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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장. 수술실에서(3). (920/1,284)

930장. 수술실에서(3).

“…….”

수술실에 있던 이들은 막 입장한 장주희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격.

지금 잡힌 수술도 눈앞의 햇병아리 덕분에 이루어졌다.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의 상태는 초기에 진단했던 것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응급 전공의나 외과와 내과 레지던트들도 하나같이 놓쳤던 환자의 상태.

협심증이었으나 그대로 놔뒀으면 급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심근경색 단계까지 진행돼 있었다.

부랴부랴 각종 검사를 실시해서 알아낸 결과였다.

펠로우지만 학교에서 강의도 맡고 있는 황승재 교수가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했다.

서두른 덕에 환자를 따라온 보호자의 동의로 바로 수술이 잡혔다.

심근경색은 촌각을 다투는 중병이다.

문제는 단순한 수술이 아니라는 것.

환자의 몸 상태가 예상했던 것보다 나빴다.

관상동맥이 혈전으로 막힐까 걱정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막혀있는 상태.

약물 치료시기를 놓친 것이다.

다행히 응급실에서 처방한 약이 임시방편이 됐다.

이런 상태라면 카테타나 스텐스 시술 같은 중재적 치료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결정된 CABG라 불리는 관상동맥 우회 수술이 결정됐다.

심장이식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결코 쉬운 수술이 아니었다.

가슴팍을 절개해 막힌 관상동맥을 다른 건강한 동맥이나 정맥으로 대체해야만 했다.

수술실에 긴장감이 흘렀다.

아직 개흉은 안 했지만 잠시 후 벌어질 수술 과정에 대해 다들 생각이 많았다.

특히 레지던트들 표정은 복잡했다.

흉부외과가 외과의 꽃이라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장주희라…….’

4년차 레지던트인 우남우는 장주희에 대해 대충 알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후배들이 침을 튀기며 칭찬했다.

한국대 의대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 만한 천사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레지던트가 한가한 직업도 아니고 따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더욱이 우남우는 공부에 미쳐 사는 인간이었다.

퇴근하면 집보다 병원 의국에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우남우도 장주희에 대해서 궁금증이 일 정도였다.

실물을 직접 보니 실감이 났다.

아침 회진 때는 오프라 볼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수술이 잡혀 긴급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장주희.

원래 마스크를 착용하면 웬만한 여성들 모두 미인처럼 보이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수술복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여성도 처음이다.

마치 의료계 수술복 모델 같았다.

눈빛은 맑고 기운은 단아했다.

풍기는 기운만 봐도 두려움 같은 건 전혀 느끼고 있지 않았다.

차라리 당당함과 함께 느껴지는 호기심이 더 강했다.

황승재 교수가 왜 참관을 명했는지 알 듯했다.

외과의의 덕목 중 하나인 침착성을 타고 난 것이다.

수술실에 모인 다른 이들도 비슷하게 판단했다.

모두 다 충분히 경험을 쌓은 경력자들이다.

놀라지는 않았다.

오늘처럼 실습생들이 참관하는 경우는 그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래봤자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수술 중 피가 튀거나 장기 절단 장면이 연출되면 밖으로 뛰어나가 오바이트를 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게 다다.

약간의 짬밥이 되면 스크럽에 참여한다.

의사, 간호사와 함께 수술에 참여하는 행위.

고작 봉합사 자르기나 거즈로 피를 닦는 것, 트랙션 당기기 및 전기소작기 지혈이 전부다.

이것도 외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다른 과에서는 이 정도의 일도 없었다.

폴리클을 외과 수술에 참여시키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생각과 달리 자기 적성에 맞는 과를 빨리 찾는 게 병원과 예비 의학도 모두에게 도움이 됐다.

특히 외과는 전문의 따기가 쉽지 않다.

성형이나 피부과와 달리 돈 벌기가 쉽지 않은 만큼 사명감이 특출한 이들 위주로 노크를 했다.

모르긴 몰라도 장주희도 그 테스트에 들어간 듯했다.

특히 황승재 교수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탁월했다.

