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4장. 불청객 그녀(2).
“이번에도 다니엘인가…….”
백악관 내 심처.
고풍스러운 책상 위에 펼쳐진 사진을 보며 오바마는 이마에 깊은 주름을 만들어 냈다.
트럼프와 만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다니엘.
두 사람의 만남 이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보고를 받았다.
미국 정치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 목록 100위 안에 다니엘이 올라왔다.
비공식적으로 매겨진 순위지만 정보부의 판단은 지금껏 정확했다.
로버트 라이언과 깊이 연관돼 있는 한국인 다니엘 장.
그의 행보에 정계와 경제계 인사들이 들썩였다.
문제는 몇 번 언급되던 그 이름의 주인공이 점점 중심이 되어간다는 것.
투자 능력에 이어 예술적 재능까지 대단하다는 평가다.
오바마도 다니엘의 연주를 직접 듣고 싶을 지경이다.
“야훼 바트…… 흠.”
오바마도 사진을 통해서만 봐왔던 차일드 가문의 적통 후계자.
엄호를 받으며 헬기에서 조심히 내리는 모습이 찍혀 있다.
IT 발달로 현장 사진이 실시간 전송됐다.
어떤 형태로든 자료를 보관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확인한 즉시 폐기돼야 하는 자료들이었다.
만약 이 사진이 유출이라도 된다면 오바마는 당장 지옥을 경험하게 될 터였다.
로리아나는 그럴 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
미국 건국 이후 만들어진 모든 권력의 핵심 라인을 쥐고 흔들어온 차일드 가문.
오바마는 그들 중 몇과 만났던 때를 잊지 못했다.
대학교 졸업 후 정치 신인 시절 차일드 가문의 사자라는 자가 방문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정체를 알고 경멸했다.
대면조차 거부하며 문전박대해 쫓아냈다.
미국을 떠나 전 세계 민주주의와 자유를 억압하는 불의한 권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론과 선택은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오래가지 않아 깨닫게 됐다.
이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믿었던 민주당 정치 선배가 오바마에게 퇴출을 통보했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도 일방적으로 퇴직 통보를 알렸다.
당장 월세가 밀렸다.
오바마는 그 당시 느꼈던 무력감과 공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차일드 가문은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모든 걸 감시하고 조종했다.
오바마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노숙자 신세가 되어 생을 마감할지 자신의 꿈을 위해 고개를 숙일지.
그리고 오바마의 갈등을 다 꿰뚫고 있었다는 듯 다시 찾아온 차일드 가문의 사자.
그때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진심으로 목숨을 구걸하며 눈물을 흘렸다.
10,000달러짜리 수표 한 장이 무릎 꿇고 엎드린 오바마 앞에 떨어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표를 쥐었다.
계약 성립.
그 이후부터 오바마는 거짓말처럼 승승장구했다.
사랑하던 여인과 결혼도 했으며 연방 상원의원까지 올랐다.
그리고 헛된 꿈에 그칠 뻔한 미국 대통령도 됐다.
이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을 다 이루었지만 오바마는 여전히 가슴에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권력을 시민들로부터 위임받았지만 진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들은 차일드 가문이었다.
오바마를 보좌하고 있는 의원들과 상당수 행정부 고위 직원들이 차일드 가문의 하수인들이다.
지금 이 사진에 대한 상황도 낱낱이 그들에게 보고되고 있을 것이다.
“하아아.”
오바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일드 가문과 어려운 딜을 통해 오바마 케어를 얻어냈다.
대가로 레임덕을 받아들였다.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기에 오바마의 힘이 하나둘씩 제거 됐다.
권력 구조의 실상을 모르지 않았기에 받아들여야 했다.
힐러리가 차일드 가문으로부터 뭔가 언질을 받은 것 같지만 오바마는 확신할 수 있었다.
결국 힐러리도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니엘……. 이자가 판을 뒤집고 있어.”
힐러리가 아직 차기 대통령으로 우세한 입지를 점하고 있지만 다니엘이 트럼프를 민다는 게 신경 쓰였다.
