋아요. 다음은…….”

심외막 고정기가 장착됐다.

뛰는 심장을 고정해 혈관 교체 및 문합에 반드시 필요한 장치.

고승윤 레지던트가 견인기를 잡았다.

다른 레지던트는 황승재 교수를 돕기 위해 수술 기구를 잡았다.

“도관 삽입하겠습니다.”

관상동맥 혈류를 유지하기 위해 혈관에 삽입되는 도관이 부드럽게 들어갔다.

그 순간.

파아앗!

핏물이 튀었다.

수술 중에 쉽게 볼 수 있는 장면.

하지만 일이 터졌다.

“으아아아아아아!”

견인기를 물려받아 잡고 있던 레지던트가 피가 눈에 튀자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놓아버렸다.

“야! 너 뭐야!!!”

터지는 호통.

그 순간.

- 야호! 명부색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 연장에는 전혀 관심 없는 저승사자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장주희! 빨리 와 이것 좀 잡아!”

불똥이 바로 나에게 튀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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