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7장. 긴급 초청(2).
“이자가 다니엘인가?”
“그렇습니다. 회장님.”
“젊군.”
“아직 대학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한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한눈에 봐도 똑똑해 보여.”
시애틀에 위치한 세계적 거대 항공회사의 회장실.
얼마 전 취임한 회장 필립 앨런이 비서가 전하는 보고를 받았다.
관심을 갖고 있던 한국 투자자에 대한 정보가 담긴 서류를 펼쳐들었다.
한국은 여러모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혈을 기울였던 한국 3차 FX 사업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그동안은 구형 UF-15로 짭짤하게 재미를 봤다.
문제는 앞으로였다.
락히트 마린과 차세대 전투기 공급 계약을 맺은 한국은 솔직히 바잉사의 봉이나 마찬가지였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이 대거 집합해 있는 정전 국가.
휴전선을 경계로 초근접권에 엄청난 화력이 몰려 있다.
반도체를 비롯해 제조업의 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은 무기를 팔아 이익을 얻기 가장 최적의 국가였다.
땅을 파면 돈이 나오는 아랍 국가와 함께 미국 군수산업을 먹여 살리는 한 축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재미를 못 보고 있다.
경쟁업체인 락히트 마린사와 경합하면서 여러 군수품 가격이 예상치 못하게 떨어졌다.
전투기에 부착된 미사일과 같은 고급 무기들은 보통 한세트로 묶어 공급 됐다.
UF-15 SE로 마지막까지 기름을 짜 뽑아내려던 계획 차질은 바잉사 경영진의 입맛을 쓰게 만들었다.
한국 권력층을 상대로 한 로비가 먹히지 않았다.
지난 정권과 달리 종잡을 수 없는 한국 권력의 향배.
만만해 보였던 여성 대통령 뒤에 누군가 버티고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접근을 시도했지만 락히트 측이 그 부분에 있어서는 라인을 꽉 잡고 있었다.
작년 테스트를 마치고 기종 선정까지 확정된 3차 FX 사업이 마지막에 가서 뒤집어졌다.
정략적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
바잉사가 적극적으로 항의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락히트 측에서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엄청난 로비 자금을 뿌렸다.
한국 정부의 결정을 따르겠다며 뒤로 한 발 뺀 오바마 행정부.
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선진국 진입 직전인 문턱까지 이르렀다 다시 후진하기 시작한 한국 정치 문화.
바잉사는 새로운 권력층에 줄을 대기를 원했다.
그런 갈등이 지속되는 중에 포착된 다니엘 장.
처음에는 월가의 투자 신화 로버트 라이언과의 친분이 관심을 끌었다.
확인해 본 결과 오바마 행정부도 다니엘을 상대로 한 움직임에는 몸을 사렸다.
한국 내에서도 권력층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에 대한 정보를 다수 수집하던 중 다니엘이 현재 미국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늘이 준 기회였다.
친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트럼프의 별장에서 파티 중이었다.
지난밤에 넌지시 연락을 해두었다.
다니엘과의 미팅을 주선해 달라고 메시지를 넣었다.
‘트럼프 주가가 치솟겠군.’
필립 앨런은 다니엘의 의도를 알아챘다.
지난 8년 간 미국 정치권과 암암리에 관계되어 온 다니엘 장.
오바마의 당선에 엄청난 공헌을 한 것을 알게 됐다.
슈퍼팩을 이용한 물량 지원은 공화당 대선 주자들의 합계 정치 자금을 넘어섰다.
그랬던 다니엘이 지금에 와서는 트럼프와 손을 잡았다.
레임덕에 빠진 오바마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힐러리 쪽에 지원되던 로버트 라이언 쪽의 정치 자금 규모가 줄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제는 다니엘과 로버트가 한 팀이라는 것쯤은 다들 눈치를 챈 상황이다.
“로버트 라이언이 저녁 파티에 참석할 것 같다는 소식입니다.”
“그렇겠지.”
필립 앨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풍을 타고 활공하는 비행기처럼 승승장구하고 있는 바잉사.
이러다가도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몰랐다.
작은 실수 하나가 거대 기업을 쓰러뜨려 버리는 걸 수없이 봐왔다.
1997년에 인수한 잭도널 더글라스도 그랬다.
미국 국방부의 관심을 듬뿍 받던 그들도 한순간에 몰락했다.
바잉사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인수 합병을 감행했다.
