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9장. 나 홀로 갱스터.
“어디로 간 거야? 하아.”
사라 요한슨은 한숨을 쉬었다.
그가 많이 보고 싶었다.
최근 사라는 가문의 일에 본격적으로 투입됐다.
방계지만 미국에서는 직계만큼 영향력이 컸다.
직위가 오를수록 할 일이 많았다.
연속된 금융위기 뒤의 잔 지진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일반인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 미국 경제의 펜더멘탈.
거시경제적 지표가 완만하게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엉망이었다.
연방은행의 달러 프린터 신공으로 정부의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를 버텼다.
당장 달러 공급을 끊으면 미국은 부도가 난다.
경제를 뒷받침하는 중산층이 상당수 이탈했다.
저축을 모르는 신용 사회인 미국에서는 심각한 부의 편중 현상이 발생했다.
소수가 전체 부의 대부분 비중을 차지해갔다.
사라는 그들 소수 중에서 극소수 계층.
마음이 불편했지만 집단의 이익 앞에서 사라의 개인감정은 의미가 없었다.
차일드 가문의 탄생과 성장 과정이 모두 그러했다.
모두를 밟고 올라서 피라미드의 정점이 됐다.
일이 넘쳐났다.
공학자를 대신해 슈퍼컴퓨터가 사용됐고 이제는 AI가 등장했다.
시민들은 알지 못하는 금융 시스템 전반에 대규모 혁명이 일어났다.
부의 이전을 준비 중이었다.
극소수만 아는 프로젝트.
사라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다.
그 와중에 다니엘은 말도 없이 귀국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미국에 입국했다.
그의 위치를 종잡을 수 없었다.
미국 내에 촘촘히 연결된 정보망으로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다니엘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다니엘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사라의 직감은 비켜간 적이 별로 없었다.
“로리아나가 가만있지 않겠네.”
약속돼 있는 휴가에 대해서 다니엘은 아직 말이 없었다.
그가 약속을 지킬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문제는 요즘 들어 로리아나의 성격이 무척 예민해져 있다는 것.
다니엘이 미국을 수시로 오가고 있는 만큼 의심이 쌓일 것이다.
“노처녀 히스테리가 맞아.”
사라가 고개를 흔들었다.
야훼 바트의 운명을 타고난 로리아나.
아무리 신성한 직책을 맡고 있다고는 하나 그녀도 여자다.
게다가 한 남자를 마음에 담아버린 상태.
“누가 누구를……. 걱정해. 하아.”
사라가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손에 집히지 않았다.
곧 연락을 해올 것만 같은 다니엘.
먼저 통화를 시도했지만 스마트폰은 꺼져 있었다.
이상하게 그 쉬운 위치 추적도 되지 않았다.
넓은 미국 땅 어딘가에 있을 다니엘 장.
“다니엘……. 잘 있는 거죠?”
***
미친놈!
SUR-13의 조직원들은 눈앞의 동양 남자를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은 패드로 라이언의 안방이다.
허접한 갱들이 설치는 곳으로 위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모두 패드로 라이언의 명을 따르는 전문가들이 배치되어 있다.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인 MS-13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멕시코 계열의 SUR-13.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깊이 연관돼 있다.
LA와 캘리포니아 전체가 영업 대상이다.
IT 신흥 부자들이 사는 곳답게 마약 소비도 엄청났다.
스트레스를 마약으로 푸는 부자들이 그만큼 많았다.
패드로 라이언은 돈을 쓸어 담았다.
갱 수준을 넘어 이제는 마피아 지위를 누리고 있다.
휘하에 100명이 넘는 부하들이 깔려 있다.
그들 말고도 명을 따르는 양아치들까지 합치면 1000여 명이 넘었다.
그런 핵심 지역에 겁 없이 나타나 패드로 라이언을 찾은 미친 동양인.
약에 취한 3류 쓰레기를 손봐주긴 했지만 눈에 찰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손이 빨라도 총알을 피할 수 없다.
철컥.
지금 포위하고 있는 조직원들 몇도 이미 총을 꺼내들었다.
명령만 내리면 미친 동양인의 몸뚱이는 순식간에 벌집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 동양인.
‘이 새끼도 약을 한 거야?’
영화 속 히어로라도 되는 듯 목숨이 몇 개나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놈.