대놓고 오픈 된 파티에 참석했다는 건 그를 공식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표를 가진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만 있는 게 아니다.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는 자들은 더 빠른 선택을 하고 행동을 취할 것이다.
더욱이 의심할 나위 없이 가장 중요한 인사가 트럼프의 별장을 방문했다.
차일드 가문의 직계 수장인 야훼 바트.
그녀가 다니엘을 만나기 위해 직접 움직였다.
대통령의 재가도 필요 없이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된 것만 봐도 그 힘을 엿볼 수 있다.
평소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국가 시스템.
FBI는 물론 다수 미국 보안국들이 로리아나의 경호를 위해 눈에 불을 켰다.
“만약 그때 다니엘을 공격했다면…….”
오바마는 과거 일을 떠올리며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던 때가 떠올랐다.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자칫 그 일을 실행되었다면 백악관 경호원들 중에 누군가 자신을 암살했을 수도 있다.
“다니엘…… 널 존경한다.”
오바마는 자신의 무능력과 패배를 스스로 시인했다.
다니엘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허울뿐인 대통령 자리에 앉아 전해지는 보고에 입맛을 다시는 게 전부였다.
야훼 바트의 다니엘에 대한 신뢰와 지지 행보.
그게 바로 부정할 수 없는 다니엘의 위상이었다.
***
- 다니엘? 지금 저 엄청난 미모의 여인이 분명 형님을 부른 거 맞죠?
장립 귀신이 나를 다시 형님이라고 불렀다.
방금 전까지 날 원망하며 임성철 회장과 친한 척하던 귀신이 태세전환을 했다.
맞아.
- 와아……. 진짜 형님 존경합니다!
귀신도 보는 눈은 있다.
클럽 하우스에서 임성철 회장과 취향 차이로 다투던 장립의 시선이 이번에는 로리아나에게 꽂혔다.
할리우드의 잘나가는 여배우들도 숨을 죽였다.
로리아나가 자연산 고급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라면 에바와 니나는 일반 원두로 대충 추출한 기계식 커피숍 커피였다.
외모는 어떻게 비슷한 수준이라 평할 수 있지만 풍기는 포스는 감히 비교가 불가능했다.
거기에 넘치는 고귀함은 명문가 혈통만이 보일 수 있는 위엄이었다.
고작 내 이름을 부른 게 전부였다.
로리아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미 모두 경외감에 사로잡혔다.
순결한 아이보리색 원피스와 검정 구두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나타난 여신 같은 로리아나.
야훼의 축복이 더해진 그녀의 모습은 볼 때마다 신비로웠다.
- 진짜……. 아름다워요. 정말 형님의 능력은 탑입니다!
귀신이 작심하고 아부를 날렸다.
귀에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귀신은 상황을 전혀 몰랐다.
지금 자신의 시선이 꽂힌 저 여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싱긋.
아니나 다를까 로리아나가 내 머리 위쪽 허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 으아아아! 저, 절 볼 수 있는 겁니까? 그런 거죠?
보기만 할까?
야훼의 능력이라면 바로 천국이나 지옥으로도 보낼 수 있다.
“누구……십니까?”
트럼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별장 주인임에도 찍소리도 못 내고 있다 뱉은 한마디였다.
평소 트럼프 성격이라면 골프장 잔디가 엉망이 됐다고 불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눈칫밥으로 부를 일궈온 그는 로리아나가 엄청 대단한 여인임을 직감했다.
“제 친구입니다.”
내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친구?”
임성철 회장이 나와 로리아나를 번갈아 보며 심상치 않은 시선을 보냈다.
오정 주인도 야훼 바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로리아나의 모습이 찍힌 사진도 함부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늘 이곳에 나타난 사실만으로도 미국 대통령은 바짝 긴장해 있을 것이다.
“오! 그럼 숙녀분도 내 친구…….”
처저저적.
트럼프가 상황 파악 못 하고 과격하게 액션을 취하려던 순간 총구 10여 개가 한꺼번에 그를 향했다.
“!!!”
그대로 굳어 버리는 트럼프.
“히꾹……. 히꾹.”
얼마나 놀랐는지 바로 딸꾹질을 시작했다.
