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6장. 긴급 초청.
“로리아나가…… 겁이 없군.”
워싱턴에 위치한 대저택.
조용한 서재에서 상원의원 리처드 요한슨이 보고서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이스라엘에 있어야 할 야훼 바트가 미국에 모습을 보였다.
1년에 한두 번 해외에 나가는 것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그녀의 미국행.
그녀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난리가 난다.
특별히 대통령이 재가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로리아나 주변은 비행금지구역이 선포된다.
가까운 미국 항공모함이나 공군 전투 기지가 로리아나 호위를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호위하는 미군도 로리아나의 진정한 정체를 몰랐다.
로리아나가 VVIP 코드를 받기 때문이다.
대통령 이상에 준하는 경호가 가동된다.
그러다 보니 어느 곳으로든 움직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사정을 어느 정도 인지한 각국 정보부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로리아나의 결정 하나로 한 국가 경제가 박살나는 일도 가능했다.
상황이 그러니 대놓고 감시하지도 못했다.
섣불리 카메라를 들이댔다가는 상상하지 못했던 화를 당한다.
모사드를 뛰어넘는 차일드 가문의 정보력.
로리아나에게는 매일 세계 각국 수장들이 내린 중요한 결정 사항들이 바로 전달됐다.
그만큼 리처드도 조심하고 몸을 사렸다.
자신의 주변에 포진한 측근 참모들 중에 누가 과연 로리아나 측의 끄나풀 역할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직계와 방계의 반목은 오래 지속돼 왔지만 매번 전면전은 피했다.
방계는 아직도 직계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의 권리만 획득하면 큰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로리아나 뒤에는 그분이 계셨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원한 주인.
“야훼께서도 허락하셨나 모르겠군.”
리처드는 야훼를 언급하는 목소리에 경외심을 담았다.
21세기에도 야훼의 기적은 계속 일어났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그분의 신탁과 보호는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골란고원 전쟁에서 모조리 승리를 거두었다.
야훼의 명령으로 차일드 가문이 적극 개입한 일이었다.
미국과 유력 국가들이 압력을 가했다.
용감한 사막 전사들도 야훼의 무력과 지력 앞에서 낙엽처럼 쓰러졌다.
“트럼프…… 넌 인복이 많구나.”
다음 대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그동안 전혀 언급된 적 없던 트럼프가 집중을 받으며 한순간 부상했다.
민주당 8년 정권에서 이제는 공화당으로 권력 바통을 넘겨줄 때이기도 했다.
떠돌던 말들이 한 줄로 맞춰졌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혈안이 된 부동산 업자가 탐탁지 않았지만 다니엘이 그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었다.
그의 의중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로리아나가 직접 날아가 다니엘을 만났을 정도라면 그만큼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높다는 증거였다.
의도는 아닐지라도 로리아나의 움직임만으로 엄청난 압력이 됐다.
오바마는 물론 힐러리도 긴장하고 있을 게 빤했다.
막상 멍청한 트럼프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호기를 잡았는지 짐작도 못 할 것이다.
“사라가 화가 났겠군.”
리처드는 딸의 심정을 상상했다.
다니엘은 한때 자신처럼 전형적인 나쁜 남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주변에 미녀들이 줄을 섰다.
사라도 그 주변 미녀들 중 한 명이 됐다.
미리 예상하고 경고했지만 사라는 듣지 않았다.
리처드가 만나 본 다니엘은 충분히 그만한 매력이 있었다.
나쁜 남자인 줄 알면서도 서서히 빠져들 수밖에 사내.
“좋은 시절이야.”
리처드는 그 아름다운 청춘 또한 한때라는 걸 알았다.
자신도 젊은 시절 뭇 미녀들의 품에서 살다시피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뜨겁게 사랑을 속삭였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중견 정치인이 된 뒤부터는 더 몸을 사려야 했다.
한 번 흘러가 버리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청춘 시절의 자유.
“다니엘…… 계속 널 지켜보겠다.”
아직까지 크게 부딪치지 않았다.
로리아나의 지극한 관심을 받고 있는 게 확실했기에 리처드도 경거망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애국심에 있어 첫 번째 목표인 존 피어스 상원의원과 오바마가 다니엘을 상대하기 어려워했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다니엘.
리처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다니엘은 적과 아군 사이에서 기묘한 줄타기를 즐기고 있다.
뭔가 큰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런데 이상하군……. 갑자기 날씨가 왜 이렇게…….”
보고서 말미에 기록되어 있는 트럼프 별장 인근의 기상 이변.
태평양과 인접한 곳이라 기상 변화가 심하긴 하지만 기상청도 당황할 만큼 급변한 기상 상태를 보였다.
갑자기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치고 비구름이 몰려왔다는 보고다.
유독 그 지역에만 나타난 현상이었다.
“누가 신을 노하게 한 건가?”
리처드 요한슨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
번쩍!
콰과과과과과광!
섬광 뒤에 이어진 강력한 벼락.
쩌저저저저적.
별장 인근에 설치된 오래된 나무가 낙뢰에 맞아 불타올랐다.
자연의 신비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난 바짝 쫄았다.
- 와우! 정말 대단해요! 신들이 심술이 난 걸까요? 혹시 이곳에 신의 분노를 살만 한 일을 벌이고 있는 멍청한 놈이…….
립이 말을 하다 끝을 흐렸다.
뒤에서 느껴지는 귀신의 시선.
잡귀야! 닥쳐!
난 죄가 없다.
신실한 자신의 딸을 제대로 관리 못 한 야훼가 문제다.
통제도 못 하면서 저렇게 쪼잔하게 화를 냈다.
로리아나와 진한 키스를 나눈 직후부터 별장 주변 날씨가 미친 듯 급변했다.
로리아나는 꿋꿋하고 용감했다.
