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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장. 저주(2). (909/1,284)

919장. 저주(2).

“엄마! 정말 신광 법사님 신통력 대단하시다! 장주희 그년 완전 맛 갔어. PK 실습도 못 나왔다니까. 호호호호.”

“쉿! 조용해. 법사님이 함부로 입 놀리지 말라고 했잖아.”

“누가 듣는다고 그래? 집에 엄마랑 나밖에 없는데.”

강남 삼성동의 부자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는 단독 주택 단지.

300평 대지 위에 120평가량 되는 2층의 모던한 현대식 주택 안에서 두 모녀가 대화를 나눴다.

20대 중반으로 머리칼을 질끈 동여맨 여성과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

깔깔거리며 떠드는 딸과 달리 중년의 엄마의 표정은 조심스러웠다.

“조용히 하라니까. 법사님이 천기누설 되면 다칠 수도 있다고 그랬다니까!”

“에이. 됐어. 이 정도가 무슨 천기누설이야?”

“연주야. 니가 몰라서 그래. 저주굿은 쉬운 일이 아니야. 비방이 잘못 되면 법사님이 도리어 다칠 수도 있어.”

“신광 법사님이? 됐어. 얼마나 능력이 좋으신 분인데. 강남 사모님들 다들 꼼짝 못 할 정도로 기가 쌔시잖아. 그리고 단박에 저주를 내릴 정도로 영험하신데 누가 덤벼?”

“그건 그렇지……. 신광 법사님이 참 영험하시지.”

중년 여인은 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열꽃이 핀 듯 얼굴을 붉혔다.

법사가 신통력뿐만 아니라 남자로서의 다른 능력도 영험하다는 걸 딸은 몰랐다.

“주순자 아줌마도 단골이었다며?”

“그건 어떻게 알았어?”

“내 친구 엄마들도 다 알아.”

“요즘은 좀 뜸해도 대통령 만들기 전에는 억짜리 굿판도 벌였잖아. 그래서 대통령도 만든 거고.”

중년 여인은 오랫동안 신광 법사에 대해 무한 신뢰를 가져왔다.

10여 년 전 계룡산에서 긴 시간 도를 닦고 세상에 모습을 나타난 신광 법사.

영험한 신통력과 부적술로 일시에 강남 사모들을 휘어잡았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무당들도 기가 눌린다는 강남 사모들이 법사 앞에서만큼은 꼼짝을 못 했다.

남편 사업 번창은 물론 임원 승진에 잦은 바람기까지 잡아냈다.

한마디로 신광 법사의 굿과 부적이면 해결 안 되는 게 없을 정도가 됐다.

부동산에 관한 일에 있어서도 미래를 점치는 안목이 뛰어나 믿고 따르는 강남 사모들이 많았다.

대통령 뒤에서 권력을 쥐고 흔드는 실세 주순자도 신광 법사를 찾는 단골이었다.

“진짜 신광 법사님 대단해. 천하의 기 쌘 그년도 단박에 고꾸라졌으니. 키키키.”

“확실해?”

“내가 다 확인했어. 이틀 전에 무단으로 실습에 나오지 못했어. 그 정도로 타격이 큰 거야. 전화해봤더니 경호원이 받아서 아프다고 말하더라고.”

“장주희 걔만 사라지면 니가 과 탑 되는 거 사실이야?”

“당연하지. 그년 정말 재수 없어. 촌것 주제에 공부에 목숨을 걸었다니까.”

신연주는 눈에 독기를 뿜었다.

입학 당시부터 외모로 뭇 동기들과 선배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던 장주희.

어느 순간부터 성적까지 과 탑이 됐다.

강남에서 엘리트 코스를 받고 한국대 의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신연주는 예상치 못한 자괴감에 상처를 받았다.

틈만 나면 동기들은 물론 선배 남자들까지 자신과 장주희를 비교했다.

이미 어릴 때 성형수술을 해 연예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미모를 갖추었던 신연주는 묘한 경쟁심과 질투에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장주희는 얼굴에 손을 대지 않은 천연 미인이었다.

게다가 무슨 화장품을 쓰는지 갈수록 피부도 더 좋아지고 어려지는 것처럼 보였다.

올해 들어온 신입생들마저 자신들의 동기인 줄 알았다며 수군거릴 정도다.

