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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3장. 장태산을 만나다. (884/1,284)

893장. 장태산을 만나다.

“미스터리한 놈이야…….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사람이 그렇게 바뀔 수 있지?”

지난 밤 날을 새다시피 한 리장창은 피곤한 눈길로 서류를 살폈다.

장립의 지금껏 행적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중국 국가 정보국과 천지회, 해커 등을 이용해 장립에 관한 모든 걸 수집했다.

베이다이허 기간 이전부터 모아온 정보.

유럽으로 이주한 조부모, 죽은 부모와 친척들로 시작해 학교에서의 교우 관계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살피면 살필수록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를 살펴봐도 장립은 한의학과 전혀 연관돼 있지 않았다.

부모는 물론 선대 조상들도 의학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잔인한 갱단 조직의 수하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어느 시점을 전후로 전혀 다른 인간으로 바뀌었다.

실종 사건 이후 다시 나타나면서 딴 사람이 됐다.

엄청난 무술 실력을 겸비한 것은 물론 화타의 제자임도 서슴없이 밝혔다.

베이다이허에서 보였던 경이적인 침술과 단약 처방은 지금 떠올려 봐도 놀라웠고 여전히 두고두고 회자됐다.

투자 능력 센스도 기가 막혔다.

베이다이허에서 그렇게 빨리 꽌시를 맺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전에는 중국 고위 정치인들 중 누구도 장립과 닿아 있는 인맥이 없었다.

태자당과 상해방, 공청단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콜을 받았다.

유럽에서 사라진 뒤 미국에 나타났고 뒤이어 LA의 갱 조직을 뒤집었다.

그간의 행적 끝에 갱스터가 됐다는 정보가 더 첨가됐다.

그 틈에도 옛 사랑과 재회해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장립.

“비슷해……. 분명 그놈은 아니지만 뭔가 비슷해.”

리장창은 장립에 관한 찝찝한 감정의 실체를 조심스럽게 점쳤다.

장립은 장태산과 몹시 비슷했다.

범인은 결코 흉내도 낼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하며 저항할 수 없는 묘한 매력으로 무장한 것이 그랬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다른 사람임은 분명했다.

손가락의 지문도 완벽하게 상이했다.

하지만 리장창의 본능적 촉은 두 사람이 마치 한 사람처럼 닮아있음을 경고했다.

“같은 인물일까? 말로만 듣던 전설의 축골공?”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이지만 리장창의 지성은 자꾸 이성을 교란시켰다.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능력이었다.

리장창 역시 무술을 수련한 몸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감히 짐작도 못 했다.

하지만 합리적 의심은 꼬리를 물고 계속 리장창의 정상적 사고를 방해했다.

생각해 보면 장립과 장태산의 공통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외모는 확연히 다르지만 특유의 강한 추진력과 불가사의한 능력은 동일인이라 해도 믿을 만큼 흡사했다.

“눈빛도 비슷했어.”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장태산과 장립의 눈빛을 떠올려 보는 리장창.

눈동자의 색깔은 미묘하게 달랐지만 종잡을 수 없는 눈빛의 깊이는 비슷했다.

침묵 속에 발산하는 눈빛만으로 리장창을 주눅 들게 만드는 두 사람.

“어떻게 확인하지…….”

와칭의 보스 주걸도 장립에게 무릎을 꿇었다.

은근히 주변 사람 모두가 장립을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장태산의 동선을 파악해 보면 알 수 있어.”

리장창은 바로 지시를 내렸다.

장립이 미국에 있으니 장태산이 한국에 있다면 모든 의심은 말끔하게 해결될 것이다.

홍콩에 장립이 들어와 있을 당시 느닷없이 나타난 장태산이 자신을 위협했다.

이제는 의심하는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살펴봐야 했다.

세상은 가끔 말도 안 되는 상상 속 일이 현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의 장립처럼.

똑똑.

다급한 듯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단주님!”

제갈유량의 목소리다.

“들어와.”

끼릭.

문을 열고 제갈유량이 들어섰다.

베이다이허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오래된 두 사람의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단주님! 왔습니다!”

“뭐가 말인가?”

평소와 달리 차분함을 상실한 제갈유량의 모습에 리장창이 의문을 표했다.

“그가 장립을 만나러 미국에 왔습니다!”

“뭐라고???”

***

- 하아…….

