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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장. 불러. (880/1,284)

889장. 불러.

‘이 녀석 뭐야?’

주걸은 겁도 없이 수련실로 들어온 장립을 보며 생각했다.

이곳은 누가 봐도 사지(死地)다.

주걸이 검을 들었다는 건 직접 처단하겠다는 의미였다.

배신자들에게 주걸이 직접 내리는 가장 잔혹한 처단 수법.

사지를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모두 긁어냈다.

그런 자리에 들어서면서도 장립은 당당했다.

과거 주걸이 알았던 장립의 기세가 아닌 건 분명했다.

어느 날 갱이 되겠다고 직접 소굴로 찾아왔던 명문대학교 인재.

순진한 청년의 하는 짓이 귀여워 받아주었다.

그러나 보기와 달리 장립은 의외로 쓸모가 많았다.

무식한 갱들과 달리 특히 행정 분야에서 큰 도움이 됐다.

그의 학교 인맥도 쓸 만했다.

무엇보다 주걸의 곁에 붙들어 두었지만 자신을 회피하는 여여가 장립을 의지했다.

두 사람을 지켜봤다.

어차피 여여는 주걸에게 있어 공식적으로 구색을 맞추는 데 필요한 장식품 같은 여자였다.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목숨처럼 사랑하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사랑에 빠졌다.

주걸이 그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간간이 부하들도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했다.

모든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묵묵히 지켜봤다.

어차피 와칭의 보스인 자신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조용히만 있으면 됐다.

하지만 사고를 치고 만 두 사람.

장립이 여여를 데리고 도망을 치는 돌발행동을 했다.

분노에 몸서리쳤다.

집에서 키우던 애완견 두 마리가 사라진 격이었다.

데리고 있던 사냥개들을 풀어 두 사람의 뒤를 쫒았다.

어리숙하고 멍청한 장립은 여여를 데리고 패드로 라이언의 관할 구역으로 숨어들었다.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이 깔끔했다.

장립을 흠씬 폭행한 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막에 묻었다.

당연히 여여는 집으로 돌아왔다.

영혼의 반절 정도가 사라진 상태였지만 상관없었다.

주걸에게 온전한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저 소유욕을 충족시키고 옆에서 숨만 쉬고 있으면 됐다.

장립과 여여의 일은 점점 잊혀져갔다.

그런데 장립이 버젓이 나타났다.

‘어떻게 진봉을 쓰러뜨렸을까.’

의문이 들었다.

무력으로는 조직의 2인자인 진봉을 대적할 만한 자가 거의 없었다.

그런 그를 한 방에 쓰러뜨렸다는 보고를 받았다.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무인으로서 반가운 소식이었고 한편으로 질투로 피가 끓었다.

죽었다고 여겼던 장립에게 그 시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지 궁금했다.

“보스 오랜만입니다.”

장립이 매일 만나온 사이인 듯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어제 본 것처럼 반갑군.”

주걸이 맞장구를 쳤다.

과거 자신의 눈도 못 마주치던 쫄보 장립이 도리어 보스처럼 행동했다.

“솔직히 반가운 사이는 아니죠.”

“그런가? 난 반가운데. 후훗.”

주걸이 냉소적인 웃음을 흘렸다.

피리링.

손에 들고 있는 연검을 가볍게 흔들자 바람소리가 들렸다.

검이 신선한 피를 바라고 있었다.

연검에 상처를 입게 되면 그 어떤 상처도 봉합할 수가 없었다.

일정한 상흔이 아닌 수십에서 수백 개로 근육 조직을 파괴시켜 버렸다.

과거 살수들이 주로 사용하던 수법 중 하나.

허리에 차고 있다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데 이용했다.

“여여를 보내주십시오.”

꿈틀.

장립이 툭 던진 말에 주걸의 이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여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주걸의 소유였다.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주인에게 어이없는 요구를 하는 장립.

“멍청한 건 알고 있었지만 겁도 없었군.”

“한 번 죽어보니 살면서 죽음을 겁낼 필요는 없었더군요.”

“다시 죽게 되도 그럴까?”

“전 빼주십시오.”

“자신만만하군.”

“그럼 직접 확인해 보시죠.”

“……크크크.”

주걸이 당차게 나오는 장립을 보며 비릿한 시선으로 이를 드러내놓고 웃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 앞에서 가당치 않게 장립이 건방을 떨었다.

“배짱의 근원이 어딘지 알고 싶군.”

스윽.

장립이 먼저 주먹을 들었다.

“남자는 주먹이죠.”

“그렇지. 남자는 입보다 실력으로 확인시켜야지.”

피리리리리리링.

주걸의 손에 들린 검이 내공이 주입되자 꿈틀거렸다.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독사의 혓바닥처럼 간사하게 떨었다.

검끝이 장립에게 향했다.

“아쉬웠어. 너를 내가 직접 처단하지 못한 게……. 그런데 이렇게 하늘이 기회를 주는군.”

주걸의 눈동자가 본 적 없는 살기로 번들거렸다.

패배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장립은 무기 하나도 들지 않은 맨손.

조건이 비겁하다는 말 같은 건 통하지 않았다.

갱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목숨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게 갱들의 생존방식.

“들어오시죠.”

까닥.

손가락으로 주걸을 자극하는 장립.

“미친 새끼. 크크크.”

주걸의 입가에 진하게 피어나는 살인 미소.

“탓!”

기합이 터졌다.

그리고.

피리리리리리링.

독사의 혓바닥이 장립의 몸통을 향해 빠르게 뻗어 나갔다.

***

- 위험해요!!!

보스를 보고 잔뜩 위축되어 있던 쫄보 귀신 장립.

내 실력을 그렇게 봤으면서도 아직 믿지 못하고 있었다.

