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장. 어부지리.
“???”
할리우드 여배우 에바와 니나는 서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파바밧.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연예계에서 암암리에 마당발로 알려진 트럼프의 초대를 받았다.
썩 내키지는 않았다.
트럼프는 유명세를 타는 인물 중에서도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자칫 그와 잘못 어울렸다가는 다른 이들처럼 손해를 보게 되는 수가 있었다.
현 정권인 오바마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은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았다.
인종차별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트럼프는 대표적인 백인 우월주의자로 같은 시선을 가진 자들의 우상이었다.
활동 무대 중심으로 이미 트럼프와 엮이지 말아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초대받은 상대 남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안심했다.
속으로 에바와 니나는 쾌재를 불렀다.
다니엘 장.
월가의 신화로 평가받는 로버트 라이언의 절친한 친구였다.
로버트 라이언이 다니엘을 극진히 챙긴다는 소문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로버트 라이언은 아무 파티에나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한 번이라도 그가 얼굴을 비치기만 해도 영향력이 대단했다.
로버트 라이언의 투자자금은 기업뿐만 아니라 영화계를 거쳐 문화계까지도 두루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책임자들은 모두가 다 그의 눈치를 볼 정도다.
그런 로버트 라이언이 진심으로 아끼고 우대하는 한국인 다니엘 장.
언젠가부터 유명 셀럽들의 입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렸다.
다니엘이 참석했던 파티에 함께 참석했었던 셀럽들 중심으로 그에 대한 찬사가 터져 나왔다.
‘베토벤 재림자’라는 호칭까지 붙어 있는 인물.
그의 기가 막힌 바이올린 연주 솜씨는 천상의 소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피아노 연주 모습도 마찬가지.
모두가 한 번쯤은 간절하게 다니엘을 만나보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웬만해서는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에서 칩거 중일 때가 많았다.
미국 방문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는 매번 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무려 그 다니엘 장이 오늘의 초대 손님이라고 전한 트럼프.
할리우드 여배우들 사이에 소식이 퍼지면서 난리가 났다.
트럼프의 전화가 불이 날 지경이 됐다.
그 많은 러브콜을 제치고 에바와 니나가 낙점 됐다.
경쟁률이 치열했던 만큼 두 여인이 느낀 성취감도 남달랐다.
유명 영화감독의 영화에 주연 배우로 낙점 받았던 순간보다 기뻤다.
그렇게 도착한 트럼프의 별장.
직접 마주한 다니엘 장은 정말 뭔가 달랐다.
그와 함께 있던 립도 꽤 괜찮았지만 다니엘과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밀렸다.
‘잡아야 해!’
에바는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평소 취미로 골프를 배워 놓은 게 오늘 같은 좋은 기회를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잘만 하면 오늘 다니엘과 파트너가 될 수 있고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었다.
한껏 멋을 내고 아껴두었던 수제 향수도 적당히 뿌렸다.
이제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에바.
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괜찮은 후원자를 잡아야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틸 수 있다.
‘한물가는 퇴물 주제에…….’
니나가 그런 에바의 속을 다 꿰뚫어 보듯 쳐다봤다.
미국 유명 여배우들도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했다.
탄탄한 연기력과 그에 합당한 부를 쌓은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대박을 터트리기 전에는 각종 라인을 통해 상납을 하는 게 기본이었다.
니나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별꼴을 다 봤다.
법이 있어도 정당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여배우의 삶.
눈앞에 나타난 성공의 깃발을 위해 니나는 오늘 모든 걸 다 바칠 각오가 돼 있었다.
“다니엘. 오늘 당신의 파트너가 되면 안 될까요?”
트레이드마크인 섹시한 미소를 지으며 니나가 먼저 치고 나갔다.
가슴을 살짝 앞으로 더 내밀었다.
에바와 비교되는 육감적인 몸매.
“…….”
