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3장. 불청객 그녀.
“에바…… 잭스와 니나 스캇……. 이 여우들은 또 뭐야?”
월가 중심가의 한 사무실.
사라 요한슨이 남녀가 나란히 있는 사진들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라도 알고 있는 유명 여배우들.
독특한 분위기와 글래머러스한 매력으로 승부를 보는 두 명의 여배우가 다니엘과 다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풍염한 가슴과 길쭉한 다리를 훤히 드러내 보인 골프 복장.
같은 여성인 사라가 봐도 보기 좋았다.
파바밧.
사라의 눈빛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일정이 바쁘지 않았다면 다니엘 옆에 사라가 있었어야 했다.
“영화 다 캔슬해 버려?”
사라 요한슨이 다니엘 옆에 붙어 있는 두 여배우의 사진을 보며 분노를 드러냈다.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오늘이라도 은퇴시킬 수 있었다.
미국에서 요한슨 가문은 절대 권력자였다.
“하아아.”
사라가 마음을 진정시키며 한숨을 쉬었다.
평범한 여자들처럼 질투에 눈이 멀어 여배우들의 앞길을 막는다면 꼴이 우스워질 게 빤했다.
게다가 다니엘이 그런 태도를 좋아할 리도 없었다.
“문제는 트럼프야.”
여배우 사진을 내려놓고 트럼프가 찍힌 사진을 손에 들었다.
호탕한 척 웃고 있지만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인물.
아버지와 몇몇 가문 사람들이 모여 얘기하는 걸 엿들은 정보가 있었다.
이번에는 공화당에서 대통령을 배출할 때였다.
시민들은 전혀 모르는 은밀하고 거대한 세력들 간의 야합.
오바마로 인해 추진하고 있던 몇몇 사업이 타격을 입었다.
이런 시기에는 공화당으로 정치권력을 옮겨 실어야 마땅했다.
미국이 세계 어느 곳보다 모범적인 민주사회라 착각하고 있지만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철저하게 군산복합 단체와 경제 이익 단체 간에 협의로 대통령이 세워졌다.
연방준비 은행장도 마찬가지다.
달러를 찍어내는 연방은행도 차일드 가문의 직계와 방계에 의해 조종 됐다.
핵심 분야의 모든 구성원이 다 차일드 가문의 바지사장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차일드 가문의 방계 핵심 패밀리인 사라는 차기 대통령으로 거론되고 있는 트럼프가 탐탁지 않았다.
다니엘을 이용하고 도덕적으로 타락시키기 위해 음모를 짜는 게 눈에 보였다.
순순히 당할 다니엘도 아니지만 미국인의 생리를 알고 있는 사라로서는 기분이 몹시 나빴다.
그것도 가장 짜증나는 미인계를 이용했다.
“나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을 텐데…… 얼간이 호색한.”
트럼프의 별명을 거칠게 내뱉는 사라 요한슨.
“장립과는 언제부터 이렇게 친해진 거지?”
다니엘과 장립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였다.
수집된 정보에서도 그렇게 확인 됐다.
그러나 사진 속 두 남자의 모습은 보통의 관계 이상으로 친분이 두터워 보였다.
사라 요한슨도 장립에 대한 적잖은 소문을 들은 터였다.
베이다이허에서 보였던 그의 정치력에 웬만한 핵심 인사들은 다들 놀라워했다.
그런 장립과 꽤 가까워 보이는 다니엘.
“당신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요?”
사진 속 다니엘을 바라보는 사라 눈에는 애정이 가득 담겼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 앞에 나타난 다니엘.
미술을 비롯해 음악과 문학에도 조예가 꽤 깊었다.
다니엘의 문학적 지식은 그쪽 방면의 전문가들의 식견을 뛰어 넘을 정도였다.
투자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깐깐한 사라 아빠도 다니엘을 인정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오바마를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도 다니엘의 눈치를 봤다.
월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구석이 없는 다니엘.
그의 활짝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에 사라는 정신을 빼앗겼다.
덩달아 다니엘과의 뜨거웠던 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언제나 목마르고 아쉽기만 한 다니엘의 품.
