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0장. 교주시여!!!
띠리리리리리리리.
“립?”
리장창은 스마트폰에 뜬 이름을 보고 크게 놀랐다.
베이다이허에서 안면을 텄던 장립.
그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천하의 리장창도 긴장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자신과는 레벨이 달랐다.
처음에는 특별할 것 없던 해외 화교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주석과 독대를 할 정도로 입지가 커진 자였다.
그런 장립의 갑작스러운 전화.
띠릭.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하하. 귀하신 분이 전화를 다 주셨습니다.”
리장창은 과하게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감정이 드러나게끔 목소리 관리에 들어갔다.
- 말씀 편하게 놓으십시오. 리 대협.
“그럴까요?”
- 양광과 류평 대협과도 호형호제하며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야…….”
-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앞으로 자주 볼 인연이 아닙니까.
회의 이후 처음 받는 전화임에도 장립이 친근하게 먼저 말문을 열었다.
맞는 말이다.
장립은 반드시 가까이 둬야 할 친구임에는 분명했다.
겸비한 여러 가지 능력 중에서도 단연코 단약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시진핑과 장택민, 원자바오도 꼼짝 못 했다.
원로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나이를 먹어가는 중진 권력자들 중심으로 장립에 줄을 대기 위해 혈안이었다.
특히 천해방이 장립과 모종의 계약을 맺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이 같은 관계의 물꼬를 거절하면 어리석은 짓이었다.
- 그리 말해주니 편하게 말하겠네.
리장창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지 않아도 명분을 찾아 연락할 구실을 궁리하느라 고심 중이었다.
“리 대협,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중국에서 꽌시는 일정 대가를 요구했다.
아무리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도 대가가 오고 가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었다.
장립의 입에서 먼저 부탁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건 기회였다.
- 동생의 부탁이라면 흔쾌히 들어주겠네. 부탁이 뭔가?
리장창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제가 지금 미국에 와 있습니다.”
- 언제 미국에…… 간 건가?
장립의 행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중국 정보기관을 동원해서 수소문했지만 신묘하게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뒤를 쫓다 꼬리를 유럽에서 놓쳤다.
그사이 장립이 미국으로 흘러든 것이었다.
“과거 원한을 청산해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 …….
‘원한이라면…….’
리장창도 짚이는 게 있었다.
장립에 관련해 뒷조사를 하던 중 접한 정보였다.
차이나타운을 지배하는 보스와의 사이에 얽혀 있는 악연.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 왔다.
와칭의 보스 주걸은 말이 통하는 자였다.
눈치도 빨랐고 입도 무거웠다.
상해방과 공청단도 그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비자금 처리를 위해서는 중간에 주걸이 반드시 필요했다.
밑바닥부터 다져 올라와 현재 차이나타운을 점령을 진정한 실력자였다.
그를 뽑아내면 당장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장립이 그와의 악연을 해결하려고 했다.
- 주걸을 어떻게 할까요?
“음.”
장립은 이미 주걸과의 관계를 알고서 질문했다.
리장창의 이마 주름이 깊어지며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장립을 취하겠다고 쉽게 대답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반가운 소리가 전해졌다.
“목숨을…… 살려줄 수 있나?”
일이 복잡해질 게 뻔한 상황에서 리장창은 자신도 장립의 말에 말려들었다.
- 물론입니다. 리 대협이 원하신다면.
‘허어. 이건 부탁이 아니라 협박인 건가?’
말을 뱉은 직후 리장창은 당황했다.
분명 부탁이 있다고 시작된 장립의 전화였지만 지금은 리장창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는 격이 되어 있다.
뭔가 일이 꼬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건 리장창의 입장이었다.
주걸이 장립의 손에 죽게 되면 그가 맡은 미국 비자금을 되찾는 일은 장담할 수가 없게 된다.
입장이 모호했다.
한두 푼 정도의 자금 규모가 아니다.
무려 수백억 달러가 넘었다.
그런 이유로 매번 주걸에게는 절대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살라 명령을 내렸다.
“……그를 봐주게. 내 나중에 따로 고마움을 표하겠네.”
- 하하. 알겠습니다.
의외로 장립이 호탕하게 웃으며 의견을 수락했다.
‘당했다!’
몇 번 되지 않지만 겪을수록 장립이 만만치 않았다.
젊디젊은 자의 심기가 대단했다.
- 주걸에게 말씀 좀 해주십시오.
“여, 옆에 있나?”
- 죽여 달라는 걸 참고 있습니다.
전화기를 통해 장립의 목소리에서 진한 한이 전해졌다.
빈말이 아니었다.
- 제가 말하는 대로 따르라 명해 주십시오.
“알겠네. 그리 말하겠네.”
- 스피커폰을 사용하겠습니다.
주도면밀한 장립.
- 리…… 단주님……. 맞으십니까?
기가 잔뜩 죽은 듯한 주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날세.”
- 단주님…….
면목이 없는 듯 주걸의 음성은 작게 기어 들어갔다.
“긴말 하지 않겠네. 옆에 있는 장립 군은 주석께서도 아끼시는 인재네. 그의 말이 내 명이라 생각하고 따라주게.”
- ……명을 따르겠습니다.
“원한을 잘 풀게.”
- 네…….
주걸과의 대화는 짧게 끝났다.
- 리 대협. 홍콩에서 뵙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네.”
- 그럼.
뚝.
장립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하아.”
리장창은 한숨 섞인 긴 숨을 내쉬었다.
급작스러운 전화로 뭔가 큰일을 해결한 듯했지만 머리가 개운하지 못했다.
“천하의 리장창이 애송이 손바닥에서 노는구나. 허어.”
