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1장. 나 홀로 갱스터(3).
“!!!”
무장하고 있던 갱들 모두가 얼어붙었다.
장립이 미친놈인 것쯤은 눈치 채고 있던 카를로도 입을 쩍 벌렸다.
경비를 서고 있던 놈들 모두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프로였다.
지금은 기관단총까지 들고 있다.
낮에는 경찰이 관할하는 곳이지만 밤에는 갱들의 세상.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MS-13 보스의 저택을 찾아온 낯선 방문자인 립이 큰소리를 치는 상황.
뒤에 이어진 말은 알아듣지 못했다.
장립이 능숙하게 스페인어를 구사하긴 했지만 마지막 말은 처음 듣는 언어였다.
하지만 느낌상 기분이 매우 나빴다.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할 수 없지만 모두는 그 말이 욕이라는 걸 뉘앙스로 알아챘다.
“립…….”
카를로가 장립을 만류해 보려 이름을 불렀다.
“카를로……. 네 친구냐?”
호세가 대번에 카를로를 흘겨보며 인상을 썼다.
경비를 서던 다른 갱들도 눈살을 찌푸리기는 마찬가지.
파바밧.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경비를 서던 갱들의 총구가 장립에게 향했다.
“아니 난…….”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카를로는 입을 다물었다.
‘빌어먹을…… 오늘이 엄마를 만나는 날이군.’
호세와 말을 트고 지내긴 했지만 그는 보스의 정예 경호원이다.
보스 밑에서 긴 시간 몸담았어도 두터운 신임을 받아야 초근접 경호원이 될 수 있었다.
총을 상시 소지하고 다니는 만큼 배신의 기미가 있는 자들은 결코 곁에 둘 수 없었다.
언제 어느 틈에라도 보스를 죽이는 일이 가능했다.
그만큼 보스가 가장 믿고 있는 최측근 호세.
“패드로 라이언 안에 있지?”
장립이 친구를 찾듯 보스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이 새끼 뭐야?’
호세는 당당하게 물어오는 장립을 보며 의아했다.
진짜 보스의 손님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미친놈이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패드로 라이언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와칭에서 보냈나?”
가끔 보스와 사업적으로 거래를 위해 중개자를 보내기도 하는 차이나타운의 와칭 조직.
“어.”
장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증명은?”
“증명은…….”
사실을 입증해 보라는 말에 장립이 다시 씨익 웃었다.
“패드로 라이언…… 개새끼.”
“!!!”
‘선전포고?’
와칭 조직원이라고 밝힌 놈이 내뱉은 보스에 대한 충격적인 욕설.
“닥쳐!”
호세가 장립을 향해 일갈하며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 순간.
뻐억! 뻑!
호세는 눈앞에 떨어진 불벼락을 보았다.
순식간에 뭔가가 이마를 강렬하게 후려쳤다.
그걸로 끝.
정문 앞에서 경비를 서던 갱들이 상황을 지켜보다 넋이 나간 채 허수아비처럼 변해 버렸다.
호세의 이마에 뚫린 작지 않은 구멍.
“…….”
지금까지 경험해 온 그 어떤 갱들보다 더 무자비한 립의 행동에 카를로는 말문이 막혔다.
그 틈에서 심장을 스치는 한 자락의 쾌감.
‘짜릿해!’
어린 시절 갱들을 무척 싫어했던 카를로였다.
이유 없이 아이들을 붙들고 괴롭히고 때렸다.
돈과 성을 착취하고 일상을 공포로 몰아넣고 협박을 일삼았다.
카를로 역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독한 갱이 되긴 했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여렸다.
무뎌져 가던 감정의 문을 열고 카를로를 한껏 흥분 시키고 있는 장립.
같은 조직원들이 그의 손에 당했지만 카를로는 분노보다 쾌감을 더 강하게 느꼈다.
재활용도 불가능한 진짜 쓰레기 같은 놈들만 모여 있는 패드로 라이언의 저택.
콰다당.
저택 앞 길바닥으로 갱들이 장작처럼 넘어졌다.
“따라올래?”
장립이 카를로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순간.
“넵! 보스!!!”
카를로는 자신도 모르게 장립을 향해 온 마음으로 보스라는 호칭을 내뱉었다.