일에 매달리면서도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띠리리리리리릭.
단조로운 사라의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인가요?”
통화 버튼을 누르며 사라가 물었다.
가문에서 트럼프의 별장에 파견했던 요원이다.
- 아가씨……. 방금 전 별장 주변으로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됐습니다.
놀라운 요원의 보고.
“그게 무슨 말인가요? 대통령이라도 방문했나요?”
트럼프와 극도로 사이가 나쁜 오바마가 방문했을 리는 없다.
-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누구……. 아!”
좀 더 물으려다 말고 누군가를 떠올리고는 저절로 입을 닫은 사라 요한슨.
- 그분이십니다.
짐작했던 인물을 확인해 주는 요원의 목소리.
사라는 감히 입에 그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아아…….”
사라 요한슨은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
“아슬아슬하게 이겼습니다.”
다니엘이 활짝 웃었다.
주변이 순식간에 밝아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끄응.”
트럼프가 신음을 흘렸다.
“말도 안 돼…….”
립이라는 중국계 청년도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36홀 경기가 끝났다.
마지막 홀에서 파5로 이글을 잡아내는 다니엘.
최종 타수가 결정됐다.
1타 차의 아슬아슬한 승리.
‘게임을 완벽하게 지배했어!’
에바 잭스는 다니엘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스폰 접대와 다이어트를 위해 적당히 배웠던 골프다.
다니엘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으로 작용했다.
트럼프와 립은 생각보다 골프를 잘 쳤다.
핸디도 잡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의 치열한 한판 승부에 휘말려 들었다.
매 타수마다 피가 말랐다.
엎치락뒤치락 스코어가 바뀌었다.
바짝 신경을 쓴 자신과 달리 괜찮다며 위로하던 다니엘 장.
진짜 멋있는 남자다.
허세가 아니었다.
영화 투자금 1억 달러는 누구도 제시하지 않았던 거금이다.
미국 유명 영화사들도 그 정도 자금을 배팅하려면 모험을 감행해야 했다.
중국 자본이 가끔 거액으로 투자되지만 영화 퀄리티는 매번 엉망이 됐다.
말도 안 되는 장면에서 중국 배우들이 투입돼 분위기를 망쳤다.
자본 흐름의 눈치를 보는 할리우드도 그런 일 때문에 요즘 몸살을 앓았다.
한때는 일본 자금으로 좌지우지되던 영화판이 이제는 중국 쪽에 의해 흔들렸다.
그런 영화계에 다니엘 장이 등판했다.
투자로 언급된 자금이 엄청났다.
미국 영화판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정도의 규모다.
두근두근.
에바의 심장이 맹렬하게 뛰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었다.
긴 시간 동안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플레이를 한 한국인 다니엘.
옷깃에 먼지 하나 앉지 않고 깨끗했다.
에바는 다니엘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감에 젖어들었다.
‘……너무 멋있는 거 아냐?’
니나 스캇도 완벽하게 다니엘의 팬이 됐다.
한 편의 골프 영화를 보는 것처럼 멋지게 반전 승리로 게임을 마무리가 됐다.
짜릿했다.
손에 땀을 쥐며 홀을 돌았다.
남자친구와 보낸 뜨거운 시간보다 더한 쾌감을 맛봤다.
치열한 눈치 게임 같았던 승부!
다니엘이 에바와 자신을 이끌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지?’
요즘 들어 러브 콜을 하는 작품이 뜸했다.
몸값이 오른 탓도 있었다.
하지만 들어오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감독이 없었다.
눈높이와 외부의 시선 때문에 3류 영화에는 출연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몇 억 달러 정도는 투입된 액션 대작의 여주인공 정도는 되고 싶었다.
확정된 건 아니지만 아무튼 기회를 잡았다.
다니엘이 빈말을 할 것 같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풍기는 카리스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도 꼼짝 못 하는 눈치였다.
“실력이 대단해. 인정하네.”
트럼프가 다니엘과 악수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난 승부에서 지금껏 누구를 봐준 기억이 없어. 온전히 다니엘 자네 실력이야.”