귀신의 한숨이 지난밤부터 계속 됐다.

그러게 왜 딱 붙어서……. 큼큼.

- 좋습니까?

뭐가?

모르는 척 하고 물었다.

이럴 때는 뻔뻔하게 나가는 게 답이었다.

- 알면서 그러는 거 아닙니다! 난 키스도 못 해봤는데……. 제 앞에서 어떻게 19금 장면을……. 흑흑.

귀신이 운다.

진짜 서러운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문제였다.

이미 뜨거웠던 지난밤 일은 추억으로 사라진 뒤다.

나도 여여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올지 몰랐다.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당한 거다.

그걸 지켜보던 귀신 장립.

충격을 받은 듯 말이 없다 이제 연신 내 귓가에 한숨을 쏟아냈다.

“다음 생에는 힘 좋은 수컷 바다사자로 태어나기를 빌어줄게.”

- 바다사자라니요! 그건 아니잖아요! 제가 아무리 몽달귀신이라지만…….

총각귀신이 화를 낸다.

도령귀신, 삼태귀신, 몽달귀신이라 불리며 원귀 취급 받는 총각귀신 장립.

처녀귀신보다 세상에 덜 알려졌지만 그 한은 처녀귀신 못지않다.

달랠 필요가 있었다.

“신계 가 봤어?”

- 아직이요.

“난 가봤는데 정말 좋아.”

조용히 속삭였다.

- 좋아봐야 이승만 하겠습니까.

“모르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아는 신들 형님 몇 분 계시는데 진짜 끝장나게 살고 계셔.”

혹할 만한 미끼를 슬쩍 던졌다.

죽은 장립과 동행하고 있는 얼마간의 시간이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다.

특히 어제처럼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지니 더 피하고 싶었다.

뜨거운 밀회 중에 느껴지는 오싹한 귀신의 시선은 정체를 알아도 은근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관계를 정리하고 보낼 때가 됐다.

- 그래봤자 신들이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입질이 왔다.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럴 때 제대로 밀당을 해야 진정한 프로 낚시꾼.

“노바 형님, 이름을 들어봤지?”

- 네?

“카사노바 형님 말야.”

목에 힘을 줬다.

- 아! 그 전설의 카사노바 형님요! 당연히 알죠. 어린 시절 제 신과 같은 우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도 신이세요?

장립의 정신세계는 알면 알수록 독특했다.

느낌이 팍 왔다.

“나 만나서 팔자 폈어.”

- 팔자요?

“신들도 여자 만날 수 있어. 그리고 뜨거운 밀회도…… 가능해.”

목소리를 쫙 깔았다.

밀회라는 말에 악센트를 넣었다.

- 네에? 미, 밀회가요???

금방 목소리가 떨리는 초짜 귀신 장립.

밀회라는 말에 제대로 꽂힌 듯했다.

총각귀신에게 더할 나위 없을 만큼 유혹적인 단어.

“몰랐어? 모를 수도 있지. 평범한 귀신들은 몰라. 레벨이 어느 정도 되는 신선들에게만 개방되는 고급 정보야.”

- 아! 그렇군요…….

“그래도 알 거 아냐. 선녀들 미모수준은.”

다른 종류의 추가 떡밥도 뿌렸다.

- 물론입니다. 선녀들 예쁘다는 건 다 알죠.

“옥황상제님도 와이프 말고 선녀급 첩만 해도 수천 명이야. 다른 고위급 신들도 살아생전 인간이었을 때처럼 누릴 거 다 누려. 그것도 특별히 선발된 미모의 선녀들과 말이야.”

약을 계속 쳤다.

- 그런 엄청난 비밀이…….

“다른 귀신들은 들어도 소용없는 내용이야. 장립 너나 되니까 특별히 가능한 해당 사항이야. 오직 너만.”

은밀한 목소리로 더 낮게 속삭였다.

‘너만’이라는 조건은 산사람뿐 아니라 귀신을 홀리는 데도 특효약이었다.

- 그런데 그분들은 엄청나게 고레벨 신선이지 않습니까. 제가 잘은 모르지만…… 레벨 낮은 신들인 인간세상이나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빈익빈, 부익부는 신들 세계에서도 통하는 우주 법칙이겠죠.

고학력자 귀신은 이래서 피곤하다.

저 똑똑한 추리력 봐라.

바로 카르마 포인트 법칙의 냉정함을 유추해 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

- 네???

