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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장. 몸에 좋은 거. (911/1,284)

921장. 몸에 좋은 거.

“이번 달에도 외부에서 기부금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식단에서 과일과 고기 제공 비율을 높이고 따뜻한 옷들을 미리 준비해 둬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정말 다행이에요. 아직 살 만한 세상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각박해도 이렇게 인심들이 넘치니 감사한 일이죠.”

“다 원장님 덕분입니다.”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나요. 모두 여러분들이 수고한 덕분이죠.”

단아함이 물씬 풍기는 방이었다.

공간은 제법 넓었지만 오래된 책장에 꽂힌 수만 권의 책들로 인해 무척 좁아 보였다.

그런 공간 중앙에 자리한 응접탁자.

그윽한 향을 풍기는 녹차 몇 잔이 놓여 있다.

상석에 앉아 있는 인자한 표정의 중년 남자를 향해 둘러앉은 사람들이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입가에 선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

지금 마시는 녹차도 이른 봄에 야생 차밭에서 홀로 직접 채취해 뜨거운 솥에서 9번 찌고 말려 덕음질을 해서 만든 차였다.

정성이 이만저만 들어가는 게 아니었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가장 높은 위치에 앉아 있지만 언제나 겸손했다.

궂은일에 언제나 솔선수범으로 나섰다.

그러니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태반 다 읽었을 정도로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세상에서 천대받다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이들과 스스럼없이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다해 대화를 나눴다.

동시에 청렴했다.

세상이 몇 번은 바뀌었음에도 구형 2G폰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을 만큼 검소하기도 했다.

입고 벗는 옷도 몇 벌 되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성자나 다름이 없었다.

유명 정치인들과 경제인들도 그를 찾아와 존경심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정치에는 선을 분명히 그었다.

여러 번 정치 참여 권유가 있었건만 자신이 있을 곳은 여기라며 단호하게 거절한 남자.

방 안에 둘러앉은 이들 모두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존경을 표했다.

수천 명이 넘는 이곳 식구들이 오로지 원장의 공덕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가난하고 힘없던 이들과 병들고 갈 곳 없는 이들이 이곳 천국에서 생활했다.

“원장님. 좋으시겠습니다.”

10년이 넘는 동안 원장을 보필해 온 중년 여성이 생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뭐가 좋을까요?”

빙그레 웃는 얼굴로 되묻는 원장.

“아드님이 며칠 내로 귀국한다고 들었어요. 그동안 많이 보고 싶어 하셨잖아요.”

“제 얼굴에 티가 그리 많이 났나요?”

“네!!!”

방 안에 있던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런…… 제가 아직도 욕심을 내려놓고 하심하는 법을 다 못 깨우쳤던 모양입니다.”

“아니에요. 하나뿐인 아드님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이곳 사람들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 보기 좋아요.”

“맞아요. 혼자서 아기 때부터 아드님을 키워 오셨잖아요. 나이도 젊으시고 인물도 훤하신데 재혼 자리 다 뿌리쳤다고 들었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원장님.”

“전액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 받는 게 정말 힘들다고 하던데…….”

태어날 때부터 아픈 손가락이었던 아들.

난산으로 아내를 잃고 홀로 아들을 키워온 원장이었다.

손수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 먹이면서도 할 일을 다 했다.

보상이라도 되는 듯 아들은 쑥쑥 잘 자라주었다.

아버지를 닮아 인물도 좋고 성격 또한 선했다.

공부도 잘해 미국 유학길에도 올랐다.

그런 아들이 박사 학위를 따서 며칠 후면 귀국한다.

원장의 자랑거리였다.

“하하하. 다들 왜 그러시니까. 얼굴이 붉어져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원장이 사람 좋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다만.

“그런데 원장님…….”

한쪽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조용히 원장을 불렀다.

“네. 조 선생님.”

“하영이 가출 문제는 어떻게 할까요?”

“하영이…….”

“음.”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복지시설에는 아직도 고아 아이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는 청소년 시절 세상 밖으로 뛰쳐나간 아이들도 제법 됐다.

아무리 가족같이 대해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들이 버려진 고아라는 걸 알고 방황하다가 같은 처지의 불량한 이들의 꼬드김에 말 한마디 없이 뛰쳐나가버린 청소년들.

