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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장. 삼귀행(三鬼行)(2). (890/1,284)

900장. 삼귀행(三鬼行)(2).

- 딱히 특이점이 없다고?

“맞아요. 제가 보기에는 장립은 크게 특별하지 않아요. 여자 좋아하고 성공에 목숨을 거는 정도의 보통 남자일 뿐이에요.”

- 그래?

“사실 남자로서 특별한 매력이 있는 건 아니에요. 돈을 잘 쓴다는 것 정도를 빼고.”

에바가 장립을 대놓고 비하했다.

모든 게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 에바 요원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믿어야지.

FBI 요원 관리를 맡고 있는 상사가 신뢰를 보였다.

설마 에바가 하룻밤 사이에 동양 남자에게 마음을 홀딱 빼앗겼으리라고는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냄새나는 동양인을 언제까지 만나야 해요?”

에바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물었다.

- 약속은?

“연락한다고 했어요. 박사 과정이라니까 학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하던데…… 받아도 돼요?”

에바는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대화를 이어갔다.

거짓된 정보를 보고하면서 동시에 현실적 실리를 동시에 취했다.

사는 데 있어 돈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뼈저리게 알고 있다.

대학 박사과정 수업료는 살인적이었다.

아무리 FBI에서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늘 허덕였다.

- 받아. 능력이 된다면 최대한 뽑아 사용해도 돼.

상사가 별 의심 없이 쿨하게 허락했다.

“알겠어요. 최대한 뽑아 볼게요.”

길고 거칠었던 밤이 거짓말처럼 지났다.

에바는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지며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짐승 같았던 장립은 다음에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다.

에바가 돈 때문에 FBI 특별 요원이 된 사실을 알고 경제적 지원까지 약속했다.

아직 실물을 받지는 않았지만 기대 이상일 것 같았다.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거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이성적인 에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건을 받아들여야 장립과의 인연이 지속될 것 같았다.

- 다른 일은 없었나?

“아! 맞아요. 다니엘이라는 남자와 통화했어요.”

- 다니엘? 그래서?

다급한 상사의 목소리.

“트럼프 별장 초대 이야기가 나왔어요.”

- 트럼프…….

눈치 빠른 에바였다.

상사는 에바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완전히 신뢰했다.

장립이 트럼프를 만나러 갔다는 사실은 다른 라인을 통해 진작 보고 받았다.

더불어 에바가 정보원으로 훌륭하게 활약했다는 사실도 믿었다.

“선거 이야기도 나오던데……. 그건 뭔가요?”

- 그래?

에바가 은근슬쩍 고급 정보를 한 토막 넘겼다.

장립이 지시한 내용이었다.

이 내용을 넌지시 흘리면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는 의심을 일거에 날려 버릴 수 있다고 했다.

“다니엘과 그런 대화를 한 것 같아요.”

- 수고했어. 에바. 다음에 립에게 연락이 오면 적극적으로 만나. 수당은 특별히 계산해 지급할 테니까.

“……제가 애국하는 거 맞죠?”

- 물론이야. 에바……. 넌 애국 시민이야.

FBI라고 모두 합법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치열한 정보전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미인계는 기본적인 무기가 됐다.

다만 각국 정보부는 서로의 치부를 알아서 조심하고 굳이 문제를 만들지 않을 뿐이다.

세상에는 완벽하게 보장되는 비밀이 없다는 게 정보 싸움이 일어나는 세계의 불문율이었다.

발각된 정보요원들을 서로 교환해 거래하는 일은 지금도 비밀이 아닌 비밀로 덮어지고 있다.

“쉬고 싶어요. 리포트 제출도 있고.”

- 그래. 수고했어. 립에게서 연락이 오면 바로 보고해.

“네.”

통화가 끝났다.

“하아.”

혼자 기거하고 있는 소형 아파트.

전화를 내려놓으며 에바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립……. 당신이 벌써 보고 싶어요.”

하룻밤 만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린 에바.

장립이 이동하고 있을 하늘을 그리움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

“하하! 어서 오게. 내 사랑하는 친구이자 동료, 동생이여.”

와락.