큰 결심을 한 듯 벼락이 치는 와중에도 진한 키스를 퍼부었던 그녀.
- 야훼가…….
- 야훼가…… 당신을…….
- 야훼가…… 속이 타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알림음이 수신 장애를 일으키듯 연달아 들려왔다.
격렬한 키스 중에도 바짝 신경이 쓰였다.
뒷말까지 온전히 듣지 못해도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잘 키워 놓은 딸을 도둑놈 같은 놈에게 빼앗긴 아빠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애꿎은 나무를 후려 패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십 그루가 넘는 나무가 날벼락 맞았다.
로리아나도 그즈음 되자 위기를 감지했다.
물론 자신이 뱉은 말처럼 두려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첫 키스가 분명했을 그녀는 야훼가 후려치는 벼락을 눈으로 확인하는 동시에 날 뜨겁게 바라봤다.
나도 좋았다.
달콤한 햇사과 같은 맛이 입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벼락 맞고 죽는 건 거부하고 싶었다.
로리아나와의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데 계산이 다시 필요했다.
더 멀찍이 떨어진 거리가 절실했다.
사랑이라 착각할 만한 감정에 휘말린 중2병 사춘기 소녀 같은 로리아나.
그러니 물불을 못 가릴 게 자명했다.
이스라엘에 속히 방문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때야 품에서 떨어진 로리아나.
트럼프 별장에서 더는 함께하지 못했다.
로리아나는 심상치 않은 날씨 변화에 하늘을 한 번 살피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올 때 당시보다 더 빠르게 경호원들과 함께 사라졌다.
로리아나가 떠나는 시점부터 거짓말처럼 날씨가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리아나의 모습이 아주 사라진 뒤에는…….
“난 좋았어. 밤새 내리치는 벼락과 폭우…… 잠 못 들기에 완벽한 밤이었다.”
임성철 회장이 나타났다.
얼굴에서 물광이 번져 번들거렸다.
- 흐흐. 물론입니다. 벼락처럼 뜨겁고 화끈한 밤이었습니다!
립의 음성도 만족스러운 듯 생기가 돌았다.
환상의 2인조다.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두 여배우가 임성철 회장 양옆에 밀착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분위기가 아주 뜨거웠다.
옆에만 가도 데일 것처럼 활활 타오르던 그들의 사랑 에너지.
흐뭇하게 바라보던 트럼프를 조용히 불러냈다.
다른 룸에 자리를 마련해 따로 술을 마셨다.
굳이 끈적끈적한 판에 끼고 싶지 않았다.
다들 자신을 책임질 만한 성인들이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찾아온 아침.
뒤끝 작렬 야훼가 보낸 벼락과 바람의 전사들이 트럼프의 골프장을 아작 냈다.
“돈 보따리라도 푸셨습니까?”
“아니.”
자신만만한 태도로 나타난 임성철 회장의 간단명료한 대답.
트럼프 별장 내부에는 감시 카메라 같은 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앞서 온시은이 해킹을 통해 안전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만큼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럼…….”
- 회장님 노하우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역시 세계적 대기업의 주인은 달라도 뭔가 달랐습니다!
존경 가득한 장립의 아부성 발언.
설마 말빨?
- 에이 말빨 플러스 분위기빨, 얼굴빨 등등. 이게 말로 참 설명하기 힘든데……. 배울 게 엄청 많았습니다.
어제는 그렇게 대립각을 세우던 둘이 다시 천생연분이 되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꼴을 봐서 그런지 골치가 살짝 아파 왔다.
둘만 놔두면 더 큰 사고가 터질 게 빤했다.
와이파이도 어느 틈에 다시 연결 됐다.
빨리 임성철 회장을 시베리아로 돌려보내야 할 것 같다.
장립의 육신과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잡귀 목소리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다.
“하하. 다들 좋은 아침.”
트럼프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들어왔다.
그가 임성철 회장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자신이 깔아 놓은 판에 장립이 완벽하게 걸려들었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바보.
장립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는 걸 아예 몰랐다.
“좋은 아침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별장이 엉망이 됐습니다.”
잘 관리되어 있던 골프장 시설은 엉망이 되었다.
골프장 잔디 곳곳이 패고 나무는 불타거나 쓰러졌다.
돈 좀 들여야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휘리리리리리리리리링.
아직도 비만 그쳤지 거친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별장의 튼튼한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호곡성을 날렸다.
“걱정 마. 이런 때를 대비해 괜찮은 보험을 들어놨어. 이번 기회에 바닥까지 싹 갈아엎고 새로 깔면 돼.”
트럼프가 호기를 부렸다.
보험의 천국, 미국 부자와 시민권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기대가 됩니다.”
“다음에도 올 거지?”
“형님이 초청하면 그래야죠.”
트럼프는 이제 기지개를 켰다.
도움이 몇 차례 더 필요했다.
“그런데 말이야……. 다니엘.”
트럼프가 살짝 뜸을 들였다.
“말씀하십시오.”
“어제 왔던 레이디는 누군가?”
밤새 궁금했을 텐데 잘도 참았다.
로리아나가 머물고 있는 동안 모든 통화는 불통이 됐다.
경호원들 때문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건 꿈도 못 꾸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도 로리아나의 정체를 알아내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저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저를 알아보시고 또 그분을 보호하는 신이 따로 존재하는 겁니까?
애들은 몰라도 된다.
그리고 잡귀 수준에서는 사실을 안다 해도 소용이 없다.
“나도 궁금해.”
임성철 회장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이럴 때는.
“어제 왔던 레이디는…….”
가볍게 운을 뗐다.
그 순간.
- 신이 당신을 긴급으로 초청했습니다. 응하시겠습니까?
긴급 초청?
그렇다면 내 선택은…….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