4년차 레지던트인 우남우도 그렇게 찾아냈다.

똑똑하지만 우직한 바보만 가능한 흉부외과 전문의에 특화된 인재였다.

‘그런데 뭘 보는 거야?’

장주희 시선이 머문 곳은 수술대 위였다.

조명을 보는 듯 고개가 살짝 들려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도는 기운과 달리 표정은 심각했다.

“눈에 뭐 들어갔나요?”

경험 많은 간호사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먼저 물었다.

“아니에요.”

“그런데 뭘 그렇게 보죠? 천장에…… 뭐 있어요?”

“없어요. 긴장되면 위를 보는 버릇이 있어서요.”

목소리도 듣기 좋았다.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긴장되기는 해요?”

“그럼요. 저 병아리잖아요. 수술방도 처음이구요.”

“목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간호사가 가볍게 농담을 걸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장주희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싹수를 보아하니 싸가지는 합격.

수술실에 있던 남자들 모두 장주희 덕분에 긴장이 약간 풀리는 것 같았다.

저 정도 태도면 좋은 동료가 될 소질이 충분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고개 숙인 장주희가 지금 많이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

- 보이는구나! 너 뭐야? 무당은 아닌 것 같은데……. 헐! 대박! 너 게이니? 그것도 아니면 레이디 보이?

레이디 보이?

머리가 지끈거렸다.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수술대 위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짧은 치마의 오피스룩을 입은 미녀.

아니 긴 생머리를 풀어헤치고 있는 초특급…… 미모의 귀신.

손에 서류철 같은 걸 들고 있었다.

당최 누군지 알 길이 없다.

평범한 존재는 아니었다.

- 푸하하하하. 레이디 보이! 형님 누나. 딱 어울려요!

쫄아 있던 귀신이 나사 풀린 듯 웃는다.

조용한 곳에 끌고 가 주둥이를 때려주고 싶다.

- 어라? 이건 또 뭐 하는 물건이고? 육체가 없는 귀신은 맞는데……. 귀신이 아니야? 멀대. 너 어디 소속이야?

- 멀대가 아니라 장립이라고 하는 미래가 유망한 준수한 영가입니다.

- 귀신이 미래가 어딨어. 지옥 아니면 천당이지.

- 신선 지망생입니다.

- 신선? 카르마 포인트가 별로 없는데?”

- 일확 포인트를 꿈꾸지 않습니다. 건실하게 이것저것 덕을 쌓으며 포인트를 늘리다 보면 좋은 날 오지 않겠습니까?

- 푸하하하하하. 너 정말 웃긴다. 그래서 네가 그 건실한 청년 귀신이라는 소리야?

- 제가 한 유머 합니다. 하하하하하.

둘이서 웃기고 있다.

귀신들끼리 수술대 위에서 나누는 썸 분위기의 대화.

어이가 없어 가만히 지켜봤다.

- 지랄하지 마시고요. 외출증이나 허가증 있으면 꺼내 봐.

- 네? 허가증요?

- 없어?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 미국에서 왔습니다. 당연히 모르죠.

- 꼴에 미국 물 먹었다 이건가?

- 국적은 프랑스입니다.

- 잘 걸렸네. 오늘 실적 하나 채우겠어. 널 영계 구역 치안유지법에 따라 불법 체류자로 체포하겠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불리하면 아가리 닥쳐도 된다.

-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장립이 다시 쫄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대신 난 흥미가 더했다.

-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 당연히 알 턱이 없죠. 오늘 처음 본 사이에.

- 귀여운 새끼. 잘 만난 줄 알아. 다른 저승사자 같았으면 바로 수갑 채웠어.

- 네? 저, 저승사자요!!!

여자 저승사자?

나도 여성 저승사자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동안 금녀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저승사자 직책.

다시 보니 분위기가 싸한 게 거짓말이 아닌 거 같다.

미모에 가려져 있는 차가운 기운.

저승사자가 분명했다.

- 나 여자라고 너도 무시하냐?

- 아니 그게 아니라…….