SUR-13의 관리 조직원인 카를로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약에 취해 있다 해도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또 ‘사자문신 패드로’라는 이름은 함부로 불릴 이름이 아니었다.
마약에 취해 놈들 중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가 사막에 묻히거나 쓰레기통에서 내장 없이 발견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빈민가에서 잔뼈가 굵은 패드로 라이언은 속이 독했다.
이미 10살 때 처음 청부살인을 저질러 왔던 인물이다.
그저 그런 갱단을 흡수통합하며 세력을 순식간에 키웠다.
머리도 비상했다.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갱들과 달리 타 조직과 연합 전선도 펼쳤다.
내부 밀고자 관리도 철저했다.
밀고자는 발각 즉시 그 가족들과 함께 모두 죽은 목숨이 됐다.
조직들과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포로로 잡힌 자들 중에 결코 살아남은 자들이 없었다.
그의 악명이 높아지자 스스로 굴복하고 찾아와 무릎을 꿇은 조직원들이 생겨났다.
그들 중에서도 면밀하게 가려 핵심만 뽑아 영입했다.
메이저리그처럼 실력과 충성심을 보이는 자들만 진정한 조직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성 조직원이 되면 돈과 여자를 마음껏 누렸다.
조잔하게 굴지 않았다.
패드로 라이언은 조직원들을 시칠리아 마피아처럼 정으로 묶었다.
조직원 일원이 당하면 직접 휘하를 지휘해 상대에게 몇 배의 대가로 값을 치르게 했다
그런 패드로 라이언을 두고 사자 문신 운운하며 찾던 동양인.
“따라와.”
아무리 단속을 해도 보는 눈이 많았다.
사방이 뚫린 거리.
어느 구석에서 누군가 스마트폰으로 이 상황을 촬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과거보다 행동 제약이 많은 갱질.
카를로가 앞장섰다.
“따라가면 패드로 만나는 거야?”
“클클. 아마도.”
“미친 새끼. 케케.”
조직원들이 동양인을 쳐다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후훗.”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동양인.
“이름이 뭐지?”
카를로가 그의 이름을 물었다.
갱이지만 그의 집안은 대대로 독실한 카톨릭 신자들.
참회기도 시간에 특별히 천국으로 가도록 기원하며 기도해 주리라 생각했다.
“립.”
의외로 짧고 간단한 남자의 이름.
“립…….”
저벅저벅.
어두워진 가로등 불빛을 따라 골목 안쪽으로 향하는 발걸음들.
“저 새끼 뭐야?”
“신경 꺼……. 어차피 우리 일 아니잖아.”
숨어 있던 이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확정된 죽음.
매일처럼 피와 마약, 죽음이 난무하는 LA의 뒷골목.
“약 있어?”
“꺼져! 병신아!”
“휘이! 리안나 오늘 죽이는데?”
하루만 보고 살아가는 불나방들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방금 전 눈앞을 스쳐 지나간 동양인의 얼굴 따위는 거짓말처럼 지워버렸다.
***
끼이익.
도시의 뒷골목에도 폐 공장이 있었다.
축축한 시멘트 바닥, 코를 찌르는 악취, 낮은 조명 등의 삼박자가 모두 갖춰진 공간.
사방에 차가운 기운들이 넘쳐났다.
이곳에서 운명을 달리한 자가 족히 수백 명은 넘은 것 같다.
- 이곳이에요……. 제가 처음 끌려왔던 곳.
장립이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서도 쫄았다.
머리만 똑똑했지 사회 생리는 전혀 모르고 살았던 장립.
- 눈알이 빠질 정도로 맞았어요.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상한 인생 목표 때문에 삶이 제대로 꼬여버린 장립.
그 업을 청산해야만 했다.
현생에서 끌어다 쓴 저세상 영혼과 얽혀버린 인연이 가볍지 않았다.
그의 청을 들어줘야 이름을 사용해도 정당하고 탈이 나지 않는다.
“립. 이곳은 왜 온 거야.”
딸깍. 치이이익.
내 이름을 묻던 놈이 시가를 입에 물었다.
“후우우우우.”
한차례 길게 연기가 뿜어냈다.
야릿한 시가 향이 눅눅한 공간에 퍼졌다.
“패드로 라이언을 묻으러.”
