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2장. 나 홀로 갱스터(4)
- 지금 총격전이 났어요! 속히 출동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위치가 어딥니까?”
- 맥아더팍 웨스트레익 11번가 쪽이에요.
“알겠습니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뚝.
통화는 다급하게 끝이 났다.
“무슨 일이야?”
“갱들이 총질을 한데.”
“웨스트레익이지?”
“어.”
“출동 지령 내렸어?”
“아직.”
“그럼 증거 남길 정도 수준에서만 통보해. 오늘 경찰들 웬만하면 그곳에 안 갈 거야.”
“왜?”
“거기 오늘 갱들 파티 한다는 거 같아.”
“빌어먹을 갱들 같으니라고!”
“흐흐. 왜 그렇게 흥분해.”
“난 갱이 싫어.”
“그쪽 가서 외쳐 봐.”
“레이크! 농담할 기분 아니야. 얼마 전에 내 동생 거기 갔다가 지갑 다 털리고 왔다고.”
“정말? 운이 좋았네. 지갑만 털리다니.”
“휴우. 운이 좋긴 좋았지. 허파에 구멍 안 났으니.”
911 지령실에서 한담이 오갔다.
보통 신고가 들어오면 바로 출동 지령이 하달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처럼 갱들이 특별히 부탁을 해온 날에는 경찰들도 출입을 삼갔다.
괜히 개입했다가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는 마약과 술에 취한 갱들이 절정으로 흥분해 있을 타이밍이다.
자칫 공권력이 투입되었다가 폭동으로 번질 수 있다.
오늘 만큼은 경찰도 지켜보는 걸 선택했다.
대부분 갱들이 문제가 발생하면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차피 제정신 박힌 놈들은 해가 지고 나면 갱들 거주 지역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약쟁이나 매춘부가 필요한 놈들이나 몇 명 들어가는 게 전부다.
“마약 단속국에도 알리지 말까?”
“응.”
“갱들 쪽 문제 생기면 연락 달라고 했는데…….”
“그러다 다이아나처럼 너도 죽어.”
“……하아. 빌어먹을 갱들.”
911 지령실 직원들도 하나밖에 없는 목숨은 소중했다.
얼마 전 여자 동료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멀쩡하게 길을 가다 누군가가 쏜 총에 심장에 구멍이 나 버렸다.
단순 강도사로 처리됐지만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다 알았다.
마약 단속 정보를 접수했고 그 정보를 넘겼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일하자고. 시끄러워지면 그때 처리해도 늦지 않아.”
“그래…….”
다시 일에 집중하는 911 직원들.
그들은 마음속으로 소망했다.
LA에서 저주받을 갱들이 모두 사라지는 날이 거짓말처럼 임하기를.
***
타앙! 타아앙!
산탄총이 연속으로 발사됐다.
화약 냄새가 훅 퍼졌다.
구경이 컸고 파괴력이 강한 녀석답게 순식간에 앞으로 확산되는 수백 개의 자탄들.
맞는 순간 대형차도 한순간 걸레 조각이 될 만큼 파괴력이 컸다.
‘다 죽었어!’
패드로는 죽음을 확신했다.
지금껏 이 총에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한 방이면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부하들이 저들에게 어떻게 당했는지는 의아하지만 습격자들은 멍청했다.
당당히 총구 앞에 맞서는 놈.
죽을 줄 모르고 나대고 있었다.
투두두둑.
“???”
기대했던 소리가 아닌 뭔가 물컹한 것에 빠지는 듯한 소음에 패드로는 순간 멍해졌다.
“!!!”
곧 두 눈이 텍사스 황소 눈알만큼 커졌다.
앞에 서 있던 두 놈이 멀쩡했다.
문을 걷어차고 안으로 들어왔던 놈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자탄들 수백 개가 그대로 허공에 떠 있는 상황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에 가로막힌 듯 자탄들은 원형으로 퍼져 공중에 멈춰 있었다.
타앙! 탕! 타다다당!
후안 파비오가 벌떡 일어서 권총을 난사했다.
믿을 수 없는 상황 연출에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돌발적 행동.