- 요즘 저승도 여성 사자들이 대세야. 인간계가 변하면 자연스럽게 영혼계도 따라서 변하는 거 모르지?

어느 정도 낌새는 알고 있었지만 저승사자계까지 영향을 받는지는 몰랐다.

다시 한 번 여자 저승사자를 봤다.

이승 기준으로 보면 아주 대단한 미모의 여인이다.

마치…….

- 자격증 꺼내 봐요! 

- 그럴 줄 알았다. 옛다 자격증.

파앗!

여자 저승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에 번쩍하고 등장하는 검은빛 명패 하나.

그리고 떠오르는 명함과 이름 석 자.

- 저승사자 오난향.

“!!!”

이름을 듣는 순간 한 명의 여인이 떠올랐다.

조선 3대 기생으로 추모 받는 대한제국 시절과 일제 강점기 때의 기생 오난향.

어느 날 스치듯 봤던 인터넷 기사에 실렸던 그녀의 모습과 정확히 매치 됐다.

요즘 시대에도 먹힐 만한 새하얀 피부에 슬픈 듯 애처로워 보이는 눈빛 때문에 남자의 보호 본능을 무한 자극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미녀 기생.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에 뛰어난 재치와 학문적 견해까지 갖췄던 여인이었다.

당시 선비들과 지식인들을 뻑 가게 만들었다고 했다.

세상에 저승사자가 그런 오난향이라니!

- 이게 뭐 어쨌다구요? 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전 저승사자에게 안 쫍니다.

- 뭐라고? 영혼만 가출한 게 아니라 정신도 가출했네. 어이. 잡귀신. 나 저승여대 나온 저승차사야. 내가 만만하게 보여?

- 그래서요?

- 그래서요? 너 지금 누구 믿고 설치는 거야? 불법 체류자 주제에 너무 당당한 거 아니야?

- 미스 오 차사님.

- 왜!

- 저기 형님 누군지 모르시겠어요?

갑자기 장립이 날 본다.

오난향 저승차사도 고개를 돌렸다.

- 레이디 보이가 뭐라고……. 헛!

갑자기 날 살피다 깜짝 놀라는 오난향.

파르르.

그녀가 눈에 띄게 떨었다.

내 몸에서 자연스럽게 발출되는 진한 카르마의 향기.

- 진선을 뵙습니다.

오난향 차사가 수술실 바닥에 내려서더니 내 앞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극도의 예의를 차리는 모양새다.

요즘 들어서는 나의 레벨이 얼마나 업그레이드 됐는지 몰랐다.

확실한 건 웬만한 저승사자도 함부로 명함을 내밀면 안 된다는 건 안다.

괜찮습니다. 실수할 때도 있죠.

마음으로 뜻을 전했다.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엄연히 난 신선계에 발을 반쯤 걸치고 사는 존재였다.

- 미스 오 봤지? 저분이 바로 내가 모시는 형님 누나야. 그러니까 조용히 물러나. 다음에 시간 나면 차나 한잔하든가.

장립의 말투가 확 바뀌며 어깨가 쫙 펴졌다.

그 순간 강하게 스치는 생각 하나.

저기 오난향 차사.

- 진선님 하명하십시오.

저 잡귀 지금 끌고 가면 안 돼?

오난향 차사가 장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으아아아! 형님! 지금 이 동생을 버리시나이까! 죽을 때까지 평생 같이 하자던 사나이의 굳은 맹세를 잊으셨습니까!

잡귀가 놀라 허공에서 날아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웃기는 놈이다.

난 그런 계약한 적 없다.

- 오늘은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무슨 일?

오난향의 시선이 수술대 환자에게 향했다.

- 분명 누워 있는 저 인간은 오늘 병원에서 사망하는 걸로 나와 있는데……. 자꾸 명부색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건 분명 조상신이나 상위 존재가 개입했다는 걸 의미하는데…….

“!!!”

이거 분위기가 이상하다.

뭔지 몰라도 나로 인해 사건이 틀어진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난향 차사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고민에 빠진 눈빛이다.

그때.

스르르륵.

수술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뭣들 해? 수술 준비 다 끝났어?”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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