거구의 트럼프가 날 껴안는다.

데오드란트 냄새가 훅 하고 코를 파고들었다.

한국인들 보고 마늘냄새 난다고 말하는 서양인들은 이중인격자들이었다.

그들이 풍겨내는 강렬한 체취는 마늘 100개를 씹은 것보다 더 고약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다.

“보고 싶었습니다.”

넓은 품에 안겨 나도 뜨겁게 사랑 고백을 했다.

이것도 트럼프를 만날 때마다 치러야 하는 고역 중 하나였다.

“나만 동생을 뜨겁게 그리워한 건 아니지?”

“물론입니다. 트럼프.”

“그럴 줄 알았어. 다니엘과 난 항상 통하니까.”

전형적인 미국 소인배 사업가인 트럼프는 달콤한 말을 적재적소에 뱉을 줄 알았다.

물론 맞장구를 쳤다.

스윽.

긴 포옹 뒤에야 몸을 풀어주는 트럼프.

“그런데 이 멋진 친구가 다니엘이 말하던 립?”

트럼프는 기가 막히게 돈 냄새를 맡았다.

장립으로 몸이 바뀐 임성철 회장의 포스는 어디 가지 않았다.

타고난 재복의 기운을 트럼프가 감지하지 못할 리 없었다.

임성철 회장은 세계적 기업을 경영했던 인물이다.

장립의 외피로 임성철 회장의 자연스럽게 몸에 밴 권위가 풍겨 나왔다.

일개 부동산 업자에 지나지 않은 트럼프와는 레벨이 달랐다.

“립이라고 합니다. 트럼프. 이렇게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임성철 회장이 정중하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모자람 없이 젠틀하고 깔끔했다.

“트럼프라고 합니다. 다니엘과 친구라면 내 동생과 같은데 우리 편하게 지낼까요?”

트럼프의 친화력 하나는 높이 살만했다.

돈을 준다고 하면 어제까지 개새끼라고 욕하던 이와도 금방 친구를 먹을 수 있는 남자였다.

“물론입니다. 트럼프 형님.”

임성철 회장이 활짝 웃었다.

“하하하. 반갑네. 립. 이제 자네도 다니엘처럼 내 동생이야.”

턱턱.

트럼프가 임성철 회장의 어깨를 두들겼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갈까? 내가 특별히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했어.”

본격적으로 대선판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내 눈에는 확실하게 보이는 트럼프의 광폭 행보.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36홀 골프장과 바로 연결된 트럼프의 별장이 눈에 시원하게 들어왔다.

손님들은 우리 두 사람이 전부였다.

프라이빗한 분위기.

트럼프가 제법 신경을 쓴 티가 났다.

“게임 한판할 거지?”

“제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립도 골프 치나?”

“당연하죠. 기대하십시오.”

임성철 회장도 투지를 불태웠다.

“오! 정말 기대가 되는군!”

성공한 사업가들의 취미가 대부분 그러하듯 트럼프도 골프광이었다.

골프 이야기에 눈에 생기가 돌았다.

한국에서도 사업가들뿐만 아니라 공무원이나 일반인들도 골프를 대중 스포츠로 즐겼다.

“락커룸에서 환복하고 오게. 이것저것 골프채도 준비했어.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봐. 선물이야.”

트럼프가 인심을 쓸 때는 또 확실하게 썼다.

저런 과감한 성격 덕에 결국 미국 대통령이 된다.

투표권자의 마음을 제대로 뒤흔들었다.

점잖 빼는 올드한 정치인 힐러리가 밀린 이유가 거기 있었다.

문맹률도 높고 신문도 잘 읽지 않는 미국인들에게 트럼프의 직설화법이 제대로 먹혔다.

선거는 개싸움과 같았다.

승리한 자가 모든 걸 차지했다.

“기다리고 있겠네.”

처음부터 골프 복장이었던 트럼프는 신이 난 듯 보였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락커룸이 있는 클럽하우스로 임성철 회장과 걸음을 옮겼다.

“잘 치십니까?”

“프로들에게 레슨 받은 몸이야.”

“기대해도 되나요?”

“골프는 내기 스포츠라는 거 알지?”

