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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5장. 살아 있는 공부 방법. (886/1,284)

895장. 살아 있는 공부 방법.

“그래……. 내가 틀렸어. 같은 인물일 수가 없지.”

리장창은 방금 들어온 따끈한 사진 몇 장을 살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선명하게 찍혀 있는 장태산과 장립 그리고 로버트 라이언.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세 사람은 활짝 웃고 있었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로버트 라이언과 장립.

처음 만나는 자리인 듯 손을 맞잡은 장태산과 장립.

어떤 식으로든 트릭은 있을 수 없었다.

전문 요원들의 손에서 다각도로 사진이 찍혔다.

호텔 보안시스템까지 해킹해 CCTV도 확보했다.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갈유량도 첨언했다.

누가 봐도 이 이상의 의심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휴우.”

리장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 때문에 겪던 괴로움이 사라졌다.

결론은 장립은 장태산이 아니다.

“앞으로 더 가깝게 지내야겠어.”

“충분히 예우하겠습니다.”

로버트 라이언은 미국에서 감히 건들 자가 없는 거물이다.

월가의 마이다스의 손, 로버트 라이언.

그가 가진 자산은 단순히 숫자로 측정하기조차 불가능했다.

대부분의 거대 사업가들이 그러하듯 투자금 중 상당수가 조세피난처를 통해 운용됐다.

세계금융계에서 알아주는 큰손에 든 셈이다.

대륙 중국 투자자들도 개인 급은 그를 감당할 수 없다.

입지적인 인물 로버트 라이언과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은 장립.

“투자금을 받는다면 지분도 정리해줘야겠어. 계획보다 더.”

“준비하겠습니다.”

일대일로 투입 자금이 본격적으로 흘러 들어갔다.

중국 정부 자금을 제외하고도 천지회에서 별도의 자금이 투하됐다.

중국 내에서 일반적으로 융통되고 있는 그림자 금융 중 상당수가 천지회의 자금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난놈이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립을 지켜본 결과, 그가 앞으로 대단한 투자자로 성장하리란 걸 리장창은 의심하지 않았다.

홍콩 사업 규모는 날로 확장되고 있었다.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장태산과도 인연이 닿았다.

빼내고 싶어도 구체적으로 정체를 알 수 없어 난감한 장태산의 기술들.

“돈 냄새가 나. 진짜 돈 냄새.”

리장창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장태산에게서 풍기는 돈 냄새를 맡았다.

일개 기업 따위가 아닌 국가를 상대로 한 큰 사업을 준비 중인 장태산.

악연의 고리로 엮여 있지만 사업상 반드시 필요한 인물임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특히 장립을 통해 전해들었던 미세먼지 저감기술은 정권 운영에 필수 요소였다.

날이 갈수록 중국은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물론 인민들도 건강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배가 부르니 당연히 다음 코스의 삶으로 질을 높이고자 했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공기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계속적으로 접촉해 봐. 반드시 우리 사람으로 끌어들여야 해.”

“존명!”

제갈유량이 고개를 숙였다.

장립에 대한 1차 회유 작전은 실패했다.

하지만 포기하기는 일렀다.

조카도 장립을 포섭하는 데 있어 투지를 잃지 않았다.

홍콩에 파견까지 보냈다.

‘장립……. 네 콧대를 반드시 눌러주겠어!’

제갈유량은 속으로 단단히 심기를 다졌다.

***

“깨끗해.”

사라 요한슨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호텔에서 잠을 청하고 돌아온 그녀.

하루아침에 달라진 거리의 풍경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당시만 해도 모든 게 절망적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더러운 뒷골목.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건 뉴스나 시회 복지 정보로만 간간이 들었던 게 전부다.

언제나 곁에는 경호원들이 밀착해 그녀를 보호했다.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자유시장경제체제 국가인 미국에서 최상류층인 그녀의 눈에는 빈민가 풍경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막상 실제로 보니 더 엉망이었다.

