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0장. 나 홀로 갱스터(2).
‘초……능력자?’
꿀꺽.
카를로의 목줄기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파르르르르.
사지가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바들바들 떨렸다.
몇 번 겪어본 적 있는 죽음 직전의 위기보다 더한 공포가 엄습했다.
부하들의 죽음은 결코 상식적이지 않았다.
장립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싶었다.
저항의 기미를 보이지 않던 그가 맨손으로 부하들 머리통에 구멍을 냈다.
분명 빈손으로 총 같은 것은 들고 있지 않았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닌자들의 암기 사용과도 수법이 달랐다.
손을 뻗은 직후 무언가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끝.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았지만 믿기지 않았다.
장립이 손으로 쥔 총구가 힘없이 휘었다.
총알이 발사될 때의 압력을 소화하기 위해 그만큼 단단하게 만들어진 총신.
아이들 손에 잡힌 고무찰흙처럼 뭉개졌다.
“부하들 이름은 알지?”
“???”
“기도해 줘야지.”
“…….”
피가 낭자한 죽음의 현장.
담백하게 주검이 되어 쓰러진 이들의 명복을 빌어 줘라 말하는 장립이 무서웠다.
사람 한두 명 죽이는 일쯤 우습게 여기는 게 확실했다.
갱 냄새가 났다.
살인을 해야 진짜 갱으로 대접받았다.
그런 점에서 장립은 갱 중의 갱이었다.
“패드로 라이언 어딨어?”
장립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친절했다.
뇌수와 피를 쏟아내는 시체 앞에서도 태연했다.
“……너 사람이야?”
카를로가 어이가 없어 물었다.
중간 조직원이 되면서 나이프 따위는 소지하고 다니지 않았다.
장립에게 반항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영혼을 거두어 가는 악마의 사신처럼 보였다.
“카를로. 우리 피차 길게 말할 사이 아니잖아.”
“……그곳에 가면 넌 죽어!”
카를로는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
부하들이 눈앞에서 주검이 되었지만 별 감정은 일지 않았다.
그들과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니었다.
끈끈한 동료애 같은 것도 없다.
상부의 지시가 있을 때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해치거나 묻는 일을 함께했을 뿐이다.
이익 분배 기준에 따라 어제의 동료 등에도 수시로 칼을 찌르고 총알을 박았다.
방금 전 말대답을 했던 부하 얼굴에 아무렇지 않게 시가를 비벼 껐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틈만 보이면 자신의 자리를 넘보려 눈치를 봤다.
그럴 때일수록 인정사정을 봐서는 안 된다.
약한 감정을 내비치면 곧바로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다.
그러나 장립은 그런 자신들의 방식과 다르게 행동했다.
눈 하나 깜빡 하지 않고 사람을 죽였다. 반면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 한마디의 이유로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
갑자기 그를 향한 연민이 일었다.
“이건 내 비즈니스.”
장립은 자신감이 넘쳤다.
“죽은 네 친구가 부럽군.”
“바보 같은 녀석일 뿐이야.”
장립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그런데…… 복수는 왜?”
“계약.”
짧은 대답.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듯했다.
“후회하지 않겠어?”
“물론.”
“그럼…… 따라와.”
카를로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휘하 조직원들이 모조리 영혼의 강을 건넜다.
패드로 라이언이 이 사실을 알고도 목숨을 살려줄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것들 처리하고.”
“묻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리기에는 시간이…….”
콰드드드드드득.
“!!!”
카를로의 눈동자가 빠져나올 듯 커졌다.
단단한 시멘트 바닥이 거친 소음을 일으키며 부서지더니 아귀처럼 입을 벌렸다.
이내 쩍 벌어진 깊은 구덩이.
휘이익.
바닥을 뒹굴던 사체들이 떠오르더니 쩍 벌어진 구덩이 안으로 사라졌다.
콰드드드드득.
그리고 다시 악마의 입처럼 벌어졌던 구덩이가 닫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해진 시멘트 바닥.
누가 와도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현장.
“깊게 묻어야 냄새가 안 나.”
