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장. 파티와 여인들(2).
‘흐흐흐. 대박이야! 대박!’
트럼프는 입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니엘의 이름을 팔자마자 순식간에 파티는 엄청난 규모로 커졌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처음부터 아낌없이 투자했다.
밤새 계속된 벼락으로 엉망이 된 골프장은 친분이 있던 업자들을 불러 싹 갈아엎고 완벽하게 복구했다.
급행이라 평소 금액 두 배를 지불하게 됐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기회가 온 만큼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 투자 금액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투자 없이 얻을 수 있는 성공은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은 트럼프였다.
최고급의 파티 전문 호텔 출장 서비스도 불렀다.
몇 번의 결혼식을 하며 파티를 열 때 비용 때문에 선뜻 부르지 못했던 LA 최고의 업체.
결과는 대만족.
띠리리링~♪ 띠링~♬.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이 넓은 야외 파티장에 가득 깔렸다.
출연료가 장난 아닌 연주자들의 음악 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감미로웠다.
날씨까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했던 지난밤의 바람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따뜻한 태평양의 훈풍이 부드럽게 불어와 분위기를 돋웠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조명은 무드 있게 적당히 밝았다.
“호호호호.”
“와인이 맛있네요.”
“오늘 파티에 오기를 잘한 거 같아요.”
“이런 파티 오랜만이지 않아요?”
“맞아요. 정말 기분 좋아요.”
조명과 화장빨로 민낯을 커버한 여성들의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녀들이 풍겨내는 무수한 향수 향과 체취.
“수잔.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남자들의 입은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달콤한 작업 멘트를 날리느라 바빴다.
“정말요?”
“파티에 장식된 꽃들이 모두 향기를 잃고 있습니다.”
버터 냄새가 넘치는 느끼한 찬사들이 곳곳에서 터졌다.
불편하거나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눈이 맞은 남녀들이 서로에게 매력을 뿜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런 밤이면 낯선 이들이 만나 새로운 커플로 여러 쌍이 탄생하게 마련이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의 파티장은 완벽할 정도로 새로운 만남의 장소가 돼 줬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와 모델들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경제인들도 초대됐다.
이런 식의 파티에 처음 참석한 이들도 상당수였다.
그럼에도 대부분 만족해했다.
다니엘의 친구 로버트 라이언의 참석 소식이 알려지면서 멀리 워싱턴이나 뉴욕에서도 손님이 몰려왔다.
아무리 미국이 한 덩어리의 국가라지만 서로 만나기에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자가용 비행기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만 초대에 신속히 응할 수 있는 이동 거리.
거리가 주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파티 참석을 알려온 이들이 많았다.
트럼프의 위신이 다시 치솟았다.
지난번 파티도 다니엘 덕분에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오늘은 그때보다 규모가 더 커졌다.
참석하는 인사들의 면모도 더 다양해졌다.
‘엠마 피어스까지 올 줄이야.’
공화당의 중요한 파벌 중 한 명인 존 피어스 상원의원의 사랑하는 막내딸이 파티장을 찾았다.
다니엘과 마주보고 서서 웃음꽃을 피웠다.
바잉사와 락히트 마린 사의 회장들이 물러난 자리를 엠마가 차지했다.
다니엘과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듯 돌아서던 그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개의치 않았다.
트럼프가 판단하기에 그 두 사람은 다니엘 앞에 약자였다.
트럼프는 파티장의 모든 것을 자세히 살피고 눈에 담았다.
조용히 다가와 내년 대선에 대한 의사를 물어오는 이들도 많았다.
에둘러 답했지만 대부분 눈치로 알아챘다.
비공식적 구두로 선거자금에 대해 약속한 자들도 여럿 있었다.
제시하는 자금 규모가 작지 않았다.
오늘 투자한 비용의 몇 십 배.
가시적 효과도 나타났다.
트럼프의 호텔과 리조트 체인에 대한 지원 내용도 포함 됐다.
‘저 녀석이 복덩어리야.’
트럼프는 따뜻한 시선으로 다니엘을 지켜봤다.
엠마와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는 듬직한 동양 청년.
“그런데…… 저 녀석이 그렇게 잘났나?”
트럼프의 눈에 들어온 엄청난 미녀가 다니엘과 엠마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사라 요한슨이었다.
트럼프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리처드 요한슨의 유일한 후계자.
무한 부러움이 마음을 흔들었다.
한때 자신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다니엘만큼은 아니었다.
무명 모델이나 포르노 여배우들이 전부였다.
트럼프의 기행을 좋아할 교양있는 여자는 없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확실히 달랐다.
대단한 가문의 여인들이 그와 함께했다.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파티와 미녀들.
“부럽군.”
트럼프의 입에서 숨겨 놓은 진심이 터져 나왔다.
***
- 사라 누님이시다! 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축복을 받은 여인이여. 당신을 경배합니다! 형님, 오늘 누님들 대박입니다. 흐흐흐.
닥쳐!
예상 못 한 사라의 등장에 살짝 당황했다.
엠마와 진지한 얘기는 시작도 못 했는데 불시에 확 치고 들어온 사라.
“사라…….”
엠마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오랜만이야, 엠마. 브라질에서 왔다는 소식은 들었었는데.”
“응…….”
엠마가 살짝 주눅이 들었다.
그에 반해 당당하기 그지없는 사라 요한슨.
묘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주변을 감쌌다.