이곳도 그런 면에서는 다른 곳과 환경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설이 좋고 지원도 넘쳤지만 아이들의 정서적인 면을 모두 채워 줄 수는 없었다.

“하영이는 누구보다 착하고 예쁜 아이였는데…….”

“요 몇 달 힘들어 하는 것 같더니…… 이런 일이 발생했네요.”

“어쩔 수 있나요. 그래도 이곳은 양반이에요. 1년에 10여 명 정도 가출하는 수준이잖아요. 다른 시설들은 한꺼번에 우르르 빠져나간 곳도 많아요.”

“고등학생들은 가출해도 경찰에서 수사에 비협조적이에요. 특히 시설 쪽 아이들은 신경도 안 써요.”

안타까운 목소리가 사방에 흘러나왔다.

“서장님이 최대한 협조한다고 했습니다. 조만간 연락이 오겠지요.”

침중한 표정의 원장이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상하긴 해요. 버스와 기차역 CCTV에 모습이 잡히지도 않고…….”

“SNS로 연락해서 차를 타고 갔을 수도 있어요. 요즘 애들이 워낙 영악해요.”

“맞아요. 우리 수준으로는 걔들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간 쌓였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아이들의 현실이 안타까웠지만 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원장의 눈빛이 살짝 번득이다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때.

“윽!”

갑자기 강한 두통이 온 듯 원장이 짧은 비명을 토했다.

“원장님!!!”

“무슨 일이세요!”

둘러앉은 이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강하게 찌푸리는 원장.

보기 좋던 얼굴이 두통이 얼마나 심한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펴, 편두통이…… 모두들 밖으로…….”

원장은 이를 악물고 겨우 말을 내뱉었다.

“약은요?”

“원장님 병원에 가셔야죠!”

“119 불러요!”

마치 자신들이 겪는 고통인 듯 원장을 걱정하는 이들.

파르르 몸을 심하게 떠는 원장.

계속 이어지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모두 나가라고!!!”

그러다 더는 참지 못하고 버럭 호통을 쳤다.

“!!!”

평소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원장의 모습과 고성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됐다.

두통이 심해 이성을 잃은 듯했다.

소리를 치며 고개를 든 원장의 핏발선 눈동자.

바라보던 모두가 숨을 죽였다.

원장의 눈빛을 본 순간 낯선 공포가 그들의 목덜미를 타고 온몸을 경직시켰다.

“미아……안합니다. 조금 쉬면 될 것 같으니……. 부탁합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도 인내심을 극한으로 발휘하는 원장.

목소리를 겨우겨우 어렵게 짜냈다.

“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당혹스러움 속에서 급히 퇴장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였다.

순간이지만 원장의 모습은 마치 기괴한 괴물과 같았다.

그리고.

“아가야……. 도대체 무슨 일이냐! 너에게 지금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모두가 물러나고 혼자 남은 원장.

기다렸다는 듯 원장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정신 교감을 통해 전해져 오는 감각은 엄청난 고통.

“크아아아악!”

원장은 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입이 찢어질 듯하고 머리는 곧 두 쪽으로 쪼개질 듯 아파왔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대 사건.

“도대체 누구야!!!”

원장은 부릅뜬 두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며 분노의 일갈을 터트렸다.

***

콰득!

날 향해 주둥이를 벌리고 달려들던 거대 구렁이의 턱을 양손으로 채잡았다.

츄루루루룻.

살아 있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영체에서 흘러나오는 독니의 새카만 기운이 마치 액체처럼 흘렀다.

무형의 실체화.

주희가 공중에 뜬 이유도 이 때문이다.

놈은 요물이었다.

살아생전 인간 수백 명 정도는 삼킨 듯 놈에게서는 인간의 진한 피 냄새가 났다.

파드드득.

놈이 힘을 썼다.

주둥이를 잡힌 채 요동치는 몸뚱이.

투두둑.

어깨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파스스스스스스스슷.

엄청난 어둠의 기운이 독무처럼 방 안에 가득 찼다.

- 으아아아! 뭐 이런 뱀 새끼가 다 있어요!