공부는 물론 외모 면에서도 함께 공부하는 남자들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조용한 의대에 팬클럽이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가 넘쳤다.

그렇다고 집안 역시 무시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중용대학교 이사장으로 알려져 있다.

오빠 또한 잘나가는 투자 회사 대표다.

암암리에 강남에도 소문이 자자하게 나 있었다.

천하에 무서울 것 없다던 주순자도 그 집안사람들 보기는 꺼린다는 후문까지 들렸다.

신연주는 다 상관없이 이를 갈았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벌써 몇 년 째다.

그러는 사이 본과 3학년이 됐다.

PK 실습을 나가게 됐다.

때를 노렸다.

한국대 의대의 저명한 외과 교수인 작은아버지를 졸라 장주희를 같은 조에 편입시켰다.

평소 장주희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던 남녀 동기들을 찾아 포섭했다.

은근히 왕따를 시켰다.

36주 동안 돌게 되는 실습 시간을 지옥으로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장주희는 독한 구석이 있었다.

분명 왕따를 시켰음에도 그 시간을 홀로 묵묵히 버텼다.

동료들의 도움 없이도 척척 리포트를 제출하고 실습 시간을 쌓아갔다.

그러는 사이 몇몇 선배들이 엄지 척으로 장주희를 인정했다.

교수들도 대부분 호의적인데다 예뻐했다.

그렇게 미모와 실력, 예의까지 바른 장주희는 한국대 의대의 꽃이 됐다.

신연주는 점점 뒤로 밀렸다.

화가 쌓이면서 자주 히스테리를 부렸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엄마 오미영이 나서게 됐다.

거침없이 나아가던 딸의 앞날에 장애가 되고 있는 장주희를 치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광 법사를 찾아가 저주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법사에게서 요구를 거절당했다.

그러나 지속된 애원에 법사도 못 이기는 척 허락했다.

대가가 작지 않았다.

무력 3억.

그러나 딸의 미래를 위하는 일인 만큼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딸이 장주희의 물건 하나를 훔쳐왔다.

장주희가 아끼는 물건으로 오빠가 선물했다던 만년필.

그렇게 준비 과정을 거쳐 의뢰한 저주굿.

굿이 열리는 장소는 신광 법사의 주문대로 방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효과를 제대로 봤다.

독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 장주희가 쓰러졌다.

‘오빠란 놈이 어떻게…… 모를 거야. 아무리 잘나가는 사업가래도 저주굿 같은 건 알 수가 없지.’

오미영도 장주희의 오빠 장태산에 관한 얘기를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다.

안아를 시작으로 몇몇 여러 기업을 날려버렸다는 사업가들 사이에 하이에나로 알려진 냉혈안.

기업인수 합병 전문가인 남편도 몇 차례 조심하라고 경고를 해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도 상대하기 꺼려질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자라 했다.

그래서 더 은밀히 처리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아우! 개운해. 엄마 와인 한 잔 어때?”

“그럴까?”

“응. 내일부터 또 바빠질 거야. 그전에 엄마랑 좋은 시간 보내야지.”

과거 그랬던 것처럼 애교 많은 딸로 돌아온 신연주를 바라보는 오미영.

오미영은 기분 좋은 딸의 모습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다 필요 없어! 내 자식이 행복하다면…… 난 지옥에라도 갈 거야!’

***

- 꿀꺽.

장립 귀신이 뒷덜미 쪽에서 마른침을 삼켰다.

주희를 남겨두고 떠나기 전까지 멀쩡했던 내 집.

다시 돌아온 집은 검은 기운이 새카맣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의 기운은 주희 방에서 계속 뿜어져 나왔다.

“아아아아악! 그만 가! 날 놔주란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주희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가씨!!!”

여자 경호원들이 방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문을 열기 위해 덜컹덜컹 손잡이를 흔들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한진웅 대표가 놀라 안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모르겠습니다! 방금 전부터 갑자기 소리를 지르시는데…….”

“들어가 봐야지!”

“안에서 잠겨 열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보기보다 튼튼한 문짝입니다.”

가벼워 보이지만 특수 합금으로 처리가 된 방문이다.

혹시 모를 침입자에 대비해 바꿔 놓은 게 이럴 때는 도리어 방해가 됐다.

막말로 총으로 갈겨도 버틸 정도의 문이다.