감출 것 없이 솔직하게 답했다.
립이 원하는 건 본인이 당한 그대로 그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가족 중에 원한 있어?”
“아니.”
“멀쩡해 보이는데.”
“아는 친구가 패드로 손에 사막에 묻혔대.”
“……보스가 직접 손쓸 정도면 거물이었겠네. 친구가 중국인?”
“어.”
“안타깝지만 너의 묘비명은 써줄 수 없어. 기도는 해줄게.”
갱 조직원 중에도 이렇게 인간적인 놈이 한두 명 있다.
“이름이?”
“카를로 디에고.”
“……넌 살려줄게.”
“???”
“기도해 주겠다는 말 진심이지?”
“그렇지……. 난 신실한 신자니까.”
미친놈은 저런 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신앙심과 비즈니스를 철저하게 분리할 줄 아는 정신병자.
“패드로는 이곳에 있나?”
“가까운 곳에 계시지.”
카를로와 대화를 이어갔다.
누가 보면 친구 사이가 나누는 사소한 대화처럼 생각될 것이다.
“카를로님. 대충 끝내죠. 오늘 수금 지시 떨어졌어요.”
지켜보고 있던 놈들 중 한 놈이 인상을 쓰며 카를로를 재촉했다.
이런 감성적인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마르틴. 이리와.”
왼손으로 방금 입을 연 마르틴을 부르는 카를로.
가까이 다가오는 마르틴.
“너 내가…… 말할 때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했지.”
“아니 그래도…….”
치이이이익.
“크아아아아아악!”
카를로 살벌한 거 보소!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었다고 마르틴이라는 조직원 볼에다 시가를 눌러 껐다.
움직이지도 못하게 왼손으로 머리채를 잡고 사정없이 시가를 비벼대는 모습.
웬만한 사람은 바로 실례를 하고 말았을 장면이다.
“내 말 듣기 싫으면 날 밟고 올라가. 그게 이 바닥 법칙인 거 알지?”
카를로 멋진 상남자다.
그의 주변으로 영혼들이 제법 떠다니는 게 느껴졌지만 다른 놈들 옆에 붙은 영혼들보다 원한의 색이 약했다.
진짜 죽인 자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모양이다.
“립. 이제 끝내지. 여기까지 찾아온 것만으로도 용기가 대단해. 우리 보스를 찾는 상세한 이유는 묻지 않을게.”
카를로가 무감정한 시선으로 날 봤다.
“대신 고통 없이 깔끔하게 보내줄게.”
철컥.
카를로가 총을 꺼내 노리쇠를 장전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이마에 총구를 겨누었다.
화가 난 채 부하 볼에 시가를 비벼 꺼서 그런지 눈동자가 그새 살짝 충혈되었다.
“나도.”
양손을 들어올렸다.
누가 보면 저항을 포기한 것으로 생각할 만한 태도.
“미친 새끼…….”
“클클.”
머리통이 박살나는 장면을 상상하는지 갱 조직원들이 내 포즈를 보고 비웃었다.
이들의 손에 죽은 자들이 한둘이 아닌 건 주변 공기만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새카만 기운들이 스멀스멀 그들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폐 공장 바닥에서 전해지는 어두운 기운들도 많았다.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자비심은 1도 샘솟지 않았다.
“만나서 반가웠네. 립.”
스윽.
총구를 좀 더 가까이 밀착시켜 오는 카를로.
씨이익.
나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그리고.
촤아아앗.
들어 올린 손을 힘 있게 휘저으며 사방으로 뻗었다.
퍼버버버벅.
구멍이 뚫렸다.
방금 전까지 활동하던 따뜻한 뇌수를 감싼 두개골이 뚫리며 멀쩡하게 서서 구경하던 자들의 뒤통수에서 피가 쏟아져 내렸다.
단 한마디 비명이나 저항의 몸짓도 없었다.
정지해 버린 뇌.
콰다다다당.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 힘없이 쓰러지는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
유일하게 산목숨으로 서 있는 카를로의 눈동자가 공포에 물들었다.
저벅저벅.
뒷걸음질 치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방아쇠를 당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의 손.
총구를 잡았다.
와드득.
내공이 실리자 총은 장난감처럼 구겨졌다.
“카를로. 이제…… 보스 만나러 가자.”
회귀의 전설 2부