바짝 쫄아 버린 장립 귀신은 놀라움만 토했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코를 틀어잡고 있었다.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선신이나 악신들을 여럿 만나봤지만 이렇게 인간 세상에 직접적으로 음험한 기운을 뿌릴 수 있는 존재를 조우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두렵지는 않았다.

마법과 내공 정도로 처단할 수 있는 영적 존재가 아니지만 난…… 이미 신이다!

산자와 죽은 자의 길을 동시에 걷고 있는 자.

신들의 버프도 받았다.

콰직.

어깨에서 실린 힘이 두 손에 모아졌다.

쩌저적.

단단하게 붙어 있던 놈의 주둥이가 천천히 벌어졌다.

- 넌…… 누구냐!

재차 들리는 물음.

Shut up!

이 마당에 서로 통성명 할 때는 아니었다.

이 사악한 놈에게 뭔가 다른 영향력이 있는 게 확실했다.

날 공격하는 중에도 낱낱이 느껴지는 타인의 시선.

사령을 조종하는 자가 따로 있다는 걸 의미했다.

- 형님! 뱀새끼 주둥이 콱 찢어버려요!!!

내가 힘을 쓰자 귀신이 흥분했다.

이런 요상한 사투는 처음일 것이다.

나도 처음 겪는 신세계다.

사람이 아닌 영적 존재와의 사투.

콰지직.

놈의 주둥이가 천천히 찢어지기 시작했다.

- 사, 살려줘! 돈을 주겠다! 권력을 원하나? 모든 걸 주겠다! 크아아아아!

사령이 비명을 질렀다.

돈과 권력을 가장 먼저 제시했다.

욕심 많은 인간을 다룰 줄 아는 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지금껏 쌓아온 카르마 포인트가 헛것이 아니다.

신들의 비호 속에 요사한 사령의 입이 천천히 뜯겨져 나갔다.

- 이 뱀 새끼가 새대가리도 아니고. 너 같으면 살려주겠냐? 형님! 뭐 하십니까! 더 세게 주리를 트세요!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귀신이 설쳤다.

말이 많아서 신경 쓰였지만 혼자 있는 것보다 나았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영적 존재와의 사투.

이러다 엑소시스트를 전문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에 출현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콰드드득.

그리고 질긴 사령의 주둥이가 시원하게 찢겼다.

파득 파드득.

주둥이가 너널너널 찢어졌지만 질기게 반응하는 사령.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악독한 원한이 흐르는 놈의 노란 눈동자.

- 널…… 용서치 않겠다! 우리 아버지가 널…… 찾아내어 갈가리 찢어 죽일 것이다!

사령이 저주를 뿌렸다.

뒤에 아버지라는 자가 있는 모양이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비밀이 존재하는 듯했다.

“지옥으로 꺼져 새끼야!”

촤아아앗.

마지막 힘을 쏟아 놈의 몸뚱이도 마저 두 동강이로 토막을 냈다.

쿠웅.

허공에 떠 있다 침대 위로 떨어지는 주희.

파스스슷.

사령은 주먹만 한 기의 구체로 바뀌었다.

어두운 기운들은 사방으로 공기처럼 흩어졌다.

놀랍게도 다른 탁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순수한 사령의 기운만이 공기 중에 떠 있었다.

강하게 전해지던 교신도 끊겼다.

- 이게 뭡니까?

귀신 장립이 흥미를 보였다.

자칭 신이라 말하지만 사령만도 못한 장립의 기운.

워낙 다진 바닥이 없다 보니 카르마 포인트를 채우는 과정도 힘들었다.

스윽.

영기 구체를 잡아 슬쩍 장립에게 내밀었다.

- 설마…….

눈치도 빨랐다.

“먹어.”

- 이걸요? 형님.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모르는 음식 함부로 먹는 거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도 작은 귀신.

“너에게 좋은 거다.”

- 에이 설마요. 조금 전 봤던 사악한 그 귀신이잖아요. 괜히 먹었다가 제가 그런 괴물로 변하면…….

“뱀이 남자 몸에 좋은 거 몰라? 안 먹으면 회장님께…….”

- 형님! 먹을게요! 제가 진작부터 입 벌리고 있었지 않습니까! 아~.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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