살면서 이런 상황 처음 맞닥뜨릴 것이다.
말 몇 마디에 바로 총구멍이 자신에게 향하는 신선한 경험.
나야 로리아나의 중요한 손님인 게 맞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경호원들에게 크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여배우들의 안색도 하얗게 질렸다.
나를 향해 뿜어내던 강렬한 열망도 이미 차갑게 식었다.
말이 친구지 로리아나의 마음이 담긴 눈빛은 온전히 나에게만 향해 있었다.
그 눈빛의 의미를 눈치 못 채면 여배우 타이틀 반납해야 한다.
- 와! 진짜 대단한 분이세요. 아름답고 지적이며 고상하고…… 위협적이시네요. 제 스타일…….
파지지지직.
그때 내 눈에만 보이는 미세한 스파크가 머리 위 공간에서 터졌다.
- 으아아아아아악! 누, 누구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귀신의 비명이 소란스럽게 울렸다.
야훼가 누군지 모르는 어리석은 중국 귀신.
휘리리링.
립의 비명 소리에 갑작스런 바람이 한 차례 불었다.
스윽.
가볍게 흩날리는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는 로리아나.
바로 화보각이 됐다.
진짜…… 빈말이 아니라 분위기가 죽여 줬다.
“불쑥 이렇게 찾아와 미안해요. 다들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다니엘과 할 말이 있습니다.”
정중하고 품위 있는 로리아나의 음성.
“무, 물론입니다! 마음껏 산책 하십시오.”
총구에 한 차례 당한 트럼프가 바짝 긴장해 대꾸했다.
미녀들 앞에서 오줌 안 지린 것만으로도 정신력은 인정할 만했다.
그 틈에도 임성철 회장은 로리아나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여배우들은 로리아나의 기세에 쫄아 아예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리고.
- 형, 형님! 저 와이파이 끕니다! 으아아아아아.
파지지지직.
야훼가 잡귀를 제대로 다룰 줄 알았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입을 놀리다 야훼에게 참교육 당한 립.
“저 없이 파티를 시작하는 건 아니죠?”
“물론이야. 잠시 쉬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산책해.”
트럼프가 뒷걸음질을 치며 내뺐다.
“그럼…….”
여배우들은 못내 아쉬운 눈길을 보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에 보도록 하지.”
임성철 회장은 로리아나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이고 물러났다.
그녀와 나, 둘만 남은 골프장.
“모두 물러나세요.”
처저저적.
로리아나의 명령에 빙 둘러 있던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쯤 되면 벌써 인공위성이 이곳 상공을 제대로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로리아나.”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언제나 파격적인 방식으로 내 앞에 나타나는 야훼 바트.
“너무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로리아나의 눈썹이 상큼하게 치켜 올라갔다.
감정 표현 하나에도 품위가 넘쳤다.
“잠시 걸을까요?”
이럴 때는 분위기 전환이 빨라야 한다.
사박사박.
잘 관리된 잔디 위를 걸었다.
구두를 신었음에도 평지처럼 걷는 로리아나.
괜히 마법사가 아니다.
사라라라라랑.
태평양의 바닷바람이 골프장으로 불어왔다.
트럼프의 별장은 경관이 일품이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 거짓말 믿어도 되나요?”
“그럼요. 당신은 세상에 몇 없는 진실한 신을 섬기는 분이 아닙니까. 참과 거짓을 구별하시리라 믿습니다.”
- 야훼가 당신에게 모기 눈물만큼 포인트를 지급했습니다.
짠돌이 야훼!
이 정도 아부성 발언을 남기면 다른 신들은 보너스도 쐈다.
“다니엘…….”
조용히 몇 걸음 걷던 로리아나가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불렀다.
무언가를 작심하고 묻기 위한 말투와 제스처다.
“네. 로리아나.”
그녀를 쳐다봤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을 품고 있는 듯한 로리아나의 눈동자.
그 두 눈이 나만 온전히 바라봤다.
“왜 난 아닌가요?”
“네?”
뜬금없는 로리아나의 물음.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사라만큼…… 당신이 그리웠어요!”
“!!!”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