콧속을 파고드는 빈민가 골목 특유의 악취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약에 취한 사람들은 대낮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보편적 인류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상황에 경찰과 응급 차량을 부르겠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혼란과 충격 속에서 만나게 된 거리의 아이들.

혹독한 겨울을 버티고 봄이 되면 피어나는 희망의 꽃들처럼 그들은 사라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었다.

대대적으로 공권력도 지원받으면서 뒷골목은 순식간에 정화됐다.

정말 미국에서는 돈으로 못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대통령도 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였다.

수백 대의 중장비와 수백 명에 달하는 청소부,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를 정리했다.

아이들이 모여 놀던 망가진 농구장 코트는 완전히 새것이 됐다.

거리는 물청소와 소독까지 마쳐 처음의 그 지저분한 풍경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깨끗해졌다.

망가진 도로도 새로 포장이 됐다.

낙후되고 무너졌던 담벼락도 무지막지한 물량공세로 전혀 다른 모습이 됐다.

본래 이곳에 살던 이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료 급식소도 마련됐다.

경찰들이 수시로 순찰을 돌면서 죄목이 걸린 갱들은 모두 다른 지역으로 숨어들었다.

마약에 취해 있던 이들도 상담사들이 도착하면서 말끔히 처리했다.

“에이든! 공 줘봐!”

“싫어! 오늘은 나도 할 거야!”

“그래. 너도 팀에 끼워줄게.”

“정말?”

목소리만 들어도 아이들이 얼마나 신났는지 알 수 있었다.

남의 것을 빼앗고 괴롭히던 모습이 사라졌다.

선뜻 바뀐 환경에 적응을 못 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새로운 세상에 금세 녹아들었다.

“천사 아줌마 안녕!!!”

“그래. 안녕!”

사라를 알아보는 아이들이 하나 둘 인사를 해왔다.

사라도 땀을 흘리며 인부들과 함께 일했다.

그 정성을 아이들이 먼저 알아봤다.

보디가드들은 그런 사라를 존중해 멀찌감치 떨어져 경호했다.

소란스러운 일은 전혀 없었다.

패드로 라이언을 따르던 갱들 상당수가 새로운 조직에 들어왔다.

JL갱스터.

다른 갱 조직과 달리 경찰의 비호를 받게 됐다.

도시 치안을 맡은 경호원인 셈이다.

며칠 만에 완벽하게 전혀 다른 곳으로 변화한 LA 뒷골목.

‘빨리도 매입했어…….’

다니엘의 파트너인 로버트 라이언의 부동산 회사가 며칠 사이 물건을 싹쓸이했다.

전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아 매물이 잔뜩 쌓여 있었지만 지금은 웃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띠리리리릿.

그때 사라의 스마트폰이 조용히 울렸다.

“!!!”

번호를 보고 사라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티릭.

빠르게 통화버튼을 누르는 사라.

“다니엘. 지금 어디에요?”

- 많이 보고 싶었나요?

“일만 던져 놓고 사라지는 남자는 매력 없어요.”

- 흐음……. 아쉽네요. 난 당신을 위해 멋진 선물을 준비했는데.

“선물요?”

사라는 톡톡 쏘는 말투와 달리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세상에서 다니엘만이 유일하게 사라를 미소 짓게 했다.

- 뒤를 돌아봐요.

“???”

사라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

그 순간 화들짝 놀란 사라.

거대한 건물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어제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커다란 벽화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누가 봐도 감동할 만한 대작.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벽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옷 여기저기에 페인트를 묻힌 채 스마트폰을 들고 손을 흔들고 있는 남자.

“다니엘…….”

사라의 목소리가 금세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이방인이 자신의 조국도 아닌 타국의 시민들과 아이들을 위해 위대한 땀을 흘렸다.

그 어떤 유명인보다 자랑스럽고 멋졌다.