총알은 정확히 목표한 자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투두두두둑.
하지만 후안 파비오의 총알도 상황은 마찬가지.
“카를로.”
“네? 네!”
“약속 지켰으니 형님이라고 해봐.”
“……형님.”
‘이건 꿈이야! 꿈!’
카를로의 눈동자가 무엇에 홀린 듯 몽롱해졌다.
장립을 만나면서부터 모든 상황이 한 편의 영화처럼 바뀌어 가고 있었다.
칼과 총 따위는 그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맨손만 뻗어도 장장하던 갱들이 허수아비 꼴이 되어 퍽퍽 쓰러졌다.
방금 전 저택 앞을 수비하던 갱들의 처지도 마찬가지.
그들은 무장하고 있었고 예상대로 총을 난사했다.
이제 죽겠구나 싶은 순간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장립이 뭐라고 가볍게 중얼거리는 순간 빛이 번쩍 하더니 순식간에 쓰러져 버렸다.
그것도 모조리.
그리고 현재.
패드로가 배반자를 처형할 때 즐겨 사용하던 대구경 산탄총을 발사했다.
호기롭게 쏜 자탄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원형 방패막 같은 데 막혀 허공에 둥둥 떠 있다.
멕시코에서 찾아온 중요한 손님이 쏜 총알도 마찬가지.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
그 혼란한 틈에도 장립은 아까 한 약속을 지키라며, 농담 섞인 진담을 건넸다.
‘당신은 신입니까?’
어린 시절 카를로가 가장 즐겨봤던 영화 슈퍼맨.
눈앞의 장립이 지금 카를로에게는 슈퍼맨이나 다름없었다.
***
- 악신 산초 가야르도가 당신을 증오합니다!
가야르도 그 마약 왕?
한때 멕시코 경찰이었다가 세계적 마약왕이 된 멕시코 카르텔의 대부.
회귀 전 생에 뉴스로 우연히 접했던 그의 이름이 거짓말처럼 떠올랐다.
해상으로 마약을 운반하던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마약상들이 미국 정부 단속으로 위기에 처하자 가야르도와 손을 잡았다.
위기를 타파할 해결책으로, 기막히게도 가야르도는 땅굴을 팠다.
그런 후 육상으로 안전하게 남미 마약을 유통했다.
수익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잡히기 전까지 세계적 마약왕으로 이름을 떨쳤다.
머리도 비상하게 좋았다.
몰락 전 미리 자신의 조직들을 여러 개로 찢어 놓았다.
그때 분할된 조직들은 미국과 멕시코 정부 단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그 뒤로 마약 카르텔이 되어 미국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 저주를 받았습니다!
- 선한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강력한 저주를 받았습니다.
- 강력한 선한 카르마…….
마약왕, 악신답게 상또라이다.
강력한 저주 덕분에 앉아서 높은 포인트를 획득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저주가 분명했지만 나에게는 축복이라는 걸 놈이 몰랐다.
그건 그렇고.
허공에 떠 있는 탄환들을 보고 있자니 기괴한 생각이 들었다.
강력 실드 마법을 펼쳤다.
투명한 벽에 막혀 꼼짝 않는 탄환들이 현대미술 작품처럼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덩달아 얼이 빠진 세 명의 인간.
“카를로.”
“네? 넵! 형님 보스!”
카를로, 정말 웃기는 친구다.
이제는 완전히 나의 부하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저거 얼마야?”
“네?”
“너의 전 보스. 머리 단가.”
“아……! 1000만 달러입니다!”
“소소하네. 난 또 1억 달러쯤 나가나 했는데.”
“그 옆에 놈은 좀 비쌀 겁니다.”
“그래?”
“시날로아 카르텔 고위직이 확실합니다.”
단단한 체격에 흉터가 깊은 멕시코인을 쳐다봤다.
“너…… 뭐야!”
갱이나 마약상도 나와 다를 게 없는 인간이다.
자신이 쏜 총알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광경에 날 괴물 보듯 쳐다봤다.
“넌 얼마야?”
“…….”