“비켜!”

한진웅 대표가 뒤로 물러났다 세차게 앞으로 달려갔다.

무식하게 돌진하려는 폼이다.

“멈추십시오.”

“보스…….”

돌격하던 곰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충성심이 남다른 그의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모두 나가십시오.”

그러나 냉정하게 이제는 이들의 도움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네?”

“명령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무슨 소리가 들려도 절대 방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모두 1층에서 대기하십시오.”

목소리는 더없이 차가워졌다.

“넵!”

한진웅 대표는 두 말 하지 않고 돌아섰다.

함께 있던 여자 경호원들도 한진웅 대표의 뒤를 따라 빠르게 사라졌다.

- 와아……. 이 더럽고 찝찝한 냄새는 뭐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썩은 두부 냄새 같아요.

냄새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에 가득 배어 있는 탁하고 더러운 어둠의 기운.

저주다!

- 저주요?

이런 식의 공격 방법은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습격을 받았다는 막내 주희.

이제는 사악한 무속인까지 이용해 나를 괴롭히려는 것인지, 아니면 온전히 주희를 노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상황.

하지만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내 동생을 겁도 없이 건드린 자!

“주희야, 문 열어! 오빠 왔어!”

방 문 앞에서 주희를 불렀다.

“오빠……. 살려줘! 누가 날……. 아아아아악!”

저주의 기운이 강렬했다.

나와 장립 귀신 눈에나 선명하게 보이는 새카만 어둠의 기운.

내공을 극도로 끌어 올렸다.

특별한 저주굿을 통한 저주가 분명했다.

문이 열릴 만한 반응이 없자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콰드드드드득.

강력한 내공에 합금이 뜯겨져 나갔다.

터엉!

거칠게 문이 열렸다.

동생이지만 다 큰 성인 여성인 만큼 평소에도 거의 들여다볼 일 없었던 주희의 방안.

- 으헉! 저, 저게 뭡니까! 

거대한 뱀이 눈에 들어왔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카만 구렁이가 주희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사지가 붙들린 채 꼼짝 못 하고 비명만 지르는 주희.

검은 뱀에 몸 전체가 감겨 이미 얼굴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몸은 침대에서 떨어져 반쯤 허공에 떠 있는 상황.

괴기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영화 엑소시스트가 절로 떠올랐다.

울컥 심장이 아파왔다.

눈에 핏발이 서는 게 느껴졌다.

“멈춰!!!”

강하고 단호하게 소리쳤다.

파자자자자자장.

기의 파장이 거대한 검은 구렁이에게 쏟아졌다.

움찔.

생각보다 강한 놈이다.

내 강렬한 기파에 똬리가 잠깐 느슨해졌을 뿐이다.

스윽.

뱀이 머리를 돌렸다.

깊고 강한 연노랑 눈알이 가로로 길게 얇아지며 날 노려봤다.

- 저…… 건방진 뱀 귀신 새끼가!

뒷덜미 쪽에서 장립 귀신이 벌벌 떨면서도 용기를 내 한마디 뱉었다.

촤라라랏.

그 순간 장립을 노린 듯 쭉 늘어지며 날아드는 기다란 뱀의 혀.

순전히 기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영체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기운이 감지됐다.

- 형님!!!

다급해진 장립이 날 불렀다.

콰직.

날아드는 뱀의 혀를 그대로 손으로 잡아챘다.

그리고 지체 없이 잡아뜯었다.

파아앗!

기로 환원되어 흩어지는 뱀의 혀.

찌리릿.

그 틈에도 놈이 날 노려봤다.

탁기와 사기의 응집 상태가 어머어마 했다.

- 이…… 녀석 뭡니까! 어떻게 신인 나를 공격할 수가!

귀신아, 아직 너 신 아니다.

그리고 근기가 낮은 하급 신 정도는 금세 해쳐 먹을 것처럼 보이는 검은 뱀의 영체.

묵혀도 아주 오래 묵힌 먹구렁이 수준이다.

- 넌…… 누……구……냐.

마치 쇳소리와 같은 음파가 영혼에 전달 됐다.

어둠의 힘에 속해 있는 귀기를 불러내어 인간들의 공간을 지배하려 드는 또 다른 자.

검은 구렁이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런…… 넌 어디서 굴러먹던 개 잡종 새끼야!!!”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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