***
“형제여. 이번 거래도 아주 좋았어.”
“하하. 자네가 마음에 들었다니 내 마음도 흡족하군.”
“흐흐. 미국 놈들에게 마약을!”
“마약을!”
LA에 위치한 갱 조직 SUR-13의 보스 패드로 라이언의 저택 안.
히스패닉 계의 중년 남자 두 명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도시의 밤은 아직 더운 기운을 담고 있었다.
특히 이곳은 바람도 잘 들지 않는 LA 시내 뒷골목 저택.
시원하게 에어컨이 돌아가는 방안에서 포효하는 사자 문신을 자랑하는 패드로 라이언과 그를 형제라 부르는 남자가 독한 데킬라를 나눠 마셨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 중에 가장 높은 악명을 떨치는 시날로아 카르텔의 2인자 후안 파비오.
험상궂은 얼굴에는 칼자국이 깊게 패여 인상을 더 고약하게 보이게 했다.
거구인 패드로 라이언과 달리 날렵해 보이는 몸으로 체격은 단단했다.
연신 웃는 얼굴로 패드로 라이언을 바라봤지만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보스인 구스만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이었다.
미국의 조직들과 협상을 시도할 때면 항상 후안 파비오를 보냈다.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남미 국가에서 지명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지만 그의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멕시코와 미국의 길고 긴 국경선에는 수백 곳의 비밀 통로가 존재했다.
그만큼 제 집처럼 쉽게 미국을 드나들 수 있었다.
보통 체격이지만 배짱도 좋고 잔혹성도 대단해 대부분의 조직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쳤다.
조직에 해를 가한다 싶은 자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손을 썼다.
목을 잘라 도시 입구에 걸어 놓는 걸 취미로 여겼다.
잔혹함의 대명사라고 할 만한 구스만도 후안 파비오를 만류할 정도로 취미가 악독했다.
정부군과도 10여 차례에 걸쳐 전투를 벌였다.
믿을 수 없겠지만 놀랍게도 모두 승리했다.
매번 전투가 끝난 뒤에는 정부군 장교들의 가족을 찾아내 몰살하고 생활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멕시코 정부는 정부군을 특별히 보호해 주지 못했다.
장관과 고위 관료들 모두 카르텔과 관련돼 있는 구조적 특성 때문이었다.
수많은 조직들 중에서도 시날로아 카르텔과 가장 관계가 깊었다.
다른 카르텔에서도 후안 파비오라는 이름만 언급되면 알아서 한수를 접었다.
명성을 얻을 만큼 얻은 후안 파비오는 오늘도 역시 기분이 좋았다.
말이 꽤 잘 통하는 LA 갱 두목 패드로 라이언.
독종이라는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내장을 파내고 목을 잘랐다.
그러고 나서 마시는 한 잔의 독한 데킬라.
악마성이 짙은 자들은 비슷한 부류의 인간을 만났을 때 흥이 났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계약은 수월하게 끝났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안정적인 판매처가 확보됐다.
다른 갱들과 달리 멕시코 출신들이 전부인 SUR-13.
같은 민족이라 다른 조직들보다 믿음이 갔다.
미국에 영토를 빼앗긴 멕시코인들은 특히나 애국심과 동족의식이 남달랐다.
반드시 수복해야 할 영토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범죄 조직으로 활동하며 마약을 팔고도 가책 같은 것은 느낄 필요가 없었다.
미국인들이 타락하면 타락할수록 영토를 되찾게 되는 날이 빨리 올 거라 믿었다.
“계약은 끝났고. 재밌는 일 없어?”
후안 파비오가 패드로 라이언에게 은밀한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멕시코에서 경험하는 평범한 일탈보다 미국에서 간간이 벌이는 화끈한 파티가 좋았다.
“흐흐흐. 준비되어 있네. 이 잔만 비우고 헬기를 타고 별장으로 가면……. 자네를 위한 뜨거운 밤이 설계되어 있지. 특히 친구가 원했던 라스베이거스의 그 계집이 올 거야.”
“오! 패드로! 나의 진정한 친구! 멕시코에 오면 내가 널 위해 천국을 준비해 줄게!”
후안 파비오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요즘 핫 하게 뜨고 있는 여배우를 넌지시 언급해 둔 터였다.