부족했던 전투기와 무기 제작 노하우를 제대로 흡수했다.
당시 모든 게 바잉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늘이 주신 기회.
락히트 마린은 땅을 치고 후회했다.
바잉사의 규모가 크긴 하지만 언제 난기류를 만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전에 능력 있는 투자자와 파트너가 되어 한 배를 타야만 했다.
“트럼프가 받아들일까요?”
필립 앨런은 트럼프에게 자신도 초대해달라는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겠지. 트럼프가 좋아할 미끼를 내가 던졌거든. 후훗.”
가볍게 웃는 필립 앨런.
무난하게 초청장을 받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이익에 민감한 장사꾼 트럼프.
자신에게 엄청난 기회가 왔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
- 긴급 초청에 응하시겠습니까?
다시 울리는 알림음.
야훼가 마음이 다급한 모양이다.
구약의 야훼는 이스라엘의 조상신과 같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래서 구약성서만 지침으로 여겼다.
그런 야훼가 할 말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바로 나를 소환할 수는 없었다.
과거라면 야훼가 나를 끌고 가도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이방 조상신을 당신의 조상신이 막고 있습니다.
호오! 그럼 그렇지.
우리 조상신 레벨이 많이 높아졌다.
내가 선업을 베풀어 포인트가 축적되자 자연스럽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강해진 것이다.
아직도 정확히 파악 못 한 신계의 비밀.
어깨가 펴졌다.
쫄 이유가 없었다.
내 등 뒤에 능력 좋은 조상신들이 버티고 있다.
- 야훼가 긴급 초청 비용 포인트를 벼룩 몸통만큼 지급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저 짠돌이 야훼 봐라.
세계 경제를 주물럭거리는 야훼 바트와 차일드 가문을 휘하에 두고도 짠내 나는 포인트 긴축 경영을 펼쳤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래서 난…….
거부한다!
- ……신이 경고합니다. 서로 적이 될 수 있다는 걸 강력하게 피력합니다.
적? 내가 이전의 장태산으로 보이나!
왜 나를 부르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야훼의 초대에 아직은 응하면 안 될 것 같은 강력한 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야훼 정도 되면 강력한 성전을 소유했을 터.
여차하면 신에 의해 정신 세뇌를 당할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아주 찝찝했던 부분이다.
교묘하게 로리아나를 통해 날 간섭하려는 기운이 느껴졌다.
다행히 로리아나가 인간적으로 나에게 호감을 표했다.
그렇다 보니 야훼가 바빠졌다.
아무리 강력한 신이라 해도 인간의 일에 멋대로 개입할 수는 없었다.
죽음의 강을 건너고 있을 때 태백산 할배가 나를 다시 살려 보내며 당부했던 말이 있었다.
목숨을 던져 아이를 살리려는 강력한 선업 덕에 할배도 나를 회귀시킬 수 있다고 말이다.
짠돌이 야훼가 그런 선업을 쌓았을 리 없다.
그래서 거부한다.
우르르르르릉.
밖에서 다시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돌풍과 벼락.
그 순간.
- 이 땅의 오래된 조상신들이 시끄럽다고 벼락을 물리쳤습니다.
휘리리링.
거짓말처럼 먹장구름이 빠르게 걷혔다.
벼락도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를 죽였다.
평생 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괴사.
아메리칸 대륙의 터줏대감들이 나선 모양이다.
브라질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는 각 대륙의 조상신들의 카리스마.
아무래도 지금 나선 이들은 인디언들의 조상들인 것 같다.
- 신이 급히 물러납니다. 당신을 좀 더 면밀하게 지켜보겠다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지켜보겠다는 신 하나도 안 무섭다.
할 말 있으면 면전에 두고 하는 게 예의다.
그동안 나도 놀러만 다닌 게 아니다.
쌓아 둔 포인트와 현실 자금이 노름판에 낄 정도는 된다.
로리아나를 비롯해 다른 신들의 제자나 자손들은 전혀 모르는 실재 미래에 대한 예측.
아직까지는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굿바이 야훼!
야훼가 날 교묘하게 흔들고 있지만 난 로리아나를 믿었다.
은밀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야훼 바트인 로리아나만이 제대로 신성력을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야훼가 그녀를 내치고 싶어도 적당한 후계자가 지금은 아예 없었다.
순수한 적통의 핏줄과 신실함은 로리아나의 강점.
사랑의 합공까지 더해지면 신을 물리치는 것도 가능했다.