스스로에게 터져 나오는 한탄.
리장창은 눈을 돌려 씁쓸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
“확인됐지?”
장립의 물음에 주걸은 다시 한 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부 다 사실이라니…….’
과거 자신이 알던 장립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죽었다 살아난 건지, 처음부터 죽지 않았던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허나, 다시 마주한 장립이 엄청나게 변해 돌아온 건만은 확실했다.
주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중국의 최고 권력자들과 대등한 관계로 지냈다.
리장창을 시작으로 류평, 양광과도 통화는 이어졌다.
모두가 리장창과 마찬가지로 장립의 명을 따르라고 권고했다.
상해방은 물론 공청단, 태자당 등과도 모두 인연이 깊은 장립이었다.
이제 자신 따위가 맞대응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주걸.”
장립은 보스였던 자신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불렀다.
“하, 하명하십시오.”
주걸은 태세전환이 빨랐다.
강자에게는 약했고 약자에게 강한 게 갱의 생리였다.
그가 지금까지 누려온 모든 배경에 권력자들이 베푼 은혜가 있었다.
부하들 중에도 본토 권력자들의 하수인이 간간이 섞여 있었다.
그들의 눈을 통해 주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보고되고 있음을 알았다.
“여여……를 잊어라.”
장립의 첫 번째 명령.
“……알겠습니다. 여여는 이제 제 기억 속에 없습니다.”
주걸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실행하기 어려운 명령임은 분명했다.
남성 기능을 상실한 후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한 욕망이 그를 삼켰다.
여여는 그 욕망의 정점이었다.
똑똑하고 예쁘고 상냥한 그녀를 소유하며 남은 삶의 위안을 얻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었다.
“그냥 잊으라는 것은 아니다.”
“네?”
주걸이 분노로 촉촉이 젖은 눈을 들어 장립을 바라봤다.
“너를…… 남자로 만들어 주겠다.”
“!!!”
주걸의 눈은 의심으로 가득 찼다.
장립의 저 말이 거짓말이라 해도 매달려서 그리 되고 싶었다.
다시 남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이 자리에서 손에 쥔 모든 걸 포기할 수도 있었다.
비단 여여뿐만 아니라 일생의 결과인 차이나타운도 놓을 수 있었다.
“못 믿는 건가?”
“……그 말이 진실이라면…….”
털썩.
주걸은 꺾이듯 무릎을 꿇었다.
주루룩.
가슴 속 깊은 곳에 눌러둔 감정이 격해졌다.
뚝뚝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남자의 눈물.
장립이 주걸의 사적인 일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병원에서도, 중국의 대단한 침술사도 고치지 못한 중병.
“저는 당신의 종이 되어도 좋습니다!”
진심을 다한 말로 장립을 뜨겁게 바라보는 주걸.
그의 한마디 말에 지금까지 남자로서 감당하기 힘들었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오롯이 전해졌다.
“그 말 지킬 수 있나?”
턱턱턱.
무릎걸음으로 장립의 발아래까지 다가간 주걸.
무슨 이유에서 자신이 이렇게 하고 있는지 몰랐다.
다만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외치는 목소리가 주걸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그를 믿어라!’
비우지 못한 욕망의 혼령이 외치는 소리여도 좋았다.
이성적이지 않은 제안이었지만 이미 홀린 듯 몸이 먼저 움직였다.
다른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스윽.
주걸은 바닥에 떨어진 연검의 파편을 주워들었다.
콰득.
그리고 말릴 사이도 없이 왼손 새끼손가락을 절단했다.
장립이 놀란 눈으로 그런 주걸을 바라봤다.
후두둑.
바닥에 흥건히 떨어지는 피와 잘린 손가락.
“목숨도 드릴 수 있습니다.”
주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동안의 삶은 살아있어도 산 게 아닌 인생이었다.
넘치는 돈과 부러울 것 없는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그러나 진실은, 여자 하나 품에 안을 수 없는 불구에 지나지 않았다.
꿈에라도 자신을 닮은 자식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주걸은 성자가 아니었다.
또 아직 젊은 한창 나이였다.
종족본능의 욕구는 그 어떤 욕망에도 우선했다.
“믿어주마.”
“가, 감사합니다!”
주걸은 장립의 두 발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더 이상 동등한 신분이 아닌 주인과 종의 관계가 되어 버린 듯한 모습.
“우선 이것부터 치료하지.”
“???”
잘려진 채 바닥에 떨어진 손가락 마디를 집어 드는 장립.
그걸 주걸의 새끼손가락에 댔다.
그리고.
“붙어라.”
딱 한마디 간단하게 내뱉은 주문.
파아앗.
순간 밝은 빛이 바로 눈앞에서 터졌다.
주걸은 너무 환한 눈부심에 두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부, 붙었다!’
방금 전 손가락 마디를 끊어냈는데 그 잘렸던 마디가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붙어 있었다.
그것도 처음부터 잘린 적이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상식적으로 결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장립의 말 한마디에 잘린 손가락이 붙었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멍한 시선으로 두 눈만 껌뻑이며 손가락을 살피던 주걸.
‘그럼!’
번뜩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분명 장립은 죽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것도 이것과 연관되어 있는 게 확실했다.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장립이 각성한 것이다.
말로만 들어왔던 성자급 수준의 각성.
파아앗.
주걸의 두 눈에는 장립의 몸에서 후광이 비추는 것처럼 보였다.
실재인지 환영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장립.
털썩.
주걸이 홀린 듯 바닥에 오체투지 했다.
온몸을 바닥에 납작하게 깔았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교주시여!!!”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