트럼프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건……. 하아.”
립이라는 화교도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완벽한 다니엘의 승리였다.
캐디들도 그 과정을 다 지켜봤다.
“약속은 지켜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야. 난…… 말이 가볍긴 하지만 신의 없는 인간은 아니야.”
트럼프가 뱉은 말에 대해 확약했다.
‘도대체 무슨 약속이야?’
니나는 다니엘의 내기 조건을 아직 이해 못 했다.
승리한 쪽의 의견 하나를 무조건 들어주기로 하는 조건이었다.
누가 보면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 같았지만 실상 알맹이가 없었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돈의 규모나 특정 약속이 존재하지 않았다.
안 지켜도 그만인 구두 약속.
다니엘은 트럼프와의 가벼운 내기 조건을 철석같이 믿는 듯했다.
‘과연 지킬까?’
니나는 트럼프를 신뢰하지 않았다.
여배우들과 추문을 자주 일으키는 트럼프는 약속 불이행자로도 그 명성이 자자했다.
인생을 다 바칠 것처럼 구애하다가 하룻밤 보내고 나면 돌변하는 나쁜 남자.
그가 트럼프였다.
쇄애애애애앳.
그때 머리 위로 두 대의 전투기가 빠르게 지나갔다.
평소에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이곳 상공은 유난히 부자들이 밀집한 곳이라 전투기들이 함부로 날지 않았다.
소음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소송도 불사할 만한 인간들이 많이 살았다.
한가롭고 조용한 곳에 겁 없이 비행하는 전투기들.
두두두두두두.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별장 뒤편에 자리한 산 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세 대의 대형 헬기.
빠르게 골프장 마지막 홀을 향해 다가왔다.
“저것들은 뭐야?”
초대하지 않은 손님의 방문인 듯 트럼프가 잔뜩 인상을 썼다.
주변을 경계하던 경호원들도 다가오는 헬기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지 않는 동체였다.
모두가 비싼 가격의 헬기였다.
끼이이이익.
뿐만 아니라 대형 SUV 검은 차량 10여 대도 모습을 보였다.
차량은 빠른 속도로 이동해 골프장과 별장 주변을 에워쌌다.
트럼프가 고용해 주변에 세워둔 경호원들은 바짝 긴장했다.
이 정도 규모의 출연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신분의 인물이 나타났음을 직감한 것이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입니까?”
립이 트럼프에게 물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평범하지는 않군.”
트럼프도 긴장했다.
미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경호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존재는 대통령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 전용 헬기가 아니다.
드르륵.
가까운 곳에 멈춰선 차 문이 열렸다.
타다다다닥.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호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표정만 봐도 심상치 않았다.
일체 말도 없었다.
“…….”
이제 막 게임을 마친 모두는 숨을 죽였다.
뒤끝을 보기 위한 갱이나 마피아의 방문이라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두두두두두두둣.
그사이 속력을 줄이고 조심해서 홀에 착륙하는 헬기.
헬기가 만들어 내는 바람에 잔디와 먼지가 한꺼번에 날렸다.
몇몇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듯 신경도 쓰지 않았다.
끼리릭.
메인 헬기의 프로펠러가 멈췄다.
덜컥.
헬기에서도 특수 무장한 경호원 10여 명이 먼저 뛰어 내렸다.
그리고 앞쪽에 멈춰 선 헬기의 문이 열렸다.
차박.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열린 문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검정 구두 하나.
‘여자?’
니나 스캇은 헬기를 타고 나타난 존재가 여자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여자들 중에 이렇게 대단한 경호를 받고 나타날 만한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대통령 부인조차도 이런 삼엄한 경호를 받기는 힘들었다.
스으윽.
드디어 온전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음…….”
태양빛을 배경 삼아 모습을 드러낸 여성은 마주한 것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냈다.
빛 속에서 태어난 듯 고결하기까지 했다.
골프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정 구두와 우아한 스퀘어넥 아이보리 원피스를 입은 그녀.
당황하고 놀란 사람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한 남자에게서 시선이 멈춘 그녀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다니엘…….”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