- 지금 뭐 하세요? 갑자기 수신이 약해졌다가 다시 연결됐네요?
잡귀는 빠져.
- 에이. 형님 왜 그러세요. 제가 지금에 와서 형님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모르세요.
턱도 없는 아부성 발언이다.
저러다 임성철 회장이 화끈하게 앞으로 나서면 바로 라인 갈아탈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동행이지만 나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저 잡귀, 제대로 천도시킬 타이밍을!
띠리리리릭.
그때 트럼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중요한 전화네. 통화 좀 하고 오겠네.”
은밀한 전화인 듯 트럼프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트럼프가 바쁜 것 같군.”
임성철 회장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마디 했다.
역시 보는 시각이 넓었다.
트럼프의 행동과 눈빛을 보며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파악했다.
“큰 꿈을 꾸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힐러리가 아니라고 말했나?”
“그랬나요?”
“나와 내기하지 않았나. 다음 대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될 것 같으냐고 말이야.”
“그건 하늘이 알지 않겠습니까?”
“……하늘이 아니라 자네가 아는 것 같군.”
대한민국의 대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오정의 회장 자리는 도박으로 딴 게 아니었다.
날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지그시 바라보며 미세하게 웃음 짓는 임성철 회장.
- 흐흐! 속보입니다!
그때 방정맞은 귀신이 속보를 외쳤다.
뭔데?
- 오늘 밤……. 트럼프가 파티를 크게 연답니다! 크하하하하하.
잡귀가 신분을 망각하고 광소를 터트렸다.
“때를 아는 친구야.”
임성철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장사꾼이라는 거죠. 거시적 안목보다 아주 짧은 시야…….”
미래 세계정세 흐름을 모르지 않지만 지금은 트럼프를 밀어야만 했다.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 여기는 셀프 1등 민족 미국민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걸 이들은 몰랐다.
언제까지 깡패 짓으로 세계 패권을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착각했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오지의 주민들까지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세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과거처럼 눈 뜬 사람 코 베어 갈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
오만함의 대가는 뼈저리게 경험해 봐야 한다.
장사치 최병박과 무능함의 대명사 조근영을 겪고 난 뒤에야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변화됐다.
위기가 닥쳤을 때 진정한 리더의 품격과 능력을 확인하게 되는 법.
그걸 확인하게 될 날들이 멀지 않았다.
난 미국민들에게 회초리를 들 생각이다.
자신들의 무지와 욕망으로 탄생시킨 장사꾼 대통령이 펼쳐 보일 미래.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행정의 무능함이 뭔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목격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국가 부채는 한없이 늘어나고 동맹국의 등에 비수를 꽂는 야비한 짓거리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다수였던 정의로운 자들이 숨을 죽였다.
순간의 이익에 눈이 멀어 악업에 손을 뻗는 그들.
그들의 선조들이 뿌렸던 피 값의 계산이 다 끝나가고 있었다.
한때는 정의와 도덕,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위해 희생했던 그들.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의 변심은 선량한 조상신들이 등을 돌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벅저벅.
트럼프가 돌아왔다.
내 눈치를 슬쩍 봤다.
그리고.
“다니엘, 부탁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귀신이 미리 정보를 물어왔다.
와이파이 연결의 장점 중 하나.
“오늘 밤……. 어제 부족했던 점을 사과하는 의미해서 성대한 파티를 열 생각이네. 응해 주겠나?”
다소 긴장한 듯한 트럼프.
감언이설은 언제나 수준급이다.
- 무조건 받아요! 비서에게 할리우드 여배우들뿐만 아니라 LA 유명 샐럽들에게 초청장을 뿌리라고 지시했어요!!!
무조건 고를 외치라고 흥분하는 장립.
싱긋 웃어 보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트럼프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긴급 초청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아시죠?”
값어치 없게 행동할 마음은 없다.
차곡차곡 쌓아두어야 할 마음의 빚.
“물론이네. 계산은 정확히 해주겠네!”
긍정적 대답에 얼굴이 활짝 펴지는 트럼프.
“그럼 오늘은 제대로 파티를 즐겨보죠.”
“고맙네. 다니엘!”
별말씀을.
계속 쌓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원금과 이자.
트럼프는 전혀 몰랐다.
내가 중금리 애용자인 동시에 대여자라는 사실을.
- 으아아아! 파티다! 파티! 회장님 뭐 하세요! 빨리 때 빼고 광내셔야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