- 선물 마음에 들어요?

다니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네……. 그 어떤 선물보다.”

- 그럼 데이트해요. 오늘 하루는 온전히 당신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YES!!!”

***

“다니엘 당신은 정말…….”

사라가 따스한 눈빛으로 날 본다.

장난 가득한 웃음이 절로 피어났다.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싶죠?”

“하아……. 짓궂어요. 그런 말은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보다 더 자연스런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건…….”

사라가 사르르 얼굴을 붉혔다.

처음 만났을 때 그 모습 그대로다.

차일드 가문과 연관되어 있는 대단한 가문의 여식.

누리고 있는 사회적 입지에 비해 무척 순수했다.

그래서 그녀를 멀리하지 않는다.

마음이 따뜻한 여자다.

LA 뒷골목 정화 사업에 그녀가 직접 뛰어들어 참여할지는 몰랐다.

나의 말을 전혀 허투루 듣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최대한 나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남자는 이렇듯 여인의 진심어린 존중으로 깊은 행복함을 느끼는 존재다.

티잉.

와인 잔을 부딪쳤다.

호텔 고급 와인바에서 잔을 기울였다.

사라와 약속한 데이트를 즐겼다.

단 둘이 차를 타고 드라이브도 했다.

해안가 도로를 달릴 때의 기분은 끝내줬다.

멋진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씨 푸드로 식사도 했다.

그리피스 천문대도 한 바퀴 돌았다.

시간이 흘러 찾아 온 밤의 시간.

호텔로 돌아와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불야성처럼 밝혀진 시내를 바라보며 마시는 와인 한 잔의 여유.

사라의 볼이 빨개졌다.

그녀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더 이상 장립이 아닌 온전한 장태산의 시간.

시간이 흘러도 나를 잊지 않고 그리워해 준 사라가 고마웠다.

그리고 사라는…….

“이것만 마시고 룸에 갈까요?”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던졌다.

사라가 눈동자를 반짝였다.

“와인……. 더 마시고 싶어요.”

촉촉하게 젖어 있는 사라의 목소리.

파바밧.

은근했던 분위기가 뜨겁게 확 달아올랐다.

와인, 나도 더 마시고 싶다.

사라의 붉은 루주와 같은 빛깔의 와인.

꿀꺽.

와인을 빠르게 삼켰다.

사라도 나를 보며 잔을 비웠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라도 나를 따라 급하게 일어났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사라의 손을 잡았다.

손끝에 뜨겁게 전해지는 체온이 그녀의 지금 상태를 말해왔다.

스륵.

사라가 팔짱을 꼈다.

오른손으로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휘감았다.

바에 있던 손님들이 힐끔힐끔 부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마음에 드십니까?”

“물론이에요. 정말 친절하신 것 같아요.”

“하하. 그렇다면 룸에 가서 와인 한 잔 더 할까요?”

“물론이에요!”

“???”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 하나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고개가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와인바 한쪽에도 따로 룸이 마련돼 있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와 실루엣.

딱 눈이 마주쳤다.

“!!!”

깜짝 놀라는 사내.

“립…….”

그였다.

립의 육신을 빌려 쓰고 있는 임성철 회장.

그의 곁에 글래머 스타일의 금발 미녀가 서 있다.

뜨거운 불길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타올랐다.

“사라. 잠시만.”

“네…….”

어리둥절한 사라를 자리에 남겨두고 그에게 다가갔다.

립도 나를 향해 다가왔다.

“지금 뭡니까?”

조용히 속삭이며 물었다.

“나?”

“네.”

어이없는 시선으로 립의 몸뚱이를 차지한 임성철 회장을 추궁했다.

“공부하라며?”

“그 공부가 아니잖아요!”

“장 회장이 몰라서 그러는데……. 살아 있는 언어는 현지인과 몸으로 부딪치며 배워야 하는 거야.”

“뭐라고요?”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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