애인을 놔두고 바람을 피우다 현장을 들킨 기분이랄까.
- 에이. 기분 탓이 아니죠. 이런 건 다니엘님이 즐겨 사용하는 말처럼 빼박이죠.
저 귀신 주둥이를 확 꿰매야 했다!
이런 사태를 우려해 내가 워싱턴에서 엠마가 제안한 술자리를 거절했던 거다.
괜히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두 사람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관계는 사라와 로리아나 두 사람으로 충분했다.
“못 보던 사이 더 예뻐졌네.”
“너도 마찬가지야.”
파바밧.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엠마와 사라.
두 사람의 미모는 모두 다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각자 풍기는 분위기는 달랐지만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명문대 출신이라 겸비하고 있는 지식과 배움의 깊이나 탐구 정신도 높이 살만했다.
두 사람 다 아버지가 상원의원이다.
엠마는 아버지가 미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군인 정치 가문의 사람이었고, 사라는 돈에서는 꿀릴 일 없는 차일드 가문의 방계다.
미국에서 두 사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은 드물었다.
기세 좋은 두 사람이 만들어 낸 그 뜨거운 분위기의 한복판에 내가 서 있었다.
괴롭다.
- 떡이 두 개나 있으니 잘못 먹으면 체할 것 같고……. 하아. 하나를 고르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야! 잡귀! 너 자꾸 신경 쓰이게 할래?
저기 임 회장님 옆으로 꺼져!
귀신 립이 자꾸 염장을 질렀다.
- 형님 같으면 가겠어요? 전 능력 좋은 형님을 숙주로 삼아 일생 붙어있다 신이 될 겁니다! 으흐흐흐.
귀신의 예상치 못한 고백에 소름이 돋았다.
갈수록 웃음까지 음흉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꿈이 야무졌다.
기생충 같은 멘트를 아무렇지 않게 날렸다.
조만간 강 장군님을 불러야 할 것 같다.
- 강 장군님요? 그분이 누군데요?
흐흐흐. 직접 만나보면 알 거다.
귀신 처리 문제는 제쳐놓고 지금은 눈앞의 사태에 집중할 때.
두 여인은 웃으면서 서로를 대하고 있었지만 이미 주변 공기에는 냉기가 흘렀다.
“엠마. 얘기 다 끝났으면 내가…….”
사라가 먼저 쳤다.
“아니. 아직이야. 다니엘님과 오늘 밤 마실 와인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거든.”
강하게 선을 긋는 엠마.
“아직 못 마셔봤구나. 그 와인.”
사라! 왜 그래!
피식, 사라가 염장을 지르는 듯한 기묘한 미소를 날렸다.
빠직.
사라의 한마디에 엠마의 눈썹에 힘이 팍 들어갔다.
- 팝콘각입니다. 다음 장면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태도로 한껏 여유를 부리는 귀신 장립.
일격을 당한 엠마의 얼굴을 살폈다.
“그래서 기대가 돼. 나와 마실 와인은 더 달콤하고 치명적일 테니까.”
엠마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기울이며 입에 살짝 머금었다.
교태가 아주 자연스럽게 자르르 흘렀다.
검은 드레스가 그녀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어떤 남자라도 버티지 못하고 단박에 넘어올 것 같은 유혹에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 꿀꺽.
참지 못하고 침을 흘리는 귀신.
- 좋다. 헤에에.
장립은 이미 정신줄은 놓은 듯했다.
“그럴까? 괜히 낯선 와인 맛에 입맛만 버리면 안 좋은데.”
사라도 부드럽게 와인을 한 모금 넘겼다.
휘리리링.
바람이 불어 사라의 머리칼을 가볍게 흩날렸다.
익숙하게 코끝을 간지럽히는 달콤한 체취와 향기.
꿀꺽.
- 이 분위기 좋아요. 난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형님처럼 살 겁니다! 반드시!!!
속 터지는 소리만 골라 하고 있는 귀신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분위기 좋아 보이겠지만 이 불편한 진실을 나만 알고 있었다.
이 정도 되면 나도 포기다.
회귀 후 운명이 바뀌면서 전에는 구경도 못 해 본 엄청난 돈을 긁어모았다.
재물 운이 바로 여자 운으로 이어졌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하늘의 이치다.
이치를 아는 이상 처신을 잘해야 뒤탈이 없었다.
“다니엘. 어떻게 하실래요?”
사라가 갑자기 날 보며 물었다.
뭘?
“그래요. 오늘 와인……. 누구와 마실 거예요?”
엠마가 적극적인 자세로 전투에 뛰어들었다.
와인 한 잔 마시는 일을 두고 다들 왜 이렇게 복잡하고 힘들게 생각하는지…….
- 흐흐. 선수가 웬 내숭?
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진짜 와인만 마시려고 했단 말이야!
- 임성철 회장님의 패기를 본받으세요. 그까짓 와인…… 다 같이 마시면 되죠!
꺼져!
그걸 조언이라고 해?
호색한 다 된 잡귀 같으니라고!
“하아.”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틈에도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두 여인.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는 엠마를 선택하는 게 맞았다.
미국 정치계의 거물인 존 피어스 상원의원은 훌륭한 조력자가 될 터였다.
게다가 나에게 진 빚도 아직 계산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사라 요한슨 역시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결단을 내려야 했다.
두 여인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리고.
“내 선택은…….”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