“너…….”
“앞장서.”
“휴우…….”
카를로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손님이 와 있어. 경비가 삼엄해.”
“그래봤자. 쓰레기들이지.”
“그놈들 앞에서도 지금처럼 말할 수 있다면 형님으로 모셔주지.”
“후훗.”
장립이 차갑게 웃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카를로.
저벅저벅.
창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쩌면…….’
카를로는 까맣게 묻어두었던 희망의 빛 한 줄기를 발견한 듯했다.
조직에 몸을 담는 순간 조직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오직 죽음.
그런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 희망이 보였다.
장립이 다시 한 번 쓸어준다면…….
‘마리아시여.’
카를로는 일찍 곁을 떠나버린 엄마를 대신해 온 마음으로 따르고 있는 마리아를 찾았다.
***
- 동네 토지신들이 카르마 포인트를 듬뿍 쐈습니다.
- 청소비용을 정산 받았습니다.
- 원혼들이 포인트를 지불했습니다.
연달아 들려오는 기분 좋은 알림음.
그 와중에도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토지신이라는 말.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 맞았다.
LA라고 신이 없을 리가 없었다.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자들을 처리하자 어둠 속을 떠돌던 원혼들이 승천했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한이 풀린 것이다.
- 아! 이렇게도 포인트를 버는군요!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장립이 감탄에 감탄을 더한다.
지켜봤다면서 포인트 정산 방법은 이제야 안 모양이다.
레벨이 낮아 영혼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나와 동행하는 중에 장립이 포인트를 축적하자 빠르게 각성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 정말 당신은 대단해요! 존경해요!
립이 립 서비스도 제대로다.
그의 칭찬의 말이 싫지 않았다.
그런데 이 찝찝하고 기묘한 느낌은 뭐지? 기분이…….
알림음……. 혹시 내가 번 포인트도 다 립에게…….
- 포인트 금융실명제로 본인 통장은 본인만 인출할 수 있습니다.
- 립은 당신이고 당신이 립입니다.
“!!!”
이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주는 내가 부리고 포인트는 립이…… 번다!
- 헤에. 제 포인트가 당신 포인트잖아요.
걷어낼 수도 없는 거리에서 순박한 웃음을 짓는 영혼 립.
전생에 제대로 나와 인연이 얽힌 게 확실했다.
죽어서도 이렇게 팔자 좋게 운이 풀리는 영혼들이 종종 있었다.
“왜 그래?”
창고 밖으로 나왔다.
카를로는 갱답지 않게 성격이 좋았다.
나와 함께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멍한 표정을 짓고 딴생각에 빠져 있는 카를로에게 물었다.
“하아. 인생 계산이 쉽지 않다.”
“……그래. 사는 게 쉬운 게 아니지.”
카를로가 성의 없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가득해 보였다.
나보다 더 빡세게 살았을 다운타운 갱의 삶.
“왜 걸어가는 거야?”
“여기서 가까워. 그리고 나……. 운전면허증 없어. 몇 년 전에 크게 사고 나서 운전 트라우마도 있고.”
정말 가지가지 하는 갱이다.
“미국 시민권자 아냐?”
“어릴 때 멕시코에서 넘어왔어. 영주권도 없어.”
“학교는?”
“여기 주민들 반절 이상이 무 학력자야. 학교 물었다가는 총 맞아.”
동네 참 살벌하다.
공부 잘하면 칭찬 대신 총알을 선물로 받을 분위기다.
둥둥~♫ 두두두~♪.
앞 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스마트폰이 대세인 세상에서 아직도 큼지막한 휴대용 오디오를 켜 놓고 춤을 추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치이이이이익.
한쪽에서는 지저분한 벽 앞에서 페인트 스프레이로 그라피티를 그리고 있는 무리도 보였다.
무질서 속에서도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 인간의 예술적 본성.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느꼈던 이미지와 느낌이 달라 보였다.
이곳도 나와 같은 사람들, 그저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었다.
춤을 추는 청춘 남녀들의 겉옷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그라피티를 그려내는 남자들의 몸짓은 진지했다.