대답이 없다.
대신 눈알을 바쁘게 굴리는 놈.
“……날 풀어줘.”
오호. 이것 봐라?
계산이 상당히 빨랐다.
“네가 누군지 모르지만 실력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나도 우리 카르텔을 상대할 수 없다. 네 가족이 있다면…….”
악인들 뇌 구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똑같다.
일단 타인의 약점을 잡아 기선 제압을 하고 이득을 취하려는 수작.
“이거 아쉬워서 어떡하지. 난 가족이 없는데.”
“!!!”
“다른 건 없어? 예를 들어……. 달러.”
“날 이대로 돌려보내 주면 1000만 달러를 주겠다.”
약 팔아 많이도 모았다.
스스로 몸값을 책정해 통보하는 멕시코 아저씨.
“이름이 뭐야?”
호구조사에 들어갔다.
“후안 파비오.”
“헛! 후, 후안 파비오!!!”
후안 파비오라는 말에 카를로가 더 깜짝 놀랐다.
“아는 놈이야?”
“구스만의 오른팔입니다!”
현 멕시코 마약왕 구스만까지 언급됐다.
조용히 복수만 하고 돌아서려고 했는데 일이 자꾸 커지는 느낌이다.
뭐,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난 장태산이 아닌 장립이다.
- 헤에. 저도 두렵지 않아요!
장립의 탈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영혼 동조화가 자동인 듯하다.
내 마음을 알고 립이 애처럼 좋아했다.
“산초 아저씨 좀 더 써봐. 그거 받고 풀어 주기에는 내 일당이 너무 적어.”
꾸욱.
입술을 잘근 깨무는 후안 파비오.
“진짜 겁이 없는 놈이군…….”
독사 같은 예리한 눈빛으로 날 훑었다.
“내 말이.”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툭.
퍼엉!
실드에 막혀 있던 총알 하나가 그대로 날아가 후안 옆 소파에 큰 소리를 내며 박혔다.
“도, 돈 주겠다!”
조용하던 패드로 라이언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야 제대로 상황이 파악이 되는 모양이다.
“불러봐.”
악인을 상대할 때는 착한 호구 짓 인증할 필요가 없다.
최대한 그들보다 더 독한 악당처럼 굴어야 한다.
“2000만 달러! 그것도 당장 줄게!”
갱 두목이 제대로 쫄긴 했나 보다.
“난 현찰만 취급하는데…….”
“오늘 계약금으로 찾아놓은 돈이 금고에 있어! 그러니까…….”
“멍청한 새끼! 닥쳐!”
멕시코 아저씨가 패드로의 말을 듣다 소리쳤다.
제대로 된 협상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행동하는 패드로를 후안 파비오가 경멸스럽게 쳐다봤다.
스윽.
스마트폰을 꺼냈다.
띠디딕.
여전히 총을 겨누고 있는 두 멍청이 앞에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오랜만입니다.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승진했더군요.”
- 모두 다 다니엘님 덕분입니다.
사라 덕분에 알게 된 FBI 그렉 요원.
장주시 연구단지에서 안면을 텄던 인물이다.
그리고 사라를 통해 힘을 좀 써 앞길을 열어줬다.
“한 가지 묻고 싶은 정보가 있습니다.”
- 하명하십시오.
“내 친구가 마약상을 잡았는데 몸값이 얼마인지 궁금해합니다.”
- 어떤 놈입니까?
“멕시코 출신으로 이름이 후안 파비오라고 하더군요.”
- 후안 파비오!!! 다니엘! 그 자식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렉이 흥분해 소리치며 물었다.
생각보다 더 큰 월척이 걸린 듯하다.
“몸값이…….”
- 1억 달러입니다!?
잔뜩 흥분한 그렉의 대답을 듣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됩니까?”
- 물론입니다.
스윽.
통화를 하며 내용을 다 듣고 있는 멍청한 두 히스패닉 남자를 바라봤다.
얼이 반쯤 나간 상태다.
씨익.
입가에 은근히 번지는 친절한 영업용 미소.
그리고.
“시체도 받아 주나요?”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