남자들 허세는 어디를 가도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임성철 회장이 괜한 일에 투지를 불태웠다.

“그런데 장 회장. 물어볼 게 있네.”

“네?”

“갑자기 귀에 들려오는 이 소리들은 뭔가?”

“무슨 소리요?”

“포인트를 얻었다는 이상한 말이 들려오는데…….”

“!!!”

입이 딱 벌어졌다.

나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말아야 할 알림음이 임성철 회장의 귀에 들리는 모양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지금껏 오로지 나만을 위한 서비스였다.

- 와이파이. 흐흐흐.

그때 으스스하게 들려오는 귀신의 웃음소리.

이놈의 공용 와이파이가 문제의 원인이었다.

알림음까지 공유되는 것 같다.

“혹시…….”

임성철 회장의 눈이 돌아가는 모양새가 보였다.

진작 귀에 들렸을 알림음의 정체를 파악해 보려다 이제야 넌지시 확인해 오는 눈치다.

그만큼 시간을 갖고 생각을 정리한 후 묻는 물음이었다.

너구리같은 임성철 회장.

자신의 생존과 남은여생이 알림음과 얽혀 있는 걸 눈치 챈 것 같다.

그래봐야 이미 떠나버린 기차였다.

씨익.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천기누설이라…… 지금껏 말하지 못했습니다.”

“천기누설…….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나? 가끔 장 회장이 나에게 얘기했던 업과 관련되어 있는?”

확실히 눈치 챘다.

“네.”

“아! 그런 일이…….”

임성철 회장이 진심으로 놀랐다.

- 이거 많이 모아두면 쓸 데가 많습니다. 최대한 많이 벌어야 합니다!

포인트 저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귀신.

너도 이미 늦었어.

“출처가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뭐, 사랑하는 여인의 근심과 걱정? 그쪽 포인트라고 하던데?”

“언제부터 들렸어요?”

“지난밤부터…….”

“에바가 줬네요.”

“그래?”

- 흐흐. 포인트 받을 만했죠. 우리 회장님 진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남자로서 존경합니다. 짱!

장립이 ‘짱’ 소리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그 점, 나도 인정하는 바다.

어차피 임성철 회장은 대한민국 재벌 중의 재벌이었다.

주변에 뭇 여성들이 넘쳤다.

죽어가는 마당에도 여복은 끊이지 않았다.

“받을 때 많이 챙겨 두십시오. 나중에 요긴하게 쓸 수 있습니다.”

“알겠네. 최선을 다하겠네!”

최선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내가 생각하는 포인트 저축 방법과 달랐다.

상관없다.

결국 임성철 회장의 포인트는 모두 내가 위임 받아 관리한다.

영혼계의 금치산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임성철 회장이었고 내가 그의 법정대리인 격이었다.

- 저도…… 노바 형님 뵙고 싶습니다. 포인트 왕창 모으면 가능하겠죠?

장립의 한결같은 집념은 대단했다.

“물론이지. 순자님께서 말씀하셨지. 반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리에 이르지 못하고 작은 물이 모이지 않으면 강하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이야. 많이 모아서 나쁠 건 없어.”

귀신과 임 회장을 격려했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포인트는 자연스럽게 내 수중에 들어왔다.

특히 임성철 회장이 쌓는 포인트는 전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귀신 장립이야 언제든……. 천도재를 통해 위로 보낼 수 있다.

아는 저승사자도 있다.

“시설이 좋군.”

“금박 장식 보십시오. 온통 허세로 살아가는 업자입니다.”

“나도 트럼프에 대해 알고 있지. 욕망 귀신이야.”

임성철 회장이 냉정하게 평가했다.

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저지르며 살아가는 욕망의 화신 트럼프.

그에 대한 평가는 결론이 났다.

이제는…….

- 어! 

그때 깜짝 놀라는 장립 귀신의 목소리.

“왜?”

- 앞을 보십시오!!!

장립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금박이 입혀진 화려한 클럽 하우스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눈에 들어온 한 장면.

“오!”

임성철 회장의 입에서도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

역시 내 입에서도 탄성이 터졌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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