“다른 귀신이나 신들이라면 그게 통용되는 법칙이 맞겠지만 장립 넌 달라. 내가 특별하다고 했잖아.”

목소리에 힘을 팍 줬다.

이제는 제대로 줄을 당길 때.

“노바 형님 현재 여자친구가 누군지 알아?”

- 누군데요?

“전직 엘프 여왕 여신.”

짧고 임팩트 넘치게 내뱉은 대답.

- 에, 엘프 여왕요? 그 판타지 소설 속 초특급 미녀, 그 엘프 여왕요?

“소설 좀 읽었네? 맞아. 그 엘프 여왕.”

장립의 취미에 대한 칭찬도 빠뜨리지 않고 적절한 양념도 쳤다.

- 에이. 어떻게 지구 귀신이 차원을 넘어서 다른 세계 존재 신을 만나요. 제가 아무리 초짜 귀신이라지만…….

사기 치지 말라는 듯 의심을 거두지 않는 장립 귀신.

이럴 때는 말이 필요 없었다.

“내가 최신 버전은 못 구했어. 한번 봐봐.”

- 뭘 말입니까?

장립이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흐흐. 좋은 거.”

음흉한 웃음이 저절로 터졌다.

-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귀신 장립.

이럴 때는 눈치가 귀신이다.

“복사 방지 장치가 달렸어. 믿겠지만…… 외부로 유출하면 안 돼.”

- 무, 물론입니다.

“이거 다 신계 특급비밀이야. 내가 고위 신급이나 되니까 가능한 일이야.”

셀프 칭찬을 곁들였다.

스윽.

허공을 향해 손을 터치했다.

노바 형님이 넘긴 길고 긴 그 문제의 동영상.

슈퍼울트라급 화질로 인해 한때 매일 밤 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재생 목록이 떴다.

신들이기에 가능한 비현실적은 동영상 보존 방법.

“첫 편부터 쭉 봐봐. 그리고 다 보고 확신이 서면 날 불러.”

인심 쓰듯 사용자 권한을 장립에게 넘겼다.

어차피 지금은 내가 장립이고 장립이 나인지라 별 문제가 없었다.

- 어! 어어어어어어!

곧바로 장립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첫 편부터 강렬한 걸 재생한 듯했다.

자식……. 살아있을 때 이런 동영상 많이 본 마니아가 분명했다.

- 오! 마이 갓!!!

연속 터지는 립의 탄성.

“그런 건 음소거 하면 안 돼? 이제부터 난 비니지스 타임이야. 계속 시끄럽게 하면 바로 압수야.”

- 넵! 바로 음소거 하겠습니다!

립이 신이 나서 답했다.

그리고 찾아온 길고 긴 침묵의 시간.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약속 시간이 다 됐는데…….”

LA 중심가에 위치한 대형 호텔.

사방이 훤히 내다보이는 1층 호텔 커피숍을 전세 냈다.

전화로 예약했다.

처음에는 난색을 보이던 호텔 매니저가 전화 한 통화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팰튼 호텔 회장에게 바로 연락했다.

내가 소유한 팰튼 호텔이니 거부권은 없었다.

정당한 돈도 지불했다.

경비원과 호텔 직원들이 다른 이들의 출입은 막았다.

갑부의 품위 있는 기세를 그대로 보여줬다.

오늘의 작전명은 ‘오픈 데이.’

지금도 나를 감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에게 보여줘야 할 극적인 장면.

스르릇.

호텔 로비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오는 두 남자.

커피숍을 향해 바로 들어왔다.

“립!”

“하하. 어서 와요. 로버트 라이언.”

오늘을 위해 사전 작업이 끝난 로버트 라이언이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로버트도 장립이 그냥 장립인 줄 알고 왔다.

정확한 정체는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꾸욱.

악수를 했다.

그리고.

“립. 인사해. 여기는 자네를 궁금해했던 분일세.”

로버트 라이언이 나에게 동행한 남자를 소개했다.

훤칠한 키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장태산.

내가 봐도 참 멋졌다.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장립이라고 합니다.”

씨익.

활짝 웃는 장태산.

“반가워요. 다니엘 장이라고 합니다.”

진중하고 멋들어진 장태산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내가 알던 내 모습과 거의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이는 장태산.

그의 눈빛을 똑바로 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회장님? 기분이 어떻습니까?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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