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5장. 차이나타운(2). (877/1,284)

885장. 차이나타운(2).

“이거 받아~.”

“와! 새 농구공이다!!!”

“유니폼도.”

“이거 진짜 주는 거예요?”

“물론이지. 천사들을 위한 선물이야.”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우와! 크리스마스 때도 못 받았던 선물인데!”

“놀자! 어서 팀을 짜!”

“절대 차도에서는 놀면 안 돼.”

“네! 천사 아줌마!!!”

‘아줌마…….’

아이들이 무심코 내뱉은 아줌마라는 소리에 사라는 씁쓸해졌다.

다니엘이 선물로 준 물약을 먹고 난 뒤 노화가 멈췄다.

그러나 아이들 눈에는 여전히 아줌마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그그그그극.

“도로 통제해!”

중장비 차량이 속속 들어왔다.

“바닥 새로 코팅하고 철망 뜯겨져 나간 거부터 수리해.”

공사장 인부들이 엉망이 된 농구 코트를 손질했다.

단 하루 만에 만들어진 기적.

시청에서 공무원들이 나와 무언가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낮에도 보기 힘들었던 경찰들이 곳곳에 서서 삼엄하게 경비를 섰다.

LA 시장을 보좌하는 LA 경찰들.

사라 요한슨의 전화 한 통에 다운타운은 미국 어느 곳보다 안전한 곳이 됐다.

치이이이이잇.

그뿐만 아니었다.

도로와 골목에 버려져 있던 쓰레기들이 말끔히 치워졌다.

청소차가 연신 오가며 바닥을 물로 씻어냈다.

일단의 청소부들이 제멋대로 군데군데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정리했다.

“저기 벽 난장판 그림들 모두 지워!”

“흐흐. 내가 그려도 저것보다 낫겠다.”

지저분한 벽을 장식하고 있는 그라피티에 말끔하게 페인트가 덧발라졌다.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의 연속이었다.

미화 관련 공사는 느려터진 공무원들이 허가를 바로바로 내주지 않았다.

일하는 인부들도 느려터지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이번에는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면서 모든 게 놀라울 정도로 빨리 진행됐다.

‘다니엘이 만든 기적이야.’

사라 요한슨은 직접 다운타운을 찾았다.

그냥 전해지는 보고만 받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어차피 생색내기에도 좋은 기회였다.

기자들을 대동한 김에 그녀의 선행을 언론에 뿌렸다.

상원의원인 아버지의 지역구는 아니지만 요한슨 가문의 치적이 될 터였다.

누가 봐도 하루아침에 달라지고 있는 LA 다운타운.

갱들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밤사이 갱들의 보스 패드로 라이언이 사라지면서 그들도 위기를 느낀 듯했다.

남아 있던 악질 범죄자들 중에는 마약과 관련된 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곧바로 체포됐다.

당분간 사회에 복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전에 이곳을 전혀 새로운 곳으로 만들려 하는 다니엘의 의지.

‘다니엘, 당신을 언제나 응원해요.’

“우리…… 괜찮을까?”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호세. 우리는 자경단 경호원들이야. 경찰서에서도 이렇게 문서를 발급해줬잖아.”

“그래서 더 믿을 수가 없어 카를로. 어제까지 갱이었던 우리야. 그런 우리가 하루아침에 경찰의 끄나풀이 되다니…….”

경찰들이 지급한 방탄조끼를 그럴싸하게 착용한 다운타운 자경단원들.

그 중심에 카를로가 있었다.

“아무 걱정하지 마. 과거는 잊어. 지금은 엄연히 월급 받는 경호원이야. 집도 주고 아이들 학자금까지 지원해 준대. 앞으로 우리는 꽃길만 걸으면 돼.”

“그래서 불안해. 신이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아서. 실감이 안 나.”

카를로는 갱단 조직원들 중에서 그나마 마음 여리고 착한 녀석들 몇을 선별했다.

악질 중의 악질들은 도망을 치거나 이미 경찰에 붙잡혔다.

간밤에 마약 단속국 직원들이 대대적으로 헤비급 마약상들을 잡아 들였다.

카를로가 죄다 불었다.

FBI와 비밀스런 플리바게닝 조약을 체결했다.

확약을 받고 모든 정보를 넘겼다.

그 대가로 국가에서 인정하는 자경단원이 됐다.

모든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속전속결 해결됐다.

경찰서에서 고용한 자경단 경호원으로 특별히 선발됐다.

월급과 복지를 명시한 고용 계약도 맺었다.

말도 안 될 만큼 빨리 발급된 임시 사회보장번호까지.

공무원들의 일처리 속도가 놀라울 정도였다.

“영주권도 준다잖아.”

“그러니까 왜?”

동료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카를로에게 물었다.

“이건 비밀인데…….”

카를로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내가 새로운 보스를 모셨어. 그리고 그 보스가 대단한 권력자야.”

“저, 정말?”

“그런 분이 조직을?”

“쉿! 큰소리 내지마. 소문도 나면 안 돼.”

카를로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

“여기를 전부 개발하기로 했대. 그리고 말 잘 듣는 갱들에게는 직장과 집을 주기로 했어. 그러니까 모두 협조해. 저기 저 자식들이 쓰레기통에서 시체가 되는 꼴 보기 싫으면.”