립의 몸뚱이를 사용하는 임성철 회장의 눈빛이 덩달아 흔들렸다.
“그건 아니지. 내 생각도 물어봐야지. 니나.”
에바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다니엘. 제가 생각보다 골프 실력이 괜찮아요. 당신과 오늘의 승리를 쟁취하고 싶어요.”
니나와 또 다른 순수함을 한껏 자랑하며 그 속에 감춰진 관능적인 유혹미를 내비치는 에바.
‘아직 나 안 죽었어!’
자신감을 고취시켰다.
30대에 접어들었지만 꾸준하게 관리해온 덕분이었다.
그동안 쌓았던 고결한 이미지에 더해 나이가 주는 고상함을 눈빛에 담아 보냈다.
“다니엘……. 당신이 선택할 시간 같아요.”
니나가 자신만만한 승리를 확신하며 선택권을 넘겼다.
“…….”
잠시간의 침묵이 두 사람을 감쌌다.
그리고.
“그럼 어쩔 수 없이…….”
뜨거운 시선으로 에바와 니나를 번갈아 바라보는 다니엘 장.
“난…….”
천천히 그의 입술이 열렸다.
***
- 이건 아니죠!!!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닥쳐 귀신.
귀신의 말은 되도록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좋다.
더할 나위 없이 나의 선택은 완벽했다.
쇄애애애애액.
공간을 가르는 드라이브 휠.
따아아악!
경쾌한 타격음이 기분 좋게 들렸다.
휘이이이이잉.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공.
“나이스 샷!”
“다니엘 환상이에요!”
에바와 니나가 옆에서 손뼉을 치며 기뻐해 줬다.
“하하하하하. 다니엘 자네가 정말 부러워.”
트럼프의 호탕한 웃음은 덤이었다.
“기본은 하는군.”
그에 반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임성철 회장.
- 회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딱 기본이죠. 제가 쳐도 저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삐친 귀신과 임성철 회장이 다시 똘똘 뭉쳤다.
에바와 니나, 둘 다 놓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삼귀행의 평안을 위해 내가 두 사람을 모두 선택했다.
에바와 니나 때문에 삼귀행의 도원결의를 깨뜨릴 수는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두 여인을 나의 파트너로 정했다.
“립. 자네 실력을 보여줘 봐.”
“그러지.”
립이 드라이브 채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립. 자네만 믿겠네.”
트럼프와 임성철 회장이 한 팀이 됐다.
난 에바와 니나와 같은 조가 됐다.
36홀 코스를 돌기로 했다.
18홀로 나누어 에바와 니나가 나와 함께했다.
현대판 솔로몬의 판결.
립과 임성철 회장 덕분에 어부지리를 누렸다.
이래서 누가 보나 안 보나 착하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 거다.
귀신과 임성철 회장이 어이없는 시선으로 날 뚫어져라 봤다.
쿨하게 무시했다.
취향 따지다 둘 다 놓친 셈이다.
문제는 처음부터 에바와 니나가 립의 탈을 쓴 임성철 회장이 아닌 나를 노리고 있었다는 것.
그녀들의 번뇌를 한꺼번에 해결했다.
트럼프는 두 여인을 모두 파트너로 선택한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남자로서 나의 어려운 선택을 이해한다는 눈빛.
그 어려운 선택,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런 일로 스트레스 받고, 꼭 한 사람만 선택해야 한다는 사고방식과 불필요한 과정.
결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시간도 아까웠다.
따아앙.
임성철 회장의 티샷도 안정적이다.
슬라이스 없이 휘익 날아갔다.
내공빨이 딸려 거리는 부족했다.
1번 홀부터 롱코스였다.
파 4홀에 모래 벙커가 존재했다.
내공을 사용하면 드라이브로도 온 그린 할 수 있지만 살살 봐줬다.
“립도. 실력이 대단해요.”
니나가 임성철 회장에게 립 서비스를 날렸다.
“감사합니다.”