무의식에 잠재된 주걸에 대한 공포가 귀신인 장립의 사고를 좀먹고 있었다.

피리리리리리링.

나도 연검은 처음 상대한다.

현란하게 공간을 휘저으며 시야를 현혹했다.

딱 봐도 내공을 다룰 줄 아는 보스다.

베이는 순간 제아무리 능력자라 해도 중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주걸이 휘두르는 연검에 당하면 극심한 고통에 바로 사망각일 게 빤하다.

실드!

일단 강력한 실드를 몸에 둘렀다.

운전 중에 안전벨트가 필수인 것과 같은 원리.

휘리릭.

무당 태극권 자세를 취했다.

마법을 사용하거나 아공간에서 필요한 검을 뽑으면 간단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장립을 위해 제대로 한판 붙어보고 싶었다.

아직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중국의 무술 고수.

하지만 진봉이라는 자의 태극권은 뭔가 많이 허접했다.

적통이 아닌 이상 어느 순간 성장 단계에 있어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진봉 같은 경우는 기의 응축과 발산이 권과 맞지 않았다.

이에 반해 나는 무당파 장문인 출신 신선에게 배운 몸.

단기 속성 과외였지만 머릿속에 저장된 무공들은 인세에 보기 힘든 것들뿐이다.

검이 빠르게 다가왔다.

오른손이 풍차처럼 돌았다.

휘리리리리릭.

내공을 따라 흐르는 천지간의 태극.

음과 양이 교차하며 부드럽고 강력한 권풍이 만들어졌고 곧바로 독사의 혓바닥을 밀쳐냈다.

애꿎은 허공만 가르고 회수되는 연검의 그림자.

“!!!”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주걸의 눈빛.

권풍은 내공을 끓어 올리자 대춧빛처럼 붉어졌다.

피리리리링.

그사이 연검이 기이하게 각도를 꺾으며 재차 공격해 왔다.

터더더덕.

바닥에 가볍게 찍히며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보법.

연검은 또 다시 애먼 공간만을 찔렀다.

“너……. 뭐야!”

주걸이 당황하며 물었다.

“장립.”

“닥쳐!”

주걸은 회심의 공격이 모두 무위가 되자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더 보여줄 게 남았나?”

실력 차이가 확연했다.

“흐흐흐흐.”

갑자기 미친놈처럼 웃는 주걸.

“널…… 반드시 죽이겠다!”

방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광기에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 느낌이 안 좋아요!

그건 나도 알아.

낌새로 보아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는 듯했다.

연검을 가슴팍으로 들어 올리는 주걸.

“죽엇!!!”

또 다시 나를 향해 힘차게 연검을 뻗었다.

“???”

검을 던지는 듯한 자세.

그 순간.

파장창창창창.

연검이 폭발했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암기로 변해 날아오는 연검의 파편들.

피할 곳이 없다.

실드로 공간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귀신 장립에게서 전해오는 긴장으로 몸이 살짝 굳었지만 그래도 여유로웠다.

씨익.

입가에 당당한 웃음이 번졌다.

“???”

나의 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주걸의 표정.

파가가가가가강!

자신의 의심과 눈앞에 있는 장립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

불똥이 튀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드러내 보인 적이 없는 비장의 수법이었다.

실패했다.

장립의 몸에는 닿지도 못한 채 일정 거리에 도달해 갑자기 튕겨나가 버린 연검의 파편.

“어, 어떻게.”

주걸은 당황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두 눈으로 목도하고도 믿을 수 없었다.

장립이 태극권을 펼치는 것도 놀라웠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쯧. 진정한 무인은 아니군.”

어느새 손에 연검 파편 하나를 쥐고 있는 장립이 혀를 찼다.

주걸은 온몸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살수 가문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에 몇 없는 진정한 무인이라 스스로 여기며 살아왔다.

투두둑.

몰려드는 치욕에 입술을 잘근 깨물자 툭 피가 터지며 바닥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맞닥뜨린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장립의 자신만만함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

분명 죽음을 빙자하고 잠적해 누군가에게서 제대로 무공을 수련한 게 확실했다.

“……죽여라.”

주걸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실력 차이는 둘째 치고 얼굴을 들고 산다는 게 부끄러웠다.

총기로 무장한 부하들이 문 밖에 있지만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모두들 보스 주걸이 장립을 간단하게 처단하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죽고 싶나?”

“나를 죽여도…… 너 역시 죽는다.”

“왜?”

“내 뒤에는 그분들이 계신다.”

외부적으로 주걸이 차이나타운의 주인 행세를 했지만 그의 뒤에 다른 이들이 존재했다.

복잡하게 연결된 본토 권력자들과의 인연.

주걸은 권력자들의 대리인에 불과했다.

조직의 형태를 하고 갱 행세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누구?”

“……넌 말해도 모른다. 그분들은 중국을 지배하는…….”

“리장창?”

“!!!”

장립의 한마디에 주걸은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그것도 아니면 류평?”

“네가…… 그분들을 어떻게…….”

주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아! 상해방의 왕정도 있군.”

“…….”

주걸은 더 이상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모두 다 주걸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권력자들이었다.

상해방과 공청단, 태자당의 핵심 권력자들이 차이나타운의 대주주였다.

“진작 말하지. 그럼 주먹을 안 썼지.”

더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장립.

‘저 자식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핵심 권력자들 중 단 한 명만 언급해도 대단한 인맥임이 분명했다.

그런 자들을 셋씩이나 언급하는 장립.

스윽.

그러더니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불러.”

“뭐, 뭘 말이냐?”

“당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권력자.”

“…….”

“간단하게, 시 주석 정도면 될까?”

“!!!”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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