배움의 기회도 얻지 못한 이들이지만 한편의 예술을 그려낼 줄 아는 그들의 모습은 생동감이 넘치고 아름다웠다.
통! 토도도동.
그때 농구공 하나가 발 앞으로 굴러왔다.
바닥은 다 패이고 발라졌던 페인트는 겨우 흔적만 남은 채 울타리마저 다 뜯겨나간 허름한 농구장.
어린 히스패닉과 흑인 아이들 몇이 어울려 농구를 하고 있었다.
“카를로 아저씨!!!”
아이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카를로를 보며 아는 체를 했다.
손까지 흔드는 녀석도 있었다.
“마이클! 공 차도로 보내지 말라고 했지. 이러다 사고 나!”
카를로가 열 살쯤 돼 보이는 흑인 아이를 보며 소리쳤다.
“헤에. 미안해요~.”
으레 있었던 일처럼 아이는 카를로의 호통에도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빈민가에 산다고 아이가 아닌 건 아니었다.
“받아!”
휘이익.
카를로는 능숙하게 공을 집어 힘차게 던졌다.
폼을 보아하니 제법 농구를 했던 품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공 사주신다면서요!”
“일주일만 기다려.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바닥도 깔아줄게.”
카를로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갱이다.
“그럼 아저씨 살아 있기를 성당에 가서 기도할게요!”
“저도요!!!”
아이들이 카를로의 대답을 농담처럼 받아 진담처럼 돌려보냈다.
그들의 입에서는 삶과 죽음이 깃털처럼 가볍게 오고갔다.
“고맙다. 이 녀석들아.”
“사랑해요! 아저씨!!!”
“…….”
카를로가 입을 다물었다.
눈가에 스치는 슬픈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낯선 방문자의 눈에는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벅찬 전쟁터 같은 곳.
그럼에도 이곳 아이들의 삶과 눈빛은 순수하기만 했다.
아직 본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귀엽지 않아?”
“아이들은 천사니까.”
“저래도 몇 해만 더 지나면 상상할 수 없었던 악마가 돼. 이곳은 그런 곳이야……. 살아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양심을 팔아야 해. 그래야 존재할 수 있는 곳이지.”
이곳에서 크고 자랐다는 카를로의 말 속에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국가와 지역사회, 부모가 어린 천사들에게 그늘이 되지 못하면 그들도 자연스럽게 악마가 되는 것이다.
마음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막연하게 품고 있었던 선입견이 부끄러웠다.
갱들에게는 어린 시절 추억 따위는 없을 거라고 단정했다.
“다 왔어.”
카를로와 잠깐의 침묵을 사이에 두고 걸었다.
그렇게 다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물.
다른 빈민가들과 달리 부호가 거주하는 곳인 듯 깔끔한 외관부터가 다른 3층짜리 저택.
담이 꽤 높았다.
저택 입구에는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갱들이 여럿 보였다.
단단하게 닫혀 있는 철문.
“주인이 겁쟁이군.”
“적이 많으니까.”
“들어가지.”
“……진짜 죽을 수 있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카를로의 진심이 보였다.
“오늘 처음 봤잖아. 내가 걱정 돼?”
“……넌 좋은 녀석 같아.”
갱스터 카를로가 몇 마디 말로 싸게 날 감동시켰다.
“너도.”
“후훗. 네가 보스라면…… 멋질 거 같아.”
보스?
카를로의 말이 묵직하게 마음에 파동을 일으켰다.
뭔지 모르지만 심금을 울리는 보스라는 호칭.
“들어가자.”
카를로가 앞장을 섰다.
그의 뒤를 따랐다.
파바밧.
갱들이 카를로를 훑었다.
“호세. 문 열어.”
“카를로. 지금 보스 회의 중이야. 그리고 이 냄새나는 동양인은 뭐지?”
“손님.”
“손님? 초대 명단에 없는데.”
콧수염을 기른 호세라는 자가 나를 훑었다.
씨이익.
자연스럽게 입가에 번지는 미소.
그리고.
“문 열어! 씨X아!”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