임성철 회장은 자신의 스타일이던 니나의 칭찬이 따르자 어깨뽕이 올라갔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수컷의 승부욕은 기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 회장님! 나이스 샷!
나에게 제대로 삐친 귀신 립은 임성철 회장에게만 칭찬 뻐꾸기를 날렸다.
립이 점점 더 여우가 돼 갔다.
처음 인연이 됐던 때의 소심한 귀신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특히 감정 표현에 있어 더 적극적이게 변했다.
죽은 자답지 않게 목소리에도 생기가 돌았다.
립이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에바. 살살 봐줄 거지?”
트럼프가 에바에게 아양을 떨었다.
“싫어요. 다니엘에게 승리를 안겨줄 생각이에요.”
“쉽지 않을 걸?”
트럼프가 에바를 자극했다.
슬슬 작동하는 트럼프의 승부욕.
이럴 때일수록 빠지면 안 되는 게 있다.
“쉬울 겁니다.”
격려하듯 도리어 트럼프를 자극했다.
“다니엘. 골프는 실력이 최우선이야.”
트럼프가 미끼를 잡고 만지작거렸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 편의 승리를 확신하는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에바와 니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물론이지! 난 무조건 다니엘 편!”
“호호. 두 말 하면 입 아픈 거 아닌가요?”
두 미녀도 내 편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트럼프와 임성철 회장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럼 내기를 걸도록 하지!”
트럼프가 미끼를 콱 물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임성철 회장이 날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들만의 보이지 않는 승부욕.
누구도 스스로가 상대에게 질 거라고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니지만 일이 술술 풀리고 있었다.
“무엇을 걸 수 있나?”
“숙녀 분들 앞이니 지저분한 돈 내기는 아닌 것 같고…….”
트럼프의 속내를 살짝 떠 봤다.
“그렇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트럼프.
“에바, 니나. 두 사람은 원하는 게 있어?”
“흐음…….”
카드가 자신들에게 돌아오자 살짝 당황하는 두 미녀.
그녀들이 내심 기대하고 있는 바가 훤히 보였다.
한국에서처럼 광고 수주 정도가 아니다.
그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명성.
“영화 섭외를 추진해 주죠. 투자금도 몇 천만 달러 정도 얹혀서.”
“정말요?”
“와우!”
두 미녀의 입이 쩍 벌어졌다.
유명 여배우라고 해서 영화감독들이 다 섭외를 원하는 건 아니다.
미국의 영화판도 여러 인맥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그런 시장에서 투자금까지 등에 업고 영화에 섭외되는 여배우들은 우선순위 1순위가 될 것이다.
연기력도 나쁘지 않은 배우였다.
에바는 몽환적 분위기가 꽤 잘 어울렸다.
역사 판타지나 SF물에 적당한 배우다.
니나는 강렬한 육체파 배우이니 액션물 여주인공에 제격이다.
“좋은 생각이야! 우리가 패배하면 내가 2000만 달러를 투자하지.”
트럼프가 제안을 흡족해 하며 받아들였다.
“나도 2000만 달러.”
임성철 회장도 지지 않았다.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패하면…… 사죄의 의미로 각각 1억 달러를 투자하겠습니다. 승리하면 보너스로 더 투자하겠습니다.”
“다……니엘.”
“아…….”
에바와 니나가 날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반면 트럼프와 임성철 회장은 쩝쩝 입맛을 다셨다.
역시 자금 규모로는 나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투자금이 높아져도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대박 영화들은 차고 넘쳤다.
에바와 니나를 적당한 영화에 꽂아주는 건 일도 아니다.
다만.
“만약 형님이 패하면 뭘 주시겠습니까?”
트럼프를 뜨거운 시선으로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진짜는 따로 있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보게.”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전혀 모르는 트럼프가 분위기에 휩쓸렸다.
씨익.
입가에 번지는 미소.
“만약 우리 팀이 승리하면 전…….”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