돈이라면 안 되는 게 없는 미국.
패드로 라이언이 제대로 선물을 준비했다.
다만.
콰아아아앙!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뭐야!”
“적이다!!!”
타다다다다당!
갑자기 들려온 폭음과 총 소리에 분위기가 흐트러졌다.
“???”
패드로 라이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껌벅였다.
이곳은 갱들의 왕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아지트였다.
다른 갱단이 치고 들어올 틈 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낮 동안 거리를 담당하던 경찰에게도 특별히 오늘 친구가 올 것이라 말해 두었다.
그런 날은 순찰 구역에서 자연스럽게 저택 주변은 빠졌다.
그런데 난데없이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상황.
“이것도 선물인가?”
후안 파비오가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물었다.
“어떤 미친놈이!”
반면 패드로 라이언의 얼굴은 심각하게 달아올랐다.
멕시코는 어느 나라보다 체면을 중시했다.
친한 친구이자 동업자가 방문해 있는 상황에 터진 얘기치 못한 사건.
패드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터억!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특수 산탄총을 집어 들었다.
요즘 들어서 사람을 죽일 때 자주 사용하게 된 맹수 전용 산탄총.
웬만한 덩치의 짐승들도 이 총에 맞게 되면 순식간에 벌집이 된다.
철컥!
특별히 대상을 조준할 것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순간 갈기면 끝난다.
“도와줘?”
후안 파비오가 여유를 부렸다.
그와 함께 이곳에 온 세 명의 부하들은 시날리아 카르텔에서도 솜씨가 좋은 녀석들이다.
멕시코 특수부대 출신들로 살인병기라 불렸다.
“미안해. 잠시 사냥을 하고 올게.”
피비린내 나는 갱들 간의 전쟁을 수십 번 경험해 온 패드로 라이언이 거들먹거렸다.
“…….”
그런데 밖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
‘무슨 일이야?’
패드로 라이언의 인상이 다시 일그러졌다.
오늘 계약 체결을 위해 20명의 부하들이 저택을 경호했다.
조직원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놈들로 선별했다.
잠깐 소란스러웠던 밖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더 이상의 총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일순간 입을 틀어막은 듯 깊은 침묵이 저택에 감쌌다.
‘설마?’
불길한 상상이 패드로 라이언의 머릿속을 스쳤다.
FBI 특수 기동 타격대가 와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20명에 달하는 부하들을 제압할 수는 없었다.
“흐음.”
후안 파비오도 작은 신음을 흘렸다.
묘하게 신경을 거슬리는 묵직한 기운이 저택 안까지 느껴졌다.
밖에 대기 중인 부하들의 안위가 궁금했다.
“알베르또! 사무엘! 엔리께!”
차분하게 부하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후안 파비오.
대답이 없다.
스윽.
후안 파비오는 천천히 품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본능이 위기 상황임을 경고했다.
꿀꺽.
패드로 라이언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감 때문에 피부의 털들이 빳빳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퍼어어어어엉!
거실 쪽 문이 큰소리를 내며 박살이 났다.
퍼버버벅.
나무 잔해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누구야!!!”
눈을 부릅뜨며 패드로 라이언이 악을 썼다.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미 부하들이 모두 일을 당했다는 걸 눈치 챘다.
저벅저벅.
부셔진 문 밖에서 두 명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보는 동양인과 카를로.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직원 카를로가 분명했다.
“카를로……. 너 이 새끼…… 배신이냐!”
패드로 라이언은 카를로가 자신을 배신했음을 직감했다.
분위기만 봐도 동양인을 보필하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패드로. 새로운 보스를 소개한다.”
카를로가 제대로 미쳐 있었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보스를 눈앞에 세워 두고 동양인을 새로운 보스라고 소개했다.
그것도 감히 보스의 이름을 함부로 내깔리며.
“너…… 너! 으드득.”
패드로 라이언은 두 눈을 부릅뜨며 이를 갈았다.
그 순간.
“쓰. 레. 기. 들.”
갑자기 패드로 라이언과 후안 파비오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또박또박 쓰레기라 내뱉는 동양인.
“으아아아악! 뭐야! 이 새끼! 죽어어어어!!!”
패드로 라이언이 눈이 돌아간 채 악을 쓰며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