카를로가 열심히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좋아……. 내 동생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던지겠어!”

“으흐흐. 그래서 조직 이름이 뭔데?”

“JL갱스터.”

“JL……갱스터…….”

“이름이 뭔가 있어 보이는데?”

“오늘부터 우리는 JL갱스터다!”

“그런데 보스는?”

“이것도 비밀인데……. 차이나타운을 접수하러 가셨어.”

“뭐라고 차이나타운을???”

***

립?

갑자기 들려오는 중국 여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립! 너 맞지? 세상에!”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국 여인이 아는 체를 했다.

푸른색 치파오를 입은 딤섬 가게 여종업원.

키는 작지만 귀엽고 깜찍한 인상이다.

그 여성이 장립인 나를 보며 엄청 반가워했다.

- 설……영.

장립이 아는 여성인 듯 여자의 이름을 내뱉었다.

“설영?”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따라 불렀다.

“맞아! 나 설영이야! 너 진짜 립이 맞구나! 그동안 어디 갔었어? 한동안 네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어. 난 믿지 않았지만…….”

갑자기 설영이 과거를 회상하는지 금세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립. 아는 여자야?

- 여기 종업원이야. 그리고 내 친구.

올! 이 정도로 반가울 만큼 둘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야?

속으로 장립에게 물었다.

- 아니. 난 그때 다른 여자를 좋아했어.

그럼 저 설영은?

- 나, 나도 몰라. 그냥 나에게 친절했어.

장립, 참 바보 같은 놈일세.

어떤 여자에게 홀렸었는지 몰라도 진국을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다.

설영의 눈빛은 처음 보는 사람이 봐도 장립을 향한 진심이 가득했다.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진심 어린 관심과 걱정.

“휴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1인칭도 아니고 3인칭도 아닌 묘한 운명에 휩쓸려 버린 게 실감났다.

“왜? 어디 안 좋아?”

설영은 바로 장립을 걱정했다.

“널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 못 했어.”

“난 만날 줄 알았는데?”

“응?”

“그 약속 잊었어?”

“약속?”

“뭐야 잊었네!”

설영이 곧바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립. 무슨 약속이야? 뭔데!

- 이곳을 떠나기 전에 약속했어요. 다시 만나면 데이트 신청할 거라고 말이에요.

데이트…….

순진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립도 속은 남자였다.

보스의 여자와 도망을 치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이렇게 순진한 여성의 마음도 챙겼다.

나쁜 놈.

- 몰랐다니까요! 그냥…… 데이트 하고 싶다고 해서…….

그게 바람둥이들이 흔히 쓰는 변명이야.

닥쳐!

여성이 원한다고 다 데이트할 건 아니잖아?

- 네. 닥치고 있을게요.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립의 탈을 쓰고 다니다 보니 과거 그가 쌓았던 인연들과 자연스럽게 엮였다.

“…….”

설영은 금세 풀이 죽었다.

죽었다고 소문이 돌았던 립.

다시 나타나긴 했지만 립이 그 약속을 잊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순수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마음.

립! 진짜 나쁜 놈!

“나 안 잊었어. 데이트하자.”

“어?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그럼. 약속한 데이트를 위해 지옥에서 이렇게 살아 돌아왔어.”

“정말?”

설영이 더 없이 예쁘게 활짝 웃었다.

고모라처럼 타락과 음모가 판을 치는 요즘 세상.

이렇게 아름다운 미소는 쉽게 볼 수 없었다.

그 미소에 나도 전염이 되는 것 같았다.

아주 짧은 시간 마주했음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여인이었다.

- 고마워요. 진심으로.

반성 가득한 립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어서야 깨닫는 진심 어린 여자의 마음.

보스의 여자가 어떤 여인인지는 몰라도 설영만큼 립을 걱정하거나 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립도 미처 눈치 채지 못했을 그 어떤 비밀이 존재했을 것이다.

“언제 끝나?”

“내 타임은 거의 다 끝났어.”

“기다릴게.”

“아무 말 없이 또 어디 가지 마……. 그날처럼.”

설영이 무척 조심스럽게 확인을 했다.

“응.”

설영과 눈빛으로 단단하게 약속했다.

“빨리 마무리하고 올게. 먹고 있어.”

손에 쟁반을 들고 설영이 부리나케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들떠 있는 그녀의 발걸음은 한껏 흥분되고 또 무척 가벼웠다.

“립. 여자 울리면…… 죽어서도 천벌 받는다.”

- 네…….

혹시 다른 여자는 없어?

나중에 들키면…….

- 어, 없어요! 하늘에 맹세코 저 진짜 순수한 동정남이라고요!

그게 자랑은 아닌 듯하다.

립의 당황하는 목소리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렸다.

아직 식지 않는 딤섬.

간장소스에 찍어 특별한 딤섬 맛을 즐겼다.

그토록 칭찬하던 립의 말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토독.

입안에서 톡 하고 터지는 새우 딤섬 특유의 탱글거리는 맛이 꽤 괜찮았다.

괜히 LA 차이나타운 맛집이 아니었다.

또로로록.

그때 누군가 다가와 내 잔에 술을 따랐다.

곧 코끝에 진하게 맡아지는 독한 장미 향기.

나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다.

“너…… 누구야?”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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